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2.15 제9차 천일결사 회향식
“자기 삶을 평가하는 기준”

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만일결사 중 9차 천일결사 회향식이 열렸습니다. 회향식은 무주 태권도원과 해외 14개 법당에서 생방송으로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은 아름다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매일 수행, 보시, 봉사하는 만일의 약속, 그중 9천 일이 지났습니다.

스님과 몇몇 사람이 시작했던 만일결사는 27년이 지난 오늘 5천6백여 명의 대중이 함께 모여 회향식을 했습니다.

먼저 지난 천일의 발자취를 담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만 오천 명이 모여 평화대회를 열고, 백악관에 평화협정을 촉구하는 10만 인 서명을 전달하고, 통일을 기원하는 24시간 천일기도를 회향했습니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해 행복학교를 열고, 북한에 옥수수 1만 톤, 로힝야 난민에게 가스버너 10만 대를 지원했습니다. 필리핀에 장애인 학교를 준공하고, 의료인 정토회는 필리핀 민다나오에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가슴 벅찼던 순간이 지나갈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9차 천일결사 3년 동안 천일결사 기도를 입재한 사람이 1만 2천 여 명,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2만 여 명, 즉문즉설 강연에 참여한 사람이 12만 7천 여 명이었습니다. 3년을 돌아보니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함께 만든 3년이었습니다. 가슴이 찡했습니다. 찡한 마음은 눈물이 되어 흐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두 분의 수행담을 들어보았습니다. 먼저 김해 정토회 장유 법당 이윤희 님이 원망했던 아버지에게 감사하게 되고, 미워하던 남편을 이해하게 된 과정을 들려주었습니다.

송파 정토회 강동 법당 김종환 님의 수행담은 영상으로 만나보았습니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던 김종환 님에게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상사와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눈 뜨는 게 싫을 정도로 괴로웠던 김종환 님은 법륜스님의 인생수업을 읽게 되었고, 동네에 있는 법당을 찾아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알아차리는 게 잘 안되니까 그게 효과가 좋다고 해서 샀어요. 스님이 말하신 전기충격기. 처음에는 30분 정도 이걸 보고 가만히 서 있었어요. 맞아보니까 생각보다 엄청 아프더라고요. 몸에 대면 온몸이 다다다다 울립니다. 세 번 맞았어요. 화 안 내겠습니다.” (모두 웃음)

전기충격기 이야기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정말 전기충격기를 사서 화를 낼 때 몸에 대 보았다니 놀라웠습니다.

그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정진하면서 본 저의 모습에 대한 감동이 있었어요. 살면서 내가 나에게 감동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어제도 정진하면서 저에 대해 감동했습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데 ‘저 자식이 말을 저따위로 해? 뒤지려고?’ 이런 마음이 올라왔는데 제가 참지 않고 알아차렸어요. 알아차리니까 괴로움이 남지 않더라고요. 알아차린 제가 참 대견했어요. 그건 누가 나를 칭찬해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의 수행담은 대중의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수행으로 삶이 바뀐 모습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법륜스님을 모시고 제9차 천일결사 회향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정토행자 만일결사 중 아홉 번째 천일이 끝나는 제9차 천일결사 회향일입니다. 멀리는 27년이 지났고 가까이로는 3년이 지났습니다.”

스님은 지난 천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정진한 사람, 불교대학 경전반 담당자, 수련을 진행한 법사님과 바라지, 불사를 맡았던 분들, 통일특별위원회, 북한 옥수수 돕기에 참여했던 분들, 각종 소임을 맡았던 분들을 차례로 일으켜 박수를 보냈습니다.

끝나고 보니 모든 사람이 한번 이상씩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일일이 감사인사를 하고, 스님은 이 모든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강조했습니다.

모든 일의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북한 주민들에게 옥수수 1만 톤도 지원했고, 로힝야 난민들에게도 도움도 줄 수 있었고, 전국에서 많은 불사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3년 전보다 더 행복해졌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별로 안 중요합니다. 북한에 있는 배고픈 사람들을 도와주면 북한 주민들은 우리를 칭찬하는 반면, 그런 일을 반대하는 남한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합니다. 똑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칭찬을 하고 어떤 사람은 비난을 합니다.

우리가 로힝야 난민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난민을 도와주니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칭찬할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그리 반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힝야 난민들을 도와줬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도와주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북한의 관리들은 민족의 배신자를 도와줬다고 비난합니다.

같은 행동을 하고도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에 따라 칭찬을 하기도 하고 비난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남들의 평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칭찬을 받았다가 비난을 받았다가 하는 건 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떠한가’입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높은 산에 오르더라도 비록 다리는 아플지 모르지만 행복한 사람, 더운 나라에 가서 일을 할 때도 땀은 나지만 마음은 행복한 사람, 힘든 일을 해서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행복한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괴로워하거나 불평을 하면, 정토회의 설립 취지에는 맞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정토회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거지를 해도 내가 행복해야 하고, 청소를 해도 내가 행복해야 하고, 영상을 만들어도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더 좋고 덜 좋은 건 없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는 어떤 일이 다른 일보다 더 가치 있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는 강연을 할 때 강연료를 받지 않지만 몇 백만 원의 강사료를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늘 무료로 강연을 하고, 시간이 나면 텃밭에 가서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를 짓는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면 시간당 만 원도 안 될 거예요. 그러나 강연을 하면 시간당 백만 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농사는 가치가 없는 일이고, 강연은 가치가 있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둘은 똑같은 일입니다. 돈을 더 많이 받고 덜 받고는 세상의 기준이 그렇게 되어 있을 뿐입니다. 백만 원 받는다고 가치 있는 일이고, 만 원 받는다고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그저 세상의 시스템에 따라 정해질 뿐입니다.

이는 마치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잘하는 일이고, 비난을 받으면 못하는 일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칭찬을 하고 비난을 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비난을 해도 중요한 일입니다.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을 기준 삼아서 자기 자신을 규정하면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파도에 휩쓸리는 나무토막과 같은 삶을 살게 돼요. 그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환산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로 환산되는지는 그때그때 세상의 시스템에 따라 다릅니다.

수행자가 자기 삶을 평가하는 기준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라면 자기 삶의 평가 기준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두면 안 됩니다. 수행자라면 세상이 칭찬한다고 해서 우쭐대지 않고, 세상이 비난한다고 해도 위축되지 않아야 합니다. 바람이 부는 건 바람의 문제이고, 파도가 치는 건 파도의 문제일 뿐입니다. 바람이 불면 잠시 휘어졌다가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은 ‘누가 수행을 잘한다’, 또는 ‘누가 수행을 못한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수행자입니다. 이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일이 실패해도 수행자입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 수행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하다고 칭찬받아도 자기가 괴롭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가 당장 죽게 되어도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기꺼이 죽는다면 설령 세상이 나를 불쌍하게 여긴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보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수행적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서 키우지 않았거나,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거나, 신체장애가 있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등산을 할 때 출발하자마자 가파른 언덕이 나타나거나 계곡에 물이 많은데 다리가 없어서 위험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건 중요치 않습니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으며 산 중턱까지 가는 것이나 평탄하게 가는 것이나 산 중턱에 올랐다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힘들게 정상에 오른 것이나 고생을 덜하며 정상에 오른 것이나 산 정상에 오르면 똑같이 정상에 오른 겁니다. 산에 오르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런저런 일들은 사람마다 다 다를 뿐입니다.

그것처럼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힘들었든 아니었든, 누가 나를 사랑해줬든 안 해줬든,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데, 이 현상이 지속되어서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면 언젠가 아이를 인큐베이터에서 낳을 때가 올 거예요. 부모의 사랑 속에서 태어나지 못했다고 괴로워하는데, 그럼 인큐베이터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사랑 속에서 태어나지 못해서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그러니 어떻게 태어났든, 부모가 누구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을 겪고 지금 여기에 왔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이 자리에 올수록 좋은 일입니다. 어차피 오는 길인데 평탄한 길보다는 험한 길을 오면 경험도 쌓고 좋잖아요.

지금 내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연연하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마세요.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과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이 관점만 가지면 울고불고할 일이 없어요. 과거에 사로잡혀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조금 나다가도 정신 차리면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누군가 비난하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져도 정신 차리면 다시 돌아오고, 누가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우쭐대다가도 정신 차리면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나는 수행자이다.’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토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는 단체가 되거나, 앞으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단체가 되는 것은 세상과 부딪혀 가면서 일어날 일입니다. 이런 인연이 되면 이렇게 일어날 것이고, 저런 인연이 되면 저렇게 일어날 거예요. 그것에 연연하게 되면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게 됩니다. 바깥 환경이 봄이든 겨울이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옷 하나 더 입고 나가면 되고, 여름이면 옷을 하나 벗고 나가면 됩니다.

남을 돕는 일을 무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면

이런 수행적 관점을 기본 바탕에 깔고, 이 전제 위에 우리는 나만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밥을 조금 나누어 주고, 병든 사람에게는 약을 주고,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손이라도 잡아주고 몸이라도 씻겨주고 글이라도 가르쳐 주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고, 남북통일의 희망도 만들어 내고, 환경도 보전하고, 조금이나마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일도 너무 짐처럼 무겁게 생각하거나 사명감으로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런저런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모두 웃음)

그러나 우리 중에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 그냥 세상에 오게 된 거예요. 그러니 태어난 것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살아가면서 내가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는 살리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낫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 끼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낫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기보다는 즐겁게 해주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겁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가볍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번에 북한에 옥수수 보내기 캠페인을 했지만, 옥수수 후원금을 얼마씩 내도 여러분이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은 없잖아요. 자기 먹고사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후원금을 낸 사람은 없어 보였어요. (모두 웃음)

남한에서는 옥수수가 길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그냥 지나치지만, 북한에서는 옥수수 한 움큼이 곧 생명입니다. 이건 배고파 본 사람만 알아요. 저는 특히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에 노력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건 제가 어릴 때 배고픈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우리의 풍요로움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신발장에 안 신는 신발도 많지만, 엊그제 준공식을 하러 다녀온 필리핀 민다나오 원주민 마을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신발을 신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아무리 가난한 마을이라고 해도 아이들은 그냥 맨발로 다니지만 어른들은 낡은 고무 슬리퍼라도 신고 다니기 마련인데 이 마을은 아이도 어른도 모두가 맨발로 다녔어요. 그럴 때 내 짐 속에 신발이 두세 켤레 있으면 신발 한 켤레는 나눠주고, 헐벗은 아이들에게 남는 옷 한 벌이라도 나눠주는 게 정상입니다. 한국에서 옷을 들고 필리핀까지 가려면 짐이 많지만, 몇 천 원이라도 후원을 하면 그곳에서는 그 돈이 옷 한 벌이 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담을 가질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저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해야 합니다.

일이 많은 걸까요, 욕심을 내는 걸까요?

정토행자가 되면 직장생활도 하고, 가정생활도 하고, 정토회에 와서 봉사도 해야 하고, 거기다가 통일의병이 되면 의병활동까지 해야 하니 다들 죽겠다고 야단입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절대 안 죽는다’라고 말해 줍니다. (모두 웃음)

마음이 그렇게 들뿐이지 절대 안 죽습니다. 대신 일의 우선순위가 조금 조정이 됩니다. 밥 먹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거나, 잠자는 시간이 줄거나, 청소를 효율적으로 하게 됩니다. 정말로 일이 급하면, 일의 속도가 빨라지거나, 방식이 효율적으로 바뀌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하게 됩니다. 시간이 남으면 이 일 저 일 다 하게 되지만, 급하면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포기하게 돼요. 청소를 매일 하다가도 급한 일이 생기면 이틀에 한 번 하거나 사흘에 한 번 하는 걸로 바꾸게 됩니다. 양치질도 하루에 세 번 하지만 바쁠 때는 하루에 한 번 밖에 못 하기도 해요. 토끼나 소를 보면 평생 양치질 안 해도 별문제 없이 잘 살잖아요. (모두 웃음)

그것처럼 일이 많으면 자연스레 조금씩 조절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일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무리를 한다면 욕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일이 많아서 무리를 하는 게 아니라 욕심을 내기 때문에 무리를 하게 되는 거예요. 욕심을 내지 않으면 일이 많이 들어와도 저절로 조절이 됩니다. 지금 중요한 일을 하다가도 더 중요한 일이 들어오면 그 일부터 하게 됩니다. 반찬이 없을 때는 김치만 먹다가도 맛있는 반찬이 더 있으면 김치가 뒤로 밀리잖아요. 그럴 때는 왜 반찬이 많다고 불평을 안 해요? (모두 웃음)

반찬도 맛있는 것부터 찾아서 먹듯이 인생에서도 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그 일로 자연스레 옮겨가게 됩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덜 중요한 일을 적게 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조절이 돼요. 저도 살아보면 그렇게 돼요. 아무리 농사에 비중을 둬도 다른 일이 생기면 조절을 해서 살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라고 하면 매일 농사만 지을 것 같은데, 농사를 짓다가도 강연이 있거나 상담이 있으면 농사를 멈추고 그 일을 하고, 농사지을 시간이 부족하면 밤차를 타고 내려가서 새벽에 농사일을 조금씩 하게 됩니다. 이렇게 저절로 조절이 되지, 여기에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다면 그건 일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욕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로가 되면 중간에 조금 쉬어줘야 합니다. 과로를 하지 않고 사는 게 가장 좋지만, 살다 보면 과로를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몸에 피곤함이 많이 느껴지면 조금 쉬어줘야 합니다. 그렇게 조절하면 인생에 활력이 생깁니다.

내일부터 천일정진 회향했다고 놀기만 하지 마세요. 개인 정진은 회향이나 입재와는 관계없이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회향 기간 동안 업무는 쉬라고 하면 쉬고, 대행 업무를 맡아달라고 하면 맡아서 남은 회향 기간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1부를 마치고 행사장 밖으로 나가 각자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머금으며 도반들과 담소도 나누며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냈습니다.

야외에는 천일의 모습이 담긴 사진전, JTS모금, 지렁이 화분 분양, 지인에게 책 선물하기, 정토불교대학 소개, 백일출가 안내 등 다양한 부스가 마련되어 신나는 축제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스님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직접 농사지은 고춧가루를 몇몇 서원 행자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지난 주말 회향 수련 때 스텝을 하느라 못 받은 사람들이 찾아와 고춧가루를 직접 받아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오후에는 정토행자 한마당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강원 경기동부 지부에서 ‘정토행자의 아리랑 연가’를 세계 전법의 내용을 담아 재미있게 불러주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차 만일 고개를 넘어간다. ♬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 고집도 버리고 넘어간다.
나를 따라서 오시는 님은 스승님과 세계 전법 실컷 한다.”

노원 정토회에서는 봉사하는 마음을 내기 어려워하는 정토행자들에게 가볍게 해 보자는 메시지를 담은 ‘부처 인사이드’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보세요. 마음 내세요. 봉사하세요. ♬
오늘 하루는 그냥 봉사해봐요.
봉사는 하지도 않고 밥이 또 넘어가냐.
아직도 스님 법문 듣기만 좋아하느냐. 오 왜~ 도대체 왜~” (모두 웃음)

청년 정토회에서는 신나는 댄스 공연을 보여 주었습니다. 흰색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사방에서 청중 속으로 뛰어나오며 똑같은 동작으로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청년들이 밤새 만든 노란색 나비 팔찌를 5천 명이 끼고 동시에 날갯짓을 하는 장면은 장관이었습니다.

“사랑해요. 그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
고마워요. 항상. 우리 작은 손을 놓지 말아요. 그리고 모두 다 함께 웃어요.”

다음은 천일을 하루 같이 기도한 분들을 시상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천 일을 한결같이 기도하신 분들입니다. 천 일을 기도하기도 어려운데, 시간까지 지켜서 기도한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모두 43명이 무대로 올라와 스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비록 시간은 지키지 못했지만 천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한 분들에게 지부별 상임법사님들이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모두 176명이었습니다. 천일 동안 매일 기도한 분들이여서 그런지 모두 얼굴빛이 환했습니다.

이어서 2019년 정토행자상 수상식이 진행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각 부분에서 모범적으로 활동하신 분이나 단체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가운데 차례대로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

청중 모두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토행자 대상이 발표되었습니다. 대상은 수행, 보시, 봉사의 모든 면에서 정토행자의 귀감이 되는 분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수상자에게는 법륜 스님이 직접 상패와 인도 성지순례 티켓을 전달했습니다. 곧이어 수상 소감을 청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큰 상을 받게 돼서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한 해에 정토회에 와서 올해 2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모두 박수)

제가 살아온 시간의 절반 이상을 정토회에서 함께 보낸 것 같아요. 정토회의 역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고 기쁜 마음이 큽니다. 처음 왔을 때 홍제동에 있는 허름한 법당에 갔었는데 그때 스님께서 만일결사의 목표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함께 데리고 간 많은 지인들이 ‘법륜 스님은 참 훌륭하신데 좀 허황된 것 아니냐’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 허황된 꿈이 대부분 현실이 됐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사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9차 천일 동안 많은 도약을 했지만, 무엇보다 대중이 주체로 서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도약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두 박수)

정토회에 몸 담은 지 26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말에 큰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꿈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경험해 온 분의 소감이었습니다.

이어서 김홍신 작가님이 무대로 나와 정토행자상을 수상한 분들에게 축하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저 같으면 천일 동안 삼시 세 끼도 다 못 챙겨 먹었는데 어떻게 천일 간 기도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합니까.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 웃음)

인생은 활쏘기와 같습니다. 보통 10년 정도 연습을 해야 과녁의 중앙을 맞추게 되는데요. 인생도 10년 정도 노력해야 뭔가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년 동안 그렇게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건 바보입니다. 법륜 스님 말씀처럼 먼저 수행 정진을 하면 인생 살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먼저 활을 쏘고, 화살이 맞은 자리에 과녁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 박수)

여기 와서 여러분들을 보니까 관상이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이런 곳이 없어요. 인생도 자꾸 흔들어줘야 잘 굴러갑니다. 그 흔들어주는 것이 바로 수행, 보시, 봉사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다음은 9차 천일결사 3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신 분들을 소개하고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직접 호명하며 소개해 주었습니다.

법사단, 발심 행자, 서원 행자, 결사 행자, 대의원, 행정처, 통일특별위원회, 사회활동위원회, 국제국, 해외사무국 활동가들까지 호명될 때마다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정말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다음은 9차 천일결사 회향 후에 업무를 대행할 인사를 발표했습니다. 왜냐하면 총무, 대표, 대의원 등 임원을 맡은 모든 분들의 직위가 오늘 부로 만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10차 천일결사를 시작하는 3월 8일까지 기존 업무를 대행해 줄 분들이 한 명씩 발표되자 다시 한번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천일 동안 백일 입재식 때마다 무대 위에 펼쳐졌던 10번의 공연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천일의 시간이 음악과 함께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감동을 더했습니다. ‘손에 손잡고’ 노래가 흘러나오고 5천여 명의 천일결사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손을 맞잡았습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전율하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노래 가사가 입에서 저절로 크게 나옵니다. 작은 파도가 모여 거대한 바다가 된 기분입니다.

마지막으로 9차 천일결사를 끝마치며 스님이 무대로 올라와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정토행자상을 받으신 분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고해주신 모든 활동가들이 다 상을 받을 만합니다. 다만 우리들 가운데 몇몇 분들을 상징적으로 뽑다 보니 그분들이 선출되었는데, 그간 활동해주신 모든 분들께 상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어려운 가운데 보시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북한 옥수수 보내기 운동을 할 때도 많은 분들이 보시를 해주셨습니다. 그중에는 제가 봐도 ‘저렇게 보시를 해도 괜찮을까’ 하고 걱정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방금 전에도 ‘그렇게 보시해도 괜찮아요?’ 하고 물어보니 ‘저 돈 많습니다’ 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하시더라고요. (모두 웃음)

평소에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것을 아끼고 아껴서 굶주리는 동포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내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 박수)

이번에 북녘에서 우리 앞에 직접 와서 감사 인사는 못하더라도 고마운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다는 뜻으로 선물을 보내줬습니다. 한반도를 꽃으로 자수를 놓은 감사의 선물입니다. 수치로는 100을 주고 1을 받은 것 같지만, 그 1에 100 못지않은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다만 이 선물을 여러분 모두에게 드리지 못하는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선물로 보내준 것이어서 많이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혹시라도 다음에 제가 북녘에 가게 되면 여러분들 모두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많이 사 오겠습니다. (모두 웃음)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실 거예요. 가난한 여인이 동전 두 닢으로 올린 등불을 켠 것을 보시고, 그 정성을 헤아려 미래세에 성불을 할 것이라는 수기를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코살라국의 파세나짓 왕이 자기는 수도 없는 등불을 켜고 수많은 보시를 했는데도 부처님이 그런 수기를 주지 않자 자기는 어떻게 되는지 물어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법은 하나를 주고도 수천을 얻을 수도 있지만, 수천을 주고도 하나를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정성은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옥수수 한 움큼은 하찮은 것이지만 그것이 북녘 동포에게 갔을 때는 목숨이 오가게 됩니다. 우리가 보낸 것이 가난한 지역에 이르면 그 공덕은 한량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해주신 그 공덕이 수 천, 수 만 명의 목숨을 살렸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모르고, 그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에 조금 더 자부심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내년 봄에 10차 천일결사를 시작할 때는 한반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어 우리가 길거리로 나가서 평화운동을 하게 될지, 아니면 우리의 기도가 이뤄져서 나라 걱정은 조금 덜하고 전법에 집중할 수 있게 될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말을 기해서 북미 간에 샅바 싸움이 치열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의 활동 방향도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어야 정해질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는 마치 봄을 맞이하기 위해 긴 겨울을 준비하듯이 개인적으로 꾸준히 정진해주시고, 10차 천일결사를 시작하는 준비도 잘해주시기 바랍니다. 회향이나 입재와는 관계없이 자기 자신을 위한 개인적 정진은 빠짐없이 꾸준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9차 천일결사를 모두 회향하겠습니다. 내년 봄에 새로 출발하는 10차 천일결사 입재식 때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함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과 법사님들이 무대로 올라오고, 다시 손을 맞잡고 산회가를 불렀습니다.

“10차 천일결사 입재식 때 다시 만나요.”


대중이 모두 떠나고, 통일의병 2천 여 명은 그대로 자리에 남았습니다. 30분 뒤 오후 4시부터는 9차 천일을 마무리하고 10차 천일을 준비하는 통일의병 대회가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

전체댓글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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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0-02-10 16:40:29

윤순도

스님법문 늘고맙습니다~(())

2019-12-20 19:44:28

무애

30년 동안 원을 꾸준히 실천해 오신 스님과 정토회에 감사합니다.

2019-12-20 18: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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