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하루

2019.7.3. 해외 순회강연(10) 상하이
“아이의 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아시아, 태평양 순회 강연 중 마지막 강연이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필리핀 JTS 부대표 이규초 님에게 12월에 필리핀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고 홍콩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홍콩 강연에서 실무 총괄을 담당했던 강경록 님이 스님을 공항까지 태워주었습니다. 강경록 님은 어제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홍콩 강연에 중국 심천시에서 30명이나 와서 2명이나 질문을 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중국 신흥산업도시인 심천은 홍콩과 맞닿아있습니다. 그러나 심천과 홍콩을 드나들기 위해서는 매번 다른 나라에 출입국 수속을 하듯이 까다로운 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합니다.

상하이로 떠나기 전, 스님은 강경록 님에게 감사인사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어제 남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2시간 40분이 지나 상하이 푸동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상하이 열린 법회 담당자 한진님, 운전봉사를 할 최규승 님과 장현오 님이 마중 나왔습니다. 세 분은 2017년 상하이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2년 만에 다시 상하이를 찾은 스님을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상하이는 중국 제1의 경제중심지이고, 북경은 정치 중심지입니다. 2년 전에 비해 상하이는 훨씬 더 깔끔해지고 깨끗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시원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상하이에는 같은 고층 건물이 없다고 합니다. 시에서 같은 건축물은 짓지 못하도록 규제한다고 합니다.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건축 박물관 같았습니다.

상하이 내에는 와이탄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어서 공항에서 바로 와이탄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황푸 강을 따라 유럽풍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와이탄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와이탄을 걸어보면서 산책하였습니다. 그리고 '상하이 히어로 역사연구회'의 김용덕 님을 만나서 독립운동 유적지를 방문하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상하이에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제에 저항하며 나라의 독립을 외쳤던 '상하이 3대 의거'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1922년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 의해 일어난 황포탄 의거, 둘째, 1932년 훙커우 공원에서 일어난 윤봉길 의사 의거, 셋째, 1933년 음식점 '육삼정'에서 백정기 선생과 무정부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본 주중공사에 폭탄을 투척하려고 계획한 육삼정 의거입니다.

‘황포탄 의거’는 의열단원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 선생이 1922년 3월 28일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가는 중 상해에 도착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를 저격한 일을 말합니다. 스님은 첫 번째로 이 황포탄 의거 현장을 방문하여 둘러보았습니다.

다음으로 훙커우공원(현 류신 공원)으로 이동하여 공원 내에 위치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홍커우 공원에 들어서니 공원의 역사를 설명해 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이곳에도 윤봉길 의사 의거가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윤봉길 의사의 사진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묵념으로 윤봉길 의사를 기렸습니다.

임시정부가 있던 곳은 프랑스의 조계지였고, 훙커우공원 인근은 일본의 조계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일본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 행사와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제국의 주요 인사들을 죽거나 다치게 했습니다. 매헌 기념관 밖에서부터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역사 등이 잘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기념관에 들어가서 스님은 윤봉길 의사뿐만 아니라 먼저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들을 위하여 해탈주를 독송했습니다. 천천히 설명을 들으면서 기념관을 둘러보고, 전시실 이층에 있는 영상실도 둘러보았습니다. 영상으로도 윤봉길 의사의 생애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을 다 둘러보고 스님은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윤봉길 의사와 용성조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독립운동은 대부분 비밀리에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용성조사님은 몰래 지원한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더 많아요. 상하이에 계시는 김용덕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 주세요.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더 많고, 알려진 분들 중에도 그 공로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분이 많아요. 이렇게 많은 분들의 희생 위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기념관에서 윤봉길 의사의 생애에 대해 설명을 듣고 영상을 보는 동안 내내 울컥하는 마음이었는데 마지막 스님의 말이 울컥한 마음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홍커우 공원은 아주 넓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일왕 생일 축하 행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축구장 옆으로 단상이 저기쯤에 설치되지 않았냐 싶다는 김용덕 님의 설명을 들으니 내가 바로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3.1 독립운동 100주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 더욱 뜻깊은 방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강연이 열리는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종교행사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불법으로 규정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행사에 제약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족 교포들도 오고 싶어 했지만 그분들은 중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교민들만 참가하도록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백 명 이상 모이면 불법모임으로 조사를 받을 수 있어 이백 명만 신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 자원봉사자들이 신나게 강연 준비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스님은 대기실에서 잠시 업무를 보다가 봉사자들이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6시 30분부터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지인에게 알음알음으로 소개했는데도 이백 여명이 모였습니다.

연단 앞으로 스님이 나오자 청중은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의 특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광고도 안 냈다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모두 웃음)

즉문즉설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경험한 나의 얘기를 갖고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책에 있거나 경전에 있거나 전해 내려오는 얘기, 남의 얘기가 아니고, 내 얘기를 갖고 대화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즉문즉설은 사실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검증 가능한 얘기를 합니다. 죽으면 천당 간다는 얘기는 검증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마음이 독하면 죽어서 뱀이 된다, 이런 얘기는 검증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두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궁합이 안 맞아서 그렇다, 검증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그런 얘기 말고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얘기를 합니다.

첫째, 나의 이야기, 둘째,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이야기, 이 두 가지를 기본으로 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즉문즉설입니다.

어떤 얘기든 다 해볼 수 있습니다. 1만 년 전 신석기시대 때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잖아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그동안 인류가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확인해 온 게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다 간접 경험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수용하면 안 된다고 배척하면 자기만 손해예요. 그런 열린 자세로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개인의 고민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개인 상담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부부 관계가 안 좋은 것은 대화의 소재일 뿐이지 부부 관계를 상담해 주는 것이 아니에요. 그 소재를 갖고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그래서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하는 것이 즉문즉설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옆에서 듣는 사람들도 ‘아이고, 저 부부는 싸우나 봐. 이혼하려고 하나 봐’ 이런 얘기를 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두 부부가 이혼을 하든지, 같이 살든지, 싸우든지, 그런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 웃음)

그것을 소재로 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화를 하려는 게 목적입니다. 우리가 대화한 내용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공개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즉문즉설은 공익을 위한 대화이지 사익을 위한 대화가 아닙니다.”

오늘은 8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이가 발달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가 발달 장애를 갖고 있어 고민입니다. 아이의 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발달 장애는 아닐 것이다’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고, 한편으로는 ‘받아들여라’, ‘내려놓아라’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것도, 내려놓는 것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천당을 갔다가 하루는 지옥을 갔다가 왔다 갔다 합니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6살입니다.”

“어떤 장애예요?”

“발달 장애입니다.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니 ‘경계’에 있다고 합니다. 아직 더 지켜봐야 된다고 하는데, 저는 하루하루가 얼음길을 걷는 느낌입니다.”

“자기가 얼음길을 걷는다는 것은, 아이의 발달 장애가 완전한 장애로 확립될까 봐 겁이 난다는 것 아니에요?”

“전문가가 아직은 아니라고 했는데, 정말로 장애로 판명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제가 아이와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못할 수 있고요.”

“질문자는 아이가 장애를 가졌는데, 지금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있나요?”

“아니요…”

“부모라면 장애를 가진 아이가 어떻게 하면 이런 장애가 있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궁리해야지요. 장애가 없는 정상적인 아이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무엇을 같이 할 것인지 계획했는데, 그게 지금 안 맞아서 고민하고 있다면, 질문자는 부모 자격이 없습니다.”

“그건 아니고요.”

“고민이 될 게 뭐가 있어요? 지금 발달 장애의 경계 지점에 있다면, 완전히 장애라고 판정된 것보다는 좋은 조건이에요, 안 좋은 조건이에요?”

“좋은 조건입니다.”

“그런데 왜 고민이에요? 완전히 장애라고 판정이 나도 그 아이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당연히 있습니다.”

“장애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아이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이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까?’

검사를 했더니 장애가 덜 있거나 장애가 없다면 잘 된 일이잖아요. 그래서 장애가 있다는 전제를 하고 계획을 세우면 돼요. 그러면 아무런 뒤탈이 없어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장애가 있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장애가 있는 아이라 하더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건 인정해요?”

“네.”

“아이가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장애가 있더라도 우리 아이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런 마음을 갖고 계획을 세우면 됩니다.”

“말씀하신 것이 맞습니다. 많은 얘기를 들었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시시각각 바뀌는 것은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아이에게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미련을 못 버려서 생기는 거예요.”

“부모이기 때문에 미련을 못 버리는 것 같아요.”

“부모이기 때문에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이 아니에요. 부모이기 때문에 오히려 미련을 버려야죠.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미련을 못 버리는 겁니다.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장애를 갖게 되면 나는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하게 되는 거예요. 진짜 부모라면 아이가 얼굴이 검든, 아이가 눈이 안 보이든, 아이가 장애가 있든, 그런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어떤 장애를 갖더라도 나는 너를 보살핀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질문자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이에요.”

“어떻게 하면 부모의 마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냥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됩니다. 아이의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사랑하면 돼요. 만약 아이가 눈이 안 보인다면, 부모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점자를 배울 수 있게 도와주면 됩니다. 귀가 안 들리는 아이라면, 수화를 배우게 도와주면 됩니다. 다리를 못 쓰는 아이라면,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됩니다. ‘아이의 지금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보완해 줄 수 있을까?’ 이런 관점을 가지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말씀은 알겠는데, 사람인지라…”

“사람인지라가 아니지요. 그렇게 하기가 귀찮은 거죠.”

“귀찮은 건 아니에요.”

“귀찮은 거예요. 솔직하게 얘기해 봐요. ‘애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거기다 애가 눈까지 안 보이고 귀까지 안 들리는데 어떡하나’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장애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한테 창피하게 생각하고, 일 많은 거 생각하고, 돈 들 거 생각하고, 나 못 놀 거 생각하고. 전부 자기 입장 생각하니까 힘들지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면 힘들게 뭐가 있어요. 나처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직설적으로 이렇게 확 까뒤집어서 얘기해주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건 진짜 최고이신 거 같아요. 다른 분들한테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를 하시네요”(웃음).

“다 자기 욕심 때문에 힘든 거예요. 아이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요. 내가 돌보는 것이 아이에게 더 나을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아이를 돌봐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아이에게 정을 끊기 어려워도, 전문가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이에게 더 낫다면 가슴이 에이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를 전문가에게 보내야 합니다. 이게 부모예요. 부모란 ‘내가 어떻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돼요. ‘아이에게 어떤 게 좋으냐’ 이거만 딱 생각해야 해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은 부분이 있다면 아이를 전문가에게 맡겨야 되고, 의사에게 맡기는 게 좋은 부분이 있다면 의사에게 맡겨야 하고요. 나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내가 아무리 힘들고 다른 모든 욕망을 다 포기해야 하더라도 아이를 돌봐야 해요.

아이를 중심에 놓고 사물을 봐야 부모라는 거예요. 질문자는 나를 중심에 놓고 보고 있어요. 질문자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이런 계획을 세웠는데 저걸 하려면 이게 힘들고, 이걸 하려면 저게 힘들다.’라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애 생각했다, 내 생각했다, 애 생각했다, 내 생각했다가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천당 갔다 지옥 갔다 하는 거지요.

‘나는 딱 아이만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가슴 아픈 일도 한다.’

이렇게 딱 정해버리면 아무 문제없어요. 아이가 건강하면 건강한대로, 장애가 있으면 장애가 있는 대로 아이의 상태에 따라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관점을 이렇게 잡으면 좋지요. 그러면 아무 걱정거리가 없어요.

자기 계획이 있으니까 걱정거리가 생기는 거예요. 아이의 눈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걸 인정을 해야 되는데, 내 욕망으로 인정을 못합니다. 눈이 안 보이는데 눈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애를 때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 어떻게 하겠어요. 치료를 해도 안 되니까 나도 지치고 아이에게도 열등감이 생기잖아요. 그럴 때는 전문가에게 딱 맡겨서 의사가 ‘이거는 안 된다’ 하면 안 되는 줄 받아들여야 돼요. 그런데 부모는 욕망 때문에 전문가 말도 안 듣고 이 병원 저 병원 자꾸 끌고 다니잖아요. 그럴수록 아이는 열등의식이 생긴다는 거예요. 아이가 눈이 안 보여서 불평을 해도 ‘괜찮아. 눈이 안 보이는 건 좀 불편한 건 맞아. 그렇다고 네가 부족한 건 아니야’ 이렇게 격려를 해줘야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호주에 두 팔도 없고 다리도 없고 몸만 있는 닉 부이치치라는 사람을 압니까?”

“네.”

“그 사람 얼마나 밝습니까. 세계에 웃음을 선사하고 다니잖아요. 대부분의 부모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으면 ‘아이고 하느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고 하거나,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애를 낳았나’라고 합니다. 장애를 벌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게 인권 침해예요. 장애는 그냥 장애일 뿐이에요. 즉 불편할 뿐이에요.

그런데 닉 부이치치의 부모는 이렇게 받아들였죠. ‘아, 이 아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다. 만약에 이 아이가 다른 집에 태어났으면 사랑받지 못했을 거 아니냐’ 이렇게 받아들인 거예요. 정말 이 세상에서 보살필 수 없는 그런 사람을 보살피는 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 아닙니까. 마태복음 25장 31절에 하신 말씀을 요약해보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그 앞에 모으고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며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다 지옥에 갈 거다.’
‘주여, 왜 우리가 지옥에 가야 합니까?’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 마실 물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히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 돌보지 않았다.’
‘주여, 우리가 주가 언제 그런 적이 있는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다.’

교회에 얼마나 다녔냐, 헌금을 얼마나 했느냐, 기도를 얼마나 했느냐가 천국에 가는 기준이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가 천국에 가는 기준이에요. 성경에 명확하게 나와있어요.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 성경도 안 읽어 보잖아요. 예수님 말씀도 안 듣고 자기 복만 빈단 말이에요.

그런 가르침에 따라 닉 부이치치의 부모는 아이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여서 아이를 기쁜 마음으로 키운 거예요. 부모가 기쁘니까 아이가 기쁠 수밖에 없잖아요. 부모가 ‘아이고, 이걸 어쩌지’ 이러니까 아이가 심리적으로 열등의식을 갖지요. 모든 자녀들의 마음의 상처는 부모로부터, 특히 엄마로부터 오는 거예요. 집이 가난하다고 엄마가 가난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가지면 애들은 가난에 열등의식을 갖고, 남편이 없다고 엄마가 늘 기죽어 있으면 애들은 아빠 없는 것에 열등의식을 갖는 거예요. 인간이란 게 별거 아니에요. 그냥 따라 배우는 거예요. 엄마가 한국말하면 한국말하고, 엄마가 김치 먹으면 애도 김치 먹고, 애를 미국에 갖다 놓으면 영어 배우고 버터 먹고 이래요. 아무 차이가 없어요. 원숭이 무리에 넣어 놓으면 원숭 이하고 똑같이 하는 거예요. 인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특별히 한국인이라고 할 아무 특징이 없어요. 한국 프로그램을 깔면 그냥 한국인이에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일본에서 키우면, 일본 프로그램을 깔려서 그냥 일본 사람이 되는 거예요. 만주 지역에 다 우리 민족이 살았었잖아요. 고구려, 발해가 멸망한 뒤에 여진족으로 프로그램을 깔아버리니까 여진족이 되고, 몽골족으로 깔아버리니까 몽골족이 되고, 중국인으로 깔면 중국 사람이 되고 그렇습니다.

질문자가 벌써 아이에 대해 번민을 하고 열등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는 필연적으로 열등의식을 갖습니다. 6살까지 벌써 그렇게 방황했다면 아이는 벌써 마음 밑바닥에 자기 존재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고 있어요.

오늘부터 생각을 확 바꿔서 아이를 늘 긍정적으로 봐야 해요. ‘장애가 있어도 좋다’ 이렇게 딱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상태가 조금 더 좋아지면 ‘부처님의 가피다’, ‘하느님의 보살핌이다’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렇게 하면 신앙심도 깊어져요. 비장애인이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계속했는데도 장애 판정이 나면 ‘기도해 봐야 소용없다. 신이 있나 없나’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면 신앙심도 허물어집니다. 질문자의 아이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 있다는 말은 장애가 약한 상태라는 거잖아요. 그러면 좋아해야 하는데, 정상인에 기준을 두니까 우려가 된다는 거예요. 질문자가 기준을 비장애인으로 두니까 마음이 힘든 것이지 아이의 장애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생각이 확 바뀌어야 돼요. 나중에 아이가 ‘내가 우리 부모님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의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무슨 장신구처럼 밖에 가서 폼 잡는데 쓰려고 해요. ‘네 아들은 공부도 잘하네. 착하네 어쩌네’ 하는 소리 듣고 싶은 마음이 깔려있기 때문에 이런 번민이 생기는 거예요. 부모는 아이가 클 때까지 필요한 존재예요. 부모 자랑하라고 자식이 있는 게 아니고요. 아이가 자랄 때까지 도와주라고 있는 거예요. 스무 살 딱 넘으면 손을 떼줘야 돼요. 그 이상 붙들고 있으니까 과잉보호를 해서 지금 청년들이 문제잖아요.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아내가 자녀 교육을 위해 아이에게 체벌을 합니다. 아내의 아이에 대한 체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고등학교 남학생입니다. 한국에 남녀가 서로 혐오하는 현상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런 현상이 멈출 수 있을까요?
  • 평소에 화가 많습니다.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나요?
  • 매사에 너무 진지한 제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한반도의 통일을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이고, 통일을 위해 우리 국민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 천주교 집안에서 모태 천주교 신자로 살았어요. 불교를 접하고 신앙에 혼란이 왔어요. 저 스스로 천 불교인이라고 하는데 제 신앙의 정체성의 혼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 8살, 4살 두 아들을 키우는 아이 엄마인데, 애들에게 자꾸 화를 내요.

첫 번째 질문자는 아이를 때리는 아내 때문에 걱정인 남편이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본인이 화를 잘 내서 고민인 미혼 여성이었습니다. 스님이 두 분을 대비하면서 대화를 하니 이해도 잘 되고 웃음이 넘쳐 났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도 4,8살 두 아이를 둔 엄마인데 아이들에게 화를 잘 내서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세 분은 모두 화가 고민이었습니다. 화내는 사람을 어떤 관점으로 봐야할지, 내가 화가 많은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화가 많은 미혼 여성은 어떻게 화를 다스려야할지 번갈아 볼 수 있어 더 좋았습니다. 남녀 혐오 현상에 대해 물었던 고등학생은 질문이 끝나자마자 청중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도 아주 좋은 질문을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행복이 가장 큰 힘이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 진리입니다. 넘어졌을 때 넘어졌다고 아는 거예요. 넘어졌는데 서 있는 줄 알면 착각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면 번뇌가 생길 일이 없습니다. 무지로 인해서 번뇌가 발생합니다. 죄도 아니고 벌도 아니에요. 내가 사실 파악을 잘못해서 오류가 생긴 거예요. 기계가 고장 나면 고치면 되고, 육신에 고장이 나면 치료하면 되듯이, 괴로움이라는 것은 마음작용이 약간 고장 나는 거예요. 그것을 약간 시정하면 여러분의 번뇌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어요. 괴로움이 생기더라도 ‘어, 어디가 고장 났지?’하고 살펴서 시정하고 다시 밝은 얼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거나 중국에 있거나, 사는 곳과 관계가 없고, 결혼하고 안 하고 이런 것과도 관계가 없어요.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자 살아서 괴롭고 결혼한 사람은 결혼해서 괴롭다고 해요. 아이가 없는 사람은 아이가 없어서 괴롭고,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가 있어서 괴롭다고 해요. 젊은 사람은 젊어서 힘들다고 하고 늙은 사람은 늙어서 힘들다 해요.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모두 웃음) 한국에 살면 한국이 좋고, 중국에 살면 중국이 좋아야 해요. 혼자 있을 땐 혼자가 좋고 둘이 있을 땐 둘이 있어서 좋아야 해요. 이런 자세를 가져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죠. 그러나 원래는 어려움이랄 게 없습니다. 문제를 쉽게 풀려고 했는데 안 풀리면 어렵다고 하는 거예요. 안 풀리면 연구해서 풀면 돼요.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행복하게 사는 것. 이런 경우든 저런 경우든 밝게 사는 것. 이것이 미래에 가장 큰 힘입니다. 감사합니다.”

예정했던 두 시간을 훌쩍 넘었는데도 스님은 열정적으로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청중은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뿍 담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에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섰습니다. 책을 종류별로 사고 사인을 받아가며 즐거워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9살 꼬마도 스님에게 사인을 받아가며 기뻐했습니다.
오늘 대화에 소개된 아이의 아빠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스님의 유튜브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스님과 대화를 처음 해보았습니다. 아주 신선했고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뒷정리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 많았다고 격려한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스님은 밀린 업무를 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12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해외 일정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깊어갑니다.

해외에는 한국보다 더 많은 분들이 유튜브로 스님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강연에 참가한 청중은 한결 젊어진 것 같습니다. 강연장의 분위기도 2년 전에 비해 훨씬 더 집중되고 밝고 유쾌했습니다. 고민이 있을 때 물어볼 어른이 계시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즉문즉설에서 많은 분들이 행복한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상하이에는 비가 내려 먼지와 매연을 씻어버렸는지 공기가 훨씬 깨끗해진 듯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의 마음에 묻어있던 때와 먼지도 말끔히 씻겨 내려가 깨끗하고 행복한 마음이 된 것 같습니다. 자원봉사자 한 분 한 분의 정성스러운 봉사도 감동이었습니다. 이런 귀한 마음들이 모여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스님은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스님은 도착하자마자 동국대학교에서 미래문명에 대한 주제로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 꽤 오랫동안 해외를 방문하고 나서도 하루의 휴식도 없이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가 이어집니다. 스님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놀고 있기 때문에 따로 휴식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과하게 노는 스님 따라 같이 놀려고 하니 우리가 힘드네요 (하하)’라고 멋쩍게 웃어봅니다.

사진에 초점을 맞추면 글이, 글에 초점을 맞추면 사진이 부족하였습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잠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도 힘들기보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한국을 넘어서서 세계 곳곳에서 행복한 웃음을 전파하고 있는 정토행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스님으로부터 그리고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전체댓글 35

0/200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8-04 17:13:38

하심

과하게 노는 스님 따라 같이 놀려고 하니 우리가 힘듭니다.는 글을 읽자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네요‥수행자라서 그런건지‥자원봉사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진과 글이 좋아요. 스님의하루를 반짝반짝 빛내주네요^^날마다 넘어지면 날마다 일으켜주는 스님의 하루제작팀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_()_

2019-07-08 09:40:34

김미화

사실을 사실대로 볼수있고 받아들이는 연습과 내가 할수 있는 일 한가지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수행하겠습니다. 법륜스님과 봉사자님들께 감사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19-07-07 07:05:43

전체 댓글 보기

법륜스님의 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