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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낮에는 밤을 줍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 명상수련을 생방송으로 진행했습니다.
단식 이틀째입니다. 오늘도 새벽 기도를 마치고 울력을 했습니다. 오늘은 비닐하우스 4동에 갓과 시금치를 심었습니다.
먼저 호미로 땅을 고르게 펴주었습니다.
스님은 갓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씨앗이 너무 작아서 한 알씩 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씨앗이 너무 작아서 자꾸 손톱 밑에 들어가네요. 이렇게 하면 한참 걸리겠는데….”
다른 방법을 연구해보았지만 별 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한 알씩 심는데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할 일도 없는데 해보죠.”
단식을 하면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울력을 하는 스님께 행자가 신기해 하며 물었습니다.
“스님, 단식 이틀째인데 힘들지 않으세요?”
“아직은 괜찮아요. 오늘부터 힘들기 시작하는 날이에요. 아침에 일어날 때 좀 힘들고 잘 때 좀 열이 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나와서 다니면 또 괜찮아요.”
집중해서 두둑 끝까지 씨앗을 한 줄 다 심었습니다.
2동으로 가서 다 자란 단배추를 뽑고 열무를 솎았습니다.
수확을 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손질을 했습니다. 큰 단배추는 김치를 담그고 작은 단배추와 시든 잎은 나물을 무치거나 국을 끓이기로 했습니다.
먹지 못하는 잎은 모아서 퇴비장에 부렸습니다.
울력 시간이 남아 논 뒤로 가서 논둑에 떨어진 밤을 주웠습니다.
오전 공양을 한 후 오후에도 밭 주위에 있는 밤과 감을 주웠습니다.
주운 밤과 감을 바구니에 가득 담아 저녁 무렵에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주워온 거예요. 같이 나눠먹도록 하세요.”
저녁에는 여러 업무들을 처리한 후 8시 30분부터 온라인 명상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25주째 맞이하는 온라인 명상수련입니다.
카메라 앞에 앉은 스님은 추석을 앞두고 있는 한국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곧 있으면 한국은 추석 명절입니다. 지금 두북 수련원에는 달이 아주 휘영청 밝았습니다. 날씨도 약간 추위를 느낄 정도로 쌀쌀하고, 가을이 무르익은 것 같습니다. (웃음)
저는 앞으로 5일간 계속되는 추석 연휴 동안 온라인으로 대중들과 명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서 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추석 때 고향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가지 말고 가능하면 집에서 가족과 머물기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가족이 없이 혼자 사는 사람들은 여행도 못 가고 고향도 못 가고 매우 외로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명상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것만 생각하면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것이 가장 나쁜 조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명상을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혼자 사는 것이 가장 유리한 조건이 됩니다. 똥이 방 안에 있으면 오물로 취급받지만 밭에 가면 거름이 되잖아요. 오물일 때는 버려야 할 대상이지만 거름일 때는 우리가 가져와야 할 대상이 됩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어디에 놓이느냐, 어느 시점에 놓이느냐,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정반대가 될 때도 있습니다.
수행은 이렇게 가장 부정적인 요인을 관점을 바꾸어서 가장 긍정적인 요인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복이라는 것을 나에게 주는 것이 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바라보던 것을 관점을 바꿔서 복이라고 바라볼 때 이것이 ‘법의 가피’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인 ‘법’이야말로 진정한 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원하는 대로 될 때도 있고, 또는 그 반대가 될 때도 있어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가 관점을 바꾸게 되면 원하는 대로 될 때보다 더 좋은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것이 우리가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이 그것 때문에 안 되었다고 말하지만, 수행자는 그것 때문에 일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대응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괴로움이 없는 삶을 유지해가는 사람이 수행자예요. 수행자는 주어진 환경이 이렇든 저렇든 항상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복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나날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외국인이 올린 질문 두 가지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한 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 공허한 마음이 든다며 이런 마음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젊은 날에는 뭔가 자신이 원하는 희망이나 꿈, 이런 것들을 성취하는데 대부분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루어지느냐 이루어지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갈리게 됩니다. 그런데 젊은 날을 보내고 나이 들어서 되돌아보면, 그것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것을 이루었든, 이루지 않았든, 결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일 때는 기말고사에서 수학 점수를 100점 받다가 70점을 받는 것이 거의 죽을 것같이 괴로운 일이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70점을 받았든 100점을 받았든 내 인생에서 무엇이 그리 중요합니까. 초등학생일 때 구슬치기 많이 해보셨잖아요. 그때는 구슬을 얼마나 땄는지, 얼마나 잃었는지가 큰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이기든 지든 별일 아니에요.
어린 시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어떤 목표도 눈을 감을 때 되돌아보면 어릴 때 중요시했던 구슬이나 수학 시험 점수와 별 차이가 없어요. 어릴 때 중요시했던 것을 되돌아보며 지금은 그것이 별일 아님을 알게 되는 경험을 통해서 지금 중요시 여기는 것들도 그렇게 볼 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목표를 이루느냐, 이루지 못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목표가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결과가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그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어떤 목표가 아니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어떤 일이든 조급해하거나 긴장하지 않고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나간다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꿈을 꾸었다고 합시다. 꿈속에서는 좋은 꿈을 꾸었는지 나쁜 꿈을 꾸었는지 하는 것이 매우 큰 차이가 있지만, 꿈을 깨고 나면 그것이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아무 차이가 없어요. ‘헛것이었구나!’, ‘사실이 아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그걸로 끝입니다.
좋은 꿈을 꾸었느냐, 나쁜 꿈을 꾸었느냐, 어떻게 하면 좋은 꿈을 꾸느냐, 왜 좋은 꿈을 꾸느냐, 이런 질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눈을 떴을 때는 ‘아! 꿈이었네, 헛것이었구나!’ 이렇게 그냥 놓아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질문자가 질문한 내용은 오래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꿈이었네!’ 하고 놓아버리면 됩니다.”
한 가지 질문에 대해 더 답변을 한 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40분 정도 명상을 하니까 더 좋다는 사람도 많은데, 좀 힘들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조금 조정해서 35분 간 명상을 해보겠습니다. 자! 자세를 바로 합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오직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만 집중해 보았습니다.
탁, 탁, 탁!
다시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마쳤습니다.
“명상 시간이 5분 짧아지니까 지난주보다 더 쉬웠는지 소감이 많이 올라오네요.”
오늘도 수십 개의 소감이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눈에 보이는 소감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습니다.
“다리 통증은 견딜만 했고, 망상을 왔다 갔다 했지만,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My legs ached and there were still distracting thoughts but that I was able to focus longer the breath, so it's a good time for me.”
“매일 명상을 하는데 처음 명상을 하는 사람처럼 다리가 아팠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So although I do this daily, my legs ache as if this was the first time I was doing it.”
“처음 명상에 참여했는데 다리가 너무 저립니다.
This was my first time participating, my legs ached too much.”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는데 견디어 보았습니다.
I want to give up in the middle but I decide to kind of stay on and endure.”
질문도 많이 올라왔습니다. 그중 한 가지 질문에 대해 스님이 답했습니다.
“네, 다리가 아파도 펴지 않고 계속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참으면서 해야 하지만, 그러나 원칙은 참으면 안 됩니다. 참으면 긴장을 하기 때문에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명상은 모든 긴장을 풀고 편안한 가운데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통증을 통증으로만 느끼면서 강력한 통증이 있더라도 호흡을 알아차리는 데에 집중합니다. 마치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데도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초심자는 이게 잘 안 됩니다. 밖에 소리가 들리면 그쪽으로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 구상이 떠오르면 호흡을 놓치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통증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는 더욱 힘들어요.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데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호흡 알아차리기를 계속 연습하듯이, 다리에 통증이 있을 때도 통증을 느끼면서도 호흡 알아차림을 유지할 수 있는 연습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최선의 길을 갈 수는 없어요. 도저히 편안한 가운데 호흡 알아차림을 유지할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참기라도 해야 해요. 이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욕구를 따라서 다리를 펴 버리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스님은 다리가 아픈 초심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안내했습니다.
“졸리는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몸이 피곤해서 졸음이 올 때도 몸은 졸리지만 호흡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잘 안 돼요. 호흡을 놓치고 졸 때가 많아요. 그러나 이렇게라도 명상을 하는 것은 아예 그만둬 버리고 자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최선의 목표가 있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까지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차선이라도 해야 합니다. 차선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해요. 이것이 우리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법문을 하고 명상을 마쳤습니다.
창 밖에는 추석을 앞두고 열하루 둥근 달이 휘영청 밝아 있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봉화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온라인 일요명상은 아래 주소에서 다시 보기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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