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8.13 천일결사 기도, 행복학교 특강, 정토회 합동회의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을 못 벗어나니 자괴감이 듭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독송을 차례대로 한 후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세계는 기후변화로 곳곳에서 아우성입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가뭄으로 인해 여름 산불로 많은 숲과 주택이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은 지난달에 40도까지 올라가는 이상 기온을 보였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이번엔 40도까지는 아니지만 다시 37도까지 올라가는 더위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평소 여름이라고 해도 기온이 20도 중반까지만 올라가서 에어컨이 필요 없는 곳이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무더위가 찾아오니 사람들도 적응하기 힘들고, 그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도 나온다고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 변화

미국의 서부지역인 캘리포니아도 물 부족을 겪고 있고, 인근에서 가장 큰 호수인 미드호(Lake Mead)가 말라가고 있어서 단수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바로 근처에 있는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데스밸리(Death Valley)는 평소 비가 안 와서 소금이 하얗게 눈처럼 덮여 있는 지역인데, 이곳에 순식간에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남부지방은 폭염이 계속되고 있고, 서울 등 중부지방은 홍수 피해가 심할 정도로 비가 많이 왔습니다. 현재 소강상태에 들었지만 다음 주 화요일부터 다시 큰 비가 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후변화가 심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만 년 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은 1도 정도 상승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1만 년 동안 지구는 안정된 기후 속에 있었고, 그만큼 인류 문명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지난 100년 동안 평균기온이 1.3도 오를 정도로 지구의 기온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고, 이로 인해 기후 위기가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북극에서는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고 있고, 이렇게 평균기온이 계속 올라가서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그때부터는 자동적으로 기온이 계속 올라가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북극과 남극을 비롯하여 고산지대에 눈이 덮여 있음으로 해서 해수면도 조절이 되고, 또 태양빛의 상당 부분을 반사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지구의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빙하가 녹고 고산지대의 눈이 녹아서 이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해수면의 상승뿐만 아니라 지구가 흡수하는 태양빛의 양도 많아지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사람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도 기온이 저절로 올라가는 현상을 야기시킨다고 합니다. 평균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어서면 이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짧게는 10년 안에 임계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막상 우리의 생활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추우면 난방을 하고, 기름값이 비싸다고 하지만 차를 타고 다닙니다.

‘물가가 상승하니까 적게 소비해야겠다’
‘기름값이 오르니까 이동을 적게 해야겠다’
‘기온이 상승하니까 육식에서 채식으로 식습관을 바꿔야겠다’
‘지구 환경과 기후변화를 생각해서 재활용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극소수이고, 그나마도 실제 생활 습관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어요.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삶의 태도를 바꾸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자

그러나 정토회에서는 30년 전에 환경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우리 삶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환경을 위해 댐 건설을 반대하는 등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자’

이것이 정토회 환경운동의 모토입니다. 결국 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입니다. 뭐든지 많이 사용하겠다는 욕망을 따라가게 되면, 내가 그 욕망을 다 채우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선 나부터 괴로워집니다. 또 그 욕망을 두고 다른 이와 경쟁을 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갈등관계가 됩니다. 욕망 때문에 부부 사이도 원수가 되고, 부모와 자식 사이도 원수가 되는 일이 생깁니다. 또한 과다한 소비는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빈곤층을 양산하게 됩니다.

이러한 만 가지 병이 우리가 소비를 줄임으로 인해, 또 욕심을 내려놓음으로 인해 개선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음으로 해서 나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소비를 줄임으로 해서 이웃과 서로 나누어 가질 것이 생기게 되고, 인간 사이는 경쟁관계를 벗어나 좋은 벗의 관계가 되고, 지구 환경도 보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정토회의 사상과 행동 규범은 일치되어 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연기적 세계관, 즉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을 토대로 삶을 살아갑니다. 내가 오염시킨 공기가 결국 내 코로 들어오고, 내가 오염시킨 물이 결국 내 입으로 들어오고, 내가 오염시킨 땅에서 자란 음식이 결국 내 몸으로 들어오지, 그런 오염이 다른 곳에 가는 게 아닙니다. 이는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정토회는 지난 30년 동안 활동을 해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관점이 옳았다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습니다. 다만 원(願)을 세운 만큼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나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멈추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그 방향을 가속시키지는 않았겠죠. 또 조금이나마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전체적인 변화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2차 만일결사에는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활동의 방향을 새로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서는 지구 전체 인구의 0.1%인 1천만 명이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여 주변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바른 길이라면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나는 이미 멈춘 지 오래다

오늘 읽은 경전은 앙굴리말라가 어리석음과 욕망, 성질을 멈추지 못하고, 삿된 소견 속에서 살면서 자신을 해치고, 타인을 해치고, 악명 속에서 살아가다가 부처님을 만나서 새 사람이 되는 내용입니다.

‘사문아 멈춰라.’
‘나는 이미 멈춘 지 오래다. 그러나 너는 멈추지 못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은 부처님이 ‘나는 멈춘 지 오래다’라고 하는 말에 앙굴리말라는 그 이유를 묻게 되고 대화가 이어집니다.

‘나는 세상을 해치는 것을 멈췄고, 욕망을 멈췄고, 어리석음을 멈췄다. 너는 세상을 해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욕망을 멈추지 않았고, 어리석음도 멈추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앙굴리말라는 자신의 무지와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앙굴리말라는 사람만 해쳤지만, 지금 우리는 사람과 지구의 만 생명을 해치며 지구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앙굴리말라보다 더 나쁜 행위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남을 해치고 다니는 앙굴리말라를 비난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소비에 중독되어 이 세상을 해치는 행동을 다 같이 하고 있으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고, 큰 차를 타고, 보석을 많이 가지고, 큰 집에 살고, 음식을 낭비하고 버리면서 사는 게 아주 잘 사는 모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사는 본인도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인 줄 착각하며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도 그 모습을 부러워하며 껄덕거리고 살아갑니다. 이게 요즘 세상의 모습입니다.

경제적 빈부격차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100명 중 1명의 재산이 나머지 99명의 재산과 맞먹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재벌의 재산과 소득이 수십 개 나라의 수십 억 인구의 재산과 소득보다 많은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소비 중독을 멈추어야 할 때

우리는 이런 길을 멈추어야 합니다. 이제 멈출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 그 길을 허겁지겁 가고 있습니다. 이런 삶에 지친 사람들 중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사람들이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자연인’입니다. 삶에 지쳐서 다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인데, 산속에서 혼자 있어도, 재산이 없어도, 명예가 없어도, 가족이 없어도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출가의 삶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만의 안온을 위한 도피적인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검소한 삶, 소박한 삶,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정토행자들입니다. 정토행자들은 오히려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깨우치는 일을 해나갑니다.

그래서 정토행자가 되면 매일 아침마다 이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기도를 한 다음 하루를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길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에게 담배를 안 피우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담배를 안 피우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인 것처럼, 소비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잘 사는 길이지만 이미 소비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소비에서 벗어나는 게 현실적으로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담배를 끊고자 하는 사람들이 금연교실을 같이 하듯이 정토행자들도 이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겁니다. 같이 모여서 함께 해나갈 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중 마지막 백일을 향해

이제 2주 후면 1차 만일결사의 마지막 백일기도에 입재하게 됩니다. 마지막 백일기도에는 그동안 입재를 하고 나서 흐지부지하게 된 주변 사람들 모두를 참여시켜서 함께 이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1차 천일결사부터 10차 천일결사까지 한 번이라도 천일결사에 입재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3만 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분들께 모두 연락을 해보면 좋겠어요.

‘우리가 만일은 못하고, 천일은 못하더라도, 마지막 백일은 함께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자’

이렇게 옛 도반들을 독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아침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동네 길목에 자란 풀을 예초기로 벴습니다.




아침 일찍 농사일을 나온 동네 어르신들이 인사를 하고 지나갔습니다.

“아이고, 스님 고생하시네요.”

마을 안쪽에서부터 큰길까지 담벼락을 따라 예초기를 돌렸습니다.




개울 위로 올라온 덩굴도 벴습니다.

스님이 풀을 베어놓으면 행자가 뒤따라 큰 풀을 모아 개울에 버리고, 빗자루로 깨끗이 쓸었습니다.

비닐하우스를 지나 농막 앞까지 예초기를 돌리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예초기를 내려놓자 등에 예초기를 따라 땀이 배어있었습니다.

길 한가운데 있는 큰 돌을 치우다 회의할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내려왔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오전 8시부터 2차 만일결사 준비 위원회와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미래 30년의 사업 방향에 대해 1시간 30분 동안 여러 가지 쟁점을 갖고 대화를 나눈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10시부터는 행복학교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수업과정 중에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음 과정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시간입니다.

오늘은 35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지금은 행복학교를 1만 명에 전하기 위해 다양한 홍보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스님은 왜 행복학교 확산 운동이 필요한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은 인생에 있어서 행복을 제1의 가치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뉴스에 이런 말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웃음)

그런 것처럼 행복학교 참가자들은 ‘내가 비록 당신보다 재산은 적어도 당신보다 행복하다’, ‘내가 비록 당신에 비해 재능은 부족해도 당신보다 행복하다’, ‘내가 비록 당신보다 지위는 낮아도 당신보다 행복하다’ 이런 정도의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행복을 제1의 가치로 삼는 사람들

부처님은 음식을 얻어 입고, 옷을 주워 입고, 잠을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그러면서도 행복했고, 자유로웠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적어도 부처님의 삶과 비교해 본다면, 내가 지금 먹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내가 지금 입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내가 지금 자는 집으로도 충분하다는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하루를 살아도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관점만 바꾸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조금만 유의하면 모두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간단한 이치를 배워서 삶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도록 하기 위해서 행복학교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어서 어제 날짜로 행복학교 입학생이 1만 명이 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젊은 청년이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을 못 벗어나서 힘들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을 못 벗어나니 자괴감이 듭니다

“저는 홀로 삼수를 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아르바이트와 학업, 인턴까지 병행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비정규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앞에 자괴감이 듭니다. 제가 그저 욕심이 많은 것일까요? 대한민국의 경제는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왜 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제가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부적합한 인간처럼 느껴져서 힘듭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 중학교 때부터 혼자 살았어요. 중학교 때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렇게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절에 들어와서 지금 나이가 일흔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질문자의 말대로라면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이렇게 살까요? (웃음)

저는 고등학교만 졸업했는데, 그래도 질문자는 대학까지 나왔잖아요. 또 대학을 다닐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돈을 벌면서 대학을 다니지 누가 돈을 대줍니까. 전 세계 대학생 중 소수 10% 정도만 부모가 학비를 대줍니다. 한국은 과잉 학벌사회이다 보니 대학생 중 절반 정도가 부모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전 세계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대다수가 자기가 돈을 벌어서 대학을 다닙니다.

인도에 가보면 중학교 때부터 자기가 돈을 벌어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저도 중학생 때부터 제가 돈을 벌어서 학교를 다녔어요.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도 해서 학교를 다녔는데,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오히려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너네는 부모가 다 지원해줘서 다녔지? 나는 어릴 때부터 자립해서 살았어’ 하면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왜 그걸 억울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자괴감이 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기업에 입사를 시켜준다고 해도 안 들어갈 것 같아요. 괜히 대기업에 들어가서 위축되고 눈치 보면서 살 필요가 뭐가 있어요? 몇 군데 회사에 지원서를 넣어보고 안 되면 현실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됩니다. 내가 있는 곳이 계약직이면 어떻고, 임시직이면 어때요? 한 회사에 30년을 다니나, 1년마다 회사를 옮겨서 30군데 다니나, 30년 동안 일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저 같으면 1년마다 회사를 옮기면서 30군데를 다닐 것 같아요. 그렇게 회사를 옮기면서 다니는 게 경험도 훨씬 더 많이 쌓을 수 있는 길입니다. 무엇 때문에 한 곳에 잡혀 있으려고 해요?

질문자한테 30년 동안 한 곳에만 여행을 가서 매번 그곳만 보고 오라고 하면 지겹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질문자도 여행을 할 때는 장소를 바꿔가며 여기저기를 다니고 싶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 하고만 30년 동안 같이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알아서 떠나 주면 이 사람도 만나보고, 저 사람도 만나보고,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도 상대방이 떠나면 울고불고 난리입니다. 사람이 떠나 주면 다른 사람을 만나볼 기회가 생겨서 좋은 측면도 있는데, 그걸 보지 못하는 겁니다.

이것은 결국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관점의 문제입니다. 제가 제3세계에 가서 활동하면 가끔 ‘도인’ 소리를 들을 때가 있어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와 같은 곳에 가서 마을 개발을 할 때 마을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저는 우선 어떻게 사는지 물어봅니다. 경작하는 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을 때 ‘1헥타르’라고 하면 저는 그가 어떤 형편에 놓인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헥타르는 3천 평입니다. 논으로 계산하면 15마지기예요. 제가 어릴 때 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 정도의 논을 갖고 있으면 마을에서 중간층 정도 되는 자영업자입니다. 집에 머슴을 둘 형편도 안 되고, 그렇다고 남의 논을 부치는 소작하는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농사지어서 먹고사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에는 아들 한 명 정도만 보낼 수 있는 형편이겠네’ 하고 말하면, 그 사람이 놀라면서 ‘그걸 어떻게 압니까?’ 하고 되물어요.

제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모두 어릴 때 경험 때문에 알 수 있는 거예요. 제3세계는 제가 어릴 때 자란 시골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을 떠올려 보면 금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요.

당시 시골에서 어느 정도의 형편이 되면 아이를 중학교까지 보낼 수 있고, 어느 정도의 형편이 되면 고등학교까지 보낼 수 있고, 어느 정도의 형편이 되면 대학교까지 보낼 수 있는지, 늘 옆에서 보고 자랐기 때문에 생활 수준을 보면 금방 짐작이 가능합니다. 또 시골에서는 여자 아이들의 대부분이 초등학교까지만 나오고, 가끔가다가 중학교까지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또 부엌에 들어가 보면 옛날 시골에서 아궁이에 불을 떼듯이 불을 때고 있습니다. 둘러보면서 제가 ‘늘 숙여서 일하려면 허리가 아프니까 여기는 높여야겠네요’, ‘이렇게 되면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일하기가 어렵겠네요’ 하고 부엌을 개선해야 하는 점들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자기 남편은 30년 동안 같이 살아도 몰라주는데 스님은 부엌 모습만 보고도 바로 알아주니까 놀랍니다.

이런 걸 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나온다고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어릴 때 가난한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걸 알 수 있는 거예요. 또 밭에 나가서 풀 베고 같이 모내기를 하면 스님은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다고 칭찬하기 일수입니다. 그러면 제가 농담으로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가난한 집에 태어난 덕분에 조기교육을 잘 받아서 그렇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부잣집에 태어나면 이런 교육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장난감도 내 손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렇게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살았으니까 대학교 다니는 이상의 경험치가 쌓인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꼭 대학교에 가서 지식을 배우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을 해요?

사람들은 대개 전생에 복을 많이 지으면 부잣집에 태어나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간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으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경험을 많이 쌓게 해 줍니다. (웃음)

전생에 죄를 지어서 가난하게 태어났다거나 전생에 복을 지어서 부자로 태어났다는 건 모두 다 지배질서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치관입니다. 이제는 이런 생각을 뒤집어야 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검은 것이 아름답다.’

이런 말이 있듯이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일을 하고 조기교육을 잘 받아서 경험이 많고 아는 게 많다’ 이렇게 관점을 뒤집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학교 교육을 많이 받아서 아는 게 많다고 하지만 제가 같이 살아보면 생활에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유학을 해서 알게 된 게 아닙니다.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알게 된 겁니다.

힘이 들면 시간이 길어집니다. 힘들게 1년을 살면 10년 산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겸손해지고, 반성도 하게 되고, 남의 심정도 알게 됩니다. 질문자도 지금 아주 좋은 경험을 했는데, 오히려 안 좋은 일을 당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러니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일용직이라도 일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잖아요.

또 요즘 같은 세상에 왜 꼭 한 곳에 붙어서 일하려고 해요? 다들 정규직이 되려고 난리인데 스님 같으면 정규직을 하라고 해도 안 할 것 같아요. 뭣 때문에 한 곳에 얽매여서 살려고 해요? 요즘 같이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에 여기에서도 조금 일해보고, 저기에서도 조금 일해보면,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좋잖아요. 세 군데, 네 군데 걸쳐서 자유롭게 일하면서 사는 게 좋지, 왜 한 곳에 목매달고 살려고 해요? 그러다가 한 곳에 오래 머물게 되면, 또 그때 가서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생각해보면 되죠.

옛날 같으면 결혼 안 하고는 못 사니까 결혼에 목매달았습니다. 결혼을 못하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다고 했죠. 그런데 요즘 결혼에 목 매달 이유가 뭐가 있어요? 살다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같이 살면 되고, 없으면 혼자 살면 되죠. 꼭 같이 살겠다고 정할 필요도 없고, 꼭 혼자 살겠다고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꼭 결혼을 해야겠다고 정하니까 못하면 괴로운 거예요. 또 안 하겠다고 정하니까 부모가 결혼하라고 하면 괴롭죠. 그걸 왜 정해서 괴롭게 살아요? 그냥 놔두고 인연이 되는대로 살아가면 되죠.

이렇게 관점을 조금 바꾸면 질문자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질문자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기득권층이 만들어 낸 지배질서에 세뇌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세뇌가 된 가치관에 따라 자기를 열등하게 인식하고, 스스로를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데서 괴로움이 일어나는 거예요.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내가 돈 벌어서 대학을 가고, 내가 직장을 구해야 하는 거예요. 그걸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게 비정상입니다. 질문자는 마치 대단한 일을 겪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대단한 일도 아니고 불행한 일도 아니에요. 또, 스스로 많이 모자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모자란 것도 전혀 없습니다. 잘난 것도 없고, 모자란 것도 없습니다. 과거에 그런 과정을 겪었다면 굉장한 경험을 한 거예요. 나중에 인생을 사는데 그런 경험들이 다 유용하게 쓰입니다. 결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사회의 통념에 너무 사로잡힌 채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며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108배 정진을 하고 행복학교를 다니면서 제 관점을 바꾸는 데 조금 더 집중을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제 인생 경험을 많이 쌓아간다고 생각하고, 제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남자 친구는 ADHD가 있고, 정신과를 다니며 약도 먹고 상담도 받지만 일에 집중을 못합니다. 생명 유지만 하고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곁에서 어떻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 주변을 관찰해보면 사람들은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마음공부는 부정적이고 나약한 내면을 감싸기 위해 갑옷을 입는 것과 같은 정신승리 상태가 아닐까요?
  • 스님의 법문을 듣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괴로운 일들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제 마음의 움직임일 뿐이라는 게 놀라웠습니다. 수행을 이렇게 공짜로 쉽게 했기 때문에 깨달음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무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정토회 합동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정토회 합동회의는 대중부, 공동체, 사회활동위원회를 비롯해 각종 위원회들이 모두 모여서 각 단위 사업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회의입니다. 참석자들은 사전에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고, 모둠별로 미리 토론 시간을 가진 후 오늘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스님이 입재 법문을 한 후 곧바로 안건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2022년 전국 상반기 사업보고를 듣고 나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2차 만일결사 사업 방향, 2-1차 천일결사 사업계획에 대해 쟁점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쟁점 토론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쟁점 사항에 대해서 스님의 의견을 말한 후 특히 민주적인 운영이 중요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앞으로는 의견 수렴을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하는 방식도 마련이 되어야 합니다. 정토불교대학 입학생을 몇 명 모집할 것인지도 이제 아래에서부터 의견을 수렴해서 최종 목표를 정한다든지, 안건도 아래에서 올라온 것을 위로 상정해나간다든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의견 수렴 방식을 계속 연구하고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의견을 수렴해나가는 정토회

내년 2월에 임원을 선출하는 선거 역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식도 지금 검토 중입니다. 서원행자와 결사행자, 법사도 아래에서 위로 추천하는 방식을 마련해 볼 수도 있겠죠. 지금은 내가 신청을 해서 심사를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모둠에서부터 ‘이번에 우리 지회에서 누가 법사 역할을 하면 좋겠느냐?’ 하고 추천을 하면 그것을 위에서 심사해서 수용하는 방식도 연구해 봐야 해요.

이런 방식으로 정토회는 점점 대중의 의사를 수렴해 나가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임원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적인 운영 능력입니다. 새로 들어오는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들과 자라온 토양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내용도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결정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서 정토회를 운영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사홍서원과 함께 1차 만일결사의 마지막 정토회 합동회의를 끝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스님은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고, 두북 공동체 대중들은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청년특별 지부에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학생들이 실천활동을 하기 위해 두북 수련원에 옵니다. 스님은 청년들과 함께 농사일을 한 후, 오전에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을 생방송하고, 낮에는 청년들과 대화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발심행자(전법회원) 수계식을 하고, 저녁에는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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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놓치고 살았고 무지한 채 지내온 생활에 새로운 앎을 일깨워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2022-08-30 12:49:17

이현희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고....저도 멈추어 봅니다

2022-08-24 11:43:14

정종석

적게 먹고,적게 쓰고,적게 자며 ~더불어 불가피하게 소비해야 할 경우,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시설이나 방법을 이용하는 길이 있는 데 일반적으로 재활용 및 효율적인 시설의 활용에 무관심한 것 같네요. 백열전구나 형광등 보다 LED 램프, 산업용. 공기압축기도 왕복동,스크류혐보다 인버터형 터보 압축기 가 약 50~60% 절전이 되니까요.

2022-08-21 11: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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