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6 모종 심기, 쌀과 과일 전달, 금요 즉문즉설
“아들이 시력을 잃고 자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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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자마자 스님은 농사일을 하러 밭으러 나갔습니다.

오늘부터 삼일 동안 홍콩 불교신문 기자인 크레이그(Craig) 씨가 스님과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크레이그(Craig) 씨는 스님의 다양한 활동을 홍콩 불교신문에 꾸준히 연재해 오고 있는 분입니다. 한국에 오면 스님과 함께 농사일을 꼭 해보고 싶다며 두북 수련원을 찾았습니다.

“반가워요.”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산앞밭으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요즘에는 연일 모종 심기를 하고 있습니다. 농사팀장님의 안내를 받은 후 크레이그 씨는 스님과 짝을 이루어 모종을 심기로 했습니다.

“크레이그 씨가 모종판에서 모종을 꺼내 주시면 제가 두둑에 모종을 심을게요.”

“Okay!”

행자님 한 명은 호미로 비닐에 구멍을 숭숭 뚫고 먼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콩, 옥수수, 호랑이콩, 양빈, 가지, 바질 등 다양한 모종을 심었습니다.

스님과 크레이그 씨가 모종을 심고 지나가면 뒤에서 행자님이 호스를 끌어와 모종을 심은 구멍마다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모종을 심던 스님은 고랑마다 잡초처럼 듬성듬성 자라 있는 식물을 발견했습니다.

“아이고, 이건 명아주인데요! 나물 무침 해먹으면 정말 맛있는 나물인데...”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묘덕 법사님은 고랑마다 명아주를 뽑았습니다. 모종을 한 줄 다 심고 난 스님도 명아주를 함께 뽑았습니다.


모종 심기를 끝내고 3주 전에 심었던 우엉과 당근을 솎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씨앗을 뿌렸더니 한 곳에 너무 많은 씨앗이 심겨진 곳이 있었습니다.

솎아주는 일까지 끝내고 나서 밭 아랫단에서 윗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윗단에는 옥수수가 이미 두 줄 심겨져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농사팀장님이 다음 일감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다음은 무슨 일을 할까요?”

“스님, 여기에 옥수수를 다섯 줄 더 심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스님은 파종기를 가져와서 심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크레이그 씨는 파종기를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심으면 속도가 더 빨라요” (웃음)


크레이그 씨가 옥수수 씨앗을 파종기 속으로 쏙 집어넣으면 스님이 파종기를 들어 올렸습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옥수수 씨앗이 심어져 나갔습니다.



옥수수 심기까지 마치고 나니 다른 행자님들은 스님이 심은 모종 위에 흙을 덮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크레이그 씨도 함께 흙 덮어주는 일에 합류했습니다.

“모종이 너무 작아서 이렇게 흙을 덮어주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제가 방법을 좀 찾아볼게요.”

스님은 농막에 가서 물컵을 여러 개 가져왔습니다.

모종을 물컵으로 덮은 후 흙을 덮고 다시 물컵을 빼내니 모종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흙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연구를 하면서 일을 해야죠.” (웃음)

모종에 흙을 덮어주는 일까지 마치고 나니 발우공양을 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자, 이제 마무리합시다.”

서둘러 도구들을 정리한 후 밭을 나왔습니다.


모종이 흙, 바람, 햇살, 물을 머금고 무럭무럭 잘 자라나길 기원해 봅니다.

아침 9시부터는 두북 공동체 대중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소심경을 외우며 식사를 여법하게 한 후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기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좀 도우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농사지은 쌀을 포함해서 수박, 토마토, 참외를 주변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장애인 시설인 애광원과 노인 요양병원에도 지원하고, 수련원 주변에 마을 어르신들에게도 경로당을 통해서 지원을 해드리면 좋겠어요. 어제는 경주 지역 사찰에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친 후 서둘러 두북 수련원을 출발했습니다. 트럭에는 쌀, 수박, 토마토, 참외가 가득 실렸습니다.

먼저 거제도에 있는 애광원으로 향했습니다. 부산 신항을 지나 거가대교를 건너자 시원한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크레이그 씨도 바다 구경 좀 하세요.”

“저는 고향이 바다가 보이는 곳입니다. 그리고 홍콩도 섬이에요.” (웃음)

봄날에 보는 푸른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거가대교를 건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애광원에 도착했습니다.

김임순 원장님이 98세의 노구를 이끌고 스님을 만나고자 식당 앞까지 내려왔습니다.

“내일모레가 부처님오신날이어서 거주인들에게 나눠줄 쌀과 과일을 가져왔어요. 쌀 10포대, 수박 20통, 토마토 20박스, 참외 10박스를 가져왔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직접 와주셔서 더 고맙네요.”

원장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후 트럭에서 쌀과 과일을 내렸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짐을 다 내린 후 서둘러 애광원을 출발했습니다. 쌀과 과일을 나눠줄 다음 장소는 진해에 있는 ‘참좋은유치원’입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원장 스님이 얼마 전 스님에게 꼭 보시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마침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원장 스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여기까지 직접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렀어요.”

유치원 선생님들도 모두 나와서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원장 스님이 대표로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제가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우연히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게 되었어요. 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 보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스님이 인도성지순례 간 영상도 보았어요. 저도 인도에 성지순례를 갔지만 절만 하고 돌아왔는데 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저는 요즘 농사짓고 살아요. 그래서 농사지은 쌀을 좀 가져왔어요. 부처님오신날에 올리라고 과일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스님이 쓴 책에 사인을 해서 선물로 드리고 유치원을 나왔습니다. 다음은 스님의 은사스님인 도문 큰스님이 머물고 계신 부산 중생사로 향했습니다.

중생사에 도착하자 막 큰스님이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큰스님에게 인사를 드린 후 쌀과 과일을 시봉하는 행자님에게 전달하고 중생사를 나왔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산타클로스가 된 것처럼 이곳저곳을 계속 이동했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장소입니다. 자재요양병원으로 갑시다.”

자재요양병원에 도착하자 원장인 능행스님이 달려 나와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찾아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항상 직접 오시면 어떡합니까?”

“누가 찾아가면 어때요? 아무나 시간 되는 사람이 찾아가면 되지!” (웃음)

수박, 토마토, 참외를 요양병원 앞에 내려놓은 후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아침에 출발할 때 쌀과 과일 박스로 가득 찼던 트럭의 짐칸이 말끔히 비워졌습니다. 트럭이 홀가분해진 만큼 마음속에는 보람이 가득 찼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도착해 운동장에 내려서 곧바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께서 주변을 살피고 베푸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법사로서 대중들을 늘 살피고 베푸는 마음을 늘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장거리 운전을 싫어하는데, 좋은 일을 하니까 피곤함도 없고 뿌듯하네요.”

“스님이 오신 걸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제 마음이 기뻤어요.”

오늘 하루 스님과 동행한 크레이그 씨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이 사람들에게 자비롭게 베푸는 모습도 감동이었고, 평생 동안 장애인들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분들을 보았을 때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짧게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꾸준히 하는 그분들이 저는 항상 존경스럽습니다. 저보고 그 일을 하라고 하면 그분들처럼 못할 거예요. 저는 농사짓는 게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저를 대신해서 그분들이 일을 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매번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마치자 해가 저물었습니다. 아침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가 될 때까지 장장 7시간에 걸친 선물 배달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44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계절의 여왕 장미꽃이 피어나는 5월 첫 주 법회입니다. 젊은이들은 5월이 연애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데, 저에게 5월은 농사짓기 아주 좋은 계절입니다. 씨앗도 뿌리고 모종도 옮겨 심고요. 이렇게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다릅니다. 또 살아온 배경이 다르면 생각이 많이 차이가 나요. 제가 좋아하는 농사를 짓는 모습을 여러분께 잠시 보여드리겠습니다.”

푸른 봄 풍경 속에서 재미나게 풀을 매고 모종을 심고 영상을 보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봄에 농사를 지어보면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습니다. 여러분도 텃밭이 있으면 가꿔 보고, 텃밭이 없으면 화단이라도 가꿔 보세요. 화단도 없는 사람은 요즘 농촌에 일손이 많이 부족하니까 농촌에 가셔서 농사일을 거들어 주셔도 좋겠습니다.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부처님오신 날까지 연휴기간을 맞아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어디서 듣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연휴기간에도 즉문즉설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과 대화하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연세가 많으신 분이었는데 얼마 전 아들이 자살을 했다며 아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막막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들이 시력을 잃고 자살했어요

“저는 미국 버지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8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들도 최근에 자살을 했습니다. 30대였던 아들은 왼쪽 눈이 나빠진 상태였고 오른쪽 눈까지 나빠지는 중이었습니다. 의사에게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고 결국 시력을 잃게 될 거라는 말을 듣고 결국 자살을 했어요. 자살은 아들에게 정해진 운명이었을까요? 아들을 위해 49재는 지냈는데 이 아이를 위해 제가 어떤 기도를 더 해야 할까요? 그리고 불교에서는 자살을 죄로 여기나요?”

“불교에서는 첫째, 살인과 자살을 동일하게 봅니다. 남을 죽이든 자기를 죽이든 죽였다는 점에서 동일한 거예요. 그런데 남을 죽인 사람은 처벌을 하지만, 자기를 죽인 사람은 처벌할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에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남을 죽인 사람은 처벌을 하니까 나쁜 줄 알지만 자기를 죽인 사람은 처벌을 안 하니 나쁘지 않은 줄 압니다. 사실은 똑같습니다. 자기 목숨을 끊은 사람이나 남의 목숨을 끊은 사람이나 동일합니다.

두 번째, 살인과 자살은 ‘동의 여부’에 차이가 있습니다. 남의 목숨을 끊을 때는 상대가 동의하지 않았지만, 내 목숨을 끊을 때는 내가 동의해서 한 거잖아요. 내가 동의했기 때문에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사람은 자신의 육신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습니다.

질문자는 워싱턴 D.C 가까이에 사니까 요즘 백악관 의사당 앞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알죠? ‘낙태권을 인정할 거냐, 안 할 거냐’라는 문제를 두고 대립하고 있잖아요. 원래 미국 사회는 낙태권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에 보수적인 판사가 더 많아졌고, 그들이 낙태권을 없애겠다고 하자 여론이 찬반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어요. 낙태권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아이를 가진 여성을 중심으로 문제를 봅니다. 자기 몸은 자기가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에요. 반면 낙태권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아이를 중심으로 봐요. 태아를 죽이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으니 자기 아이라도 자기가 죽일 권리는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서로 다른 주장이 상충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엄마가 자기 아이를 때리고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었어요. 지금은 다 죄잖아요. 이제 부모라도 자기 아이를 때릴 권리는 없습니다. 태아와 산모의 권리 사이에서 산모의 자기 결정권을 우선시하는 나라는 낙태를 허용하고, 태아의 생명권을 우선시하는 나라는 낙태권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중간으로 나온 제도가 낙태가 허용되는 기간을 두는 겁니다. 나라마다 16주, 20주, 24주 등 이런 기준은 조금씩 달라요. 이 기간 안에는 여성의 권리, 자기 결정권을 더 중심에 놓고 이 기간이 지나면 태아의 생명권을 더 중심에 놓는 겁니다. 이런 기준은 어떻게 정해졌을까요? 24주가 지난 태아는 인큐베이터에 넣고 키우면 살아날 수 있으므로 생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이 결정권을 존중해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나이가 들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남은 생을 고통스럽게 사느니 존엄하게 삶을 마치고 싶다고 하면 안락사가 허용됩니다. 호주에서는 허용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주에 백 살 넘은 분이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했습니다. 생명의 자기 결정권을 어느 정도 허용할 거냐는 아직 사회적으로 논쟁 중이에요.

질문자의 자녀처럼 눈이 안 보이게 됐다는 현실에 실망해서 생명을 끊는 건 자살할 만한 권리에 안 들어갑니다. 눈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잖습니까? 화가 나서 남을 죽이거나 화가 나서 자기를 죽이거나, 실망해서 남을 죽이거나 실망해서 자기를 죽이거나 하는 것은 자기 결정권의 범위를 벗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자살은 죄라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누구나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자살은 자녀 스스로 결정한 일입니다. 아들은 눈이 안 보이는 삶을 사느니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고 결정한 거예요. 부모로서 너무 가슴 아프겠지만 아들의 선택을 수용해 주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엄마 마음에는 안 들지만 네가 내린 결정이라면 엄마는 늘 너를 믿고 지지한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어떻겠나 싶습니다.”

“49재가 끝나면 아들은 다른 곳으로 가나요? 제가 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엄마는 너의 결정을 존중한다. 엄마는 너무 가슴 아프지만 너를 믿기 때문에 네가 내린 결정을 무조건 지지한다. 내생에는 그런 병 없이 잘 살아라.’

이렇게 아들을 보내 주는 게 지금 질문자가 할 일입니다. 계속 붙잡고 있을 게 아니라 떠나보내 줘야 해요.

“아들은 원래 그렇게 될 운명이었을까요?”

“죽은 사람이 천국에 갔을까, 다음 생에 태어날까? 이런 문제는 믿음의 영역이에요. 사실의 영역이 아닙니다. 즉문즉설은 사실을 다루는 담마, 법을 이야기하는 자리예요. 저는 사실이 아닌 믿음에 해당되는 문제는 ‘각자 알아서 믿으세요’라고 합니다. 즉문즉설은 그저 위로해 주고 쓰다듬어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즉문즉설은 '사실은 어떠한가?'라는 관점에서 대화를 하는 시간이에요.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아이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가슴 아파하고 있을 게 아니라 오히려 ‘그래, 네가 내린 결정이니 엄마는 지지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비록 내 마음에 안 들지만 엄마로서 자녀를 정말 믿는다면 ‘그래도 엄마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 이렇게 할 수만 있어도 괴로움은 끝납니다. 질문자가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끝이 안 나는 거예요. 기독교 신자라면 ‘천국에 가서 잘 살아라’ 하면 되고, 윤회를 믿는다면 '다음 생에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살아라' 이렇게 하면 돼요. 그러나 즉문즉설은 종교로서 불교를 얘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입니다.

'그래, 엄마는 가슴 아프지만 네가 내린 결정이고 너를 믿으니까 너의 결정을 존중한다'

이 관점만 바로 잡히면 더 이상 이 문제에 집착할 바가 없어집니다.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스님께서 세계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그렇게 하시고 계신가요?”

“네. 지금 방글라데시에 미얀마 난민 90만 명이 넘어와 있습니다. 저희 JTS에서 한 5년 전에 60만 명이 넘어왔을 때 가스스토브 10만 개를 지원했어요. WFP(유엔 세계식량계획)에서 그때 지원한 가스스토브가 낡기도 했고 추가로 넘어온 사람들이 있으니까 20만 개를 지원해달라고 했습니다. 일부는 정부에 지원 요청을 했고, 10만 개는 저희가 계약을 해서 주문 생산을 하고 있고 곧 지원할 예정입니다. 가스는 WFP 등 UN기구에서 지원을 하고요. 날씨가 따뜻해져서 난방은 필요 없어졌지만, 나무를 때서 밥을 해 먹으니 불날 위험이 있고, 또 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나무를 때니까 주위 산이 다 황폐화 되었어요. 가스로 밥을 해 먹으니 산림이 복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원주민이나 무슬림을 위해서 학교 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나서는 우크라이나 국경을 답사하고 일부 지원을 했는데 우크라이나 난민은 현재 유럽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돕고 있어서 우리가 크게 나서지 않아도 될 상황입니다. 전쟁이 더 장기적으로 길어지면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옛날에 이주했던 우리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현재 한국에 600명 정도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들의 한국 정착을 전문 구호단체들이 돕고 있는데 JTS에서도 이불을 지원했고 나머지 생필품을 지원하기 위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큰일은 못하더라도 이렇게 주위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지원하거나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스님이 ‘49재 지냈으니 아들은 극락에 잘 가셨습니다.’ 이렇게 한마디만 얘기해주면 될 것을 왜 그런 말을 안 해주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저에게 와서 종교적 대답을 요청하면 그렇게 해 줄 수도 있지만 즉문즉설은 위로하는 자리도 아니고, 종교적인 얘기를 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극락을 믿는 사람들은 49재를 지내고 극락에 갔다고 하면 그렇게 믿겠지만 기독교인이 이 얘기를 들으면 동의하기 어렵잖아요. 여기서 사실은 엄마 입장에서는 자녀의 죽음이 가슴 아프지만 자녀가 그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는 겁니다. 사실을 깨달으면 ‘어떤 결정을 내렸든 엄마는 너의 결정을 존중한다. 나는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네가 내린 결정이니까 받아들일게’ 이렇게 해야 떠나보낼 수 있어요. 이렇게 진실을 깨닫게 되면 번뇌나 집착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영상으로 대화하는 게 쉬운 게 아니네요. 스님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상이 아니라도 목소리나 글을 통해서라도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화상회의에 들어오는 게 많이 힘들죠. 온라인 방식은 지역을 초월해서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연세 드신 분들이 소외되는 문제가 있어요. 화상회의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너무 어렵죠. 나중에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미국에 한 번 갈 테니 그때 만나서 얘기합시다.”

“꼭 연락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제 아들 생각은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만약 죽은 아들이 어디선가 엄마를 볼 수 있다면 아직까지 아들 걱정만 하고 사는 엄마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아들도 엄마가 다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사는 걸 원할 거예요. 그 일은 지나갔습니다. 다 지나갔으니 이제 자기 삶에 좀 더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기초수급자입니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 때 마음이 무거워지고 위축이 됩니다. 저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가볍고 밝게 지닐 수 있을까요?
  • 아내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오해를 자주 하고 그로 인해 기분 나빠합니다. 요즘은 애들 앞에서도 싸우게 되어 현재는 이혼을 결심한 상태입니다. 아내와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 조직 문화가 상명하복식입니다. 말로만 의견 청취하겠다 하고 결국 조직 수장이 원하는 대로 결정이 됩니다. 이 속에서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잘 살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고, 오전에는 농사일과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한 후, 오후에는 문경수련원으로 이동해 저녁에는 부처님오신날 점등식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1

0/200

ㅇㅇ

살기 싫다

2023-01-01 02:41:18

무검

시력을 잃고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기에 시력상실로 생을 마감하려는 것이 잘못이라는 스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시력보다 덜 소중한 것을 잃고도 마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포기하려 했던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2022-06-07 19:33:07

지복순

스님 감사합니다 _()_
자살한 딸에게
진로문제.결혼.죽음 모든너에 선택을
존중한다. 죽음을 선택함에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 마음가짐을
갇는 제 자신이 참 냉정한 엄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2022-05-18 08: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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