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구로지회
고해를 헤쳐나오다

경전대학반담당,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영미 님. 만나는 사람들이 마음 같지 않아 가끔 분별심도 일어나지만, 소임으로 인해 오랜 업식인 아들에 대한 분별에서 벗어났습니다. 늘 본인을 지배하던 외로움, 허전함, 싫증 내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구로지회 이영미 님을 만나봅니다.

2017년 인도성지순례_석가족 마을 방문(왼쪽에서 첫 번째)
▲ 2017년 인도성지순례_석가족 마을 방문(왼쪽에서 첫 번째)

가족 안에서 외로웠던 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는데 부하 대원의 일로 전역했습니다. 그 후, 노동으로 생계를 잇게 되었는데 그래서였는지 화를 잘 냈습니다. 아버지에게 ‘화 좀 그만 내요!’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습니다. 삶이 고달팠던 엄마도 늘 화난 모습만 내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엄마 손을 잡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내 처지가 언니 둘과 남동생 사이에 끼어 얹혀있는 것 같았습니다. 집안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이 없으니 외로웠습니다.

여섯 살 즈음의 또렷한 기억 하나, 방바닥에 바느질감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엄마가 앉으시는 찰나, 묻혀있던 바늘이 엄마의 몸에 꽂혔습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주인집 아주머니 손을 잡고 방문을 나오는데 영문을 모르는 내가 "엄마 어디가?"라고 했고, 엄마는 "따라오지 마!"라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가뜩이나 친하지도 않은 엄마한테 내쳐졌다 느껴 서러웠습니다. 잠시 후, 사태가 심각한 것을 분위기로써 인지한 나는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질렸습니다. 그때의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하여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어마어마했던 나의 욕망

학창 시절은 우울감 속에 보냈습니다. ‘나’라는 상이 강해 직장에서는 3개월을 못 버텼습니다. 내 꿈은 어차피 능력 있는 남자 만나 편히 사는 것이었고, 시집 안 간 큰언니가 압박받는 것도 본 터라 겸사겸사 눈치껏 일찍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경제적 능력은 좋았지만, 여타 부분이 내 기준에 못 미친다 생각해 남편을 참 무시했습니다. 심하게 불화했고 임신 상태에서 발길질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첫딸이 태어났는데 청각장애였습니다. 딸아이를 어떻게든 변화시켜 보겠다고 참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하노라고 했지만 장애 정도가 나아지지 않으니 나중에는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 예술의 전당에서

억울했습니다. '나만 왜 이런가?' 장애를 뛰어넘어 보려고 그토록이나 공들인 딸아이는 변화가 없고, 이런 나를 내팽개치고 남편은 또 왜 밖으로만 도는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누구한테도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자신을 고립시켰습니다. 이 억울함을 말할 데가 없었습니다. 늘 기죽어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형편은 되는데 다른 여건은 왜 받쳐주지 않는지? 내 것이 아닌 것을 늘 갈구하고 갈망했습니다. 나의 욕구, 욕망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상담을 받아도 마음을 싹 닫아버리고 임하니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남들 보는 데서는 “하하호호” 거리고 다녔습니다. 온 신경이 남한테 가 있고, 남들한테 싫은 말은 죽어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 당시 친정 식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남편 빽으로 어렵게 친정 남동생을 취직시켰는데, 더 좋은 곳으로 옮겨달라고 했습니다. 그 청을 거절했더니 만취한 동생이 술주정 중에 나를 세차게 밀쳤습니다. 친정아버지 생일 자리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은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 세상 천지에 오직 나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나는 딸한테 무관심해졌습니다. 아마도 내가 무기력한 상태였던 듯합니다.

딸은 고3이었습니다. 그날, 딸아이는 친구와의 갈등을 내게 하소연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나도 상태가 안 좋았던지라 내일 얘기하자 이르고는 자러 들어갔습니다. 그 밤, 딸아이는 이승을 떠났습니다. 딸아이는 떠난 3년 후, 남편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2017년 인도성지순례 갔을 때 수자타 아카데미에서(왼쪽에서 다섯 번째)
▲ 2017년 인도성지순례 갔을 때 수자타 아카데미에서(왼쪽에서 다섯 번째)

인생의 전환점

동네 아주머니의 권유로 즉문즉설을 처음 접했습니다. 당시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남편 병 수발의 스트레스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병 수발을 지극정성으로 1년을 하고 나니, ‘이러다가는 내가 죽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중에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즉문즉설을 듣고 수행법회에 참여하면서 아침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절하는 것이 어쨌든 좋았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계속했습니다. 남편의 7년 투병 생활을 정진과 봉사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2011년 2월에 깨달음의 장1, 불교대학 졸업, 7-1차 입재식2에 참여하면서 정토회와의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틀림도,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던 고달픈 인생

나는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남의 시선에 온 신경이 가 있습니다. 결혼생활에서도, 이전의 종교활동에서도 인정받으려는 욕구, 그것 하나를 위해 살았습니다. 인정받는 정도가 처음과는 다르게 변해가는 것을 못 견뎌 했습니다. 어느 대상에게서나, 남동생에게도, 자식에게도 잘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했습니다.

나는 남에 대한 분별이 많습니다. 늘 ‘너는 틀렸어’라는 것이 너무 눈에 잘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 맺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남의 말을 안 듣고 내가 옳다는 ‘아상’이 강합니다. 때문에 나는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남이 실수했을 때 짚어 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쓴 삶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는 것이 참 고달팠습니다.

9-9차 입재식_용산법당 도반들과 함께(뒷 줄 왼쪽 첫 번째)
▲ 9-9차 입재식_용산법당 도반들과 함께(뒷 줄 왼쪽 첫 번째)

정토회의 문화가 그냥 편안했습니다

딸아이 먼저 간 것, 남편 병 걸린 것 등이 내 탓이라 여기니 스스로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네까짓 게’라는 자기 경멸이 있었습니다. 숨 쉬고 사는 것이 지옥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심적 기복은 있지만 행정처 봉사, 진행자 등의 소임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활동이 공부가 됩니다. 사람 챙기는 소임이다 보니 마음에 부딪힘이 있기도 하지만 상대를 이해하게 됩니다.

행정처 봉사 당시, 딸아이 일에 더해 남편이 병환 중이니 나의 운신에 자의, 타의의 멍에가 씌워졌습니다. 무겁고 싸늘한 멍에. 그런데 총무 소임을 하던 법사님의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에 가벼워졌습니다. 엄마한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나는, 사람을 믿지 못했는데, 법사님은 그런 나를 얼싸안아 보듬어 주었습니다. 비로소 받아들여지는 존재로 느꼈습니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이 법사님의 지원·지지로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요.

22년 3월 불교대학 실천활동_ 효창공원(왼쪽에서 두 번째)
▲ 22년 3월 불교대학 실천활동_ 효창공원(왼쪽에서 두 번째)

내 삶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은 수행

7-1차 천일결사3 입재 후, 매일 수행 정진합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결혼생활 중의 힘듦, 딸아이와 남편의 사망에 대한 죄의식으로 수행 정진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의식입니다. 안 하면 사는 것이 힘듭니다. 수행 정진만이 내가 하루하루 실수 덜하고,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길임을 압니다.

소임을 통해 자신의 수준을 알아가고, 봉사를 통해 일어난 분별심을 거울 보듯 확연히 보게 됩니다. 봉사와 수행은 필연입니다. 봉사와 수행을 통하여 말할 수 없이 편해지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지금은 사람들 눈치 보는 업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것보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관점으로 바뀌어 편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내 역량 이상의 것을 감당하면서 그때 남의 입장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분별심으로 힘든 상황이 되면 정진과 참회로써 바로 설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날 JTS 거리모금(오른쪽에서 두 번째)
▲ 어린이날 JTS 거리모금(오른쪽에서 두 번째)

경험을 나누고 위안과 희망이 되고자

얼마 전, 지난 학기 불교대학 탈락생 한 분이 행복학교에 이어 불교대학에 재입학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꾸준히 안내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대인관계가 힘들고, 인생에 굴곡도 많고, 부모님, 남편, 자식과의 사이에서도 외롭고 힘들었던 내가 수행으로 달라졌습니다. 수행을 통해 가벼워진 경험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나누고 그들에게 위안과 희망이 되고 싶다는 원이 생겼습니다.

최근 서원행자4 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서원행자를 꿈꾸었던 마음 한편에는 잘난 척하고 싶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책임자로 일한다는 것의 겉만 보였다면, 이제는 그 소임의 막중한 책임까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중책 맡은 사람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게 되었고, 나 자신이 인정 못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오랜 업식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간단치는 않았지만, 내가 나를 내버려 둘 수 있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편해졌습니다.

20년 2월 모둠회의 진행(왼쪽에서 네 번째)
▲ 20년 2월 모둠회의 진행(왼쪽에서 네 번째)

소임으로 중심 잡기

남편이 떠난 후 홀로서기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현재 경제적, 체력적으로, 누리고 있으므로 활발히 활동해야겠다 다짐합니다. 코로나 상황이, 여행 등의 개인적인 욕구로 들뜰 수 있는 나를 정토회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했습니다. 법당 도반들의 응원과 따스한 지지가 소임을 해나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2019년 아들과 캄보디아 여행 중
▲ 2019년 아들과 캄보디아 여행 중

아들 결혼으로 혼자가 된 지금, 심적 기복이 있는 속에서도 소임이 큰 복임을 거듭 느낍니다. 소임이 중심을 잡아줍니다. 만약 소임을 맡지 않았더라면 온갖 생각에 빠져 외로워하고, 원망하며 아들을 힘들게 했을 터인데, 바쁘다 보니 집착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채워지는 어떤 것을 느낍니다. 수행하며 여기까지 온 나를 보고 있노라면, 허전함과 외로움들이 차츰 사라지고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 때는 결과적으로 '내 문제구나, 피하고 싶어 했구나'를 알아차리고 돌아옵니다. 숙이고 싶지 않은 마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를 알아차리면 왔다 갔다 하는 중에도 편안합니다. 이렇게 1차 만일결사5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경의선 숲길에 면한 소박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출입문 밖의 환한 햇살과 초록이 눈부셨습니다. 이영미 님도 그 초록과 햇살처럼 싱그러웠습니다. 오월의 햇살처럼 환한 이영미 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좋은 기운을 받아 가볍고 흐뭇했습니다.

글_서현주(희망리포터 서울제주지부 구로지회)
편집_이정선(경남지부 진주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입재식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3.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4. 서원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발심행자 3년 후 추천과 심사를 통해 서원행자 자격이 주어짐. 서원행자는 임원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가짐. 

  5. 만일결사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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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

이영미 보살님 !여기서 뵙게 되니 많이 반갑네요.
진행도 잘하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고맙습니다 ^^

2022-06-25 14:34:20

선혜경

이렇게 살아내시는 모습에 저도 힘이 납니다.감사합니다

2022-06-14 18:49:50

공양행

이런 어려움을 지나오면서도 수행으로 중심잡고
늘 밝은 모습 보여주신 영미님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2022-06-14 11: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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