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성봉 영가시여 빛으로 돌아오소서! (둥게스리에서)
시작일2003.12.16.
종료일200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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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봉 영가시여 빛으로 돌아오소서!
지금 밖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요란한 소리가 들립니다. 영가의 돌아가심을 아이들의 모습으로 명복을 비는 것 같아요.
벌써 설 거사님의 입적을 맞이한지 1주일이 지나고 오늘이 초재이군요. 선주법사님은 밥, 국, 나물, 과일 등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군요.
법륜 스님께서 어젯밤 바이샬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스님이 인도에 계실 때 매주 1번 인터넷 지상법문을 정토행자들에게 하였는데 현재 스님은 성지순례 중이고, 네가 수자타 아카데미에 있으니 간단한 경위와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메모하여 스님 글을 대신하라는 말씀이 계셔서 이렇게 대신합니다.
정토행자 여러분!
부처님의 땅 인도에서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셨던 이곳 둥게스와리에서 편지를 보냅니다.
먼저 간단히 설거사님의 사고 경위를 전합니다.
1월 10일 설거사님이 총 감독을 하여 지난 해 3월부터 착공한 기술 중고등학교 신축교사 1층 슬라브 공사를 마무리하고 노동자들은 회식하게 하여 기쁘게 하고, 거사님은 다른 한 분과 함께 늦게까지 작업을 마무리하고 늦게 저녁을 먹는 도중 바깥이 어둑한데 시끄러운 소리와 인기척을 느끼어 문으로 가서 확인을 하는데 갑자기 거사님의 안경을 뺏어가 버렸습니다.
이때 거사님은 위험한 상황임을 판단하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밖의 동정을 살피고 확인하였습니다. 옥상에서 보니 법당 아래쪽 계단에 7-8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거사님이 "누구냐"고 물으니 즉시 이들로부터 총이 난사되어 설거사님의 가슴에 맞았습니다. 그후 거사님은 넘어지고 곧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선주 법사님과 자원 봉사자들은 거사님의 회생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선주 법사님은 침착하게 바라나시에 계신 지도법사 법륜 스님께 연락하고, 보드가야, 가야의 가까운 스님들에게 연락하고 현장에서 즉시 현장을 보존하며 거사님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평소에 수자타 아카데미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외국에서 한국인이 자원봉사를 하다가 사망한 사태를 직면한 가야시장, 비하르주 정부 등에서 특히 보드가야, 가야의 스님들이 많은 관심과 전화, 조문 방문을 하였습니다.
한국의 전통 장례의식인 3일장으로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영결식, 다비식을 가졌습니다. 마침 보드가야에서 정진하시던 한국의 스님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오시어 스님들의 염불과 집전으로 영가의 왕생극락을 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드가야의 인도, 스리랑카, 베트남, 티벳 등의 스님들도 참여하시고 가야시장도 참여하였습니다.
다비를 거룩하게 마치고 우리들은 13일 일요일에 있을 수자타 아카데미 8주년 개교기념일 행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였습니다. 반대도 많았습니다. 특히 현장에 같이 있었던 자원봉사자들은 마음에 충격을 많이 받고 상처를 받아 가능하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충분히 논의를 하여 영가가 무엇을 원할까, 영가가 원하는 것은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고 힘차게 뛰노는 것이 아닐까 하고 결론을 모았습니다.
한편으로 성지 순례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또 한편으론 개교기념일 행사를 준비하고, 또 한편으론 영가의 영결식, 다비식, 범인 조사 등을 각각 그대로 역할 분담하여 사고가 있었다고 흐트러지지 말고 더 정신차려 잘 진행하기로 한 것은 우리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고, 보드가야에 있는 스님들과 주정부 관리들, 학생들 모두에게도 흔들림 없는 수자타 아카데미의 모습은 큰 힘이 되었던 것 같고, 이런 우리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개교 기념식을 영가의 추모를 위한 추모식으로 조정하면서 어른들은 추모하고 아이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며 잘 놀기로 하였습니다.
견덕화 법우님이 기념식 준비를 하였고 마지막 휘나레는 부처님께 올리는 촛불을 영가님께 올리는 것으로 바꾸었는데 우리들은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14일 새벽 순례객들은 스님과 함께 라즈길로 떠나고 우리들은 점심을 먹고 잠깐 쉬려고 하는데 ,내일 15일에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이곳을 방문하여 봉사자의 삶을 산 설성봉 영가의 축원과 어린 학생들에게 격려하시겠다고 하여 우리들은 다시 성하님의 방문을 맞이할 준비를 새롭게 하였는데, 다음 날 성하께서 몸이 아프시어 방문이 취소되고 그래서 준비되었던 물건들을 치우고 또 쉬고 있는데, 또 방문하신다고 하여 부랴부랴 준비하였는데 오보라고 연락되는 등의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들의 마음이 울적할까봐 바로 잡으라고 하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완전히 준비를 갖추어 놓았습니다. 운동장에 마이크도 단상도 마련하였고 언제든지 오시면 맞이할 준비를 다하고 만반의 태세를 다 갖추었습니다.
어제는 거사님 방에 들어가 짐을 챙기고 유품을 하나둘 챙겼습니다. 지갑, 쓰시던 안경, 사진 몇 장을 챙겨두었습니다.
캘커타에서 학생들에게 줄 선물짐을 기차에 잔뜩 싣고 바라나시로 오는 도중 가야역에서 새벽 3시에 짐을 내렸습니다. 그때 저는 설거사님을 만났습니다. 몇 달만에 만나니 너무 반가웠고 둘이서 포옹하고 인사를 하였는데 그 짧은 만남이 긴 이별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이 설거사님과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분의 음성과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제는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정토행자 여러분,
그리고 영가의 가족, 아내, 아드님!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듯 아프겠습니까.
저와 여기 식구들도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절친한 동지였던 거사님을 보내니 제행이 무상이라 하지만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고 아프군요.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거사님을 저는 존경합니다. 정토회관 건립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콘테이너 박스 숙직실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회관을 지키고 마무리하셨던 거사님!
10년 전 거사님을 처음 수련회에서 만난 이래 늘 거사님은 원효 스님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정토행자가 되어 이 땅에 불교중흥, 민족 통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하셨지요.
정토행자 여러분!
수자타 아카데미에 와보니 전기가 없군요.
한 자루의 촛불이 이렇게 밝은 줄을 몰랐습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습니다. 깜깜한 밤을 밝히는 한 자루의 촛불을 대낮에는 그 가치를 가늠하기가 어렵지요. 거사님은 한 자루의 촛불이었지요. 자신을 다 바쳐 주변을 밝히다 산화한 촛불이지요.
80년에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당년 46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아내와 자식을 두고 인생을 새롭게 도전하고 무엇인가 보람된 인생을 살고자 인도에서 가장 열악한 둥게스와리 주민과 학생들과 함께 한 그의 삶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었습니다.
영가를 염의할 때 이 곳 학생들은 많이 울었지요. 영가의 생전 모습이 생각났었고 그의 마음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우리 스님은 영가의 영결식에서 영가를 위해 왕생극락의 법문을 하였지요.
"영가시여, 이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데 무엇으로 영가를 삼으리오. 무엇이 영가의 본래 모습입니까. 영가시여.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고 왕생극락하여라..."
정토행자 여러분!
이곳 수자타 아카데미에는 영가의 체취가 듬뿍 베어 있습니다. 어느 한 곳이라도 들지 않은 곳이 없지요. 한국에서도 서울 정토회관과 부산법당에, 문경 등지에도 영가의 향이 묻어있지요.
한국에서 정토행자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소식은 이곳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습니다.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설 거사님!
제행이 무상이라 하였지요. 한번 온 인생은 언젠가 한번 가야하는 것이지요. 오고감이 본래 없지요.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지요. 영가의 삶은 아름다웠지요. 그리고 죽음도 아름답지요. 영가가 건립한 학교에서 열심히 배운 학생들이 앞으로 인도의 미래를 열어갈 것입니다. 영가가 하고 싶은 일, 원하는 일, 그리고 이웃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다가 영가의 삶을 마무리하였으니 참으로 거룩하지요.
이제 남은 것은 저희의 몫입니다.
영가시여 고이 가소서. 극락왕생하소서.
영가의 뜻 받들겠습니다. 영가의 뜻 잘 이어 받겠습니다. 영가가 이루려고 하였던 원을 저희 정토행자가 꼭 실현하겠습니다.
이곳 인도 둥게스와리에 펼쳐진 기아, 질병, 문맹, 퇴치 운동을, 영가의 원을 저희들의 가슴에 안아서 꼭 실현하겠습니다.
정토행자 여러분!
인생은 참으로 공하지요.
가야 역에서 전날 만나서 인사하고 반가워했는데 하루만에 시신을 접하니 참으로 공하지요. 어제는 말하고 움직이는 설거사, 오늘은 말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영가!
어떤 것이 설거사입니까? 무엇이 인생이며 삶입니까?
설거사의 삶은 우리들의 삶입니다. 이제 설거사님은 저희들의 삶 속에 있습니다. 정토행자의 원 속에 있습니다.
거사님의 봉사정신을 길이 기억합시다. 거사님의 원을 우리들이 이루어 갑시다.
한 줌의 인생이 무엇 대단합니까. 욕심 내고 짜증 내고 어리석은 인생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보람된 인생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지요. 어쩌면 우리는 살아도 진정 산 것이 아닌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닌지요. 값진 자신의 인생을 보람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자신의 재능, 아이디어, 재주, 돈을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이웃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설거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설거사님의 못다한 원을 저희들이 이루겠습니다.
왕생극락 하옵소서.
인도 둥게스와리에서 유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