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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도 성지순례를 떠나며 일상에서 벗어나 해방감과 자유로운 삶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롯이 느끼고 돌아오면 전혀 다른 ‘내’가 되어 뭔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델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생애 처음 기나긴 시간의 버스를 타고 바라나시에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예불을 마치고 강가 강에 갔는데 쓸쓸함만 느껴질 뿐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화장하는 모습을 보며 제가 배운 몸의 무상함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발갛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올해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만 달랠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법한 사르나트에서 수계를 받았습니다. 지난날 뭔지도 모르고 받았던 수계와 달리 이날은 진정 제 마음을 키워주신 지도 법사님이 주는 수계라서 그런지 묵직한 마음과 함께 떨림이 있었습니다. 녹야정사 다메크수투파 앞에서의 첫 경전 독송 후 가사와 발우를 들고 다짐할 때의 마음은 진정한 수행자가 된 것처럼 여법한 제 마음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중도, 사성제, 팔정도 법문을 차례로 들으면서 ‘나는 언제쯤 이론과 실천을 동일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순례를 떠날 때,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걸으면서 자유와 행복을 지닌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다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또, 천이백 제대 아라한에 꽂혀서 이번 순례를 하면 아라한에 근접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상징적인 숫자의 이끌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수계를 받는 그 시간만큼은 새롭게 태어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도 부처님같이”를 진심으로 외치며 수계식을 끝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 입장하며 어린 소녀에게 꽃목걸이를 받았을 때 ‘내가 살아있어서 이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구나.... 꽃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나인데 해처럼 밝은 얼굴로 꽃목걸이를 걸어주니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다고 이런 호사를 누리나...’라는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들을 지원하는데 아끼지 않아야겠다고 아이의 눈망울을 보며 다짐했습니다. 국제구호 영상을 본 탓도 있지만, 수자타 공양을 드시고 부처님이 살아난 수자타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라는 법문을 듣고 감사함이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 부르는 어린 학생들의 공연을 보며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I will be hope in the world” 가 쓰인 뒷배경이 그동안 드러나지 않게 살아왔던 제가 부처님한테 고백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더욱 눈물이 났습니다.
불가촉천민 만 명에게 쌀을 나눠줄 때의 마음은 ‘택배로 전해주면 좋을 텐데’라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와 아이를 안고 온 여인의 머리에 쌀을 얹어줄 때는 그 무거운 쌀의 무게가 그들의 삶을 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법을 만나 삶이 달라졌으니 부처님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분들에게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전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스님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쌀가마니를 전해줄 땐 실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가야의 나이란자나 강변에서 화신을 섬기는 우루벨라가섭과 3백여 가지의 신통력을 겨룬 끝에 그를 굴복시킨 교단에도 가보았습니다. 전정각산 칠엽굴 등을 오르내리며 짐승들의 유유자적하는 모습 또한 많이 보았습니다. 명상에 잠긴 듯한 소들의 표정이 사람보다 훨씬 의젓하게 보이기도 했고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남을 원망하지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도 않으며, 우주의 질서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순례객에게 박시시를 청하면 모른 척, 하라는 안내를 받아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나무석가모니불’을 외치며 애원하는 눈매가 순례하는 동안 그림자처럼 남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인도는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이지만 부처님의 영혼이 깃든 나라여서 그런지 결코 가난한 나라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을 떠난 지 며칠 만에 드디어 부처님이 도를 이룬 보드가야에 닿으니 뭔지 모를 진한 향기로 부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던 이곳을 순례한 날 4각 4면으로 50여 미터의 높이가 웅장한 보드가야 대탑을 보니 직접 보는 감회가 실로 무량했습니다. 우뚝 솟은 위용에 웅장함이 있어서 마음이 겸손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은 탑보다도 그 뒤에 있는 보리수에 눈길을 거둘 수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행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것은, 바로 보리수 아래였기 때문입니다. 이날의 경전 독송은 가슴 뭉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여러 곡의 찬불가를 부르면서 은혜로움에 휩싸였던 경험을 생각하면 어쩌면 저는 인도로 출국하기 전에 부처님의 가피를 이미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이 마하가섭에게 자리를 나눠준 것처럼, 염화미소로 이심전심을 나눈 것처럼, 그런 느낌으로 정말 행복했습니다. 보리수 아래에서 (노랫말) “한 생각 바로 돌려 얽힌 번뇌 끊고 보니 천상천하 넓은 우주 걸릴 것이 하나 없고~ 평등한 성품 속에 너와 내가 따로 없네. 대자재 유아독존 바로 이것인 것을 해탈의 참된 기쁨 사바세계 가득하네.” 합창단원으로 노래하면서 보리수 아래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감사했습니다. 인도에 갈 때는 그 무엇도 사지 않을 결심을 하고 갔지만, 보리수 아래 깨달음을 얻은 가장 가까운 그곳에서는 염주 파는 이에게 값을 흥정하지 않고 기념으로 염주를 사기도 했습니다.
대 탑 내부에는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온몸을 땅에 대고 하는 오체투지의 예배는 곁에서 보기에도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굳이 돈 내고 사서 고생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잘 몰랐습니다. 단지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현지답사는 기본이란 마음과 안 가보는 건 부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도 성지순례에 간 것인데 지금은 좀 더 겸손한 자세로 당당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으니 인도에 다녀온 것은 가장 잘한 선택입니다.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귀의한 라즈길 제띠안에서는 평화행진을 했는데 처음으로 분별이 일어났습니다. ‘이 추운 새벽아침에 날씨 상황을 알려주었더라면 내복을 입고 나오는 건데...’라는 아쉬움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손에 손잡고 노래할 때는 힘차게 불러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워낙 상황에 대해 이해를 많이 하는 성격이라 곧 법문을 듣는 동안 내가 이 상황에 맞추지 않고 남 탓을 한 것에 금새 참회했습니다.
영축산 산마루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햇살은 더울 정도로 따사로웠습니다. ‘이 햇살은 2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독수리 한 마리가 나는 것 같은 풍경이 영축산이라는 이름과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법화경을 비롯해, 수많은 경전이 이곳에서 설해졌다고 하니 이곳을 다녀간 이상 법화경을 대하는 마음이 사뭇 달라질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가장 사랑한 도시 바이샬리 원후봉밀터 탑돌이 후 여성 출가 선언이 있었습니다. 쿠시나가르 케사리아 탑에 이어 열반당에서의 예불은 저의 인도 성지순례 중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 예불에 이어 가장 큰 감동이었습니다. ‘자등명 법등명’ 법문을 하시고 열반에 들기 전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하는 것이, 여래에게 올리는 ‘제일의 공양’이라고 제 귀에 대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눈물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며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 있으리라. 세상에 남은 일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이제 다시는 부처님께 이 일을 해 달라, 저 일을 해 달라 하지 않고 저희가 앞장서서 하겠습니다’
이 발원을 할 때는 제 내면에 또 다른 ‘내’가 너무 씩씩하게 말하는 바람에 스스로 깜짝 놀란 시간이었습니다. 열반당 앞에서 부른 ‘스승의 은혜’ 제가 태어나 부른 노래 중 가장 진심으로 부른 노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부처님.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정신없이 휘몰아치며 달린 15박 16일의 일정을 보냈습니다. 여행 다녀온 물품들이 제자리에 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지금 여기에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인도에 다녀온 것이 꿈같은 날들을 보내고 온 느낌입니다. 매일 아침 달라진 것은 예불할 때의 마음이 신기하게도 그곳에 있는 느낌이 납니다. 다녀온 후 며칠 동안 ‘내가 달라지지 않았다’라는 생각에 부처님의 나라를 현지 답사한 것만 해도 큰일을 한 것으로 위안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예불 올릴 때 그동안 잘 몰랐던 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예전과 달리 요즘은 술술 나옵니다. 수행문을 보며 ‘그래, 모든 괴로움은 다 내가 만드는 거지.’ 하면서도 ‘괴로움이 일어난 절반의 원인은 주변 사람들이 제공해서 그렇다’라고 중간치만 인정하며 살았던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변하는 것 같기도 한 내가 못마땅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 이번 순례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입니다.
그리고 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그중 한 가지가 상대방을 보는 제 마음이 기본적으로 ‘다르다.’ 하는 밑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평소에 관념적으로만 생각했던 ‘다르다.’가 비로소 ‘정말 다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몇 날 며칠 같이 생활하면서 서로 다름을 나누며 제 마음을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정관념의 늪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차렸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영혼의 큰 울림이 있었던 마음 여행이었습니다.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되었고, 반성과 성찰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안정되게 한다는 걸 인도에 다녀와서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검소한 삶의 양식을 배웠고, 부처님의 나라 인도를 다녀왔다는 사실이 생활을 올바르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며 반갑게 저와 인사합니다. “나마스테!”
글_김진의(서울제주지부 송파지회)
편집_권영숙(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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