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4.28 북한 전문가 모임, 정토불교대학 실천적 불교사상 8강
“돈, 지위, 명예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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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북한 전문가들을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북한 전문가들과 모임을 하는 날입니다.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과 남북 관계를 전망해 보면서, 북한의 식량 사정과 물가 변동이 어떠한지 함께 점검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오전 10시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과 차담을 나눈 후 서울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11시에 서울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해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강의 준비와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 정각에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강의를 하기 위해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학생들도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오늘은 실천적 불교사상 8강을 할 차례입니다. ‘생명의 존중과 재산의 보호’라는 주제로 다섯 가지 계율(오계) 중에 첫 번째와 두 번째에 해당하는 계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불교적 가치관의 기준은 ‘인간을 괴로움에서 괴로움이 없는 쪽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의 현실이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가야 할 목표 지점은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입니다. 괴로움이 있는 삶에서 괴로움이 없는 삶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는 일은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고, 장애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이런 관점에 있는 것이 수행자의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치관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다섯 가지로 제시한 것이 오계입니다. 오늘은 그중 생명존중의 가치관인 불살생(不殺生)과 생존권 보호의 가치관인 불투도(不偸盜), 두 가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오계의 첫 번째인 ‘불살생’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마라’입니다. 이 계율의 정신은 생명존중입니다. 오계 중 불살생 계율이 먼저 나온 이유는 뭘까요? 나한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물으면 돈, 지위, 명예, 건강, 이런 걸 많이 얘기합니다. 혹은 자기 취향을 중요하게 여겨서 패물이나 술, 차 등에 중요한 가치를 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국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생명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죽고 싶거나 맞고 싶지 않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 또한 그렇습니다.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의 생명이고, 다른 모든 생명도 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됩니다.

생명을 해칠 때는 이유를 많이 붙입니다. 옛날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이름으로 짐승을 죽이거나, 순장이라고 해서 주인이 죽으면 종들을 같이 묻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형 제도를 통해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법률, 믿음, 가치 등 어떤 이유로든 생명을 죽이는 것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불교는 사형 제도를 반대합니다. 사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나쁜 사람을 그냥 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깨우쳐서 새 사람이 되게 교화를 하든지, 그게 안 되면 격리를 시켜서 남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까지는 되지만, 그렇다고 죽이는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생명존중의 가치를 실천하는 방법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명존중의 가치를 실천해갈 수 있을까요? 첫째, 일단 나부터 어떤 생명을 죽이거나 때리거나 해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남을 시켜서 생명을 해쳐서도 안 됩니다. 내가 직접 해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시켜서 청부살인을 한다면 이 계율을 어긴 것입니다. 셋째, 살생을 하는 어떤 수단도 만들면 안 됩니다. 무기를 생산하거나 보관, 유통, 판매하는 것 등이 다 간접적 살인에 해당됩니다.

넷째, 죽이는 것을 보고 즐겨서도 안 됩니다. 살생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대표적인 것이 폭력적인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수많은 사람을 칼이나 총으로 죽이는데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막 환호를 합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검투사들에게 서로 죽을 때까지 칼싸움을 하라고 시켰고, 관중은 상대를 죽이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고 환호를 했습니다. 현대에 와서 좀 변형됐지만 권투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서로 때리고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데 관객들이 그것을 보면서 환영을 합니다. 폭력을 보고 즐거워하는 이런 경기는 하지 말아야 하고, 이런 경기를 보고 즐거워해도 안 됩니다.

다섯째, 죽이는 것을 방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때리거나 죽이는 등 폭력과 살상이 일어나는 걸 보고 방관하거나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리는 것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교육이 목적이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때리잖아요. 절에 들어온 스님들도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스승으로부터 맞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문화였습니다. 그만큼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남자들이 부인을 때리면서 ‘때려야 부드러워진다’ 하면서 합리화를 했고, 심지어 ‘북어와 여자는 때릴수록 부드럽다’ 하는 속담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폭력 문화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거나, 주인이 종을 때리거나, 부모가 자식을 때리거나, 선생이 학생을 때리거나, 상관이 부하를 때리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생명존중 사상에 어긋납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자가 되었다면, 적어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은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도 ‘나는 불교신자다’, ‘나는 수행자다’, ‘제법이 공하다’ 등 무아니 무상이니 윤회니 온갖 얘기를 다 하면서 구체적인 행위에 있어서는 첫 번째 계율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파리나 모기를 죽여도 되느냐’ 하는 질문을 하면서 자신이 불자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파리나 모기라도 안 죽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실천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갈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는 겁니다. 일차적으로 그것이 실천 가능해지면, 그다음에 ‘적어도 네 발 달린 짐승인 포유류를 때리거나 죽이지 않는다’ 하는 쪽으로 확대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벌레라 하더라도 죽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벌레라도 그 생명을 해쳤다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의식은 갖지 말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다른 생명을 해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최소한으로 삼가라는 겁니다.

우리가 문화적으로는 제삿날이나 생일날에 고기를 차리는데, 굳이 따지면 이것 또한 불살생 계율의 기본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고기를 먹더라도 내 생일날만은 고기를 삼간다든지, 평소에는 고기를 먹더라도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은 고기를 삼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슬퍼하면서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런 음식 문화는 자기 생명은 소중하게 여기면서 다른 생명은 함부로 여기는 거예요.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이런 음식 문화는 이기심에서 출발한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내가 죽임을 당하거나 폭력을 당하는 것은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그다음으로 두려운 일은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일입니다. 인간이 살려면 음식을 먹어야 하잖아요. 아플 땐 약을 먹어야 하고, 추우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재물입니다. 재물이라는 것이 생긴 이유가 바로 생존입니다. 생존에 필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먹을 것, 입을 것, 잘 것, 치료할 것(약),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그 외에 필요한 것이 부수적으로 붙어서 오늘날 재물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재물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생존에 필요한 재물을 훔쳐서 그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계율은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마라’입니다.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는 행위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강제로 뺏는 강도, 둘째, 몰래 훔치는 절도, 셋째, 어디 놓여있거나 떨어진 것을 허락 없이 주워가는 것입니다. 내 것을 누가 뺏거나 훔쳐 가면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깜박 잊어버리고 어디 놔둔 것을 찾으려고 가봤더니 없어져버려도 가슴이 아픕니다. 이렇게 나의 경우에 비춰보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너 가져라’ 하고 주지 않는 것은 뺏거나 훔치거나 어디 놓여 있어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말라는 것은 생존권 보호에 대한 것입니다. 생존권을 바탕으로 하는 재산 보호에 대한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산 보호의 가치를 실천하는 방법

첫째, 남의 물건을 뺐거나, 훔치거나,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떨어져 있는 물건이 있으면 신고해야지 내가 가져가면 안 됩니다. 이것이 불투도 계율에서 지켜야 할 가장 최소한의 실천입니다.

둘째, 자립을 해야 합니다. 성인이 됐는데도 남에게 의지해서 산다면, 이 계율을 어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셋째, 이웃에 어린 아이나 장애인, 환자, 가난한 사람 등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사람을 봤을 때는 그들을 도울 의무가 있습니다. 인도적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는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얘기가 뜻하는 것을 실천하라는 겁니다.

‘여기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는 데도 율법주의 학자들은 그를 보고 그냥 지나갔는데,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은 그를 돌봤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누가 좋아 보이시겠느냐?’

이 성경 구절은 어떤 이념이나 믿음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선한 마음을 내고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뭘 믿든, 무슨 생각이나 사상을 갖든, 그런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인들이 자기가 믿는 스승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그 가르침에 반하는 것을 주장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셋째, 바른생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비록 자립을 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세상을 해치는 일을 하면서 생활한다면 계율에 어긋납니다. 남의 병을 치료하거나, 약을 제공해 주거나, 농사를 지어서 먹고산다면, 세상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겁니다. 그러나 음란물을 만들거나,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서 돈을 벌거나, 훔쳐온 장물을 취급해서 돈을 벌거나, 직접적으로 훔치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세상에 해악이 되는 직업을 갖는 것은 모두 두 번째 계율에 어긋납니다.

수행자는 바른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펜대를 굴리면 좋은 직업이고, 육체노동을 하면 나쁜 직업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에 필요한 직업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소하고 밥을 짓고 빨래하는 일은 세상에 필요한 직업입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직업 중에는 이 세상에 없어도 되는 직업이 굉장히 많습니다.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서는 안 됩니다. 또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와 약사라 하더라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변호하는 변호사라 하더라도, 과잉진료를 하거나 탈세를 무마해주고 돈을 번다면 두 번째 계율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손실을 끼치면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말라는 이 계율의 기본 정신은 ‘남에게 손해 끼치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직접적으로 손해 끼치는 행동이 뺏고 훔치는 것이라면, 간접적으로 손해 끼치는 행동에는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부유하게 사는 것은 죄는 아니지만, 내가 많은 것을 가짐으로 해서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적게 가진다면, 이것 역시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됩니다. 누구나 안전하고 편한 일을 하면서 돈은 많이 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누군가는 힘들고 험한 일, 위험한 일을 하면서 돈은 조금 가져가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사문유관을 통해 자각하시고 왕위를 기꺼이 내려놓으셨습니다.

‘왕궁의 이 풍요로움이 농부의 빈궁함 위에 있구나.’
‘농부의 농사짓는 편리함이 소의 고통 위에 있구나.’

내가 직접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내가 안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간접적으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은 간과하기 쉽습니다. 기본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돕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생존권의 위협을 받는 사람을 절대빈곤층이라고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절대빈곤층을 돕기 위해 기아, 질병, 문맹 세 가지를 없애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민족, 인종, 이념, 종교, 사상 등을 떠나 누구나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누구든지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람은 도움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가 어떻든 나라가 어떻든 이런 걸 떠나서, 다 함께(together) 모여서(join)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할 때 종교나 국적을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Join Together Society(JTS)라는 이름의 단체(Society)를 만들어서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에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필리핀 민다나오에 가난한 원주민들을 위해서 학교와 장애인 시설을 짓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좋은 일을 했다고 선전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절대빈곤층을 돕는 것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우리의 당연한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수행자가 되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매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내가 가진 것에서 먼저 천 원을 내놓습니다. 절대빈곤층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에 천 원(1달러)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먼저 천 원을 기부해서 절대빈곤에 놓인 한 사람을 살린 다음 나머지를 갖고 내 생활을 하자는 취지입니다. 더 많이 기부하면 좋지만 최소한 매일 천 원은 기부하자는 거예요. 이것은 세계 시민으로서 누구나 가져야 할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불투도 계율에서 우리가 최소로 지켜야 할 약속은, 첫째, 적어도 남의 물건을 뺐거나 훔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성인이 되면 자립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어려운 사람을 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 사회에는 경제적 불평등, 환경 파괴 등 구조적인 모순이 많은데 이를 개선하는 활동에 참여해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계 중 두 번째 계율인 불투도의 정신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나머지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계율에 대해 함께 공부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를 알려준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서 오늘 수업을 듣고 난 소감과 지난주 수행 연습 과제를 하고 난 소감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일은 정토회 예비 법사 교육을 받고 있는 화엄반 행자님들과 발우공양, 농사일, 수련을 함께 한 후,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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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모든 자연의 생명을 소중하게 보호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23-05-02 07:40:15

송금숙

오계를 지켜
지금 여기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되겠습니다

2022-10-11 21:41:35

청정화

감사합니다. ^^

2022-05-03 20: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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