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1.08 두북 마을 어르신 잔치
“나이 들어서 중요한 세 가지”

안녕하세요. 오늘은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어르신 가을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마을 입구에는 며칠 전부터 어르신 잔치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마을 곳곳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서 가을을 물씬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 곧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월동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은 땔감으로 사용할 장작을 가지런히 쌓아서 정리했습니다.

가지런히 쌓기에 너무 긴 나무들은 톱으로 잘라서 길이를 맞추었습니다. 불쏘시개로 쓸 수 있는 잔가지와 솔잎은 따로 모아서 끈으로 묶었습니다. 마른나무들은 마른나무들끼리 따로 모았습니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행자님이 전화를 받고 알렸습니다.

“스님, 이제 법문 하러 갈 시간이에요.”

신속하게 뒷정리를 한 후 마을 어르신들을 맞이했습니다. 운동장에는 자전거와 유모차가 가지런하게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의 얼굴을 보자 어르신들은 환하게 웃으며 스님의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이고, 스님. 반갑습니데이.”

“건강하시죠?”

두북 정토수련원은 법륜 스님이 다녔던 초등학교였다가 이제 폐교된 건물입니다. 현재는 한국 JTS에서 노인 복지 활동과 국제 구호 물품 보관을 위해 2004년부터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매년 봄에는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사찰 순례를 하고, 가을걷이를 마칠 즈음에 오늘처럼 잔치를 엽니다. 올해로 16년이 되었습니다.

10시가 되자 170여 명의 어르신들이 두북 정토수련원 강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스님은 어르신들에게 올해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없는지 안부를 물으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가을 추수는 다 하셨습니까?”

“네.”

“올해는 태풍 때문에 농사에 어려움이 많았죠? 동네를 둘러보니 벼도 많이 누웠던데 괜찮았습니까? 벼가 누워버려서 타작을 어떡하나 했는데, 들판을 보니까 한 집 빼고는 그래도 다 타작을 한 것 같아요. 고추 농사도 올해 망쳤죠?”

“네.”

“아이고, 여름 내내 부지런히 일했는데 농사가 이렇게 어려워서 어떡합니까?”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근심 걱정이 묻어 있었습니다.

“올해 유난히 태풍이 많이 왔습니다. 가을에 태풍이 이렇게 많이 온 적도 올해 처음이래요. 보통 추석 이후에 태풍이 한 번 정도 와도 드물다고 할 텐데 올해는 세 번 연달아 왔잖습니까. 농사 다 지어놨는데 농작물에 피해가 많아서 어르신들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제가 볏단 세우러 자원봉사를 가보니까 80세 넘는 분들이 허리가 굽어서 펴지지도 않는데 논에 들어가서 볏단을 세우고 있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하지 마소! 그거 해봐야 먹을 것도 없심더’ 이러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은 ‘엄마, 하지 마라! 그거 해봐야 뭐하노!’ 이러는데, 노인 분들은 ‘아이고, 그래도 농사지어 놨는데 그게 물에 젖어서 어떡하노’ 이러면서 안타까워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쓰러진 볏단을 세워보니까 벌써 싹이 하얗게 났더라고요. 싹이 하얗게 나면 나중에 쌀로 찧어봐야 다 동강 나 버리니까 필요 없다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아까워서 세우는 사람도 있었어요. 옛날이라면 이삭도 줍고, 쓰러진 볏단도 당연하게 다 세웠을 텐데, 요즘은 살기가 좋아졌는지 버려 버리더라고요.

자연재해가 점점 많아지는 이유

왜 이렇게 태풍이 많이 올까요? 옛날이라면 임금의 성품이 안 좋아서 태풍이 많이 오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태풍과 임금의 성품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갈수록 홍수나 태풍 피해가 많아지는 것은 기후 변화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자연재해는 점점 더 많아질 겁니다.

저도 이 동네에서 농사짓는 거 아세요? 올해 제가 고추농사를 비닐하우스로 300평 지었거든요. 고춧가루가 한 500근 나왔어요. 11월인데도 아직도 고추가 달리고 있어요. 비닐하우스라서 그래요. 고추나무 키가 저보다 훨씬 더 커요. 고추를 따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따야 합니다. (모두 웃음)

논도 이번에 3200평을 마련해서 벼농사를 지었는데, 태풍 때문에 논둑이 무너졌어요. 아직 신고도 못하고 그냥 둔 상태예요. 이쪽은 벼가 덜 넘어진 편이지만 전라도 쪽으로 가니까 벼 넘어진 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여기도 언양 쪽은 벼가 많이 넘어졌는데, 특히 신품종이 많이 넘어졌다고 해요.

농사를 지어서 돈 번다는 말은 이제 거짓말인 것 같아요. 저도 여기 올 때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상추와 여러 가지 채소를 몇 박스씩 땄거든요. 하루 종일 일해서 몇 박스 수확한 농산물을 보면서 ‘이거 시장에 가져가면 30만 원은 받겠지?’ 물어보니까 ‘10만 원도 못 받습니다’라고 해요. 저는 실제로 강의료를 받고 강의하는 경우는 없지만, 한 시간만 강의해도 50만 원에서 1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많이 받거든요. (모두 웃음)

돈 벌 생각하면 농사는 못 지어요. 운동 삼아 그냥 하는 거예요. 저는 70살 넘어 은퇴하면 여기 와서 농사지을 생각이에요. 그래서 틈만 나면 내려와서 농사일을 했어요. 어르신들만큼 고생하진 않았지만 농사일을 해보았기 때문에 농사일에 드는 수고를 잘 알아요. 그래서 이번 태풍 피해 때문에 얼마나 상심하셨을지 짐작이 돼요.”

스님은 태풍으로 많이 힘드셨을 어르신들에게 환경오염으로 점점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는 세상의 여러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 농사 보험제도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습니다.

“위로를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웃음)

제가 이번에 태풍으로 가장 피해가 심했던 삼척에 수해 복구를 하러 갔어요.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이 모래에 다 잠겨 있었어요. 다행히 그 마을에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다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할아버지 혼자 치우겠어요? 우리가 150명 정도 갔는데 집집마다 10여 명씩 붙어서 15가구 정도를 치웠습니다.

‘이거는 젖었으니 버려라.’
‘이거는요?’
‘이거는 쓸 만하니 나중에 쓰도록 한편에 모아둬라.’

이렇게 버릴 것과 쓸 것을 따로 분류해 모아두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점심 먹고 나니까 도시에 가서 살던 아들딸들이 왔어요. 노인이 쓰겠다고 모아놓은 걸 들여다보더니 다 갖다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노인이 그걸 버리느니 마느니 하면서 티격태격했어요.

‘아이고, 그거 써야 하는데...’
‘내가 사줄게! 버려라! 젖어서 못 쓴다! 그거 어디 쓰노!’ (모두 웃음)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멀쩡한 것도 다 갖다 버리는 거예요. 노인이니까 창고에도 온갖 것을 모아 두었는데 거기도 물에 잠겨서 물건이 다 젖어버렸어요. 그걸 꺼내면서 쓸 만한 걸 골라놨더니 도시에서 온 아들딸들이 다 갖다 버린 겁니다. 버려 놓은 걸 할아버지가 가서 둘러보고는 몇 개 주워서 또 갖다 놓고, 한두 시간 있다가 딸이 와서 또 갖다 버리고, 나중에는 우리더러 멀리 버려 달라고 했어요. 가까이 버리면 할아버지가 또 주워오니까요. (모두 웃음)

그렇게 부모와 자식이 다투는데, 집집마다 아까워서 못 버리고 쌓아놓은 게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모아둔 게 많죠? 그런데 여러분이 돌아가시면 아들딸들이 죄다 갖다 버립니다.”

“맞아요.”

“그러니 너무 그렇게 주워 모으지 마세요. 저도 나이가 그리 많은 편도 아닌데도 젊은 사람들하고 살면 늘 그 문제로 서로 갈등을 일으킵니다. 제가 뭘 주워오거나 한쪽에 모아놓으면 젊은 행자들이 방 청소하면서 갖다 버려요.

‘그건 놔둬라, 아직 더 쓴다.’
‘이건 이제 못 써요. 다 떨어졌잖아요.’

옷도 떨어진 걸 입자고 하면 기우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일이 많다고 갖다 버리라고 합니다. 서로 살아온 경험이 달라서 그래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늘 양말도 기워 입고 옷도 기워 입던 게 생활이 돼 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구멍 나면 그냥 다 버리잖아요. 기워 입을 바늘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모두 웃음)

이렇게 생활이 서로 달라요. 세상이 이런데 뭐 어떡하겠습니까?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건강 챙기기

첫째, 건강을 잘 챙기세요. 건강을 해치면 안 되니까 항상 조심하셔야 해요. 늙어서 농사지을 때는 절대 무리하면 안 됩니다. 운동 삼아 지어야 합니다. 농사짓다 보면 일에 빠져서 무리하기 쉽잖아요. 저도 해보면 일에 빠져 있다가 나중에 허리가 안 펴져서 애먹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도 젊을 때는 자고 일어나면 괜찮지만, 늙으면 회복이 잘 안 되니까 건강을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지금 지병 있는 분 계세요? 지병이 있는 분은 오늘 잔치에 나오지도 않으셨겠죠. 우리 동네에 90살 된 어르신이 계신데 잔치에 가자고 권유하니까 이렇게 말해요.

‘가시죠, 어르신.’
‘아이고, 늙어서 꼬락서니가 이래 가지고 못 간다.’ (모두 웃음)
‘꼬락서니 괜찮아요, 갑시다!’
‘안 된다. 남이 보면 뭐라 그러겠니? 늙더라도 한 70살, 80살은 되어야 그런 데도 가지. 90살이 넘어서 그런 데 가면 민폐다.’

90살 넘은 어르신이 앞집에도 계시고 옆집에도 계셨는데 다들 안 오시려고 했어요. 그러니 90살이 넘기 전에 이렇게 자주 나와서 노셔야 합니다. 90살이 넘어도 건강하면 놀아도 되는데, 추하다고 본인이 안 나가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 건강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식 걱정하지 않기

둘째, 자식 걱정을 하지 마세요. 아직도 자식 걱정하시는 분 계세요? 제 법문 많이 들어서 이제 자식 걱정은 다 놨어요? 이제는 또 손자 걱정해요?”

“죽고 나야 걱정을 놓제.” (모두 웃음)

“안 죽은 동안은 걱정하고 살아야 한다고요? 그러면 안 돼요. 어제 즉문즉설을 하는데 70살 되신 할머니가 일어나더니 아들 걱정을 하는 거예요. 아들이 하나는 42살이고 하나는 39살인데 둘 다 장가를 안 가서 걱정이래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주머니는 나쁜 사람이에요!’
‘왜요?’
‘남의 아들은 나이가 많아도 장가 못 갔다고 걱정 안 하면서 자기 아들은 나이도 얼마 안 되는데 걱정해요? 저는 지금 67살인데도 아직 장가를 못 갔는데, 제 걱정은 안 해주면서 42살밖에 안 된 자기 아들만 걱정하잖아요. 제 어머니가 이 얘기를 들었으면 아주머니가 얼마나 괘씸하겠어요?’ (모두 웃음)

이렇게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어떻게 기도하면 아들이 장가를 가겠냐고 물어서 제가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어요.

‘아이고, 부처님, 나이 많은 법륜스님부터 먼저 장가가고, 그다음으로 우리 아들을 장가보내주세요.’

법륜 스님이 먼저 장가 간 다음에 우리 아들을 보내달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법륜 스님은 장가갈 일이 없으니까 우리 아들도 장가갈 일이 없다는 얘기예요. 아들은 장가를 못 간다는 뜻이 아니에요. 장가를 가든지 안 가든지, 40살 넘었으면 본인이 알아서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모두 웃음)

옛날에는 태어나면 누구나 시집을 가거나 장가를 가는 걸로 알고 살았어요. 장가를 안 가거나 시집을 안 가려면 스님이 되는 길 한 가지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스님이 안 되고도 혼자 사는 길이 있어요. 그래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밥은 밥통이 하지,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 방에 불을 때야 하는 것도 아니고 스위치만 눌리면 보일러가 돌아가잖아요. (모두 웃음)

그러니 혼자 살아도 아무 지장이 없어요. 또 여자들도 직장 다니면 돈을 벌 수 있잖아요. 밥도 집에서 안 해 먹어도 돼요. 길거리에 나가면 맛있는 거 천지예요. 집에서 해 먹는다 해도, 시장에 가면 생선 내장 빼고 비늘 치고 토막 딱 내서 채소며 된장까지 다 넣어서 팔잖아요. 냄비에 탁 집어넣고 불만 켜면 됩니다. 그래서 남자도 여자가 별로 필요 없고, 여자도 남자가 별로 필요 없어요. (모두 웃음)

잔소리하지 않기

셋째, 잔소리를 하지 마세요. 나이 들어서 안 해야 할 것 중에 첫째가 잔소리입니다. 잔소리를 하면 젊은 사람들이 같이 살기 힘들어해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딸네 집에 갔는데, 딸과 사위가 둘 다 직장에 다녀요. 아침에 딸이 자고 있을 때 사위가 일어나서 밥하고 아이들 가방 챙겨서 학교에 보내는 모습을 봤어요. 그러고 나니까 딸이 부스스 일어나가지고 사위가 해놓은 밥을 먹고 같이 출근을 합니다. 그러면 딸에게 말로는 ‘너 그러면 안 된다’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아요.” (모두 웃음)

“그런데 아들네 집이었다면 어떨까요?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 애들 밥 먹이고 학교 보내는데 며느리는 아직도 자빠져 자고 있으면 눈이 뒤집히잖아요. (모두 웃음)

이렇게 우리의 심보가 더럽다는 거예요. 며느리가 된 게 무슨 큰 죄예요? 우리 아들 빼앗아갔다고 그렇게 죄인 취급을 해요? 며느리는 그저 부엌에 들어가서 뭘 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면 이제는 안 돼요. 시대가 바뀌었어요. 딸이나 아들이나 다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며느리나 딸이나 다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며느리나 아들도 이미 나이가 들어서 40살, 50살이 됐잖아요. 이제는 손자 손녀도 결혼할 나이가 됐습니다. 그러면 손자며느리, 손자사위에게는 더더욱 잔소리를 하면 안 돼요. 입이 자꾸 간질간질하면 염불을 하세요. 입을 다물든지, 염불을 해야지, 잔소리를 하면 안 돼요.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또 늙어보면 잔소리가 저절로 나와요. 왜 그럴까요? 인생을 오래 살다 보니 아는 게 많아서 그래요.

‘고추를 저렇게 널면 안 되는데...’
‘비 오는데 나락을 저렇게 널어놨네.’

이렇게 잔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생은 자기가 겪어봐야 알아요. 미리 알려줘 봐야 못 알아들어요. 자기가 비를 맞혀도 보고 썩혀도 봐야 정신을 차리지, 미리 알려주면 고맙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자기가 겪어봐야 제대로 아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게 살았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살아보니까 ‘나도 누가 미리 좀 알려줬으면 이걸 안 했을 텐데’ 싶어서 나는 미리 알려주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이 귀에 안 들어갑니다. 그러니 손해가 좀 나더라도 그냥 입을 다물고 흘려보내야 서로 관계가 좋아져요.

그러니 아들네 집에 가든, 딸네 집에 가든, 잔소리는 하지 마세요. 입을 다물고 지내면서 그저 고맙다는 인사만 하세요.

‘아이고, 이렇게 우리 애랑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
‘아이고, 이렇게 맛있는 거 해줘서 고맙다.’

이렇게 감사 인사만 자꾸 해야 해요.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요. 그러면 용돈이 생겨요. (모두 웃음)

잔소리하면 용돈이 안 생겨요. 잔소리하면 돈 주고도 욕을 얻어먹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복을 많이 지어놓고도 입이 다 까먹는다’라고 하잖아요. 그저 고맙다는 인사만 자주 하세요.

정 말이 하고 싶으면 친구하고 하세요. 영감하고 하든지요. 그런데 또 영감 하고는 말을 안 하더라고요. 하루 종일 있어도 눈만 껌벅껌벅하고, 서로 쳐다만 보고 말을 잘 안 하더라고요. 어쨌든 자식한테는 잔소리하지 말고 그저 친구한테 말을 많이 하는 게 좋습니다.” (모두 웃음)

“나이가 많은데 친구가 있습니까?”

“친구가 왜 없어요?”

“다 요양원에 가버렸죠.”

“나이가 어릴 때는 같은 나이만 친구이고, 한 살만 차이가 나도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10살 아래위로는 다 친구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80살쯤 되면 15살 아래위로는 다 친구라고 생각해야 해요. 80살쯤 돼서 15살 아랫사람에게 ‘아이고, 옛날에 내가 클 때 조그마하던 게’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요. 90살이 넘으면 70살까지도 그냥 친구로 지내야 해요. 안 그러면 친구가 생길 수가 없어요.

나이가 들면 고향 선후배도, 형님 동생 하던 사이도 다 친구로 삼아야 합니다. 나이 차이가 20살 이상 넘어가서 부모 자식이라고 할 정도가 아닌 이상은 다 친구로 지내야 합니다.

특별히 집안에 어려움이 있거나 해서 스님한테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손 번쩍 들어보세요. 없어요? 이제 나이가 드니까 물을 것도 없나 보네요.”

“네.”

“그러면 여러분 건강하시라고 축원을 좀 해드릴게요. 부처님한테 기도한다고 영험이 있는지 없는지는 저도 솔직하게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믿음이란 게 중요하잖아요. 살아서는 건강하고, 죽어서는 좋은 데 가시라고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잠자듯이 편하게 죽고 싶죠?

“그런데 죽을 때는 잠자듯이 죽으면 안 돼요.”

“그게 제일 편하게 죽는 건데요.”

“죽을 때는 잠자듯이 죽어야 해요, 좀 아프다가 죽어야 해요?”

“잠자듯이 죽으면 제일 편하잖아요.”

“잠자듯이 죽으면 나는 좋지만, 아들딸이 너무너무 슬퍼서 울어요. 그래서 나도 좋은 데 못 가요. 그러니 옛날 같으면 한 3년쯤 아파서 자식들이 똥오줌을 받아내야 해요. 그래서 아들딸들이 ‘아이고, 이제 죽어도 되겠다’ 할 때 죽어야 자식들이 그렇게 안 슬퍼요. 그런데 요즘 애들은 효자여서 3년까지 안 아파도 돼요. 한 3개월만 아파도 정을 떼 줘요. (모두 웃음)

잠자듯이 죽으면 내가 좋고, 좀 아프다가 죽으면 아들딸들이 좋습니다. 그러니 그걸 두고 ‘잠자듯이 죽어야 한다!’ 이렇게 너무 고집하지 마세요. 좀 아파도 괜찮아요. 죽기 전에 아들딸들이 고생을 좀 하는 게 좋아요. 미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야 정이 떨어져요. 정이 떨어져야 죽은 뒤에 울면서 부르지를 않아요. 여러분이 죽어서 어디 좋은 데 가려고 해도 계속 아들딸들이 울면서 여러분을 찾으면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돼요.

살아서는 건강하고, 죽을 때는 조금 아프다가 죽어도 괜찮아요. 그러면 아들딸들한테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잠자듯이 죽으면 나한테 좋아요. 그러니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더.” (모두 박수)

스님은 재미난 이야기를 섞어가며 어르신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스님은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드리며 근심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사시길 축원해드렸습니다.


축원을 마치고 나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이 스님에게 꽃다발을 안겼습니다. 올해로 92세가 되신 할머니는 매년 손수 지으신 한복을 입고 마을 잔치에 오십니다.

“꽃을 가져오셨어요? 아이고 제가 드려야 하는데 고맙습니다!”

스님도 어르신에게 선물을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커피입니다. 대표로 한 분께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나누어 드리도록 했습니다.

이어서 화광 법사님, 면장님, 이장님, 노인회 회장님이 차례로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올해 태풍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많이 힘드셨지요. 저도 울컥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음식도 많이 준비했고, 봉사자들도 많이 왔습니다. 오늘은 모든 시름 다 잊어버리시고 많이 잡숫고 기분 좋게 놀다 가시기 바랍니다. 많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아버지 반갑습니다. 오늘 태풍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저도 농사를 조금 짓고 있는데 올해 태풍이 많이 와서 수습한다고 가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애는 더 썼는데 수확량은 줄었습니다. 내년부터는 어르신들도 다 스님 말씀대로 보험을 드는 게 좋겠습니다.

해마다 봄에는 사찰 순례를 시켜주시고, 가을이면 잔치를 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스님께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립니다.”(모두 박수)


“오늘 많이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법륜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서울에 제 친구가 법륜스님 강연 듣고 싶어서 몇 년을 기다렸는데, 사람이 많아서 한 번도 못 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우리 마을에는 일 년에 두 번씩 강연해준다니까 깜짝 놀랍디다. 정말 복된 지역에 산다고 부러워했어요. ‘어떻게 하면 법륜스님을 볼 수 있습니까’ 하고 묻길래 제가 활천에 오라고 했습니다. (모두 박수)

그리고 어르신들 건강이 최고입니다. 돈도 필요 없어요. 아프면 돈이 억만금 있어도 뭐합니까.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남은 인생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스님은 어르신들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수고 많다.”

어르신 잔치에 스님의 어릴 적 친구 어머니도 오셨고, 초등학교 선배도 오셨습니다. 한 나무에 단풍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모두 물드는 것처럼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

봉사자들은 정성껏 음식을 차렸습니다. 어르신들은 같은 마을 사람끼리 모여서 앉기도 하고, 동창끼리 모여서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안 죽고 살아있네.” (웃음)

식사가 끝나갈 즈음, 풍물패가 건물 바깥에서부터 한 판 놀기 시작합니다. 어르신들이 강당으로 모여 흥겨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머뭇대던 어르신도 한 번 춤을 추기 시작하니 “예전에는 이렇게 춤을 췄어!”하면서 실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신나는 풍물에 이어 둥둥 장구소리가 흥을 돋웁니다. 현대 가요에 맞춰 장구를 치는 퓨전 장구단이었습니다.

“아이고, 귀여워!”

어르신들은 50대가 넘은 연주자들을 예뻐했습니다. 오늘은 공연팀이 많았습니다. 모두 무료로 공연을 해주었습니다. 하모니카, 오카리나 연주도 있었습니다. 모두 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옛 가요였습니다. 어르신들은 세월을 잊은 듯 눈을 감고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어르신들이 한분씩 마이크를 잡고 노래자랑을 했습니다. 신청자가 많아서 1절씩만 불렀습니다. 가까이 살지만 이렇게 어울려 노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농사 걱정, 자식 걱정이 놓인 듯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는 모양 따라 고운 주름이 졌습니다.


스님은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내내 박수를 쳤습니다. 갈라지고 주름진 어르신의 손을 꼭 잡아드리기도 했습니다.


한바탕 신나게 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선물로 커피 한 박스씩 쥐어드렸습니다. 집 앞까지 자원봉사자들이 한 분, 한 분 차에 태워 모셔 드린 후 오늘 잔치는 끝났습니다.

“아이고, 해마다 너무 고마워.”
“1년 뒤에 또 봅시더.”


어르신들을 모두 보내드리고 스님은 바로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 6시에 회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자들은 강당에 둘러앉아 봉사를 하며 느낀 점을 나눈 후 뒷정리를 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오늘 잔치를 위하여 3일 전부터 매일 수련원에 와서 청소도 하고,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오늘도 아침 8시부터 준비를 하고, 어르신들이 즐겁게 노는 동안에도 조를 나눠 그 많은 설거지를 다 했습니다.

내일 스님은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불국사를 안내하고 즉문즉설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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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꼰대가 되지 말아야한다. 잔소리? 할수 있다. 오지랖이 왜 있겠는가. 하지만 선을 넘지 말자. 자식들이 그만하라고 했으면 그만하자. 여기서 꼰대들은 싸가지없는 놈이라며 손지검을 할수 있다. 그러지말자. 못배운사람처럼 행동하면 자식들도 그렇게 취급당하며 산다. 남에게 못배운 놈 취급당하더라도 자식에게 만큼은 모범이 되자.

2021-07-18 15:35:04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할머님 할아버님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2-11 23:26:37

감로향

정토회 모든 봉사자님들 감사합니다_()_

2019-11-16 09: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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