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주지회
수리수리마수리 자유로워져라

수리수리마수리 수행을/행하면/자유로워진다! 리포터의 수행자 3행시 기습 요청에 주인공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알고 보니 ‘수리수리마수리’는 마법의 주문이 아니었습니다. 흉보고 악담하고 거짓말하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입으로 지은 죄를 깨끗이 씻어내는 ‘천수경1 정구업진언’입니다. 수리수리마수리가 이끄는 자유의 길에 들어선 3년 6개월 차 수행자의 이야기를 촉(觸, 닿을 촉)을 세워 촉촉촉 들어 보았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24시간 괴로운 예민보스!

딸이 귀한 집안에 태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로 마음껏 고집 피우며 자랐습니다.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결혼했지만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밥 먹는 것조차 힘들었고 육아는 더 심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니 모든 것이 혼돈이었고 첫 아이를 낳고 예민한 성격에 심각한 우울증이 왔습니다.

주말부부 생활로 독박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제 삶이 너무나 억울해 남편을 향한 원망과 화가 갈수록 커졌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 소리 없이 실금만 내던 몸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는 두통과 구토, 탈수로 한 달에 한 번은 응급실에 갔습니다. 너무 자주 쓰러지니, 남편은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저는 제 몸과 마음을 모두 무너지게 만든 게 다 남편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소한 모든 것들에 화내고 괴로워했습니다. 죽을 만큼 열심히 사는 제게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했고,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사니 주변 사람들과 자잘한 마찰로 생채기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항상 인상을 팍 쓰고 있으니 양 눈썹 사이에 주름이 선명하게 새겨졌습니다.

발심행자 수계식
▲ 발심행자 수계식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딱딱 알아서 맞추라니

삶이 너무 힘들어 해답을 찾고자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책에는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며 뭔가 답이 있는 것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알아야 행복할 것 같은데 도무지 제가 누군지를 몰라 그게 제일 답답했습니다. 이런 저를 끌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2020년 3월, 제 발로 정토불교대학을 찾은 후 10-1차 천일결사2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참회문을 ‘남편에게 숙이며 살겠습니다’로 정한 후, 더는 괴롭지 않기를 희망하며 매일 새벽 5시 108배를 했습니다. 쉽게 꿇어지지 않는 무릎을 꿇으며 원망하는 마음과 설움에 복받쳐 기도 중 방석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말다툼 중 대꾸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듣고 있으니,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처음으로 들렸습니다. “진짜! 그만해라! 나는 당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아니라 했다! 제발 나보고 이래라저래라 가르치려 들지 말란 말이야!” ‘내 옳다’는 생각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저를 향한 비난의 말속에 남편의 상처받은 마음이 보였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늘 남편 뒤에 숨어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가족 여행을 갈 때도 모든 계획을 남편이 짰으며 준비물까지 도맡아 챙겼습니다. 그런데도 독박육아에 맞벌이 주말부부라며 남편을 한없이 원망만 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하지 말고 저렇게! 내 마음 들게 제대로 좀 해!”하며 남편을 무시하며 악쓰던 제 못난 꼬락서니를 보았습니다.

천룡사 감자밭 풀뽑기(왼쪽 박지영 님)
▲ 천룡사 감자밭 풀뽑기(왼쪽 박지영 님)

탓탓 탓하고, 척척 척하는 업식

제32차 인도 성지순례는 1,000일을 꼬박 정진해 온 제게 주는 선물이자 법륜스님과 1,250명의 수행자가 함께하는 자리라 대차게 휴직하고 다녀왔습니다. 15박 16일 인도 성지순례 동안 온갖 분별심을 다 일으켰습니다. 첫날 델리 공항에 도착 후 버스로 이동할 때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급기야 잦은 멀미약 복용과 부족한 수면으로 체력이 바닥나자, 조장으로 조원들에게 모이는 시간, 준비물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제 탓으로 돌리기는 싫었습니다.

수시로 바뀌는 일정이 제때 전달되지 않자 “좀 제대로 알아듣게 말해주면 안 되냐?”며 투덜투덜 볼멘소리로 불만을 토했습니다. 그 순간 제게 찌릿한 눈빛을 보내는 조원을 보며 크게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뭐든 남 탓하는 말이 입에 배어 있구나’. 인도 성지순례를 통해 수행을 잘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온갖 업식이 다 드러났고, 조장 소임까지 맡은 터라 공개적으로 확인 도장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잘난 척하느라 힘들게 고생하니, 잘나고 싶고 잘나야 한다는 완벽주의 욕심이 저절로 버려졌습니다.

인도성지순례(왼쪽에서 두 번째 박지영 님)
▲ 인도성지순례(왼쪽에서 두 번째 박지영 님)

그녀는 밤송이 같은 나의 역행보살

매일 은퇴를 꿈꾸게 하던 직장생활은 성지순례에 비하면 비단길이었고, 동료들의 짜증과 불평불만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복직 한 달 만에 동료로부터 명령조로 말하지 말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제가 무시한다며 대놓고 저를 미워하고 밀어냈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를 하다 보니 제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먼저 다가가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동료는 일을 부탁할 때 부탁 조로 말해 달라 요청했습니다. 저는 정중한 말투로 “이것 해 주실래요?” 하는 것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라 생각했고, 동료는 “이것 해 주실 수 있으세요?” 하고 상대가 예, 아니오를 선택할 수 있도록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동료의 말이 맞았습니다. 명령 조와 부탁 조의 차이점이 뭔지 그때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럴 때 당신이 그랬다, 저럴 때 당신이 그랬다, 왜 매번 보고해야 하냐?”며 모든 잘못을 제 탓으로 돌리던 동료가 제가 대꾸하지 않고 계속 묵묵히 들어주니 직장 내에서 인정을 갈구하는 밑 마음을 툭툭툭 다 얘기했습니다. 직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길 바라는 동료의 마음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그간 업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밉게만 봤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제게 밤송이 같은 사람이지만 제 수행을 점검해 주는 사람으로 여기니, 참으로 귀한 인연입니다.

경주지회 회원의 날 불교대학 홍보(오른쪽에서 두 번째 박지영 님)
▲ 경주지회 회원의 날 불교대학 홍보(오른쪽에서 두 번째 박지영 님)

밖에서 들리는 내 안의 목소리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경주지회 온라인 공동정진이 시작되었고 경전 독송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제게도 소임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기뻤고 천일결사를 꾸준히 이어가는 힘이 되겠다 싶어 용감하게 도전했습니다. 처음엔 자주 뵙던 분들이라 편안한 분위기 속에 경전 독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공동정진 인원이 늘어났고 불교대학, 경전대학 동기들도 참여했습니다.

그때부터 갑자기 오한에 걸린 듯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명심문도 ‘편안한 가운데 애쓰지 않습니다’로 바꾸며 노력했지만, 떠는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그냥 몸이 아파 그만두겠다 했습니다. 편안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왜 몸이 안 따라주는지 고민을 거듭하다 2박 3일 주말 명상을 신청했습니다.

명상하며 불교대학, 경전대학 동기들로부터 ‘나는 이렇게 수행을 잘하고 있다’며 인정받고 싶어 했음을 알았습니다. 제 안의 욕심을 알아차리니 다시 경전독송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공동정진 소임자에게 ”아직 독송하시는 분이 없다면 제가 다시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다른 사람에게 소임을 넘기면 지영 님이 다시는 안 하려고 할까 봐 제가 하고 있었습니다.“라며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남편과 부모님
▲ 남편과 부모님

제가 돌아오리라 믿어주신 진심이 전해져 울컥했습니다. 그 후로도 자잘하게 이어진 실수에 자책이라도 할라치면 “누구에게나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라며 격려해 준 선배 도반의 진심 어린 공감과 응원 덕분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내려놓으려 해도 안 되던 ‘가볍게 한다’는 의미를 직접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지회 담당자가 소임이 힘들지 않으냐 물었습니다. “오히려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매일 합니다. 이 소임 덕분에 매일 아침 기도를 놓치지 않고, 밖에서 들리는 제 목소리를 통해 마음 알아차리기가 저절로 됩니다. 명상과 알아차림이 동시에 되는 이 소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며 반문했습니다. 소임을 맡으면 힘들게 고비를 넘겨야 하는 줄 알았는데 소임 덕분에 나날이 가벼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도성지순례
▲ 인도성지순례

그녀는 너무 예뻤다. 그래서 행복했다

예전에는 수행을 잘하는 도반을 보면 ‘진짜 저렇게 수행하는 걸까?’ 의심했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나누기를 할 수 있지?’ 살짝 질투했습니다. 요즘은 ‘이봐라~ 또 시기 질투하려 하네, ‘또 봐라~ 저 사람 또 새침하게 보재, 시기하려 하네~ 할 필요 없지!’ 합니다. 그런 저를 볼 때 참 재미있습니다. 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매일 실수하는 사람이라고 수용하니 마음 나누기도 편합니다. 수행자다운 마음 나누기에서 저다운 마음 나누기를 하게 됩니다.

수행하며 내가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두 가지 의문이 사라졌습니다. 의심이 없어졌습니다. ‘그냥 이렇게 수행하면서 살면 되겠네’ 합니다. 주변 동료들의 은퇴 준비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괴롭지 않게, 자유롭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아니까 그냥 요대로, 그대로 살 뿐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니 정말 좋습니다. 저는 제 웃는 모습이 좋습니다. 웃는 게 굉장히 편합니다. 제 미소가 정말 마음에 들어 셀카도 자주 찍습니다. 불교대학 돕는이도, 학생들도 “참 잘 웃고 다닌다, 천진난만하다”하고 얘기합니다. 미간의 주름도 쫙쫙 펴졌습니다. 수리수리마수리 수행으로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불교대학 학생과 거리모금 (마이크 잡은 박지영 님)
▲ 불교대학 학생과 거리모금 (마이크 잡은 박지영 님)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이 정해지고 연락처를 전달받으면 바로 주인공의 SNS를 뒤져봅니다. 저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주인공의 숨겨진 마음을 읽으려 애씁니다. SNS 속 박지영 님은 장미 한 송이와 수계 의식집을 손에 들고 덤덤한 표정입니다. 감추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제 눈에는 덤덤한 표정이 ‘터진 팥 자루(기분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모양)로 보입니다. 저도 같이 터진 팥 자루가 됩니다.

글_곽정란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1. 천수경불교 경전의 하나. 관세음보살이 부처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고 설법한 경전. ‘한량 없는 손과 눈을 가지신 관세음보살이 넓고 크고 걸림없는 대자비심을 간직한 큰 다라니에 관해 설법한 말씀’이라는 뜻.  

  2.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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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

고맙습니다

2023-08-27 07:43:51

송옥희

읽으며 미소가 지어집니다. 소중한 수행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08-26 19:01:32

이주영

저도 책을 읽을 때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가 책 덮고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고 원래대로 돌아가버려서 이게 뭔가 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수행하면서 살면 된다는 확신에 공감합니다.

2023-08-23 15: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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