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6.1. 농사일, 불교대학 온라인 수업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세 가지 덕목”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하고 불교대학 온라인 수업을 촬영한 후 두북 공동체 행자들과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먼저 농사 창고 안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큰 돌을 다 묻고 난 후 땅이 울퉁불퉁했습니다.

포클레인으로 한번 밀어주고, 사람들이 레기를 들고 평평하게 다듬어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평평하게 만든 다음 롤러로 땅을 밀어주었습니다. 땅이 매끈해졌습니다.

그리고 산 윗밭에 물통을 설치했습니다. 상주에 사용하지 않는 중고 물통이 있다고 해서 3톤짜리 물통을 받아왔습니다.


물통을 트럭으로 밭 입구까지 옮기고, 네 사람이 함께 밭 안쪽으로 옮겼습니다.




산 윗밭에는 비가 오지 않아 땅이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마른 땅에서도 가지는 꽃을 피우고, 도라지도 싹을 틔웠습니다. 4월 말에 심었으니 한 달이 지나 싹을 틔운 겁니다.


“늦게라도 다 싹을 틔웠구나!”

스님은 기특한 눈빛으로 도라지 주변 잡초를 뽑아주었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가사를 수하고 차를 탔습니다. 경주 흥륜사 천경림선원 선원장 혜해 스님이 원적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아 분향하기로 했습니다. 빈소는 경주 흥륜사 금당선원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빈소는 아주 고요했습니다. 혜해 스님은 신라의 고도 경주 흥륜사에 비구니 스님들의 선원 ‘천경림’을 설립해 비구니 스님들을 위한 수행림 조성에 앞장서신 분입니다. 영정 속 스님의 얼굴이 아주 맑고 온화해 보였습니다.


영정 앞에 삼배를 한 후 상좌 스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큰스님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100세가 되신 후 열흘이 지나고 돌아가셨어요. 아주 평온하게 가셨습니다.”

상좌 스님들은 혜해 스님이 살아계실 적에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즐겨 들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즉문즉설을 보실 때마다 아주 좋아하셨어요. 경주 출신 스님이라고 하시면서요.”

“경주에 즉문즉설 강연을 하러 올 때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들으셨잖아요.” (웃음)

상좌 스님들이 차를 한 잔 하고 가라고 해서 잠시 대화를 나눈 후 흥륜사를 나왔습니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서 10시부터 정토불교대학 온라인 수업을 촬영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오계에 대해 설명했는데, 오늘은 오계에 세 가지를 더한 팔재계를 알려주었습니다.

“오계를 지키는 행위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수행자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계에 세 가지 덕목을 더해서 팔계가 있습니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세 가지 덕목

첫째, 수행자는 재물이 없어도 비굴하지 않고, 재물이 있더라도 검소하게 생활해야 하고, 남에게 베풀고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즉,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지위가 높아졌다고 교만하지 않고, 평등성에 기초해서 나보다 지위가 낮더라도 겸손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높은 지위가 주어졌다면 국가의 재정을 이용하여 세상 사람들을 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앞장서는 것이 수행자의 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존경받는 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프라세나짓 왕의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을 외아들 사랑하듯 대하시오.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며, 병든 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보살피는 왕이 되십시오.’

그리고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제자, 수행자들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이 말씀은 돈과 지위와 지식에 구애받지 않는 수행자의 자세를 강조한 것입니다.

셋째, 수행자는 들뜨는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아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들뜨는 즐거움은 곧 괴로움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이 세 가지 계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머리에 꽃을 꽂지 마라’
‘높은 평상에 앉지 마라’
‘가무를 즐기지 마라’

이렇게 세 가지가 더해져 팔계가 되었습니다. 지금 용어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살아라.
둘째,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셋째, 쾌락을 추구하지 말고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라.

오계에 이 세 가지 덕목을 겸해야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되려면 최소한 오계를 꼭 지켜야 하며, 오계를 행하면서 팔계까지 지켜나가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행자가 가야 할 길

수행자는 인생의 목표를 지고한 자유와 지고한 행복에 두는 사람입니다. 이런 열반과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환상이나 무지가 아닌 사실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또한 놓치더라도 꾸준히 연습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로 가는 데 있어서 최소한 남으로부터 도움받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오계를 어겨 남에게 피해 주는 인생은 살지 않아야 합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는, 오히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고, 괴로운 사람을 위로해 주고, 말을 부드럽게 하고 진실을 말해주고,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때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지위가 높더라도 세상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내가 재물이 있더라도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그리고 들뜨는 즐거움은 곧 괴로움으로 바뀌는 것임을 알아 쾌락을 추구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내 인생을 자립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인생이 아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 때 자존감이 생깁니다. 그래야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길이 있는데 왜 안 가려고 해요? 안 갈 이유가 없어요.

잘 안 된다고 자책을 하는 이유

그러나 이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막상 내일 아침부터 잘 안 됩니다. 상대의 꼬라지를 보면 성질이 팍 나고, 다른 사람이 내 말 안 들으면 주먹이 먼저 올라가고, 입에서 욕이 먼저 튀어나오고 그럽니다. 그것 또한 현실이에요. 그런 마음이 일어난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내가 살아온 과거의 습관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렸을 뿐입니다. 그럴 때는 먼저 알아차려야 합니다.

‘내가 또 성질냈구나’
‘내가 또 화를 냈구나’
‘내가 또 짜증을 냈구나’
‘내가 또 욕을 했구나’

그리고 상대에게는 사과를 해야 합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놓쳤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나는 안 돼. 나는 문제야’ 하고 자책하는 사람은 본인이 대단한 줄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안 되는 게 본인 수준인데, 본인이 잘 되는 수준인 것처럼 착각하니까 안 되는 자기가 미워지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좋아지겠어요. ‘이 길을 가는 게 좋다’ 하고 출발을 한 것만 해도 굉장한 겁니다. 지금 안 되는 걸 문제 삼지 마세요. 출발을 했으니까 잘 안 된다는 걸 알게 되는 겁니다. 옛날에는 잘못된 줄도 모르고 살았잖아요. ‘어, 잘못되었네. 이러면 나에게 손해네’ 하고 알아차리기만 해도 굉장한 거예요. 우리는 모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자기를 인정해야 합니다.

수행의 첫 단계, 참회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정했기 때문에 지금 잘못된 줄 알게 되는 거예요. 그전에는 이게 좋은 줄 알고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못 잡으니 자기가 가는 길이 잘못된지도 몰랐잖아요. 방향을 딱 잡으니까 ‘어, 이렇게 가니 잘못되네’ 하고 알게 되는 겁니다. 잘못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을 ‘참회’라고 합니다.

‘아, 이러면 행복으로 가는 길에 어긋난다.’

이렇게 잘못된 걸 알아차리고 금방 돌아와야 합니다. 길이 어긋났으면 차를 돌려서 다시 제자리로 와야 하듯이 잘못된 줄 알았으면 곧바로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발원을 해야 합니다. 안 된다고 좌절하지도 말고, 한두 번 됐다고 들뜨고 기고만장하지도 말고, 이 과정을 꾸준히 하는 거예요.

안 되는 것 같지만 출발 선상에서는 이미 몇 발 앞으로 나와 있어요. 그러니 ‘나도 되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러나 목표지점을 보니 아직 깜깜해요.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됩니다. 몇 번 됐다고 안주해서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나는 안 된다고 낙담하는 건 비굴한 자세고, 한두 번 됐다고 기고만장하는 자세는 교만한 자세입니다. 그래도 출발 선상에서 몇 발 온 것에 대해선 자긍심을 가지고 당당하되,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알고 꾸준히 겸손한 자세로 가야 해요. 이걸 참회라고 합니다.

안 돼도 괜찮아요. 안 된 줄 알면 다시 돌아오고, 놓치면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안 돼도 다시 해야 수행자라고 부를 수 있지 몇 번 해보고 안 되니까 ‘안 할래’ 하는 건 수행자가 아니에요. ‘이게 왜 잘못됐어?’ 하고 잘못된 것을 주장하는 것도 수행자가 아닙니다. 몇 발 안 가고 다 온 듯이 큰소리치는 것도 수행자가 아니에요.

그래서 수행자는 첫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로 향해 가겠다고 원을 세워야 합니다. 둘째, 안 됐을 때 잘못된 줄 알아야 해요. 잘못된 줄 알아야 개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죽지 않고 ‘다시 해봐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이 원입니다. 원을 곧 ‘참회’라 해요.

참회는 잘못된 줄 알고 원래대로 돌아온 후 앞으로는 안 놓치려고 다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방향을 잘 잡아도 막상 현실에선 쉽게 놓칩니다. 놓친 줄 알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참회예요. 그래서 수행의 첫 단계가 참회입니다.

선정을 닦아야 하는 이유

자꾸 놓치는 이유가 뭘까요? 마음이 들떠서 흥분되고, 화내고, 짜증내고, 가라앉고, 슬프고, 들뜨고, 초조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이런 건 다 심리가 안정이 안 되어 있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명상을 할 때 콧구멍 끝에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이유는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예요. 누가 막 욕을 해도 흥분을 안 하고, 무슨 소리를 들어도, 뭘 봐도, 무슨 냄새를 맡아도, 무슨 맛을 봐도, 어떤 자극이 와도, 어떤 생각이 일어나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면 절대 말과 행동이 허투루 안 나옵니다. 그 근원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정토행자의 수행법

지금 여러분들은 초심자이기 때문에, 우선 계율을 지키고, 놓치면 참회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진리에 깨어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뭐라고 욕하면 ‘저 사람이 잘못 알고 있구나’, ‘저 사람이 흥분했구나’ 하고 사실에 깨어있으면 마음이 들뜨지 않아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니깐 내 마음이 답답한 겁니다. 그래서 늘 실제 진실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지혜가 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합쳐서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닦는다고 표현합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초심자이기 때문에 우선 불법승 삼보에 귀의해야 하고, 그다음에 5계를 받고, 그러고 나서 8계를 받습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꾸준히 연습하는 겁니다. 연습하다가 안 되면 안 되는 줄 알고 돌아오고, 또 놓치면 다시 돌아오고, 이렇게 참회 정진을 계속하는 거예요.

이런 원리에 따라 수행을 해나가는 것이 정토행자의 수행법입니다. 제일 먼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해야 합니다. 불(佛)에 귀의한다는 말은 내 인생의 목표를 괴로움이 없는 부처가 되는 것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법(法)에 귀의한다는 것은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지금’, ‘여기’, ‘나’에 항상 깨어있겠다는 겁니다. 즉, 진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승(僧)에 귀의한다는 말은 꾸준히 연습해나가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삼보에 귀의하는 자세예요.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수행자들, 이것은 밖에 있는 삼보이지만, 이것은 나에게 적용하는 자성 삼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천일결사 수행법을 처음부터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명상, 경전 독송까지 설명을 하는데 정해진 수업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나머지는 다음 주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시간은 나를 위해서 시간을 써보세요. 눈을 딱 뜨자마자 ‘오늘도 살았다’ 외치면서 산 기념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시간을 먼저 가지는 겁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정진하면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까지는 ‘힘들다’, ‘괴롭다’, ‘죽겠다’, ‘못 살겠다’ 이렇게 아우성치는 인생을 살았는데, 아침마다 정진을 하면 아침에 먼동이 뜨면서 어둠이 점점 사라지듯이 괴로움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걸 경험할 수가 있어요.”

수행문 다음에 이어지는 정토행자의 서원부터는 다음 시간에 설명하기로 하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오후에는 두북 공동체 행자들과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소똥 치우기, 모내기, 감자 수확, 새로운 비닐하우스와 창고 짓기, 밭마다 물 확보하기’ 등 굵직굵직한 일을 끝냈습니다. 그동안 쉴 틈 없이 일 해온 행자들에게 잠시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습니다.

“어디 가고 싶어요?”

“바다요.”

“대중이 가고 싶다는 데로 가야지.”

스님은 산에 가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왔지만, 대중의 뜻에 따라 가까운 바다로 향했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마음도 탁 트이는 것 같습니다. 때맞춰 불어오는 바닷바람도 시원했습니다.

대왕암을 바라보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해변을 걸었습니다.

스님은 문무대왕릉에 대한 설명도 간단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 바위섬에 문무대왕의 유골을 묻었어요. 저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부릅니다. 신라 문무대왕은 자기 스스로 용왕이 되어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어요.

‘우리 민족이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해서 백성들이 늘 불안하고 삶이 고달팠다. 이제 삼국이 하나로 통일이 되어서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도 편안해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바다 건너에는 왜구가 있어서 늘 우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죽어서 동해바다 용이 되어 왜구의 침략을 막겠다. 그러니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그 유골을 동해 바다에 묻어다오.’

자연석인 것 같지만 큰 바위를 십자 모양으로 파서 수로를 낸 겁니다. 그래서 물길이 동서남북에서 다 들어갈 수 있게 했고, 가운데에는 다시 연못을 동그랗게 팠어요. 거기에 큰 돌을 하나 얹어서 눌러 놓았습니다. 파도가 치면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가 하는 거죠. 문무대왕이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된다고 했으니까 물길을 따라 용이 감은사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든 거예요.”

대왕암을 둘러보고 대종천을 따라 5분 거리에 있는 ‘감은사지’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저 멀리 높이 솟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감은사는 681년에 문무대왕(文武大王)이 죽고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682년에 신문왕이 세운 절입니다.

“감은사지의 이 탑은 신라시대 석탑 중에 제일 큰 것에 속합니다. 꼭대기의 상륜부가 다 부서졌지만 그 철심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이것까지 포함하면 제일 큰 탑에 속합니다.

이 바닥을 보세요. 보통 법당 바닥은 흙으로 채워져 있는 데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밑에 물이 있는 것처럼 물 위에 징검다리를 놓고 마루를 걸쳐놓은 격으로 지었어요.

감은사 앞에는 연못이 있고 도로가 나 있는데요, 그쪽으로 대종천(大鍾川)이 흘렀는데 거기서 물을 끌어와서 연못을 만들었어요. 그 연못으로부터 이 법당 밑까지 용이 올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이 저 바다에서 대종천을 타고 이 연못으로 들어와서 법당 밑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매년 수백 명의 청년들과 경주 역사기행을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역사기행도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감은사지 풍경은 예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사람이 없어 한적했습니다.

경주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그동안 피로가 많이 쌓였기 때문에 일찍 쉬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시간이 난 김에 우물을 청소했습니다. 펌프로 물을 빼고 우물 속에 들어가 깨끗이 청소를 했습니다. 펌프로 뺀 물은 큰 통에 받아서 밭에 주었습니다.

내일은 농사일을 하고, 하루 종일 두북특별위원회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전국 정토회 총무, 부총무와 화상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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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

꾸준히 닦아 나가는것 엎어지더라도 앞으로

2020-06-20 19:55:37

정지나

오늘도 이런저런 일들로 화내고,짜증내고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다시 자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20-06-12 22:02:59

장성희

스님의 일상은 그자체로 가르침리고 법문입니다.
같은 시기에 살고있는 행운으로 스님의 하루를 지켜볼 수있음에 감사합니다.

2020-06-08 10: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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