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3 농사, 발우공양, 금요 즉문즉설
“남편이 열흘 만에 죽고 나니 너무나도 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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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연장이 담긴 가방을 메고 산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밭으로 오르는 길에 대나무 숲이 있는데 푸르지 않고 온 숲이 누르스름했습니다.

“아이고, 대나무 꽃이 다 피었네. 이것 보세요. 꼭 벼꽃 같죠.”

대나무는 오랫동안 꽃이 피지 않다가 자라는 환경이 갑자기 변하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면 대숲 전체가 함께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꽃이 피고 나면 대부분의 대나무가 말라죽고 맙니다. 대나무는 흔히 나무라고 알지만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꽃이 핀 대숲에는 죽순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산윗밭에 도착해 먼저 울타리 주변에 죽순이 올라왔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아이고, 며칠 안 왔더니 너무 자라 버렸네.”

스님은 크게 자란 죽순 중에서도 여린 부분을 잘라 담았습니다.

“한 끼는 먹을 수 있겠네요. 먹을 게 지천에 널려있어도 때를 못 맞추면 못 먹어요.”


그리고 산윗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도라지를 심은 1단은 풀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도라지 싹이 나기도 전에 온 밭이 풀로 뒤덮여있었습니다.

“아이고.”


스님은 보이는 대로 풀을 뽑다가 멈추었습니다.

“하루 울력을 해야겠네요.”


2단에는 3년 된 도라지가 온 밭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도라지가 풀보다 크다 보니 풀이 크게 자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도라지가 크기까지는 많은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밭을 둘러보고 과일나무를 심은 3단, 4단, 5단 밭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올라가며 스님은 울타리에 얽힌 넝쿨을 제거했습니다.

3단은 과일나무를 심은 지 2년째입니다. 복숭아나무에는 복숭아가 제법 달려서 붉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4단, 5단은 올해 나무를 심었습니다. 둘러보니 나무가 3분의 1은 죽어있었습니다.

“아이고, 나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물도 주고 거름도 줘야 하는데...”

다음에 물을 주기로 하고, 오늘은 과일나무 주변에 크게 자란 풀들만 벴습니다.



과수원에서 내려와 도라지밭을 지나는데 올라갈 땐 안 보이던 풀들이 보입니다. 도라지 사이 풀을 뽑아주고 밭을 내려왔습니다.


내려가면서도 스님은 길 너머까지 뻗은 칡덩굴들을 벴습니다.

밭에서 돌아와 바로 죽순을 다듬었습니다. 두북 공동체가 한 끼 먹을 양은 되었습니다.


산에서 캐어 온 죽순은 대중이 먹을 수 있게 공양간에 전달한 후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식사를 마친 후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가뭄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습니다.

“산 윗밭에 오랜만에 올라가 봤더니 풀이 산처럼 자라 있었어요. 아직 도라지가 나기 전인데 조금만 더 있으면 밭이 아니라 그냥 산이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 서울공동체에 연락해서 일요일에 몇 명이라도 좀 내려와 달라고 도움을 요청해 주세요. 도라지가 싹이 트면 더 이상 풀을 못 매거든요. 풀을 뽑다가 도라지까지 다 뽑아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일 나무를 봄에 심었는데 잔뿌리가 없는 상태에서 비가 계속 안 오니까 3분의 1은 완전히 죽었고, 3분의 1은 비실비실하고, 3분의 1은 살은 것 같아요. 물통에 펌프를 설치해서 전체적으로 물을 한 번 충분히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작년에 심은 나무에는 벌써 복숭아가 몇 개 달리기 시작했어요.

산 아랫밭에는 땅이 갈라질 정도로 가물었어요. 오늘과 내일은 물을 흠뻑 주는 게 필요합니다. 작물이 완전히 죽은 건 아니고 아직 살아 있거든요. 지금이라도 물을 줘서 조금이라도 살리면 좋겠습니다. 땅을 파보니까 20cm 깊이까지 물기가 하나도 없었어요. 작물을 심은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싹도 안 나오고 마른땅에 그냥 묻혀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밭작물 피해가 클 것 같습니다. 물을 어떻게 줄 것인지 연구를 좀 해봅시다.”

발우공양을 마친 후 낮에는 뙤약볕을 피해 ‘깨달음의 글’ 신간 원고 교정을 했습니다.

강한 햇살이 누그러지기 시작할 무렵 오후 4시가 넘어서 다시 농사일을 했습니다.

“문경 연수원에 보낼 수 있게 국화 모종을 더 만들어야겠어요.”

국화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모래에 꽂아 두면 뿌리를 내리고 한 포기의 국화로 자랍니다. 국화 줄기를 10cm 크기로 싹둑 자른 후 잎을 2개 내지 3개만 남기고 아랫 잎은 제거했습니다.

모종판 위에 잘라 둔 국화 줄기를 2cm 깊이로 꽂았습니다. 꺾꽂이를 한 다음 물을 흠뻑 준 후 오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스님은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금요 즉문즉설을 생방송하는 날입니다.

유튜브에서 스트리밍이 시작되자 4600여 명이 즉문즉설 채널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이 시청자들에게 웃으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며칠간 많이 무더웠죠? 제가 있는 이곳 두북 수련원은 그저께 33도까지 올라가는 한여름 날씨였습니다. 요즘 가뭄까지 심해져서 6월 초인인데도 더위가 심해서 인도 날씨 같은 기분이에요. 아침은 12도로 떨어지니까 쌀쌀하지만, 낮에는 33도까지 올라갑니다. 날이 건조하면 기온차가 심해지죠. 그래서 ‘우리나라 기후가 인도를 닮아가려고 그러나?’ 하고 농담을 했습니다. (웃음)

가뭄이 심해지니까 느끼는 점

가뭄이 아주 심해서 요즘 농사가 밭작물은 거의 성장이 안 되고 있습니다. 물을 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렇게 가뭄을 겪으니까 하늘에서 비가 한 줄기 내리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게 됩니다. 비가 내리는 일은 고마운 정도가 아니라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보배 같은 일이에요. 그런데도 늘 비가 내려주면 또 고마운 줄을 모르게 됩니다. 비가 오는 것을 오히려 귀찮게 생각하죠.

그런데 날이 이렇게 가물면 비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이러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까이에서 늘 잘해주면, 그것을 당연한 걸로 생각하고, 고맙기는커녕 오히려 불만을 토로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과 헤어지거나 그 사람이 죽게 되어 볼 수 없게 되면 그제야 그 사람이 얼마나 큰 기둥 같은 역할을 했는지 깨닫고 후회를 합니다. 이런 일이 늘 일어나는 게 인간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열흘 만에 죽고 너무나 허망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남편이 열흘 만에 죽고 나니 너무나도 허망합니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는데 격리 해지를 하루 앞두고 새벽에 갑자기 쓰러져 집 앞 대학병원에 10분도 안 돼서 도착했습니다. 검사 결과 의사 선생님이 뇌에 혈전이 생겨서 그렇다며 수술을 했고, 수술 후 깨어났지만 뇌에 부종이 생겨 다시 재수술했지만,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열흘 만에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삶이 너무나도 허무하고 허망합니다. 사실 지금 이 순간도 믿겨지지 않습니다. 남편은 참 따뜻했고 성실했으며 좋은 남편이었고 좋은 아빠였습니다. 앞으로 제가 아이들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될까요?”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셔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다 같이 위로를 드립니다. 평소에 고지혈증이라든지, 혈전이 있다든지, 이런 병세를 병원 진찰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까, 전혀 몰랐습니까?”

“남편은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았고 건강한 편이었습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면 그런 병에 안 걸린다는 무슨 보장이 있어요?”

“하루 전날까지 같이 산책을 했고, 같이 영화를 봤고, 평상시처럼 똑같은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남편이 더 잊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통사고 나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도 하루 전에 대화도 하고 얘기도 했을 겁니다. 하루 전에 무슨 죽을 낌새가 보이지 않아요. 이렇게 사람이 갑자기 죽게 되면 가족들은 전혀 마음의 준비를 할 수가 없지요. 질문자의 남편도 사고를 당한 것과 같아요. 인체 내부적으로 혈관이 터지거나, 뇌출혈이 생기거나, 혈관이 막혀서 뇌경색이 일어나 뇌사하는 것도 하나의 사고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미리 건강 검진을 하지 않습니까? 마음이 허전한 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질문자가 예상하지 못한 채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난 걸 어떡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요.

질문자가 생각할 때는 죽은 남편이 더 형편이 나은 편일까요? 산 가족들이 형편이 더 나은 편일까요?”

“살아있는 가족들이요.”

“그래요. 살아있는 사람이 형편이 더 낫잖아요. 그런데 죽은 사람은 지금 아무런 걱정이 없어요. 병을 오래 끌다가 죽으면 죽는 사람이 고생인데, 며칠 만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남편이 백신 맞고 와서 가슴이 좀 답답하다고 해서 병원에 다시 가서 얘기하니까 ‘큰 문제가 없으니까 아주 심하면 병원에 다시 오세요’라고 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냥 집에 돌아왔는데 다음날 아침에 남편이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백신 맞고 돌아가셨으니까 ‘남편이 백신만 안 맞았으면’ 이런 후회가 들겠죠.

그런데 질문자의 남편은 코로나 때문에 돌아가신 건 아니잖아요. 코로나 격리 기간에 병이 발병한 거죠. 결국 사고가 나서 돌아가신 것과 같아요. 이건 무슨 전생에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질문자 잘못도 아니고, 사주팔자도 아니고, 그냥 사고가 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사고가 안 났으면 좋지만 사고가 나버린 걸 지금 어떡해요?

본인은 금방 죽었기 때문에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만약 병을 3년쯤 앓다가 죽었으면 가족들이 간호하느라 지치기 때문에 돌아가셨을 때 아쉬움이 덜 합니다. ‘이렇게 고생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이럴 때 죽으면 가족들도 슬픔이 덜 해요.

그런데 잘 지내다가 갑자기 죽으면 아쉬움이 엄청납니다. 남편이 술 먹고 애 먹이고 돈 탕진하고 바람피우고 해서 ‘저 인간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죽으면 며칠 울지만 질문자처럼 슬프진 않아요. 그래서 남편이 애먹이는 것도 꼭 나쁜 게 아닙니다. 남편이 애를 많이 먹이다가 죽어버리면 죽고 난 뒤에 가족들이 사는데 별 지장이 없거든요. 원래 남편이 있으나 마나 했으니까요. 그런데 잘해주던 남편이 갑자기 죽으면 정말 힘들어요. 살았을 때 잘해준 것으로 인해 죽고 난 뒤에도 10년은 더 괴롭혀요. 그런데 남편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도움을 받다가 도움을 못 받게 되니까 허전해서 그런 거예요.

질문자가 우는 건 남편을 위해서 우는 게 아니에요. 제가 남편이 죽은 상갓집에 가면 아내가 저를 붙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스님! 남편 죽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돼요? 애들이 둘이나 있는데, 혼자서 어떻게 키워요?”

이 말은 지금 누구를 걱정하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겁니다. 죽은 남편을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 살 걱정, 자기 아이 키울 걱정을 하는 겁니다.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자기 걱정만 하는 게 인간이에요. 나빠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심리가 원래 그렇습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지금 죽은 사람 앞에 두고 자기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이럴 때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죽은 사람도 있는데 살아 있는 내가 뭘 못 하고 살겠냐? 여보, 편안하게 영면하세요.’

죽은 남편의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영혼이 있다고 치고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질문자가 울고불고하면, 남편의 영혼이 질문자를 보고 얼마나 걱정하겠어요. 그럴 때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여보, 이왕 이렇게 된 거 환생을 하려면 빨리 환생하고, 저승을 가려면 빨리 가고, 그래서 편안하게 지내세요. 다음 생에는 몸 좋게 받아서 우리 다시 만납시다. 제 걱정하지 마세요. 산 사람이 입에 풀칠을 못하겠습니까? 저는 애들하고 잘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딱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비록 지금은 울고 있지만, 어차피 3년 지나고, 5년 지나고, 10년 지나면 질문자가 계속 울고 있을까요, 다시 웃게 될까요? 웃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망각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남편이 살아와서 웃는 게 아니잖아요. 남편이 죽고 나 혼자 사는 것에 적응을 해서 웃게 되는 겁니다. 꼭 3년 울고 나서 다시 웃는 게 나아요? 지금 당장 웃는 게 나아요? 지금부터 웃는 게 효율적이잖아요.

지금 질문자가 운다고 남편이 다시 살아온다면 울어라고 하겠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저도 같이 울어 줄 거예요. 물론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가 대신 울어준다고 위로가 되겠어요? 이 볼펜 하나도 늘 쓰다가 잃어버리면 ‘어디 갔어?’ 하고 아쉬움이 생길 정도인데, 같이 살던 사람이 없어졌는데 어떻게 아쉽지 않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같이 살았던 습관으로 인해 생긴 아쉬움이에요.

지금 질문자가 울고 있다고 해서 죽은 남편한테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 오히려 남편이 편안히 가실 수 있게 이렇게 마음을 가져 보세요.

‘그동안 같이 살면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우리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가십시오. 우리는 우리끼리 잘 살아가겠습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좋겠다 싶네요.”

“네, 알겠습니다.”

“웃어 봐요. 이제 웃고 살아야죠. 그런데 남편이 죽고 나자마자 곧바로 웃으면 사람들이 ‘남편이 싫어서 저러나?’ 이런 소리를 하니까 최소한 3일은 울어야 돼요. 남이 볼 때 3일만 울어야지 계속 울고 있으면 안 돼요. 어차피 남편을 만나기 전에 혼자였잖아요. 혼자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20년 동안 같이 살아 봤으면 됐죠. 같이 사는 게 더 필요하면 새로 사람을 만나면 되죠. ‘그 정도 살아 봤으면 됐다’ 이렇게 생각하고 혼자 살아도 되고요.

원래 혼자였는데 뭘 울고 그래요? 마음을 조금 진정하시고 이제는 웃으면서 같이 살아갑시다. 이렇게 남편이 죽고도 사는데 다른 일이 무슨 걱정이에요? 걱정하려면 끝이 없고, 걱정을 안 하려면 남편이 죽어도 걱정을 안 하고 살 수 있어요. 왜냐하면 다 우리들의 생각 나름이기 때문입니다.”

“스님 말씀처럼 죽은 사람도 있는데 아직 살아있는 저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겠습니다.”

“그래요. 죽은 사람도 있는데 산 사람이 무슨 걱정이에요? 원래 혼자였는데 혼자가 된 게 무슨 걱정이에요? 게다가 남편이 애도 낳아 놓고 갔으니 무슨 걱정이에요? 남편을 보고 싶으면 남편 닮은 아이들을 보면 되잖아요.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기 살 걱정을 하는 것이지, 죽은 사람을 걱정한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 죽은 사람을 핑계 대고 내가 살 걱정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도 있는데 내가 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건 실례 아니에요? 설령 남편이 걱정을 해줘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여보,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 뜻대로 좋은 곳으로 빨리 가세요. 우리는 우리대로 알아서 살게요. 그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준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고마워요.’

부처님한테도 빌면 안 돼요. 부처님이 이미 좋은 가르침을 펼쳐 놓으셨기 때문에 부처님이 도와준다고 해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부처님, 이제 편안하게 계십시오. 이제 남은 일들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좋아하고 불교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부처님한테 무언가를 해달라고 빕니다. 결혼할 상대도 부처님에게 구해 달라고 하고, 장사가 잘 되게 하는 것도 부처님에게 해달라고 하고, 시험을 잘 보는 것도 부처님에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럼 자기는 뭘 하겠다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무슨 불자예요? 불효막심한 사람들이죠.

나이가 스무 살이 넘었으면 부모님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심지어 나이가 육십이 돼도 부모에게 무언가를 도와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은 무엇보다 자립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함께해 준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그것만 해도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남은 일들은 이제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이런 자립적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고2 딸이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로 3일, 5일, 일주일, 이제는 열흘도 지나버렸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요?
  • 남편이 결혼 초부터 의처증이 있었습니다. 18년을 참고 살다가 이혼하기로 하였습니다. 남편은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하는 중입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 아들이 군복무 부적격자로 5개월 만에 전역하고 지금은 집에서 3년째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하면 아들이 집 밖으로 나와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하고,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결사행자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하고, 오후에도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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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 되새기면서 생로병사..
자연의 이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연습과 괴로움이 덜한 지혜로운 인생을 살다 갈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2-06-26 13:53:25

정종숙

스님,감사합니다

2022-06-13 10:56:14

어철준

살아있는 사람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 라는 말에 큰 힘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22-06-10 00: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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