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2.19 송년법회(오후)
“지식을 안다고 괴로움이 없어지지는 않아요.”

오전에 있었던 주간반 송년법회에 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송년법회가 열렸습니다.

저녁에도 스님이 직접 법문을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100여 명의 저녁반 대중들이 서울 정토회관에 모여들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대중들은 ‘저녁부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라며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동안 스님이 직접 하는 강의는 항상 주간에만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아마 스님도 저녁반 대중들의 간절한 바램을 알고 나서 흔쾌히 오늘 법회를 해주신 것 같습니다.

스님은 한 해를 돌아보며 어떤 순간에 우리가 가장 기뻤는지 상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사회적으로 제일 만족스러웠던 때는 언제입니까? 4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라고 볼 수 있겠지요. 2월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이 대화를 하고, 4월에 남북 정상 회담이 열리고, 6월에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서 상반기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장 나빴던 것은 나날이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해를 두고도 상반기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주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가 하반기에는 아주 나쁜 사람처럼 보였다가 했습니다. 이런 한 해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부처님의 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 부처님께서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고 좋은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구나! 좋고 나쁨은 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구나!’

그런데 이런 일을 직접 경험해보고도 이렇게 못 깨닫는 사람이 많아요. 만약 이 과정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만약 경험해보지도 않고 미리 깨달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불법을 만나서 이것을 미리 깨달으면 진짜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거예요.

물론 불법을 늦게 만나서 늦게 깨닫는 것도 괜찮아요. 그래도 못 깨닫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숨 넘어가기 전에만 깨달으면 그래도 한 번 웃어보고 죽는 거니까요.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숨 넘어갈 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집착을 하니까 괴로운 상태로 죽게 됩니다. 살 때도 늘 아둥바둥 했는데, 죽을 때까지도 안 죽으려고 아둥바둥 하다가 죽는 거예요. 내 손에 안 들어오는 것을 가지려고 아둥바둥 하고, 내 손에 있는 것은 못 나가게 아둥바둥 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안 죽으려고 아둥바둥 하니까 인생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죽음도 삶의 한 부분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안 죽으려 하니까 죽음이 두려운 거예요. 추운 겨울을 안 받아들이려고 하면 겨울이 두렵고, 더운 여름을 안 받아들이려고 하면 여름이 두렵지 않습니까. 여름을 받아들이고 겨울을 받아들이듯이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아가면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생과 사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안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났다는 뜻이에요. 불법을 지식으로 공부하면 해탈과 열반을 맛볼 수가 없어요. 기쁨은 마음의 긍정적 작용이에요. 괴로움은 마음의 부정적 작용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마음이 병들어서 생기는 작용이에요. 마음의 부정적 작용을 제거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마음의 부정적 작용이 제거됨으로써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해탈’입니다.

마음의 작용에 관심을 둬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수행을 자꾸 지식으로 접근하려고 해요. 즐겁고 괴롭고 기쁘고 슬프고 하는 것은 생각으로 일어나는 작용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입니다.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기고, 집착을 놓으면 괴로움이 사라지는 겁니다. 촛불을 켜면 밝아지고 촛불을 끄면 어두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불을 밝혀야 어두운 동굴이 밝아지지, 불을 밝히면 동굴이 밝아진다고 하는 이론을 아무리 알아도 동굴은 밝아지지 않습니다. 동굴이 밝아지려면 불을 켜야 합니다.

마음을 이렇게 가지면 된다는 지식을 아무리 알고 있어도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지식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에요. 불을 밝히면 동굴이 밝아진다고 아는 지식은 불을 밝힐 수 있는 기초가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을 아는 것하고 불이 밝히는 것 하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불을 밝히면 동굴이 밝아진다는 지식만 알고 있는 것이면서 마치 동굴이 밝아진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팔만대장경을 다 읽고, 온갖 수행에 대한 이론을 다 알아도, 그것은 그냥 지식만 쌓는 것일 뿐이지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수행 정진을 해야 해탈할 수 있어요. 교리를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부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마치 그림의 떡과 같은 것입니다. 직접 먹어봐야 내 몸에 좋고 나쁨이 있는 것이지 그림의 음식이 아무리 좋다고 해서 내 몸에 좋은 것은 아니에요. 음식을 선택할 때 그런 지식을 알면 도움이 되지만, 핵심적인 것은 음식을 직접 먹어야 하듯이, 여러분 스스로 직접 경험하고 정진을 해야 됩니다.

또 여러분들에게 자꾸 수행을 강조한다고 해서 자칫 잘못하면 지식은 필요 없다고 이해하시면 안 돼요. 지식 자체는 깨달음과 무관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식이 기초가 되면 깨달음의 길로 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불교는 믿음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도 아니고, 이해를 중심으로 하는 철학도 아니고, 그 둘을 뛰어넘습니다. 굳이 따진다면 어떤 철학보다도 위대한 철학이고, 어떤 종교보다도 위대한 종교라고 할 수 있지만, 수행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수행의 가장 핵심은 ‘알아차림’입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마음이 들뜨거나 마음이 가라앉거나 하는 겁니다. 마음이 들뜰 때와 가라앉을 때를 늘 알아차려서 진폭을 적게 가지는 것이 수행이에요. 바다에 거센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어나는 것이 우리들 중생의 삶이라면,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는 것이 수행자의 삶입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이 해탈의 길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의 풍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해탈의 길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다 내 마음대로 되기를 원하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늘 거친 풍랑에 휩쓸려서 위태위태하거나 물에 빠지는 거예요. 어떤 풍랑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라고 보고 내 갈 길을 가는 겁니다. 주위의 환경이 좋으면 물론 더 좋겠지만, 너무 환경을 탓하고 살면 늘 환경에 휩쓸리게 돼요. 이것을 불교 용어로 ‘경계에 끄달린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여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지만, 필요하다면 환경을 개선하라는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도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못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주인이 못 되고 늘 남에게, 하느님에게, 부처님에게 ‘이거 해 달라’, ‘저거 해달라’ 구걸하는 인생을 사는 겁니다. 주어지는 환경에 능히 적응하려면 자기를 고집하지 않아야 해요. 주어진 환경을 나에게 맞게 변화시키려면 욕심을 내서 한꺼번에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준에서 지혜롭게 대응해서 변화를 시켜 나가야 해요. 이런 자세를 우리가 가진다면 여러분들의 삶이 훨씬 가볍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행은 지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말씀과 환경에 적응하기도 하고 변화시켜 나가기도 하는 것이 수행이라는 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대중들도 큰 박수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법문을 마쳤습니다.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난리입니다. 뭐 그렇게 힘든 일이 있어요? 물론 저도 제가 원하는 것 중에 10%도 안 이루어집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한테 온갖 부탁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제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나 할 수도 없는 일만 들어옵니다. 또 제가 뭘 해보려고 하면 되는 것이 거의 없어요. 저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스님은 아무 어려운 일도 없고 원하는 것은 모두 착착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신통력이 없다고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되는 일이 별로 없어요. (모두 웃음)

지난주에 대담을 하는데 누가 물어요. ‘스님은 진짜 건강하십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건강을 유지하시는 비결이 뭔가요?’ 라고요. 그래서 제가 ‘건강의 비결은 골골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두 웃음) 약도 먹고 병원에도 가고 골골하면서 다녀요. 차이점은 안 아픈 것이 아니라 아파도 할 일은 한다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너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몸은 안 아파야 되고, 얼굴은 주름살이 안 생겨야 되고, 흰머리는 안 나야 되고, 돈은 많아야 되고, 애를 낳으면 다 예뻐야 되고, 학교 보내면 다 공부 잘해야 되고, 가게를 열면 다 대박이 나야 되고, 참 굉장한 사람들이에요. (모두 웃음) 어떻게 인생이 그렇게 돼요. 오늘 밥 안 굶은 것만 해도 다행이고, 이렇게 추운데 밖에서 벌벌 떨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그렇게 어려울 것이 없잖아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집착하고 살아 봤자, 결국 저나 여러분들이나 일 년은 똑같이 갑니다. 차이가 있다면, 여러분들은 괴롭게 일 년을 보내고, 저는 덜 괴롭게 일 년을 보내는 겁니다. 욕망과 집착만 조금 내려놓으면 살 만한 인생입니다.”

스님은 지난 한 해 동안 대중들이 보시와 봉사를 해주어서 정토회가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도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지난 한 해 동안 법당 곳곳에서 묵묵히 봉사활동을 해 준 대중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은 선물이 전달되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송년을 맞이하여 흥겨운 율동을 준비해와 함께 어우러지기도 했습니다.

내일 스님은 마포구 아르떼홀에서 열리는, 35세부터 45세 청년들이 참석하는 '혼자여도 괜찮아' 3545 콘서트에 참석해 노희경 작가님과 함께 청년들과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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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정말~굉장합니다 모든것이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고
안되면 화내고 힘들어하고^^ 오늘 아침 엄마와 맛있는 떡국함께 먹은것도 참,감사한 일입니다 꾸벅!

2019-01-01 10:05:54

안선영

감사합니다~욕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가볍게 잘 살겠습니다~~~

2018-12-26 19:29:13

배선

수행이 불교의 핵심이다~
감사합니다^^

2018-12-25 15: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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