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대전지회
얽힌 실타래는 누가 만들었을까?

대전지회는 선배 도반들이 튼튼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기반 위에 새로운 도반들이 선배들의 뒤를 이어 잘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대전지회 지회장 소임을 맡아 재미있게 일하는 채희숙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점등식(맨 뒤 왼쪽에서 네번째 채희숙 님)
▲ 부처님 오신 날 점등식(맨 뒤 왼쪽에서 네번째 채희숙 님)

내 마음의 얽힌 실타래

2009년 추석 전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남편은 오지 않았고, 돌아가셨다고 연락해도 그다음 날에 왔습니다. 남편은 8남매의 장손인 시아버지와 시댁에서 차례를 다 지내고 왔습니다. 저는 평소 시댁에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때 그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너무 괴롭고 힘들던 중 지인이 유방암 검사를 같이 하자고 했고, 유방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10개월 전 건강검진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결과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 후 유방암 치료를 받고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때 지인의 권유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에 참여하여 정토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희망편지에서 '정토불교대학 모집'이 눈에 띄었고, 그 길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죽림정사 연등철거 봉사(맨 오른쪽 채희숙 님)
▲ 죽림정사 연등철거 봉사(맨 오른쪽 채희숙 님)

얽힌 실마리를 풀다

저는 유복하진 않지만 다정했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형제가 없어 친척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처음 시댁에 제사 지내러 가서 서른 명 정도인 대식구를 보고 당황했습니다. 8남매의 첫째 며느리인 시어머니는 성격이 급하고 일도 척척 잘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어머니는 차분한 성격의 저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말도 함부로 했습니다. 게다가 남편도 제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 대우가 견디기 힘들었던 저는 불교대학에 다니며 조금씩 시어머니의 인생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넉넉지 않은 집에 시집와 자식들과 별로 나이 차이 나지 않는 시누이, 시동생들과 함께 살며 시집, 장가까지 보낸 시어머니의 삶이 '한 여자로서 안 됐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게 누가 그렇게 살라 하면, 저는 절대 못 살 것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남편도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 그럴 수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하니 원망하는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서로 다른 색의 안경을 끼고 "내 색깔이 맞다"라고 했구나!' 스님 법문을 들으면 일주일을 잘 보낼 수 있었고, 마치 예방접종 주사를 맞은 듯 아프지 않고 힘이 났습니다. 법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시어머니와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JTS 어린이날 거리 홍보(오른쪽 채희숙 님)
▲ JTS 어린이날 거리 홍보(오른쪽 채희숙 님)

봉사를 위해 숙이니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불교대학 담당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불교대학 담당을 계속 거절했습니다. ‘지금 내 인생도 힘든데 누구를 담당하나?’라고 생각했고, 봉사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법륜스님의 외부 강연을 경전대학 학생들이 총괄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봉사할 때 수동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강당 대여부터 포스터 붙이는 것까지 주체적으로 참여하니 '봉사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봉사를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받은 만큼 베풀고 싶다, 봉사를 통해 도움이 되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불교대학 담당을 맡았습니다.

봉사하는 동안 남편과 부딪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봉사 일이 많아 남편에게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숙이지 않으면 일할 수가 없으니 그렇게 미운 사람에게 밥도 더 따뜻하게 해주고 말 한마디도 웃으며 다정하게 했습니다. 시어머니도 제가 봉사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저는 제사에 못 가면 죄송하다고 숙였고, 갈 수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예전에는 명절이면 일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명절증후군처럼 머리가 아파 두통약을 먹고 일했는데, 숙이면서 기쁜 마음으로 하니 어느새 명절증후군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평소 죄송하다는 말도 잘 하지 않는 무뚝뚝한 며느리였습니다. 숙이지 않으면 봉사를 할 수 없으니 시어머니에게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짜증을 내지만, 그래도 요즘은 먼저 전화해서 "일 없느냐?"라고 물어보고 제 일정에 맞춥니다. 여든이 넘은 시어머니가 돈도 못 버는 며느리의 일정을 먼저 챙김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나 잘났다고 목 뻣뻣하게 세우며 살다 봉사를 위해 숙이니 집안이 편안해졌습니다.

5차 전법활동가 교육생들과 함께(오른쪽 두 번째 채희숙 님)
▲ 5차 전법활동가 교육생들과 함께(오른쪽 두 번째 채희숙 님)

머리로 한 법당 정리

지금은 1-10차에 이어 2-1차 대전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회장은 일반회원과 전법회원을 살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지회는 회원들이 특별히 "좋다, 싫다"라는 표현을 잘 하지 않지만, 묵묵히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처음 지회장을 맡았을 때 모르는 게 많아 부담스럽고 헤매기도 했으나, 여러 도반들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했습니다. 특히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되면서 규모도 크고 물건도 많은 대전 법당을 정리해야 했을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도와줘 잘 정리했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여름 명상이 끝나고 법당을 바로 정리해야 했습니다. 명상 기간 내내 '창문과 붙박이장은 어떻게 뜯고 그릇은 어떻게 정리하고...'라는 망상이 가득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4박 5일 명상 내내 혼자 머릿속으로 법당 정리를 다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큰일을 겪으니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소임을 맡으면 그 일에 몰두해 모든 기운을 다 소비했습니다. 일이 끝나면 ‘나만 이렇게 힘드나?’라고 생각했고, "나 너무 힘들었다"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일하지만 나중에는 원망하고 억울해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일을 대충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저의 모습이 열심히 하니 보였습니다. 남들은 알고 있는 저의 모습을 저만 몰랐습니다. 이렇게 일을 처음 할 때는 늘 고민이 되지만, 도반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해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면 '일이 저절로 돼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바라밀정진 회향 문경수련원에서(왼쪽 채희숙 님)
▲ 바라밀정진 회향 문경수련원에서(왼쪽 채희숙 님)

지나온 길, 나아갈 길

지회장으로서 도반들과 소임을 통해 소통을 많이 합니다. 그 과정에서 도반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도반들의 반응도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반들에게 분별심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처음엔 도반들이 ‘왜 그러지?’라고 생각했는데, 도반의 마음을 아니 이제는 투덜대거나 짜증을 내도 ‘힘들어서 그렇구나!’라고 이해합니다. 저는 일이 무겁더라도 웃는 얼굴로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가볍게 권유하고 도반이 거절해도 "그럼 다음에 하시겠어요? 시간 될 때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합니다. 제가 싫어서 거절한 게 아님을 아니 제 마음이 가볍습니다. 도반들과 관계가 좋으면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에, 도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지회장 역할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인 듯합니다.

제가 이렇게 봉사할 수 있도록 남편이 허락하고 또 제 옆에 있어주어 고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줬을 때 더 고마워합니다. ‘남편의 존재만으로도 괜찮다, 웬만한 일은 지나오면서 다 해결됐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만큼 안됐을 때 힘들어하는, 밑바닥에 있는 이 마음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그 마음들을 꾸준히 살피고 살피며 늘 깨어있겠습니다.

6차 전법활동가 교육생들과 함께(맨 오른쪽 채희숙 님)
▲ 6차 전법활동가 교육생들과 함께(맨 오른쪽 채희숙 님)


인터뷰하며 특히 법당 정리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창틀을 떼서 재활용하고, 욕실 실내화에서 걸레까지, 버리는 것 없이 재활용해 필요한 곳에 보냈다"라는 말에, '법당 정리가 아니라 새로 활용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만물에는 다 제자리가 있습니다’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신 '새 활용의 달인이 채희숙 님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글_정수경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 화성지회)
편집_이혜수(서울제주지부 성동지회)

전체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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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대정진)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3-11-17 15:36:40

ubaTaeCJ

1

2023-11-15 23:22:33

보현

고맙습니다

2023-11-09 09: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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