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6.12 경전대학과 불교대학 즉문즉설,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
“금강경에서 상을 짓지 말라, 무슨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밤새 내리던 비가 잠시 그쳤지만, 잎들은 물방울을 흠뻑 머금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행자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제5차 백일기도 중 56일째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한 후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3천여 명의 천일결사자들이 함께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을 마치자마자 스님은 아침 울력을 하러 밭으로 나갔습니다.

“오늘은 밭에서 쌈채소를 수확해서 큰스님께 보내야겠어요.”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상추를 수확했습니다.

“우와, 이 상춧잎은 한 장이 얼굴만 해요. 여섯 포기 따니까 바구니가 가득 찼어요.”

상추를 한 바구니에 가득 담고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상추가 종류별로 다양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잎을 하나씩 뜯어서 바구니에 종류별로 담았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브로콜리와 오이, 고추도 수확해 와서 함께 바구니에 담으니 두 바구니가 가득 찼습니다.


상추와 열무가 자라고 있는 밭에는 철사 기둥을 꽂고 흰 천을 씌웠습니다.

“햇볕을 강하게 받으면 억세져요. 천으로 덮어 놓읍시다.”

아침에 즉문즉설 생방송을 해야 해서 스님은 행자들보다 일찍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정토경전대학 즉문즉설

9시부터 경전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강경’ 수업 갈무리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2300여 명의 정토경전대학 재학생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화상회의 방에는 청주, 광주, 달서, 김해 등 22개 반 500여 명이 자리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유튜브로 함께 참여했습니다.

학생들은 지난주까지 금강경 16강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의문점이나 궁금한 점을 스님에게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며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학생들은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총 7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여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금강경의 핵심 내용 중에 하나가 상을 짓지 말라는 것인데요. 이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 한 명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금강경에서 상을 짓지 말라, 무슨 뜻인가요?

“금강경 제31분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법문에서 ‘어떤 견해도 일으키지 말라’고 하시며 ‘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내려놓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 밑바탕에는 견해가 있기 때문에 행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 ‘지구를 위해 적게 먹고 남기지 않기’라는 수행 연습을 했는데, 이것이 지구 환경을 위해 좋다는 견해가 있고, 이에 동의하기 때문에 수행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견해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혼동이 옵니다. 그렇다면 좋은 일을 하기 위한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좋은 일이라는 판단도 상을 짓는 것이 아닌가요?”

“언어는 우리가 무엇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절대성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언어로 표현된 것이 절대화 되면 폐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먹을 쥐고 있는 사람이 물건을 집으려면 손을 펴야 합니다. 그때 ‘손을 펴라’ 하고 말해서 손을 편 건 그 상황에 맞는 행동입니다. 즉, 이건 주먹을 쥐고 있을 때 그것을 뛰어넘는 자유를 향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때 손을 펴는 것이 진리라고 절대화 하면 이 사람은 오므려야 할 때 다시 못 오므리게 됩니다. 손이라는 건 필요에 따라 오므리기도 하고 펴기도 해야 물건을 집기도 하고 놓기도 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집을 때는 손을 오므려야 하고, 물건을 놓을 때는 손을 펴야 합니다.

물건을 집어야 하는데 손을 펴기만 하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손을 오므려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물건을 놓아야 하는데 계속 손을 오므리고 있으니까 이 상황에서는 ‘손을 펴라’라고 말하는 겁니다.

제31분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은 누군가에게 손을 펴라고 말할 때 펴는 것만 알아서는 안 되고, 손을 오므리라고 말할 때 오므리는 것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즉, 둘 중 어느 하나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예요.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둘 중 어느 것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누가 ‘서울에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동쪽으로 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질문자의 경우 ‘금강경에는 상을 짓지 말라고 하는데 왜 동쪽으로 가라고 하느냐’ 하고 되묻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동쪽으로 가야 서울로 갈 수 있는 상황에 있는 겁니다. 즉, 인천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가려고 하면 동쪽으로 가는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 상을 짓는 게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동쪽으로만 가야 된다’고 고집하는 것이 상을 짓는 것입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인천에 있는지 수원에 있는지 현재 위치는 고려하지 않고 동쪽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을 짓는 거예요.

대부분의 종교는 성인의 말씀을 절대화 합니다. 그러나 금강경의 위대함은 부처님의 말씀도 절대화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데 있습니다. 부처님이 질문한 사람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말한 것은 동쪽으로 가도 되고, 서쪽으로 가도 되고, 남쪽으로 가도 되고, 북쪽으로 가도 되는데도 동쪽으로 가라고 한 걸까요? 그 사람은 꼭 동쪽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라고 한 걸까요? 그 사람은 동쪽으로 가야 서울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질문한 사람이 인천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질문하는 사람이 수원에 사는 사람인 경우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다고 해서 진리에 맞는 대응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는 방향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라’는 말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즉, 어느 한 견해를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견해를 고집하지 말라는 말의 뜻을 ‘앞으로 누가 물어도 동쪽, 서쪽, 남쪽, 북쪽에 대해 말을 하지 말아야 된다’라고 이해한다면 ‘상을 짓지 말아야 된다’는 새로운 상을 짓는 겁니다. 상을 짓지 말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상을 짓지 말아야 된다’는 상을 또 짓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하고 묻는데 ‘무유정법이다’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유정법(無有定法)이란 ‘정해진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갈 길을 묻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야 할 길을 묻는데 자꾸 정해진 길이 없다고만 하면 답답할 수밖에 없죠.

금강경에서 ‘어떤 견해도 짓지 말라’는 말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상을 짓는 것도 고집해서는 안 되고, 상을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자꾸 사람들이 ‘이것이다’라고 상을 지으니까 그 상을 깨기 위해서 ‘이것도 아니고’라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반대로 ‘저것이다’라고 상을 지으니까 다시 그 상을 깨기 위해서 ‘저것도 아니고’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상을 지으니까 그 상을 깨기 위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이런 표현이 나오는 거예요.

이 말은 어떤 상도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라는 상도 짓지 말고, 저것이라는 상도 짓지 말고, ‘아니다’라는 상도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늘 주어진 상황에서 구체적인 방향이 나오는 것이지 미리 절대화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다’라고 해도 극단이고, ‘저것이다’라고 해도 극단입니다. ‘이것이다’라는 극단을 피하기 위해 ‘이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저것이다’라는 극단을 피하기 위해 ‘저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이것이 아니다’라는 극단을 피하기 위해 ‘이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저것이 아니다’라는 극단을 피하기 위해 ‘저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파악하며 읽지 않으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이렇게 반응하기가 쉽습니다. ‘이게 아니면 저것이든지, 저게 아니면 이것이든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든지, 이렇게 무엇이라고 정해져야 하지 않느냐?’ 하는 진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것은 관념이지 진리가 아닙니다.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유연해지고 늘 상황에 맞는 적절한 길을 찾게 됩니다. 이것을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서는 ‘중도(中道)’라고 하고, 금강경에서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하고, 반야심경에서는 ‘공(空)’이라고 합니다.

공(空)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고정화시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공(空)이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 공(空)이라는 상을 지으면, 누가 무슨 말만 하면 ‘공(空)이다’ 이렇게 대답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실제로 공(空)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공(空)이라는 상을 지은 겁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어떤 견해도 가져서는 안 된다’ 하는 말은 정확히 표현하면 ‘어떤 견해도 고집해서는 안 된다’ 하는 의미입니다.”

어렵게 느껴지던 문장이 아주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핵심 내용이 이해가 되자 다른 의문점도 한결 더 쉽게 해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일상 속에서 꾸준한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음 6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다 함께 참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두 시간이 넘도록 7명과 대화를 나눈 후 질문자들의 한 줄 소감을 듣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생방송을 하느라 오전에 발우공양에 참석하지 못해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부터는 2차 만일준비위원회와 온라인 선거 관련 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 임시 운영기간이 끝나고 8월이나 9월 무렵에 공식 선거일을 언제로 할지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정토회 모둠장, 지회장, 지부장, 대표를 새로 선출하는 일정과 정토불교대학을 홍보하고 입학식을 진행하는 일이 겹쳐 있어서 어떻게 조정하면 좋을지 중지를 모았습니다.

“언제를 공식 선거일로 정하고, 새로운 모둠 배치는 언제 확정하면 좋을지, 모두에게 이로운 방법이 무엇인지 더 연구를 좀 해주세요.”

오후 2시에 화상회의를 마치고, 복도를 재바르게 이동해 2시부터 방송실에서 평화재단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시작했습니다.

평화재단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

5주에 걸쳐 진행된 제4기 온라인 통일의병학교 참가자 30여 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먼저 선배 통일의병들이 영상을 통해 반갑게 환영해주었습니다. 대표로 졸업생 2명이 그간의 통일의병학교 수업에서 느낀 점을 진솔하게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스님이 통일의병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통일의병 여러분께 임명장을 드립니다.”

“잘 받았습니다.”

임명장은 랜선을 타고 32명의 신입 통일의병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통일의병 배지와 메달은 우편으로 발송해주기로 하고, 졸업생 일동은 스님에게 통일의병의 역할이 무엇인지 강연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남북관계, 그리고 통일의병의 역할에 대해 한 시간 동안 설명해 주었습니다.

“현재 세계정세에서 가장 큰 변수는 미중의 패권 경쟁입니다. 미국은 기존의 패권자로서 방어적 입장에 있고, 중국은 도전자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강대국의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지나온 한반도의 역사

이런 정세는 과거의 역사에서도 여러 번 겪어왔습니다. 한반도 주위에서 일어난 패권 경쟁과 변화만 보더라도 20세기 중반에는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이 있었고, 그 전 20세기 초반에는 미일 패권 경쟁이 있었습니다. 미일 패권 경쟁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미일 패권 경쟁 이전인 19세기 후반에는 청일 패권 경쟁 사이에 놓여 있었고, 그 전 17세기에는 명청(명나라-청나라) 패권 경쟁에 놓여 있었고, 그 전 14세기에는 명원(명나라-원나라) 패권 경쟁에 놓여 있었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3세기에 원송(원나라-송나라) 패권 경쟁에 놓여 있었고, 12세기에는 송금(송나라-금나라) 패권 경쟁에 놓여 있었고, 11세기에는 송요(송나라-요나라) 패권 경쟁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사이에서 우리는 그들의 패권 경쟁을 때로는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해서 우리의 자주성을 확보할 때도 있었고, 반대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패권 경쟁에 휘말려서 나라가 전쟁 통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11세기 초 요나라와 송나라가 패권 경쟁을 할 때 우리는 중립을 지켰습니다. 요나라인 거란이 고려를 침공했는데, 우리는 사력을 다해 막아내면서 송요의 중립지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고려의 자주성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12세기 초 요나라와 금나라가 경쟁을 했는데, 우리는 여기에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요금 경쟁에서는 금나라가 승리를 거두게 되고, 이내 금나라는 다시 송나라와 경쟁을 했습니다. 이때도 우리는 중립을 지켰습니다. 송나라와 금나라는 중국 대륙에서 크게 경쟁을 했지만 고려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켰습니다.

이후 13세기에 금나라와 원나라의 경쟁에서 원나라가 금나라를 멸하고, 원나라는 송나라와 경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고려는 원나라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고 중립을 지키다가 원나라의 침공을 받게 됩니다. 그전까지 늘 중립을 지켰기 때문에 그때도 중립을 지키면 되지 않을까 하고 과거의 시선으로 당시 국제정세를 판단한 겁니다. 결국 중립을 지키고자 한 노선은 원나라의 침공으로 실패하게 되는데,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최 씨 무신정권의 외교력 부족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군사 독재정권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항은 할 줄 알았지만 합리적인 외교를 펴지는 못했던 겁니다. 정부가 경직되면 합리적인 외교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결과 원의 침공을 받고 원나라에 복속되면서 고려는 원의 보호 국가로 전락하게 됩니다. 자주성을 잃어버린 거죠.

이후 14세기에 명나라가 일어나서 원나라와 경쟁을 할 때 우리는 원나라에 복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귀족 세력은 원나라 편에 서고, 신진 사대부들은 명나라 편에 섰습니다. 당시 공민왕은 명원 교체기를 틈타 재빠르게 원나라에 빼앗겼던 탐라 총관부와 쌍성 총관부를 회복했습니다. 이는 교체기를 통해서 우리의 자주권을 회복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신진 사대부들이 혁명을 일으켜서 고려왕조가 조선왕조로 바뀌고, 명원 전쟁에서 명나라가 이김으로 해서 조선과 명나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이는 조선 초기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 우리나라는 4군과 6진을 개척해서 잃어버린 만주까지는 회복하지 못했지만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현재의 국경을 회복하게 됩니다. 발해의 멸망으로 잃어버린 땅을 고려시대에 일부 회복하고, 조선시대 초기에 와서 다시 일부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국제정세의 변화기를 잘 이용해서 큰 이익을 본 사례입니다.

반면 17세기에 일어난 명청 교체기에는 조선이 명나라와 지나친 우호 관계에 있었습니다. 요즘 남한이 미국을 대하는 것처럼 당시 조선은 명나라를 ‘부모 나라’라고 생각하며 명나라가 하는 건 뭐든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청나라는 오랑캐라고 칭하며 무시했습니다. 두 세력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다가 청 태종 황태극(皇太極, 홍타이지)에게 공격을 받고 결국 자주권을 잃고 청나라의 속국이 됩니다. 세력 교체기에 국가의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이후 20세기에 일본이 부흥을 해서 청일 사이에서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청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기득권 보수 세력은 청나라 편이었고, 젊은이들이 중심이 된 개화파들은 일본의 힘을 빌어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편찬하고 독립문을 건설하게 됩니다. 이때의 독립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이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닙니다. 기득권 세력이 청나라로부터 독립하는 것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자 일본의 힘을 빌어 정권을 잡으려고 했지만 3일 만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甲申政變)입니다.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적당한 중립을 지키며 청으로부터는 자주권을 회복하고, 일본과는 우호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편이 갈려서 한쪽은 친청파, 다른 한쪽은 친일파가 되어 대립하고, 결국 동학운동을 일으켰던 국민들의 열기도 잘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외세를 끌어들여서 동학운동도 탄압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회를 놓친 상황에서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우리나라는 청나라의 속국에서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릇된 판단으로 나라까지 잃어버리게 된 겁니다.

20세기 중반 미국과 소련의 경쟁 국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라가 두 동강이 났고 전쟁까지 치렀습니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 경쟁 국면에 놓여 있습니다. 이 경쟁 구도 속에서 우리가 이 국면을 이용해서 분단된 조국을 통일시키는 기회로 삼을 것인지, 오히려 분단을 영구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직 미정 상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최대의 변수는 미중 패권 경쟁입니다.

통일의병의 역할

정치인들은 늘 단기적인 안목으로 자기 세력의 집권을 중요시하지만, 통일의병은 이런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러려면 남한 안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남북 사이에서도 남한 편만 들지 말고 민족 전체를 생각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미중 사이에서도 현실과 비전을 동시에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숙원 사업 중 첫째인 평화를 지켜낼 수 있고, 둘째인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고, 셋째인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는 비전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어도 100년을 내다보고 비전을 그리면서 통일의병이 만들어진 겁니다.

어떤 일이든 점진적으로 기회가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런 원칙을 잘 유지하면서 꾸준히 준비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기회가 찾아오고 국면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긴 역사를 보면서 올바른 방향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원칙을 잘 지키되 시류에 흔들리지도 말고 낙담하지도 말고 꾸준히 해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스님이 일러준 방향대로 통일의병 활동을 해나갈 것을 다짐하며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임명장 수여식을 마쳤습니다.

“통일의병! 의병! 의병!”

4시에 생방송을 마치고 오후에는 휴식을 하며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를 보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즉문즉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500여 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고, 10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스님의 책상 앞에 놓인 화병에는 세 번째로 꽃이 바뀌었습니다.

“불교대학 공부 잘하고 있어요?”

온라인 공간이다 보니 “예” 하는 대답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은 목소리 대신 손을 힘차게 흔드는 방식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총 8명이 스님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깨달음이 지속되게 하는 방법, 계율을 지키는 것과 가정생활 병행의 어려움, 간섭과 잔소리의 구분, 살생 금지 계율과 탁발, 부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데 수업을 어떤 마음으로 들어야 할지, 부처님 당시에 여성의 출가에 대한 의문점, 살인자 앙굴리 말라는 어떻게 깨달음이 가능했는지,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된다는 말의 현대적 해석 등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스님은 쉽게 예를 들어주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의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정토불교대학이 추구하는 목표를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여러분은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괴로운데 이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이 괴로움이 왜 생겼고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것이 2,600년 전에 살다가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관심사였습니다. 부처님은 전생이 어떻고, 내생이 어떻고, 죽어서 극락에 가는지, 다음 생에는 왕으로 태어나는지. 이런 것에 대해 일절 언급을 안 하셨습니다.

‘불교를 믿으면 복을 받고 다음 생에 좋은 곳에서 태어난다’ 이런 표현은 마치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듯이 당시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당시 인도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이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끔 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

그러나 정토불교대학은 지금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과제를 해결해서 앞으로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공부하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한 내용이 현실에서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TV에 나오는 야구 선수가 아무리 야구를 잘한다고 해도 나의 건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듯이, 부처님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내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마당에 나가서 실제로 한 번이라도 공을 쳐야 내 건강에 도움이 되듯이,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는 내용도 실제로 경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이렇게 직접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모든 회원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즉,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한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위해 정진합니다. 이는 남편을 위한 것도 아니고, 아내를 위한 것도 아니고, 재물을 위한 것도 아니고, 눈 뜨자마자 우선 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밥을 먹든 남편을 챙기든 아내를 챙기든 아이를 깨우든 회사에 출근을 하든 자기 볼 일을 봅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매일 1시간 정진하기를 백일 동안 하면 내 모습을 알게 되고, 천일을 하면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저희는 30년 동안 정진을 해왔습니다. 7월 18일이면 10차 천일결사 중 6차 백일기도를 시작합니다. 천일 중 500일이 지나고 남은 500일 정진을 시작하는 날이니까 여러분도 많이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초심자는 혼자서 수행을 하려고 하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도반들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을 미리 하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수행문도 읽고, 절도 하고, 명상도 하고, 그 소감을 도반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수업만 듣지 말고, 일상 속에서의 수행 연습을 꼭 함께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사홍서원으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밤 9시 30분이 되어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영어 통역으로 외국인들과 즉문즉설을 한 후 낮에는 구미 아도모례원으로 이동해 감자 캐는 울력을 함께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3

0/200

묘명 임재완

이끄는대로 맡기고 자유롭게 살겠습니다

2021-07-07 11:43:50

대거화박순천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시는 스승님의 모습을 통해 배웁니다. 금강경의 상을 짓지 말라는 말은 어떤 것도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군요. 좀 더 뚜렷이 알아갑니다. 우리민족의 역사가 계속 윤회했구나 느껴집니다. 통일의병으로서 한쪽 편을 들지 말고 전체를 볼 수 있도록 공부하겠습니다.

2021-06-18 08:54:48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1-06-16 18: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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