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8.9. 공동체 안거 회향, 좋은이웃을 위한 즉문즉설, 일요명상
“스님을 가장 해치는 일은”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7월 20일부터 약 3주간 진행된 안거를 마치는 날입니다. 오전에는 여느 때처럼 농사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안거 회향식을 했습니다. 오후에는 생방송으로 새터민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진행했습니다.

오랜만에 비가 그쳤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스님은 행자들보다 먼저 나와 비닐하우스 앞 수로를 뒤덮은 풀을 말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저수지로 올라가 보니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수지 주변은 이틀 전 행자들이 예초기를 돌려두었습니다. 스님은 저수지 주변을 돌며 덩굴을 정리했습니다. 덩굴 아래 팔뚝만 한 칡도 한 뿌리 캤습니다.



대나무 빗자루를 엮기 위한 칡덩굴 한 뭉치와 칡뿌리를 들고 저수지를 내려왔습니다.

논 옆 수로에 플라스틱 통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플라스틱 통에서 무언가 한 움큼 건져내 논으로 던졌습니다.



“우렁이가 다 떠내려가서 막아놨어요.”

봄에 모내기를 하고 친환경으로 벼를 키우기 위해 논에 우렁이를 넣어두었습니다. 스님은 통에 걸린 우렁이 외에도 수로에 빠져있는 우렁이를 하나 하나 건져내 논으로 던져주었습니다.



그리고 논둑을 돌며 터진 곳을 메워주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 내려오니 행자들도 한참 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청경채 모종을 옮겨 심고, 빨간 고추를 씻어서 널었습니다.




오늘은 더 많은 행자들이 삽질을 해서 비닐하우스 옆 수로를 다 팠습니다.


스님은 농사를 담당하는 행자를 찾아 논농사에서 유의할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잘못한 점을 탓하지 않고, 개선해야 할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논에 밑거름을 주면 다 쓸려 내려가요. 우렁이도 안 쓸려 내려가게 하려면 우렁이가 잠겨 있을 만큼 물을 남겨놔야 해요.”

“네, 스님. 저수지에 물이 넘쳐서 논에 물을 다 빼야 하는 줄 알았어요. 다음엔 그렇게 하겠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수련원으로 돌아와 9시부터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직접 농사지은 가지와 오이, 상추로 만든 반찬이 나왔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어제 하루 동안 어긴 계율에 대해 참회한 후 대중은 스님께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40분간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부처님을 따라 계율을 잘 지키는 수행자가 되기를 당부했습니다.

“3주 간의 여름 안거를 오늘로써 마치게 됩니다. 내일부터는 각자 부서에 복귀해서 하반기에 예정된 사업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온라인으로 명상수련을 진행하게 되면서 안거가 좀 짧아졌지만, 안거를 통해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졌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의 삶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경전으로 전해졌습니다. 둘째, 부처님께서 살아가신 삶의 자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계율로 전해졌습니다. 말씀은 경전으로, 행동은 계율로 정리가 되어서 우리들에게 전해진 겁니다.

부처님은 말과 행이 일치하셨던 분입니다. 말과 행이 일치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계율을 소홀히 하게 되고, 자꾸 사상과 이론만 강조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과 이론도 알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삶의 모습인 행입니다. 행의 기본이 계율입니다. 정토회는 수행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계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고 스님에게 잘하는 것이 정토회를 위하고 스님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계율을 지키지 않은 채 스님 옆에 사는 것은 결국 스님을 크게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계율은 철저히 지키되 우리의 삶이 자유롭도록 생활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설거지를 한 후 11시부터는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지막으로 안거를 하면서 느낀 점을 나누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안거를 하면서 금강경 1분이 떠올랐습니다. 스님께서는 미래 후배들까지도 염두에 두고 사시는구나. 수보리도, 부처님도 이런 마음으로 사셨겠구나 느껴졌습니다.”

“농사짓고, 경전을 일고, 지도법사님 말씀을 듣고, 하루를 보낸 마음을 나누고...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도 하루하루가 수련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외국인 전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스님 법문을 들으면 다 감동하고 감탄해요. 그런데 저는 외국인들이 우리랑 며칠만 같이 살아보면 우리가 화내고 짜증내고 잘 못 사는 걸 알 텐데 어떻게 전법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안거를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공부고 전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스님께서 공동체 실무자는 휴일이 없다고 하시는데 마음이 불편했어요. 사람이 휴일 없이 어떻게 살아. 그러니까 공동체에 젊은 사람이 안 들어오고 고령화가 되지... 온갖 불평이 올라왔어요. 그런데 안거를 하면서 내 욕구대로 안 될 때 불평이 시작된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쉬는 날을 내 권리로 생각해서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엄청 화를 내는구나. 그런데 출가 공동체에 살면서 쉬는 날을 가지는 것도 이상하네요.”

“농사를 지으며 생명을 손으로 다루는 느낌이 좋았고. 우리가 농사지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있는 생명력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밥 잘 먹고, 똥 잘 누고 이렇게 살아본 게 오랜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먹으면 좋겠고, 우리가 인류의 미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업 논의를 하면서 저희가 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것도 해주시고 저것도 해주셔야 한다고 했는데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스님께서는 ‘부처님 편히 쉬십시오. 이제 세상에 남은 일은 제가 다 하겠습니다’라고 발원하셨는데 저는 그저 스님께 기대고 있더라고요. 이제 남은 일은 저희가 해보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서 좋았습니다. 최근 공동체 살이에 회의적인 마음이 있었어요. 시골에서 살라고 하면 나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안거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쫓아서 사는 게 정말 좋은 걸까?’ 돌아봤어요. 안거를 하면서 무엇이든 주어진 대로 해보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농사, 재활용 같은 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

같이 살아온 세월이 녹아나 한 마디만 들어도 그 마음까지 전해져왔습니다. 스님은 메모를 하며 공동체 행자들의 말을 하나하나 경청했습니다. 행자들의 소감나누기가 끝나자 스님은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어려움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올해 상반기에 두북 수련원에서 농산물 생산과 재활용 유통을 위한 기반을 닦느라 많이 어려웠습니다. 밭이 없어서 남의 땅을 빌려서 울타리를 전부 새로 설치했고, 수로를 새로 만들고, 물탱크를 새로 설치하고, 담당자도 처음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문경 수련원은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기반을 다져놓은 상태이지만, 두북 수련원은 전부가 불확정한 상태에서 새롭게 개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개척하는 것은 힘이 들긴 하지만, 지나 놓고 보면 역사가 됩니다. 1년이든, 3년이든, 이 과정을 글로 표현하면 굉장한 역사가 될 거예요. 반면에 이미 만들어진 것을 유지하는 것은 힘은 덜 들지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라는 것은 어려울 때 만들어지는 거예요.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힘이 조금 들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이라는 것도 결국 습관을 거슬러가는 것이라 처음에는 힘이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행자들의 나누기 중 다시 짚어봐야 할 내용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주었습니다.

‘휴일 없음’의 진정한 의미

“왜 정토회에서는 ‘휴일 없음’이라는 원칙을 두었을까요? 현실에서는 휴일도 있어야 하고, 휴식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놀이와 노동의 일치’입니다. 노동을 놀이처럼 하기 때문에 휴일이 따로 필요 없어요. 휴일을 따로 정한다면 우리의 지향에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의 지향은 노동이 놀이화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 수행력이 부족해서 노동이 놀이화되지 못해서 잠시 쉬어야겠다’

이건 현실적으로 인정이 되는 부분이에요. 우리는 아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프거나, 몸이 많이 지치면, 휴가신청서를 내고 휴식을 받으면 돼요. 그러나 휴일을 정하거나 휴식 시간을 따로 정한다면, 이미 벌써 우리가 세운 지향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명상수련을 할 때 호흡 관찰을 안 해도 되는 시간을 따로 주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명상이 힘들다고 해서 ‘호흡 관찰이 너무 힘드니까 망상만 피우는 시간을 따로 주자’, ‘너무 졸리니까 자고 일어나서 하자’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잖아요. (모두 웃음)

졸리는 가운데도 호흡 알아차리기를 하고, 망상을 하는 가운데도 호흡 알아차리기를 하는 것이 명상인 것처럼 ‘휴일 없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노동이 놀이화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휴식이 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휴식 시간을 따로 둔다는 것은 노동을 놀이화한다는 목표를 포기하는 게 되는 겁니다.

주말에 등산을 가는 것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려와서 다리가 아파도 다음날 출근을 하잖아요. 왜냐하면 등산이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등산이 노동이었다면 다음날 반드시 쉬어야 할 겁니다. 등산은 놀이였기 때문에 다음날 별도로 쉬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는 일도 놀이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몸이 아파서 도저히 안 되면 휴가신청서를 내고 쉬어야 해요. 하지만 정토회가 지향하는 ‘휴일 없음’은 노동이 놀이화되는 수행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대중을 격려했습니다. 늘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밝은 스님의 미소가 백 마디 말을 대신했습니다.

“약간 기운을 차려서 항상 재미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얼굴이 밝아져요. 늘 인상을 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 일에 동참을 안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행자들은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배를 드렸습니다.

좋은이웃을 위한 즉문즉설

회향식을 마치고 공동체 대중은 대청소를 하고 스님은 바로 자리를 옮겨 오후 3시부터 새터민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을 생방송으로 진행했습니다. 좋은벗들에서는 매년 새터민과 함께하는 나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는데,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계속 연기가 되다가 결국 온라인 즉문즉설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6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온라인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살다가 남한으로 이민 오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스님의 환한 웃음에 채팅창에는 ‘반갑습니다’ 하고 댓글이 여러 개 올라왔습니다. 질문을 받기 전에 스님은 새터민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을 세상에서는 다양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곳에 잡았다’ 해서 ‘새터민’으로 부르자는 분도 있고, ‘북한을 이탈했다’ 해서 ‘북한 이탈 주민’이라고 부르는 분도 있고, 또 ‘북한을 탈출했다’ 해서 ‘탈북민’이라고 부르는 분도 있습니다. 어떻게 불리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살다가 지금은 이곳 남한에 살고 있다는 게 가장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곳에서 태어나 살다가 이곳에 온 사람들을 ‘이주민’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미국으로 갔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일본으로 갔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중국으로 갔다
제주도에 태어나 살다가 서울로 갔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이주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 이동은 국내 이주민, 나라를 바꾸면 국제 이주민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크게 보면 같은 민족이면서 같은 나라이기 때문에 국내 이주민 성격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남한에 왔을 때 바로 대한민국 시민권을 주는 이유는 국내 이주민의 자격을 주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남한과 북한은 유엔에 가입된 두 개의 나라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국제 이주민이기도 합니다. 이런 두 가지 성격을 다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주를 해서 살게 되면, 자연 풍경이 달라지고, 사회 시스템이 달라지고, 친구관계와 인간관계가 바뀝니다. 이주를 하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국제적으로 이주하면 말까지 안 통합니다. 특히 북한에서 남한으로 올 때는 사회 시스템도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북한에서는 익숙한 것들이 남한에서는 대부분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주를 할 때는 삶의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애초에 전제해야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살펴보면 이주민들의 대다수가 경제적인 이민입니다. 두 번째가 정치적인 이민입니다. 여러분들도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경제적인 이유든 정치적인 이유든 남한에 왔을 때는 그 유리함을 갖고 살 수 있는 반면, 이민을 가면서 발생되는 불리한 조건도 함께 있는 거예요. 북한의 언어와 남한의 언어 차이가 있고, 남한에서는 사회관계의 토대가 없고, 북한에서 배운 지식이나 기술을 남한에서는 제대로 써먹을 데가 많지 않습니다. 인연, 학연, 지연이 모두 단절되어서 불리한 조건에 있습니다.

대다수의 이민자들은 유리한 점은 생각 안 하고 자꾸 불리한 것만 생각합니다. 이런 불리한 조건이 있음에도 남한에 사는 이유는 북한과 비교해 봤을 때 경제적인 유리함, 정치적인 유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차별을 받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남한에서 살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북한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이익이 많고, 정치적으로 훨씬 자유롭잖아요. 남한에서 살 때의 좋은 점을 자꾸 생각하면서 지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전에 160여 명의 새터민들이 질문을 보내왔습니다. 그중 8명의 질문이 채택되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새터민 한 분은 북한 말투 때문에 남한 사람들에게 자꾸 위축이 된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질문했습니다.

북한 말투 때문에 남한 사람들에게 위축됩니다

“저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새터민입니다. 한국 와서부터 여러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잘 안 되는 부분이 한 가지 있어요. 언어 문제입니다. 한국 분들을 만나 일을 하다가 북한 특유의 사투리가 나오면 ‘바로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럼 저는 ‘북한이요’ 합니다. 새터민이란 것을 숨기고 싶지도 않고 창피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점점 한국 분들을 만나면 괜히 쫄아서 말을 안 합니다. 아주 작은 문제이지만 지금 저한테는 제일 큰 고민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실제로 차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꼭 차별하려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에요. ‘북한에서 왔네’ 이렇게 그냥 말을 했을 뿐인데,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자신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것처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부분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남한 사람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 미국에 이민을 간 사람이 250만 명 정도 됩니다. 미국으로 초기에 이민을 간 사람들은 대부분 인종차별과 언어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세요. 질문자는 북한에서 태어나서, 북한에서 교육받고, 북한에서 자랐잖아요. 그리고 어떤 일을 해서 공로를 세웠다 해도 다 북한 사회에 기여를 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남한으로 넘어왔을 때 남한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받아줬잖아요. 시민권도 주고, 지원금도 주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남한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할 때 말투 때문에 어려움을 조금 겪는 정도는 불이익이 아주 작은 편에 속해요. 한국 사람이 외국에서 살 때 외부적으로 모양상 차별이 가장 없는 나라가 어느 나라일까요? 바로 일본입니다. 그리고 일본어의 어순은 한국어와 같기 때문에 일본어를 쉽게 배울 수 있고, 그래서 금방 적응을 합니다. 그런데 세계 동포들 중 가장 위축되어 있고, 가슴을 조마조마해하면서 눈치 보고 사는 사람들이 일본에서 사는 교민들이에요.

왜 그럴까요? 한국말만 안 하면 얼굴 모양만 보고 일본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구별을 못 합니다. 내가 한국 사람인 것만 안 밝히면 아무런 차별을 안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한일 관계가 안 좋을 때마다 일본 사람들의 한국인 혐오가 심해지기 때문에 재일동포 중에는 일본으로 귀화를 해버리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일본 사람은 되기 싫다. 한국 사람으로 살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여러 가지 차별을 감내합니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의 잘못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일본 교민들처럼 자신을 숨기고 살수록 마음이 더 위축됩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은 자신을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어요. 얼굴 모양을 보면 아시아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교민들은 차별을 더 받는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당당하게 삽니다. 일본 교민들은 외모에서는 차별받을 일이 거의 없는데, 말투와 국적 때문에 차별을 받으니까 가능하면 숨기려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무언가를 숨기고 살면 심리가 위축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행복하지 못해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북한 말투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당당하게 사는 길이 있습니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그로 인해 생긴 불이익은 기꺼이 감수하는 겁니다.

"어디서 왔냐?" 하고 물으면 "북한에서 왔다" 하지 마시고, 평양에서 왔으면 "평양에서 왔다", 해주에서 왔으면 "해주에서 왔다" 이렇게 구체적인 지명을 말하세요. "부산에서 왔다", "대구에서 왔다" 하듯이 그냥 지명을 말하는 겁니다. "함흥에서 왔습니다", "청진에서 왔습니다", "혜산에서 왔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세요. "북한이네?"라고 다시 물으면 "네" 이렇게 대답하면 돼요.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에 질문자를 차별하거나 인간관계를 재고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사람과 인간관계를 계속 맺을 필요가 없습니다.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마세요.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어디인지를 갖고 차별하는 인간하고는 더 이상 관계를 맺어봐야 별로 이득이 될 게 없어요. 그러니 떳떳하게 고향을 밝히고 사세요. 조금 손실이 오더라도 ‘그 정도 손실은 감수한다’ 이런 관점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다면 억양과 말투를 빨리 바꾸세요. 영어도 배우는데 억양과 말투 바꾸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겠어요? 몇 달 동안 계속 억양과 단어를 연습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북한 말이 나왔다면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인정하면 돼요. 조금 불이익이 생긴다면 기꺼이 감수하면 됩니다.

북한에서 평생 살다가 이제 남한 와서 산 지 몇 년도 되지 않았는데, 남한에서 태어나고 남한에서 교육받고 자란 사람과 똑같이 대우받겠다는 건 욕심입니다. 오히려 ‘그 정도 손실은 감수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별로 힘들 게 없어요.

‘내가 북한에서 태어난 게 무슨 죄냐? 내가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북한 교육을 받고 싶어서 받았나? 태어나 보니 북한 땅이어서 북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대한민국은 고향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나라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고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떳떳하게 밝히고 생활하는 겁니다. 대신에 그로 인한 불이익은 감수하는 거예요.

둘째, 불이익을 감수하기 싫으면 빨리 남한 말을 연습해서 표시가 덜 나도록 빨리 말투를 바꾸는 겁니다. 길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특히 새터민들은 최근 대북 전단 살포 등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경색된 분위기 속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애로사항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공감을 해주면서 새터민들이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 한국에서 고생해서 모은 돈을 남편의 형이 다 날렸어요. 제가 말렸는데도 형에게 끌려다니는 남편이 원망스러워요. 남편은 한국말도 못 하고 일자리도 없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다시 월북하는 소수의 새터민들 때문에 저희처럼 한국에 정착을 잘하고 있는 많은 새터민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새터민이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요.
  • 현 정부와 여당이 북한에 약점이라도 잡힌 듯 힘을 못쓰는 느낌입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까요?
  • 중국을 거쳐 2010년에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5살 딸, 3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요. 편안하고 너그러운 엄마이자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픕니다. 해결방법이 있을까요?
  • 저는 새터민 10년차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제 종교는 불교입니다. 제 지인은 ‘불교는 사탄이고 하나님만이 진리’라고 합니다. 어떡하죠?
  • 요즘 새터민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다 보니 마음이 위축됩니다.

생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 채팅창에는 고향 땅이 그립다는 댓글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면서 스님은 새터민들을 다시 한번 격려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얘기 하나하나를 들으면서 저도 안타까웠습니다. 북·중 국경을 넘어오면서 이산가족이 생긴 데다가 중국에서 결혼하신 분들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중국에 있는 가족들과 또 이산가족이 되어서 아이들을 못 데리고 온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연들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 통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운데도 우리가 살아남았는데, 이런 어려움 속에 빠졌다고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남한에서 차별을 받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이나 중국에서 살 때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물론 남한도 모든 것이 다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러나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내가 괴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개선이 되면 여러분들은 남한에서 축적한 기술과 자원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차별을 좀 받고 살고 있지만, 이런 야무진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면 좋겠어요.”

오후 5시에 생방송을 마친 후 스님은 채팅창에 올라온 새터민들의 소감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생방송이 끝나자 재활용 가구를 가득 실은 대형 트럭이 창고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안거를 마친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재활용 가구를 트럭에서 내리고 창고에 쌓아두는 울력을 함께 했습니다. 책상, 의자, 수납장, 주방기구 등 온갖 물건들을 삼삼오오 힘을 합해 운반했습니다.




온몸이 땀에 젖었지만 창고 안에는 웃음소리가 가득 찼습니다.

“수고했어요. 아무리 바빠도 수박은 먹고 가세요.”

공동체 대중은 서울 회관과 문경 수련원으로 복귀해야 해서 갈 길이 바빴습니다. 시원한 수박 한 조각씩을 입에 베어 물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두북 수련원을 떠났습니다.

법사님들은 교문 앞에서 공동체 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습니다. 스님은 공동체 대중을 떠나보내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오랜만에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입니다.

공동체 대중들이 떠나자 두북 수련원은 다시 고요한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해가 지고 8시 30분이 되자 스님은 다시 방송실로 들어와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일요일 저녁은 온라인 명상을 하면서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먼저 지난주에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고 나서 명상을 했습니다. 두 명의 질문이 올라왔는데, 그중 한 명은 명상을 하면 할수록 공허하고, 외롭고, 기분이 침체됨을 느낀다고 질문했습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기분이 침체됩니다, 왜 그렇죠?

“I increased my meditation practice to a daily routine. I began to experience a sense of being more present and to some extent, more quiet. Ironically, being in that state makes me feel empty, lonesome and somewhat down. Then I get irritable, annoyed by illogical small things. It seems that all of this becomes more evident after sittings. I can't explain this ambiguity. Are these sensations and emotions part of the meditative process?

명상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좀 더 깨어있게 되고 어느 정도 고요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상태에 들어갈수록 공허하고, 외롭고, 다소 기분이 침체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짜증이 나고 비논리적인 작은 것들이 거슬립니다. 이런 현상이 명상을 할수록 뚜렷해지는 것 같은데 이 모호한 상태를 잘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감각과 감정이 명상의 일부인지요?”

“그런 감정들은 명상을 해서 새로 생긴 게 아닙니다. 원래부터 질문자의 심리적 근저에는 질문자가 지금 발견해서 표현한 그런 감정들이 존재했던 겁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생각이 많으니까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어떤 것들이 작용하고 있는지 몰랐던 거예요. 자신의 마음을 본인조차도 그동안 잘 몰랐던 거죠. 그런데 명상을 하면서 생각을 쉬고 마음을 한 군데 모아서 알아차림을 유지하니까 심리의 맨 밑바닥에서 여러 부정적인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본인이 알게 된 거예요.

명상을 해서 알게 된 것은 맞는데, 명상을 해서 새로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원래 그런 게 있었던 거예요. 명상을 하면서 고요해지고 예리해지니까 심리의 근저를 본인이 이제 알게 된 겁니다. 우리가 다른 생각을 골똘하게 하고 있으면 밖에서 풀벌레 소리라든지 온갖 소리들이 거의 잘 안 들립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마음을 귀에 두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면, 아주 작은 풀벌레 소리 같은 것도 다 들리게 됩니다.

내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구나

그것처럼 고요한 상태에서 깨어 있으면 심리의 저 아래에서 미세하게 작용하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인들을 내가 알게 되는 거예요. 없던 것이 생겨난 게 아니라 있던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겁니다. 평상시에도 다급할 때라든지 어떤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이런 부정적 감정들이 늘 일어났는데,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 거예요. 그런데 명상을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됩니다.

‘어떤 상황 때문에 감정이 일어난 줄 알았는데, 나의 깊은 내면 속에 그런 요인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자기를 바르게 알 수가 있어요. 이런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에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해서도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냥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호흡을 계속 관찰하면, 그것이 한때는 막 불안하게 작용하다가, 또 어느 순간에 사라집니다. 그렇게 꾸준히 정진을 하면 됩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손을 앞으로 모으고,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집니다.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긴장하지도 말고,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안 된다고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한가한 마음으로 마음을 콧구멍 끝에 딱 주시해서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죽비 소리가 들리고 고요 적정한 순간 속으로 몰입했습니다. 스님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오늘 울리는 죽비 소리는 긴장감이 훨씬 덜하게 들려옵니다.

탁! 탁! 탁!

명상을 마친 뒤 다양한 소감이 화면에 올라왔습니다.

‘졸음이 많이 왔습니다’
‘망상이 많았습니다’
‘오롯이 집중했습니다’

스님은 소감을 하나씩 읽고 조언을 덧붙였습니다.

“네, 세 분의 소감이 각기 다르네요. 졸리면 졸리는 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나의 상태입니다. 졸았다고 해서 ‘잘했다’, ‘잘못했다’ 이렇게 보지 마시고, 그냥 ‘아, 잠이 좀 부족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시면 돼요.”

또 다른 외국인 참가자의 소감이 영어로 올라왔습니다.

명상이 잘 된다, 자꾸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I figured out that it is easy to forget about time. When it happens it doesn't really matter how long to meditate. You can do virtually as long as you want.

저는 오늘 명상을 하면서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 굉장히 쉽다고 깨달았습니다. 정말 굉장히 오래 명상을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명상을 오래 한다고 해서 좋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집중이 잘 되어서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고 해서 명상이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평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명상이 시간 죽이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명상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 죽비를 치니까 30년이 지났다고 하면, 이것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다고 명상하는 시간이 굉장히 지루했다고 해서 반드시 좋았다고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명상을 하다 보면 호흡이 알아차려질 때도 있고, 망상이 많을 때도 있고, 시간이 금방 갈 때도 있고,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질 때도 있고, 여러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니 일어나는 증상대로 ‘아, 이렇게 일어나는구나!’ 하고 그냥 아무 의미도 부여하지 마세요. 이게 현실이잖아요. 이게 사실입니다. 그냥 손이 부으면 ‘손이 붓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손이 부으면 안 된다’, ‘손은 왜 붓지!’ 이런 게 아니라 ‘아, 손이 붓네’ 그냥 이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기가 제일 어려운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뭔가 계속 의미를 찾아요. ‘명상을 깊이 하고 싶다’, ‘명상이 잘 된다’, ‘명상이 안 된다’ 이렇게 늘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하는데, 그런 것을 한번 놓아버려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온라인 명상을 마쳤습니다. 시곗바늘은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통역과 진행을 맡은 국제국 활동가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한 후 일정을 끝마쳤습니다.

내일부터는 공동체 안거로 인해 중단되었던 두북특별위원회가 다시 시작됩니다.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두북특별위원회 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 온라인 명상수련은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영상보기

전체댓글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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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자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계율을 지키지 않은 채 스님 옆에 사는 것은 결국 스님을 크게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계율은 철저히 지키되 우리의 삶이 자유롭도록 생활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2021-03-26 17:21:32

이정희

일어나는 감정이나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고
왜 이러지? 할때가 많았습니다.
의미 부여하지 않고 놓아버리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다만 알아차리기!!
오늘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2020-09-11 19:19:35

김현숙여래심

나만의 새로운 역사 오늘도 조금씩 써내려가고자 수행적 관점과 계율 놓치않겠습니다

2020-08-24 23: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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