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9.23 밤 줍기, 가지 수확
“남들과 동떨어진 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부터 여름철 농사일을 위한 하계 일정을 끝내고 동계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6시 10분에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차식색향미 상공시방불 중공제현성 하급군생품.”
(此食色香味 上供十方佛 中供諸賢聖 下級群生品)

식사를 마친 후 두북 공동체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추석 연휴 동안 진행된 농사일에 대해 자세히 공유한 후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한가위 명상수련을 잘 마치고 오신 것에 대해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농사는 저와 묘당 법사님이 이상 없도록 잘 유지를 했습니다. 앞으로 고구마 수확하는 일이랑 벼를 수확하는 일이 남았는데, 수확하는 날을 미리 확정해서 그날에 맞춰 봉사자들을 좀 초대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교문 앞에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었으니까 거기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안내해 주세요. 앞으로는 벚나무 주위에 담벼락을 따라서 계절별로 꽃이 피도록 해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꽃밭에서 놀다가 갈 수 있게 배려를 해주면 좋겠어요.”

해탈주를 한 후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작업복을 입고 산 아래 밤나무 숲으로 갔습니다. 아침 햇살이 밤나무 사이로 간간이 숲 속에 비쳤습니다.

“스님, 밤은 충분히 주운 것 같은데 또 줍나요?”

“손수 키운 곡식도 수확을 하는데, 자연에서 저절로 생긴 밤을 그냥 두면 어떡해요.” (웃음)

오늘도 오전 내내 밤을 주웠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밤송이가 또 많이 떨어졌습니다.

“오늘 또 새로운 밤송이가 많이 떨어졌네요.”

발로 문대어 껍질을 가르면 갈색 알밤이 나왔습니다. 굵은 알밤이 어제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스님을 따라 며칠 동안 연이어 밤을 주우러 온 김선희 법우님은 이제 요령이 생겼습니다. 스님이 집게로 밤송이를 한 곳에 가득 모아주면, 김선희 법우님이 장갑을 끼고 껍질을 까고 알밤을 꺼냈습니다.




손발이 척척 맞아지고, 바구니 속에는 알밤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계곡으로 내려가서 물속에 떨어진 알밤도 주웠습니다. 스님의 작업복 주머니에도 알밤이 가득 찼습니다.


“이렇게 크고 좋은 건 선물용으로 쓰면 딱 좋겠네요.”

산길로 올라가서 계곡으로 걸어 나오며 밤 줍기를 마쳤습니다. 주머니에 든 알밤까지 탈탈 털고 나니 오늘도 바구니에 알밤이 그득했습니다.

곧바로 산 밑밭으로 가서 오이, 토마토, 가지를 수확했습니다.


오이는 이제 거의 끝물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큼직한 오이가 대여섯 개는 나왔습니다.

가지는 여전히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고랑 사이를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앉은 걸음으로 이동하며 가지를 하나씩 수확했습니다.

“가지는 아직 한참 더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스님이 가지를 가위로 툭 자르고 지나가면, 뒤이어 김선희 법우님이 고랑에 떨어진 가지를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바구니에 가지가 가득 차니까 너무 무거웠습니다. 둘이서 겨우 바구니를 들고 고랑을 빠져나왔습니다.

“지금 몇 시나 되었어요?”

“10시가 넘었습니다.”

“아이고, 여기서 9시 30분에 출발해야 약속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데, 밤 줍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알밤 한 바구니와 수확한 채소를 수레에 가득 싣고 서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스님은 10시부터 미국에서 살다 추석 기간에 한국을 방문한 가족을 모시고 부모님 산소를 참배했습니다.

오후에는 가족을 모셔다 드린 후 그동안 주워 온 밤을 정리했습니다. 벌레 먹은 것과 벌레 먹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벌레 먹지 않은 것은 다시 크기별로 나누어 선물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저온 냉장고에 보관했습니다. 벌레 먹은 밤은 공동체 대중과 같이 먹으려고 솥에 삶았습니다.

날이 어두워 불을 켜고 늦게까지 일한 후 하루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9월 3일에 열린 금요 즉문즉설 강연 중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남들과 동떨어진 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떡하죠?

“저는 가족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고, 항상 사람들이랑 교류를 하면서 지냈는데도, 어렸을 때부터 늘 내가 남들이랑 다르게 동떨어진 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질이랑 성격이 나랑 비슷한 사람도 없고, 이해받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동그라미 세상에 혼자 떨어진 오각형 같은 제가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가 있을까요?”

“아니요. 질문자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과 똑같아요.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사실은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특별한 면이 전혀 없습니다. 생긴 것도 특별하게 안 생겼고, 말하는 것을 들어봐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자꾸 특별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에요.

제 말을 못 믿겠으면 정신과에 상담을 신청해서 의사 선생님과 좀 얘기를 나눠보세요. 의사 선생님도 ‘너무 자기 생각에 갇혀있다’ 아마 이렇게 평가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실제로는 아무런 차이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은데 자기 혼자서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또 그 생각에 갇혀 있을 뿐이에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는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고치려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야 돼요.

‘나는 평범하다. 특별하지도 않고, 열등하지도 않고, 우월하지도 않고, 그냥 평범하다. 나는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다.’

자꾸 이렇게 자기에게 암시를 줘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자기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아무런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특별함이 있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 얘기가 조금 미심쩍으면 어떤 특별한 것이 있는지 의사 선생님하고 상담을 해보세요. 조금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 자기 생각에 좀 사로잡히는 문제가 있다고 할 겁니다. 현실 속에서 안 살고 생각 속에 사는 게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은 병원 치료를 통해 고칠 수도 있고, 수행을 해서 고칠 수도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고치는 방법은 자기한테 이렇게 암시를 주는 겁니다.

‘나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나는 평범합니다. 열등하지도 않고, 우월하지도 않고, 그냥 평범합니다.’

자꾸 이렇게 자각하고 현실로 나와야 합니다. 꿈속에 빠지면 깨어나서 현실로 돌아오듯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꾸 늪에 빠지듯이 빠지지 말고 얼른 생각을 바꾸세요.

‘앗! 또 생각 속에 빠진다. 생각만 그렇지 실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렇게 알아차리고 밖에 나가서 자전거를 타든지 뛰든지 걷든지 TV를 보든지 해서 그 생각에 빠지지 않는 연습을 자꾸 해야 됩니다. 만약 불교인이라면 절을 하면서 ‘저는 평범합니다. 저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꾸 자기에게 암시를 줘야 합니다.”

“그래서 심리 상담도 예전에 힘들 때 받았었고, 잠깐 안정제도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운동을 좀 많이 하고 있거든요.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도움이 될까요?”

“네, 도움이 됩니다. 병원 치료를 받는 것이 제일 좋고요. 병원 치료를 받는다고 이 문제가 싹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 악화되는 것을 막아주고, 그것이 삶의 큰 장애가 안 되도록 해줍니다. 그러니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운동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나는 평범하다’ 하고 자기 생각을 바꿔야 되는데,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잘 안 바뀝니다. 그래서 ‘이것은 꿈같은 생각일 뿐이다. 나는 평범하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나는 못난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다’ 이렇게 자기 암시를 자꾸 줘야 됩니다.

그리고 보통은 수다를 떨지 말라고 하는데 질문자의 경우는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수다도 떨어보고, 같이 노는 것도 해봐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거예요. 다만 그 특별하다는 생각에 자꾸 빠질 뿐이에요.”

“너무 감사합니다.”

“네, 그렇게 해보고 또 안 되면 다음에 질문을 하든지 의사 선생님한테 여쭤보든지 그러세요.”

“내 생각에서 벗어나서 우울하거나 다운되는 생각에 갇히지 않게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방 안에서 그만 놀고 문 열고 밖에 나와서 마당에서 좀 놀아라 이런 얘기입니다. 자기 생각 속에 너무 갇혀 있지 말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밖에 나와서 넓은 세상을 보고 사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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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릭

다시 한번 읽습니다. 제가 바뀔때 까지 계속 수행합니다. 제 생각속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저는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현실이란 뭘까요? 기준치를 잡아놓고, 늘 기준치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 스스로를 점검해 보겠습니다. 스님, 건강유의하세요. 감사합니다.

2021-12-28 09:44:35

실상

마음속에서 놀지 말고, 밖에서 놀아라~
요즘 제게 필요한 말씀.
의지하던 가족이 분리하면서 허전함이 들어왔거든요.
혼자도 좋고 같이도 좋고 ㅎㅎ

2021-10-02 10:14:54

고미소

아~밤먹고싶다

2021-09-29 06: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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