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7.5 전법활동가 법회
"봉사를 하다 보면 직장 일이 소홀해져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곧바로 농사일을 하러 밭으로 향했습니다. 곳곳에 갓 태어난 새끼 개구리들이 보였습니다.

먼저 상추를 심어 놓은 텃밭에 웃거름을 뿌려 주었습니다.

열무가 자라고 있던 밭에는 열무를 다 뽑아서 먹기 좋게 손질을 했습니다. 열무를 뽑은 자리에는 다시 열무를 심었습니다. 엊그제 고수와 얼갈이배추를 심으면서 땅을 잘 갈아 두었기 때문에 호미로 줄을 긋고 그 위에 열무 씨앗을 뿌려주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아휴, 숨차다. 요즘은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요.”

열무 씨앗을 뿌린 뒤 흙을 살살 덮어준 후 그 위에 부직포를 덮어주었습니다.

“비가 오면 씨앗이 쓸려내려 갈 수가 있어서 부직포로 덮어 둡시다.”

텃밭 일을 대충 마무리한 후 산 아래에 있는 밑 밭에 행자님 혼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일손을 거들어주러 갔습니다.

“뭐 도와줄 일 있어요?”

다행히 혼자서 일하지 않고 둘이서 같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오이와 호박, 가지가 잘 익었어요. 스님께서는 수확만 좀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스님은 통을 들고서 고랑을 왔다 갔다 하며 잘 익은 오이, 호박, 가지를 수확했습니다.




호박은 잎이 무성해서 한참 동안 찾아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님이 수확을 하는 사이 행자님들은 수박이 자라고 있는 고랑 위에 비닐을 덮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수박은 비를 많이 맞으면 맛이 안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수확을 마친 스님은 밭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잡초를 뽑았습니다.


“저는 그만 내려갈게요. 텃밭에 해야 할 일이 더 남았어요.”

“감사합니다. 스님.”

통에 오이, 가지, 호박을 가득 담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엊그제 상추 마늘과 고수를 심어놓은 텃밭을 싹 정리했었습니다. 새로운 작물을 심기 위해 퇴비를 뿌리고 땅을 뒤집었습니다. 스님의 하루 제작팀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삽질을 도왔습니다.

“요즘은 숨이 차서 삽질하기 어려웠는데 도와주어서 잘 해내었습니다.”

땀이 콩죽처럼 흘려서 작업복이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사용한 삽과 호미, 괭이, 레이크를 물로 깨끗하게 씻은 후 농사일을 마쳤습니다.

“아이고, 시원하다. 언제 밭을 정리하나 했는데, 숙원사업을 하나 해결했어요.”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자마자 방송실로 이동해 법회 준비를 했습니다.

전법활동가 법회

오전 10시 정각에 전법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400여 명의 전법활동가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반갑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전법활동가 여러분. 불교대학, 경전대학, 행복학교를 진행하고 법회, 실천 꼭지 맡아서 활동하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그동안 장마가 늦어져서 가뭄이 심했습니다. 35년 만에 늦은 장마라고 합니다. 7월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장마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이곳 두북에 비가 제법 많이 왔는데도 아직 개울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그동안 가뭄으로 땅이 메말라 있어서 땅이 빗물을 다 흡수해버린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계속 비가 온다고 하니 개울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1년도 3월에 시작한 정토불교대학과 정토경전대학이 3분의 2를 지났습니다. 졸업까지 이제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았네요. 이제 9월에 여는 정토불교대학과 정토경전대학 신입생 모집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입니다. 7월 18일에 입재식을 하는 10차 천일결사 제6차 백일기도의 실천과제는 정토불교대학 신입생 모집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네 명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직장과 가정의 일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수행자라 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봉사를 하다 보면 직장 일이 소홀해져요. 어떡하죠?

“직장 일과 개인사를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수행자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토회 일이 많아지면서 직장 일이 소홀해지고 가정에서도 분란이 생깁니다.”

“원래 수행자가 되려면 집에서도 나오고 직장도 그만둬야 해요.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쩌다 정토회에 다니다가 남들이 수행자의 길을 간다니까 ‘나도 한번 해보자’ 하는 식으로 수행자가 된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늘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불법을 접하고 깨달음의 장(수련 프로그램)을 체험해보고 ‘아, 이 길이구나!’라고 알았다면 바로 출가를 해버려야 해요. 이렇게 원칙을 바로 세우고 교통정리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교통정리가 안 된 상태로 수행공동체에 들어와 있으니까 늘 시시비비가 많은 거예요. 전법 활동가는 모두 출가한 사람 아닌가요? 입으로만 출가한 게 아니라 수행자로서 교통정리를 하고 출가를 했다면 이런 문제가 없을 거예요.

출가를 했다면 수행자로서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은 결국 전법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입니다. 산에 들어가 명상만 하는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선(禪)으로 말하면, 단박에 깨치고 평생 보살행을 하는 사람을 수행자라고 합니다. ‘아, 이게 다 꿈이구나’, ‘욕망의 노예로 살았구나’ 이렇게 단박에 깨치고 세속 생활을 정리해버리면 되는데, 뭐 때문에 질질 끌고 다녀요?

저를 보세요. 출가해서 스님이 되어도 결국 세상 속에서 매일 이 사람 저 사람 상담하고 여기저기 도와주며 살고 있잖아요? 어차피 머리 깎고도 이렇게 돕는 일을 하잖아요. 그런데 머리를 깎으면 도움을 받는 상대가 부담스러워해요. 여러분처럼 머리를 기르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게 숫제 낫습니다.

진정으로 출가를 했다면 주변 사람들을 보는 관점도 달라집니다. 나는 출가를 했지만 예전에 알던 남자가 아직도 여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부인 역할을 해주는 거예요. 내 남편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엄마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엄마 역할도 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다른 사람이 생겨서 부인이 필요 없다 하고, 애들도 다 커서 엄마도 필요 없다 하면 굳이 집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지요. 출가하면 직장도 관두는 게 가장 좋지만, 다니던 회사에서 내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거들어주는 거예요. 필요 없다고 하면 직장도 그만두면 됩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로 잡고 가정생활도 하고, 직장 생활도 해야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수행자가 어떤 사람인지 물으니까 제가 제대로 알려주는 거예요. 수행적 관점이 명확해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라는 호칭을 아무에게나 붙이면 안 돼요.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과거에 유명한 고승 중에도 종교지도자, 또는 불교학자라고 할 수는 있어도 수행자라 하기는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나라에서 내려 준 노비를 부리고, 노비가 해주는 밥을 먹고 예불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출가하신 후 노비를 부린 적이 없습니다. 세속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사셨어요. 다 떨어진 옷을 주워 입고 걸식을 하고 나무 밑에서 자도 행복하셨습니다. 왕 앞에서도 당당했으며 오히려 왕에게 도움을 주며 사셨습니다. 부처님처럼 살지 못할지언정 출가의 관점이 분명히 잡혀있어야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다고 해서 수행자가 아닙니다. 복을 빌어주는 종교지도자로 살거나, 불교 유산으로 관람료를 받아 살거나, 불교를 연구해서 강사료 받거나 법문 해주면서 산다면 수행자가 아니라 불교 직업인입니다. 수행자는 직업이 아닙니다.

수행자는 나의 괴로움이 욕망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괴로움은 돈이 없어서, 배우자나 아이가 없어서, 지위가 없어서, 인기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일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욕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수행자는 이 이치를 깨닫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나 직장 생활을 하고 안 하고 하는 것에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수행자라고 하면서도 남편이나 직장에 집착하며 살고 있다면 수행자가 아니라 가정주부이거나 직장인일 뿐이에요.

이치를 딱 깨치고 나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남을 도울 일뿐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남을 도와야 하는데 원래 알던 남자인 남편을 도와주면 어때요? 어차피 인도에 가서 어려운 아이들도 보살펴야 하는데 인연 맺어진 내 아이들을 돌보면 어때요? 어차피 어디 가서든 일해야 하는데 다니던 직장에 가서 도와주면 어때요? 월급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월급까지 주니까 고맙죠. 이런 관점이 딱 잡혔다면, 가정이나 직장에서 힘들 일이 없고 정토회 활동과도 모순될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정토회 활동이 힘들고, 생활에 모순을 느낀다면 애초에 수행자 자격이 없는 거예요.

정토회는 수행공동체,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수행자를 지향하지 않으면서 수행자라는 이름만 달고 함께 하려니까 힘이 드는 겁니다. 출가해서 스님이 되면 머리 깎고 혼자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결혼도 하고 직장 생활도 하면서, 먹을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수행자로 살겠다고 한단 말이에요. 이런 욕심으로 수행자를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머리를 기르고 결혼 생활이나 직장 생활을 해도 다른 스님이나 종교지도자보다 욕심도 적고, 집착도 적고, 행복하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도 높다면 굳이 출가해서 혼자 살 이유가 없습니다. 출가해서 혼자 살면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거나 매일 외롭다고 울기만 한다면 출가할 이유가 없어요.

정토회의 전법활동가가 되는 조건에 결혼 생활, 직장 생활 여부는 따지지 않습니다. 다만, 수행자로서 명확한 관점이 필요합니다. 수행자로서의 관점을 잡고 인연 따라 엄마 노릇이나 부인 노릇을 좀 해주고, 관계있는 사람도 도와주고, 직장 일도 도와주면 돼요. 여기에 갈등이 생길 일이 뭐가 있겠어요? 이렇게 관점이 딱 잡혀야 인생이 좀 가벼워집니다.

예를 들어 법문을 듣다가도 이웃집에 불이 나면 불을 끄러 가잖아요. 이때 불 끄러 가야 하나, 법문을 들어야 하나 고민할 거예요? 일단 불은 꺼놓고 대신 저녁에 법회를 들으면 되죠. 저녁에도 못 들었으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누가 법회를 빠졌다고 지적하면 ‘죄송합니다. 이웃집에 불이 나서 불 끈다고 못 들었습니다.’라고 하면 되지 ‘불 끈다고 법회 빠졌는데 그것도 안 봐줘요?’라고 성질을 낼 필요는 없어요.

만약에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그냥 건지려고 하니까 안 돼서 장대를 쓰려고 하는데 주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주인 허락을 받지 않고 장대를 가져와서 사람을 구했어요. 나중에 주인이 나타나서 장대 값을 물어달라고 하면 물어줘야죠. 도둑이라고 하면 경찰서에 가서 벌을 받아야죠. 장대를 훔쳐간 건 사실이니까요.

손해를 보고, 모함을 받더라도 물에 빠진 사람은 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비난받고 손해 보는 건 안 하고 늘 이익만 보려고 하잖아요. 어떻게 자기 이익을 다 챙기면서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겠어요?

정치인이 실력이 막강하기만 하다고 지지율이 오를까요? 돈을 벌려면 투자를 해야 하듯이 정치도 투자를 해야 합니다. 정치에 필요한 투자란 손해를 보는 거예요. 야권에 있으면서 여권을 공격하는 것은 그래야 먹고사니까 손해 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권에 있으면서 정부의 부당함에 비판을 하면 손해를 보잖아요. 그러면 국민들이 그 사람을 지지하는 겁니다. 실력이 있고 뭔가 큰일을 한다고 지지율이 높아지는 게 아니에요. 손해를 본 것에 대해 국민들이 보상을 해주는 거예요. 대학 다닐 때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이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어서 손해를 보상받잖아요.. 광주 민주화 항쟁을 하다 희생한 분들도, 독립운동을 하다 희생한 분들도 훈장도 주고 연금도 주잖아요. 꼭 돈이 아니라도 그 공을 인정하잖아요. 이처럼 뭔가 희생을 해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은 아무런 희생도 하지 않고 복을 받으려는 거예요. 심보대로라면 다 지옥 가야지 천당 가긴 틀렸어요. 이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불가능한 일입니다. 좋은 일하고도 지옥에 가서 지옥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내야 천당에 가는 거예요.

교통정리가 되면 굳이 출가를 해서 혼자 살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관계를 새로 맺을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남편이든 아이들이든 직장이든 이미 맺어진 관계니까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면 됩니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하면 알아서 살도록 놔둬야죠. 새삼스레 직장을 구할 필요는 없지만, 이왕 다니는 회사니까 다녀주는 거예요. 여기에 갈등할 요인이 있나요? 회사 일이 엄청 바쁘면 정토회 일에 소홀할 때도 있는 거예요. 집안에 일이 생기면 도반들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말하고 가정을 챙기면 되잖아요. 그런데 가족에게 집착을 끊지 못해서 내가 따라다니느라 정토회 일을 하는 게 힘들다고 하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어요.

수행과 직장, 가정의 일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는 질문 자체가 어폐예요. 여러분이 이런 고민이 되는 건 알아요. 그런데 정토회 활동이 많아서, 직장 일이 많아서, 가정에 일이 많아서 갈등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교통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에 번뇌가 많은 거예요.

직장에 출근해서 필요한 만큼 일 좀 해주고, 퇴근해서 가족들에게 밥을 못 해줄 상황이면 양해를 구하면 됩니다. 남편이 가족에게 밥도 안 해주고 정토회 일 한다고 호통을 치면 슬쩍 넘기기도 하고, 남편이 불만을 토로하면 미안하다고 달래기도 하면서 해 나가는 거예요. 정토회 일 하기 전에도 연속극 보느라 남편은 안중에도 없었잖아요. 그때는 죄스럽지 않고 떳떳했잖아요. 행복학교 진행은 연속극 보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행복학교 진행하느라 남편에게 신경을 못 써줘서 미안하고 죄스럽다면 뭔가 앞뒤가 안 맞잖아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고 떳떳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하는 일을 잘 모르니까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편이 화를 내면 남편의 마음을 이해해서 사과는 하더라도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에요. 불교대학, 경전대학, 행복학교를 진행하는 일은 종교 행위도 아닐뿐더러 죽어서 극락에 가거나 다음 생에 복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잖아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곧 나에게 보람이라고 생각해서 정토회 전법활동가로 지원한 거 아닌가요? 그러니 나 자신에게 당당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돈 버는 일은 당당해 하고, 돈 안 버는 일에는 미안해 할까요?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가 신봉하는 돈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닐까요? 자신을 돈으로 평가하지 마세요. 세상에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돈을 내고라도 하고, 세상에 필요 없는 일이라면 돈을 준다 해도 안 하려는 입장이 분명해야 해요. 질문자가 불법 만난 지 몇 년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직 교통정리가 안 되어서 이런 혼란이 생기는 겁니다. 중심이 딱 잡히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더라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저도 농사일하다가 법회 할 시간이 되면 법문 하러 오잖아요.

직장일이 매우 바쁠 때는 정토회 일보다 직장일을 먼저 하고, 집안에 일이 생기면 집안일을 먼저 하고 정토회 일이 많으면 직장일과 집안일은 좀 미루고 정토회 일을 하면 됩니다. 만약 내가 엄마, 남편, 아이와 한집에 산다면 어떨까요? 나는 아이에게는 엄마고, 엄마에게는 딸이고, 남편에게는 아내잖아요. 애가 울면 엄마가 불러도 애부터 먼저 돌보고, 애 하고 놀다가도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를 돌봐드려야죠. 남편이 화를 내면 엄마를 돌보다가도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한테 가보잖아요. 이렇게 역할은 그때 그때 유동적인 거예요. 열 가지 스무 가지 역할 속에서 살아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수행자는 교통정리를 해야 합니다. 전법활동가가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어도 깨달음의 장을 수료하지 않으면 전법활동가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출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나는 출가를 했다’는 관점을 딱 잡고 놀이 삼아 결혼생활도 하고 아이도 키우면 됩니다. 출가한 사람은 집착할 게 없으니 전전긍긍할 일도 없잖아요. 오늘 질문 잘했어요. 그동안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던 말을 하도록 해줬어요.”

“네, 잘 알겠습니다.”

“잘 알겠다는 거 보니까 저는 수행자 자격이 없으니까 사표 내겠습니다. 이런 뜻이에요?”(웃음)

“아니요, 교통정리를 잘하겠습니다.”

질문자뿐 아니라 함께 대화를 듣던 많은 활동가들에게도 수행자의 관점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수행을 하고 내 과제가 명확해질수록 어렸을 적 상처를 이해하고 품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지치고 괴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관점을 잡고 수행해 나가야 할까요?
  • 불교대학, 경전대학 운영자, 진행자, 돕는이들은 학생들 수업 우선 방침에 따라 명상수련 참가가 어렵습니다. 학생 우선은 이해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어떻게 수행적 관점을 잡아야 할까요?
  • 정토회 임원 선출 기준의 폭을 넓힐 수는 없나요?

법문이 끝나고 사홍서원으로 전법활동가 법회를 마쳤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오후 1시부터는 정토대전 편찬위원회와 백일법문 콘텐츠 분과 구성원이 모두 참석하는 합동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스님이 백일법문을 하게 된다면 불교대학, 경전대학, 사회대학의 교과과정 구성을 위해 어떤 주제로 법문을 하면 좋을지 각 단위에서 준비해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발표 내용을 듣고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초안이긴 하지만 좀 더 깊이 토론해야 할 주제들이 많이 도출되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불교의 사회사상에 대한 강의 주제를 잡을 때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였습니다. 스님은 불교의 사회사상을 기획할 때 고려할 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사회문제라는 것은 끊임없이 바뀌기 마련입니다. 가령 요즘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시간이 흐르면 극단주의로 평가될 수도 있고, 지금은 미혼모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평범한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30년 전에 이혼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요즘은 그런 주제는 더 이상 다룰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내용이 되었잖아요. 사회문제는 이렇게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세세하게 다루면 법문의 수명이 5년 내지 10년밖에 못 갈 수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 문제

과거에 그 시점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세월이 흐른 뒤에 지금 되돌아보면 ‘뭣 때문에 그런 운동을 했느냐?’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많아요. 그래서 지나 놓고 평가해보면 ‘별로 의미 없는 행동을 했다’ 이렇게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회문제에 대한 법문은 워낙 사람들이 궁금해하니까 ‘지금 시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유의미하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법문을 계속 사용할 수가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 큰 틀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주는 정도의 내용을 법문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추상적인 내용만 이야기하면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별로 도움이 안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들기 전에 ‘소소한 계율은 버려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토대전은 최소한 100년을 내다보고 불교 사상적 입장에서 사회 문제를 보는 기본 틀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강의 역시 그렇게 할 것인지는 조금 더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강의는 조금 더 현안을 다루어서 불교적 근거가 없다 하더라도 연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볼 수 있다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해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강의 제목을 ‘불교의 사회사상’이라고 하지 말고 ‘법륜 스님의 사회사상’이라고 해서 조금 더 폭넓게 사회 문제를 다루어보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는 정토사회대학

이런 강의들을 잘 구성해서 결국 ‘정토사회대학’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이 사회대학에서 공부하게 되는 거예요. 불교의 사회사상을 배우고 나면 세상에 대한 눈이 열리게 됩니다. 어떤 관점에서 정의 문제를 봐야 하는지, 어떤 관점에서 평등 문제를 봐야 하는지, 이런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 불교의 사회사상입니다.

불교사상을 배우게 되면 자신의 번뇌가 사라지게 된다면, 사회사상을 배우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는 거예요. 너무 보수적이었던 사람이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거나, 극단주의에 치우쳤던 사람이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겁니다.”

열띤 토론을 한 후 다음 회의 때는 정토대전 편찬위원회에서도 불교사상과 경전 강의에 대한 커리큘럼 구성을 깊이 있게 논의해 와서 발표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1분 휴식하고 곧이어 3시부터 전법활동가 자격 심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법제위원회와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9월에 온라인 정토회가 공식 출범하기 위해서는 전법활동가 자격심사를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토론을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부터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기획위원 18명이 전원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준비된 안건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한 이후 기획실, 만일준비위원회,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의 역할 및 구성원을 어떻게 조정할지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차 만일결사와 달리 2차 만일결사를 설계할 때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전환과 그에 따른 변화에 대해서만 방향을 잡았지 2차 만일결사 때 30년을 이끌어갈 우리의 지향점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를 못했습니다.

‘빈곤 퇴치라는 목표를 2차 만일결사 때도 그대로 갖고 갈 것인가?’
‘한반도의 평화 문제를 2차 만일결사 때는 인류의 갈등 해소, 정의, 인권의 개념을 담은 세계 평화 문제로 확대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검토할 점이 많습니다. 우선 앞으로 30년을 내다봤을 때 미래학자들은 무엇을 과제로 삼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들어봐야 합니다. 미래학자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거기에 불교적인 직관을 결합해서 새로운 미래의 방향을 잡아야 해요.

미래 30년에는 무엇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인가

30년 전만 해도 환경 문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주제였습니다. 노동 문제는 환경 문제보다 10배는 더 중요한 이슈였어요. 그러나 정토회는 30년 전에 벌써 환경 위기 문제를 중요한 과제로 삼았습니다.

정토회가 지금까지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노력도 있었지만 방향이 제대로 잡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물결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뗏목을 띄었기 때문에 해류를 따라서 전진해 온 측면도 있어요. 그런 것처럼 30년 뒤를 내다보고 지금 어떻게 방향을 잡을 것인지 검토해야 합니다. 지금은 농사와 재활용 유통이 부분적인 사업에 불과하지만 30년 뒤에는 더 중요한 사업으로 확대를 할지 아직 검토가 충분히 안 되었거든요. 아이들의 교육 문제도 미래에는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될 겁니다. 다 큰 어른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보다 어릴 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중요할 수 있거든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검토할 문제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각자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어서 바쁘겠지만,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내서 이런 미래의 지향점에 대해 더 많은 논의를 해나갔으면 해요.”

다음 회의 때 더 많은 준비 해 와서 토론을 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농사팀 행자님들과 농사일에 대해 몇 가지 논의를 더 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정토사회문화회관 운영과 관련해 결사행자회의를 온라인으로 한 후 하루 종일 새로 출간할 책의 원고를 교정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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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단비

정신이 번쩍드는 말씀 감사합니다..

2023-09-12 15:00:47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1-07-15 06:18:56

해공덕

수행자의 관점 잡아주시는
스님 말씀 들으며 참회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07-11 06: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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