스님의하루

2022.9.20 정토경전대학 제1강, 대승불교의 흥기
“대승불교가 출현하게 된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8시부터 인도 성지순례 준비팀과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조끼, 가사, 밥솥 등 물품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전체 일정별 행사 준비상황을 검토했습니다.

“보드가야에 시민문화예술 회관이 새로 생겼는데, 한국에서 1,250명이 인도성지순례를 갔을 때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떨까요? 아이들에게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스태프 여러분이 실무를 준비할 게 너무 많아져서 그게 고민이에요.”

“스태프들도 실무 부담이 커서 약간 망설이고 있는데, 막상 어제 시민문화예술회관에 답사를 갔다 오니까 ‘아이들에게 너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하면서 마음이 달라지긴 하더라고요.”

“조금 더 고민을 해 봅시다.”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여러 의견들을 수렴하고 나서 회의를 마쳤습니다. 11시부터는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 준비회의를 하고 오후 2시에는 온라인정토회로 변한 후 바뀐 회계원칙에 대한 조정회의가 있었습니다.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연달아 생방송이 있어서 그동안 하지 못한 회의들이 연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부터는 정토경전대학 제1강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경전대학에 입학한 5200여 명 중 생방송 반 참가자 1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다시 한번 경전대학에 입학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어서 입학생 두세 명의 소감을 가볍게 들어본 후 곧바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경전을 공부하기에 앞서 첫 번째 시간이기 때문에 앞으로 배우게 될 대승불교가 왜 출현하게 되었는지, 대승불교의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해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에 이 세상에 출현하셨습니다.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탐구하여 먼저 자신이 깨달음을 얻고 괴로움이 없는 삶에 이르렀고, 평생 동안 다른 사람들도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이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붓다뿐만 아니라 붓다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행복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행복했기 때문에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소중함과 믿음이 누구보다 깊었어요. 그래서 붓다가 열반에 든 뒤에도 붓다의 가르침을 모아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반복해서 공부하면서 수행 정진해 나갔습니다.

불법이 널리 전파되면서 생긴 문제들

이렇게 세월이 100년이 흐르고 200년이 흘러가면서 생긴 현상은 부처님의 법이 전파되는 영역이 매우 넓어졌고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졌다는 거예요. 영역이 넓어지면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고,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당연히 그 가운데서 견해가 다른 사람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또 200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흐르다 보니 붓다의 가르침을 원형 그대로 고수하려는 사람과 붓다의 가르침을 지역이나 시대 상황에 맞게 변화해서 적용하려는 사람들로 견해가 나뉘게 돼요.

예를 들면 부처님 당시에 출가수행자는 남이 버린 헌 옷이나 아무도 입지 않는 분소의를 주워 입었고, 음식은 얻어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어요. 간혹 비가 오면 빈집 처마 밑이나 동굴에서 자는 정도였죠. 그런데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무리를 이루어서 같이 살게 되면서 대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짚을 덮은 지붕으로 햇빛을 가리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정도의 초막을 지어 생활하게 됩니다. 이럴 때 논쟁이 생기는 게 당연한 현상이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초막 밑에서 사는 것은 안위를 추구하는 것이니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류와 부처님께서 ‘일부러 새 옷을 시신을 덮었다가 벗겨 입거나, 헌 옷이 없다고 벌거벗고 다닐 수는 없으니 주워 입을 헌 옷이 없을 때는 새 옷을 입을 수도 있다’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사람이 많아 비가 올 때는 피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초막 정도는 치고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보시를 받는 것에도 견해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날 먹을 만큼의 음식을 보시받아서 당일에 음식을 모두 소진했어요. 음식을 보관하거나 저장하지 않았습니다. 출가수행자라고 특별히 세상으로부터 존경받던 시절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수행자들에게 먹다 남은 음식이나 버릴 음식을 거지한테 주듯이 줬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입멸 후에 부처님 법을 따르는 재가 수행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수행자를 굉장히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행자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좋음 음식을 마련해서 깍듯이 대접하기도 했어요. 이러다 보니 충분히 깨우침을 얻고 출가한 게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 중에는 오히려 수행자의 모양을 하는 것이 음식을 얻는 게 수월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출가 수행자의 대열에 들어오면서 음식을 얻는 것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어쩌다가 소금을 얻게 되면 쓰고 남은 소금을 바위틈이나 나무 틈에 두었다가 이튿날 음식이 싱거울 때 약간 뿌려서 먹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났어요. 이와 반대로 그것이 무엇이든 저축하는 것은 집착이 되므로 소금을 보관하는 것도 계율에 어긋난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상좌부와 대중부의 출현

이렇게 상반되는 견해가 생겨나다가 심지어는 걸식할 때 음식 대신 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생겼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화폐가 발달하지 못한 시기였지만 200년이 지나면서 상업이 발달한 바이샬리 같은 도시에서는 화폐가 아주 발달했어요. 상인들이 길을 가다가 출가수행자를 만나면 공양을 올리고 싶은데 음식이 없으니까 돈을 보시하게 된 거예요. 젊은 수행자들은 ‘공양할 음식이 없어서 음식 교환권의 개념으로 화폐를 보시한 것이고, 그 돈을 음식점에 갖다 주면 음식을 받을 수 있으니 화폐를 받아도 된다’ 하고 주장했어요. 이것은 돈을 저축하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원로들은 돈을 보시받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견해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서로 다른 지지세력이 끼리끼리 모이면서 승단은 크게 상좌부와 대중부 둘로 나뉘었습니다.

상좌부는 시대가 바뀌거나 지역이 바뀌는데 관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수해서 간직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견해를 고수하는 경향을 띱니다. 대중부는 부처님께서도 소소한 계율은 버려도 좋다고 하셨으니 시대에 맞게 변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부파였어요. 이렇게 상좌부와 대중부로 크게 나누어져 결과적으로 불멸 후 200년이 지나면 승단이 둘로 쪼개져 별개의 조직이 됩니다. 이것을 상가의 근본 분열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 번 나뉘면 다음에는 나누어지기가 더 쉬어지죠. 그래서 대중부는 불멸 후 200년에서 300년 사이에 근본 분열 후 다시 몇 번의 내부 분열로 여러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상좌부도 근본 분열이 발생하고 처음에는 원칙을 고수하다가 그 안에서도 원형 그대로 가야 한다는 쪽과 조금 바꾸자는 차이가 생기면서 내부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상가 조직이 나누어지면서 부파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경을 인용해서 자기 부파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글을 씁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근거해 사물을 이렇게 봐야 한다는 논문을 쓰면 다른 쪽에서는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 또 나왔습니다. 계율에 대해서도 부파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 달라졌어요. 예를 들면 우리 부파에서는 소금을 받을 수 있다든지, 우리 부파에서는 소금을 받을 수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주로 자기 부파에 들어오는 어린 스님들에게는 이 많은 부파 중에 왜 우리 부파가 정통성이 있고 정당한지에 대해 먼저 가르치게 되는데 이런 글을 논장(論藏)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진리에 대한 설법을 모아놓은 글이 경(經) 또는 경장(經藏)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바르게 살라는 실천적 덕목을 율(律) 또는 계율(戒律)이라 하고, 이것을 모아놓은 글이 율장(律藏)입니다. 처음에 왕사성 밖 칠엽굴에서 제1결집을 할 때는 ‘경율’만 결집이 됐고 100년이 지난 뒤에 바이샬리에서 제2결집을 할 때도 이 ‘경율’에 대해서 수정 보완만 했어요. 그런데 이런 논쟁이 일어나면서 불멸 후 200년경 파탈리푸트라에서 결집할 때는 논장도 결집을 합니다. 즉 자기 부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문을 부처님 말씀에 버금갈 만하게 중요성을 뒀습니다. 이 논장을 아비달마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부파로 나뉘었다 해서 이 시대를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 또 경율(經律)로 공부하기보다 논장(論藏) 중심으로 공부해서 아비달마 불교(阿毗達磨佛敎) 시대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렇게 승단이 학문화의 길을 가는 동안 대중은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니 자꾸 복을 빌게 되고 ‘스님이 기도를 대신해 주면 복을 받는다’,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면 복을 받는다’ 하고 생각하는 흐름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출가수행자의 일부는 힌두교처럼 종교 지도자의 길로 가고, 일부는 전문학자로 가는 경향이 발생하면서, 대중이 자기 삶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받을 수 있는 길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대승불교의 흥기

대중은 출가수행자로부터 도움을 얻지 못하니 자기들끼리 모여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서로 돕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재가 수행자가 중심이 된 이런 새로운 운동은 부처님의 사리탑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을 그리워하지만, 부처님의 형상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을 중심으로 모였고, 불상을 제작하면서부터는 불상을 중심으로 모였는데, 이것을 불탑 신앙이라고 합니다. 탑이나 불상을 신앙하는 재가 수행자 중심의 신앙공동체가 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서는 무엇이 중요합니까? 첫째,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둘째, 선정을 닦고, 셋째, 지혜를 힘써 얻어야 합니다.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돕는 것이 매우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불교 운동에서는 남을 돕고 보살피는 ‘보시’가 수행자의 덕목으로 제일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기존 불교에서는 이런 운동을 사이비로 취급했습니다. 새로운 불교 운동은 정통이 아니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사이비 취급을 받는 것을 참고 견디고, 항상 남의 비난을 인내하는 ‘인욕(忍辱)’이 중요한 수행 덕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머리 깎은 출가수행자는 그 모양만으로도 사람들이 존경하지만, 머리 기르고 세속의 옷을 입고 활동하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정진(精進)’이 또한 중요한 덕목이 됐습니다.

육바라밀 수행법

이렇게 해서 보시, 인욕, 정진이 기존의 계정혜와 함께 여섯 가지 수행의 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육바라밀이라는 자기들 나름의 새로운 수행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불교 운동은 처음에는 세력이 작아서 사이비 취급을 받았지만 점점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대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불교 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기존 불교에 대해 ‘자기 수행밖에 모르는 사람들’이고 자신들은 ‘나의 수행과 고통받는 중생을 함께 껴안고 가는 수행’이라고 주장하며, 기존 불교를 소승이라고 부르고, 자기들은 대승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소승과 대승이라는 말은 대승불교에서 나온 말이지, 기존의 불교가 스스로 자신들을 소승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기존의 불교에서는 자기들이 정통이고 새로운 불교가 사이비라는 관점이고, 새로운 불교 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승이고 기존 불교는 소승이라고 하면서, 소승과 대승이 사상 논쟁을 하게 된 거예요.

우리가 태국 불교나 동남아시아 불교를 지역에 따라 남방불교, 또는 대승의 입장에 따라 소승불교라고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소승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근본불교, 즉 인도 말로 테라밧다(Theravada)라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그들을 존중해서 그들이 원하는 이름인 테라밧다로 불러줘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승불교는 점차 독자적인 승단을 형성합니다. 부파불교 안에는 상좌부와 대중부가 있었는데, 이걸 합해서 소승불교라고 했죠. 그중 대중부는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바꾸자는 주장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 기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대승불교가 일어나니 이 대중부가 설 자리가 없어졌어요. 아예 근본을 유지하자면 상좌부로 가야 하고 변화하자면 대승불교가 더 적극적인 주장을 하니 부파불교 안에 있던 대중부는 시간이 갈수록 소멸하고, 상좌부는 원칙을 고수하고 원형을 지키는 쪽으로 가서 오늘날의 테라밧다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가 갈 수 있는 길

재가 수행자들이 중심이 되고 거기에 출가수행자도 참여하는 이런 새로운 불교 운동이 바로 대승불교 운동입니다. 이 대승불교의 상가 구성원은 머리를 자르고 기르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출가, 재가가 중요하지 않고 발심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즉 부처가 되겠다, 깨달음을 얻겠다, 이렇게 큰 마음을 냈느냐가 중요합니다. 출가한 스님도 마음이 좁으면 보살이 아니고, 재가 수행자라고 해서 다 보살이 되지도 않습니다. 발심하지 않으면 보살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사람을 보살이라고 부르고, 보살이라야 상가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보살은 누구나 될 수 있었습니다. 남자도 괜찮고 여자도 괜찮고 남녀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출가자도 괜찮고 재가자도 괜찮고 출가와 재가를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대승은 보살 상가이고, 보살 상가는 사부대중 4부류로 구성되었습니다. 출가 남자 수행자(비구), 출가 여자 수행자(비구니), 재가 남자 수행자(우바새), 재가 여자 수행자(우바이)로 구성되는 것이지요.

새로운 불교 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서 기존 불교의 문제점을 극복해가는 대승불교가 점점 자리를 잡아나갔습니다. 대승불교 운동의 초기에 대승 사상을 담은 많은 경전이 출현했는데 이것이 대승 경전입니다. 그래서 이 대승 경전을 통해 수행자의 자세와 세상에 대한 관점 등을 배워 보는 것이 앞으로 정토경전대학의 교과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이번 주에 생활 속에서 실천해 볼 수행 연습 과제를 이야기해 준 후 수업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마음나누기를 이어나갔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주간반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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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성

아무리 좋은것도 시대에 따라 변화할 스 밖에 없는 거네요
너무 기존것을 고집하고 그대로 따라야 하는것도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되는 법문입니다
대승불교또한 시대에 변해야 되지 읺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2022-09-27 10:54:42

김종근

대단히 감사합니다

2022-09-26 06:35:49

보각

대중부와 상좌부 대승불교의 생성과정을 들으니 재밌고 정리가 잘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9-25 16: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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