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5.15 스승의날, 수원 및 인천강연

 

  

대구에서 새벽 2시경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법륜스님께서는 잠시 눈만 붙이시고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서울공동체 상주대중들과 함께 기도하고 발우공양에 참여하였습니다. 마침 백일출가 행자님들이 서울 NGO 탐방으로 문경에서 올라와 있어 함께 했습니다.

발우공양 후 대중공사시간 스님께서 백일출가 행자님들에게 수행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서울에서 공부할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백일출가 수행자들이 서울에 실습 온 건가요? 탐방 온 건가요?(탐방요!) 여기에 뭐 볼 게 있다고 탐방왔나요? (웃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범부중생, 즉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현명한 사람입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더러운 것에 가까이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지혜로운 사람, 즉 성인입니다. 더러운 가운데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더러움을 오히려 닦아내는, 더러움을 없애는 사람, 즉 붓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 때는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 범부중생이었습니다. 게으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게을러지고, 사치하거나 교만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사치하거나 교만해지고, 쾌락을 즐기고 과소비 하고 욕망에 껄떡거리면 범부중생입니다.  

 

여러분들은 소비주의 사회에서 더러움에 물드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문경공동체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 생활할 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불하고, 기도하고, 청소하고, 부지런한 사람과 같이 있어서 부지런해지고, 계율을 청정히 지키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청정해지고 수행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더러움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좋은 사람과 같이 있기 때문에 좋음에 물듭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세속을 떠난다는 게 하나 있고, 하나는 좋은 도반들, 즉 대중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세속을 떠나 대중과 함께 있으면서 완전히 청정해졌습니까? 그것을 알려면 소비주의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테스트를 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세속 사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과 있으면서도 나는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이 자더라도 나는 기도하고, 상대가 욕설해도 나는 부드럽게 말하고, 상대가 거짓말해도 나는 진실을 말하고, 모두 술 먹고, 마약하고, 담배를 피워도, 나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마약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속에 있어도 물들지 않는 진흙속의 연꽃 같은 사람을 성인 또는 보디사트바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범부중생으로 있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해서 문경공동체로 들어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좋음에 물들기 위해 대중과 같이 삽니다. 그러다 다시 지금 NGO탐방을 위해서 서울 저자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회관에서 한 발만 나가면 술집과 슈퍼가 있고, 저녁에는 술 먹고 와글와글 소리지르고, 고기 먹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들 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냄새가 나는 속에 있으면서도, 내가 그것에 물들지 않는 사람인지 한번 실험해보세요. 수행자는 서울 와서 살아보고 세속에 물이 들면, 또 다시 문경에 가서 정진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들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세상으로 나와야 합니다.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세상에 크게 물들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사치하는 사람이 우리와 살다가 사치를 덜하게 되고, 부자인데도 검소하게 살게 되고, 교만한 사람이 겸손해지고, 우리로 인해 주위가 점점 정화되어야 합니다. 바깥이 우리 속으로 점점 들어와 흰 것이 검어지는 것이 아니라, 흰 영역이 넒어져서 주위가 조금씩 맑아지는, 이게 우리가 세운 원, 정토 건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회용품 쓰고, 비닐 쓰고, 간식 먹는 이런 혼탁한 속에 있더라도, 여러분들이 거기에 물들지 않을 때, 진정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따라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물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선 물들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서울 와서 살아도 주위가 어떻든, 남이 어떻든 상관없이 정해진 내 수행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라고 애정 어리면서도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오늘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조촐한 행사를 가졌습니다. 회관에 살고 있는 청년붓다 49일 입재한 7명 행자들의 재미있고 유쾌한 꽁트와 꽃다발 증정이 있었고, 이어서 다함께 법륜스님께 감사의 삼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손을 잡고 이렇게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스승님이 있다는 것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스승의 은혜’노래를 불렀습니다.  

 

  

스승의 날 기념행사 후 스님께서 공동체 대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스승은 고타마 붓다,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십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나이가 많고 여러분보다 불문에 들어온 시간이 앞서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스승 노릇을 하고 있지만 부족함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언젠가 스님께서 ‘누구를 추종하면 안 된다, 법륜스님도 추종하면 안 되고, 우리는 오로지 부처님께서 살아오신 삶을 따라 부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면서 다시 한번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오전 9시 25분 희망강연이 있는 수원시청으로 출발해 10시경에 강연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님은 부서별 국장님들과 함께 잠깐 시간내어 스님께 인사하러 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시장님께 행정의 어려움은 없는지, 2번째 임기를 시작했는데 1기와는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시장님은 오늘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스님께 꽃다발을 드리고, 스님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렸습니다. 스님께서도 시장님께 사인한‘지금여기 깨어있기’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스님께서 자리를 옮겨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수원시방송과 짧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그동안 많은 즉문즉설하시면서 어떠하셨는지 등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어 강연장에 도착하니 좌석이 모두 차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 있다, 문이 열리고 입장이 시작되자 곧 1,2층 좌석을 모두 메우고 로비까지 가득해서 총 1,300여 명이 함께 강연에 참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강연장에서는 일사분란하게 자원봉사자들이 접수와 안내를 진행해 1,300여명임에도 아주 원활하게 강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자 관중속의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입장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서두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지라고 당부하며, 각자 갖고 있는 삶의 고뇌를 꺼내 놓고 여러 각도에서 비추어 보면서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총 10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는데, 딸과 남편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화와 짜증이 올라온다는 분, 자살의 형태에 따른 죄의 크기와 남녀간의 불륜은 동물적 본능인지, 인연에 의한 것인지를 묻는 분, 난치성 아이로 인해 불안과 걱정이 많다는 분, 잠들기 전 고립된 느낌으로 초조해 하는 분, 어릴적 어머니의 학대와 폭력이 용서가 안돼 가슴이 답답한 분, 학업을 중단하고 스님 법문만 듣는 딸에 대해 질문한 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본인과 비교해서 무시하거나 열등감을 느껴 마음이 불편한 분, 안 좋은 뉴스를 접하더라도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물으신 분, 결혼 6년차인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감정기복이 심한 분, 버럭하는 성질과 주변에서 위축됐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20대 취업준비생 이렇게 10명의 고민이었습니다. 

이 중 남녀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자살에 관해 물은 질문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불륜은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것인지, 인연에 의한 것인지, 인연이라면 어떻게 끊을 수 있는 지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의가 더 강한지, 인연이 더 강한 지도 궁금합니다.” 

“윤리나 도덕이라는 가치관은 종교마다, 나라마다 또 시대마다 달라요. 신라시대엔 완전히 연애가 자유로워 촌수를 헤아릴 수 없었어요. 그 때는 순수혈통을 중요시 해 왕의 딸이 삼촌과 결혼하곤 했어요. 아버지도 왕자고 엄마도 공주일 때 내가 순수혈통(성골)이 되는 거였기 때문이죠. 반면 조선시대는 성만 같아도 결혼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 천주교가 처음 조선에 유입되었을 때 그들의 종교문화로 제사를 안 지낸건데, 유교에선 조상제사도 안지내는 인간은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여겨 천주교인들을 죽여도 될 사람들이라 생각했죠. 그러니 결혼관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가치관이 충돌돼서 문제가 일어날 때는 문화가 서로 달라도 수용할 만한 비교적 공통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이때 기준은 자연 생태계입니다. 자연생태계에선 어미가 종족보호 본능으로 새끼가 성장할때까지 보호하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더 이상 돌보지 않고 새끼도 크면 늙은 어미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두 남녀가 결혼한 것은 성인끼리의 약속입니다. 약속이기 때문에 결혼을 파기 할 수도 있는 거지요. 선은 아니지만 악 또한 아니란거예요. 결혼할 때 상대와 너 외에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했어요. 내가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서 그 약속을 깼다면 이혼 사유가 되요. 그런데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는게 죄악은 아니에요. 성인이 자기가 선택한거에요. 하지만 약속을 파기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해야 됩니다. 간통죄가 폐지된 것은 형사상의 처벌죄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간통으로 있은 손해는 민사상으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불륜이란 게 인연인가요? 전생 때문인가요?” 

“자기가 좋아서 만나놓고 전생을 왜 따져요. 전생을 따지는 건 무책임한거예요. 이 사람 때려놓고‘전생에 내가 맞아서 지금 너를 때리는 거야’‘사주에 이 시간에 내가 너를 때리게 되어있어’이게 다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 네 탓이다’하는 책임 회피에 불과합니다.”내가 인연을 지었으니 과보를 받아야 해요.

“그럼 현생에 일어나는 모든 행동은 자기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일인가요?”

“의지는 의식에 불과하고 의식 아래 무의식이 있습니다. 안해야 되는데 자꾸 하고 싶다, 이것을 업식이라고 해요. 과거부터 형성된 것이 업식입니다. 불교는 사고의 습관, 말의 습관, 행위의 습관이 지금의 우리를 규정한다고 봐요. 이 습관을 까르마(업식)라고 해요. 그건 정신적 습관도 있고, 육체적인 습관도 있어요. 어떤 성인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지하철에서 여자 종아리 찍다가 걸린 적이 있죠. 자기 무의식을 통제 못하는 거예요. 아무리 의지로 안해야지 해도 강제로 전자발찌를 채워 놓아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의지로 제어하지를 못하지요. 그러니 마음을 치료해야 되요. 지금은 처벌을 하고 있는데 이는 보복일 뿐,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에요. 치료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럼, 자의에 의한 자살, 단원고 교감선생님 같은 선의의 자살, 타인에 의한 강박으로 하는 자살은 모두 죄인가요?”  

“자살은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우리의 생명체는 자기 생명을 자기가 끊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육체는 어느 정도의 수명이 다하면 쇠진하도록 되어 있지, 생존해 있는 생명을 자기가 공격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안 좋은 것도 아니고, 귀한 것도 천한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좋다고 인식할 때는 그 존재가 좋아서 좋은게 아니고, 머리에서 좋다고 인식할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친한 친구가 죽고 친구 부인이 살기 힘들어 호프집을 마련해 살려고 하는데, 친구 부인을 도우려 하니 자존심 상해서 안 받겠다 해요. 그래서 친구에 대한 의리를 생각해서 오며가며 술한잔씩이라도 팔아줘요. 친구 부인이 생각하기에는 고마운 사람인데, 남자의 부인이 생각하기엔‘그 사람이 네 마누라냐, 아니면 너 여동생이냐, 왜 도와주냐’이렇게 나오죠. 똑같은 사람의 행위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내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고, 내가 좋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하면 좋은 사람 되어버리니 이건 착각이에요.

  

 

자살의 문제는 정신질환 문제와 관계가 많아요. 본인은 자기가 굉장히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는 말도 잘해야 되고, 인물도 잘나고, 돈도 많고, 성질도 좋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의 나는 말도 더듬거리고, 신체도 별로고, 날씬해야 되는데 뚱뚱하고, 재능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그리는 상상의 자기가 현실의 자기를 볼 때 너무 모자라죠.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남을 만나지 않으려고 해요. 어느 순간 자기 같은 것은 죽는게 낫겠다 싶어 스스로 죽는 거에요. 살인도 똑같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가 못 미치니까, 미워하다가 저런 사람은 죽여버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과 살인은 심리적으로 같은 거예요. 그런데 살인은 남을 해쳤으니까 처벌을 받는 거고 자살은 자기가 죽어버렸으니까 처벌할 당사자가 없는 거죠. 심리적으로 같은 거에요. 살인이든, 자살이든 원인을 규명해서 치료를 하면 자살율을 낮출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어떤 것에도 죄란 본래 없습니다.” 

총 10명으로 부터 질문을 받다보니 강연은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지만, 스님께서는 마지막에 짧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하면 얼굴에 생기가 돌게 됩니다. 삶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삶을 좀 다른 각도로 보고 내 몸에 맞게 옷을 맞춰 입는 것처럼, 내 삶의 가치관을 정립해서 그냥 살면 됩니다. 자기 기분을 가지고 살아야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사는 것은 노예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끝까지 강연장을 찾은 청중들에게 행복하게 살기를 당부하였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책 사인회와 사진촬영이 진행되고, 자원봉사자들과도 함께 단체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원정토회 준비로 스승의 날을 기념해 꽃과 노래를 올렸습니다.  

 

 

1시 30분이 되어서야 평화재단으로 출발하였으며, 2시 평화재단에서의 약속으로 이동 중 차안에서김밥과 쥬스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쳤습니다. 

재단에 도착해서 바로 스님께선 언론인 마이클 브린씨와 재미교포인 김영진님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마이클 브린씨는 영국인으로 지금 한국에 살고 있으며, 30년전에 ‘한국인’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외국에 소개하였습니다. 스님을 찾아오게 된 것은 이 책의 개정판 준비 중에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마이클 브린씨가 스님께 궁금했던 질문은 ‘본인이 보기에 한국인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게 보이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지’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첫째, 기대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망이 크고 만족이 안되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기대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로 하는 일이‘지금도 행복한 줄 알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1960년 국민소득이 100불이었다면 지금은 3만불 가까이 됩니다. 그러면 소득은 300배 정도 늘었는데, 우리가 300배 행복해졌느냐고 하면 아닙니다. 300배는 고사하고 30배는 행복해졌느냐? 아니면 30배는 고사하고 3배는 행복해졌느냐? 저는 앞으로 국민소득이 30만불 된다고 해도 이 문제는 해결 안된다고 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때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행복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는 조건부 행복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지금 주어진 조건속에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주로 당신이 얼마나 지금 행복한가를 깨우쳐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여럿 가운데에 하나입니다. 즉 여럿이라는 것은 공동체를 말하며, 하나는 나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발전해야 나도 그 속에서 더불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발전하는 것이 반드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개인이 행복하면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도 반드시는 아닙니다. 식민지때 일본의 경우 국가가 발전을 했어요. 그렇다고 일본 국민은 행복합니까? 당시 한국사람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일본사람들도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발전해도 국민이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경제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불평등이 심화되면 국민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집니다. 국민이 행복해질려면 경제적으로 성장한 결과물이  다수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행복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경제는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봐야 하는데, 우리는 50년 전에 굉장히 가난해서 경제라고 하면 성장만 생각합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그렇게 보았습니다. 생산만 경제가 아니라 생산한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것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50년전에 서양을 모델로 따라 배우기 할 때 경제만 모방하고, 민주주의, 인권, 철학 등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사람은 물질주의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경제성장이 주춤해져 저성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성장과 심한 빈부격차로 국민들이 느끼는 불행감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동안 경제성장이 일직선으로 발전해 왔는데, 한국의 자살률도 성장률과 똑같이 평행선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자살률이 떨어져야 하는데 일직선으로 함께 증가했다는 것은 경제성장이 사람의 행복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국민들이 희망은 없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출생률은 반대로 쭉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경제성장이 우리도 잘산다는 자부심을 심어준 것도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행복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첫째, 사회적, 국가적으로 빈부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하고, 경쟁에서 처지는 약자에게 생존권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 국민들 개개인도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성장이 계속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50년간 계속 성장한 경험만 있기 때문에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들도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저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기대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물질적인 것에서만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가족관계,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 평화, 환경, 명상 등 가치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정치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대통령이나 시장, 국회의원 등을 뽑을 때는 선출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대통령, 시장이 권력을 집행할때는 민주적인 방식이 아닌 옛날의 봉건적인 왕이나 독재방식으로 합니다. 그러니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권리는 4년 중에 선거할 때 15일만이고, 나머지는 종으로 살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선거기간에는 고개를 숙이고 잘하겠다고 하고 나서 선거 끝나면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지방자치하게 하고, 대통령의 권한도 총리, 장관에게 분산해야 합니다. 일반시민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자기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안되니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말씀드리면 한국은 지난 50년을 돌아봤을때 경제적으로 산업화를 이끌어내고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도 투쟁을 통해 어느 정도 이루었다는 면에서 성공적입니다. 이제는 이를 기초로 해서 더 깊은 민주화가 되어야 하고, 복지사회와 통일로 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단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멈춰 있습니다.  

산업화에 성공한 세력들은‘우리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으니 고마워해라’이렇게 과거의 성과를 가지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민주화를 이루어 낸 세력은‘우리 때문에 민주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자꾸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제가 풀어질려면 산업화, 민주화의 성과를 함께 인정하고 그 공로를 치하하면서 다음 단계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 과제를 가지고 정치인들이 경쟁해야, 싸우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제가 볼 때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 양당구조속에서, 여기에 속한 엘리트층의 정치의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제3의 길로 가는 것을 지지하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정치인들은 기존의 질서에서 나와 새롭게 개척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한번은 이쪽을 지지하고, 한번은 저쪽을 지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도 유럽처럼 다당제로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다양한 정당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하고, 필요에 따라 두개, 세 개의 정당이 협력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양당구조이다 보니 협력이 안 되고 죽으라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력의 정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국민들의 요구가 자본가, 노동자 양쪽으로만 나눌 수가 없습니다. 노동자안에 정규직, 비정규직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고, 자본가도 재벌과 중소기업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정당이 각 계층의 이익을 대변해주어야 하는데, 한 정당이 국민의 여러 요구를 다 들어준다고 하니 아무것도 들어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도 한국 국민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므로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행복도가 높아지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조건에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왜 국민들이 불행한가에 대해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속에서 조명해주셨습니다.  

 

 

미팅이 끝난 후에 스님께서는 마이클 브린씨와 김영진님께 영문 기도책을 선물로 주고, 통역을 한 정수진님께는 미혼이라고 하여 스님의 주례사를 전달했습니다. 이후 스님께서는 다음 강연 전까지 원고교정 등의 업무를 보신 후 차가 막힐 것을 고려하여 5시에 저녁 강연이 열리는 인천대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인천강연에 앞서 인천대 총장실에서 총장님, 교수불자회 교수님 5분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가 지식이나 기술로 접근하기보다는 해탈과 열반을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대중들에게 즉문즉설을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제들, 특히 교육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이후 강연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강연 전 청년 불대에서 수화공연을 펼쳤는데 어떤 공연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인천대 교수 불자회에서 스님께 환영의 꽃다발을 전하였습니다. 1천여 좌석이 넘는 인천대학교 대강연장을 꽉 메운 인천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총 8명의 질문자들이 삶의 고뇌를 스님과 함께 나눴습니다. 외동딸로 엄마의 과잉보호와 집착으로 힘들다는 대학생, 부모님의 잦은 불화로 감정조절이 어렵고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으며 수면장애로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데 부모님에 대한 증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분, 공부에 대한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을 묻는 분, 아버지와 남동생 그리고 자신의 건강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하신 분,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큰 슬픔에 빠진 분, 베트남 아내와 갈등으로 이혼위기에 처한 분, 폭력적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중 한 중년 남자분의 질문을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너무도 가난하여 배고픈 시절을 보냈고, 20대에는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30대 넘어서 안정된 생활을 하다 퇴사하여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상황이 나빠져 폐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다시 예전의 곤궁한 상태로 돌아갈까 너무도 불안합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굳건한 마음을 가지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어릴 때 굶은 경험은 2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굶은 것이 내게 좋은 경험으로 승화되면 내가 굶고 살아봤기 때문에, 나중에 그런 상황에 또다시 처하게 되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굶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크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둘째, 굶은 것이 상처로 있으면 그때의 이미지가 떠올라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질문자는 그때의 경험이 상처로 남은 거예요. 그래서 같은 경험을 가지고도 스님은 좋게 작용되어 자산이 되었는데, 본인은 나쁘게 작용되어 두려움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어릴 때 굶어도 봤고, 감옥도 가봤는데 세상에 겁날게 뭐가 있어요?” 

 “저 혼자면 괜찮은데 처자식이 걱정이 돼서 그렇습니다.” 

 

“자기 없으면 아내와 자식이 못살 것 같지만 다 본인의 생각일 뿐입니다. 다들 또 그 상황에 맞춰 살아가게 되어있어요. 무기력증에 빠져 매일 널부려져 있으면 어떤 도움이 될까요? 걱정을 내려놓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해주면서 방법을 모색해야지,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일만 하고 있어요.” 

 

“어떻게 이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방법은 없어요. 그냥 놓는 겁니다. 뜨거우면 놓으면 되지 “어떻게 놔요?”가 없어요. 방법을 몰라 못 놓는 게 아니라 놓기 싫어 놓지 못하는 거예요.”  

 

  

이렇게 질문자의 사연에 내 삶을 적용시키며 웃고 울고 하면서 유익하고도 재밌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조건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불행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다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진리는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성공과 실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순간이 성공인 겁니다.”

 

스님께서 모든 일정을 마치신 후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전 봉사자들이 스승의 노래를 불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는 모두는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이신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행정진 해 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천강의가 끝나자 바로 경주로 출발하였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의 통일역사기행을 안내하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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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스님의 한국인에 대한 예리한 말씀 감사합니다. 크게 보면서도 또한 작게 보시며, 자비와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시니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우리 한국인들 경제성장에 탐닉한 단계에서 벗어나 조그맣고 작은 것에서도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2015-05-18 23:43:11

우분투

'남이 어떻든 상관없이 정해진 내 수행생활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보고 배우는 것이 제일 쉬운데, 주변에 수행자가 있으면 참 좋겠다 여겨집니다. 법문 보고, 정토법당 다니며 더디게라도 배우고 익히고 있어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2015-05-17 23:57:11

홍예지

스님.감사합니다.건강하세요.

2015-05-17 22: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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