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광명지회
보리수 정진, 통일의 일꾼을 꿈꾸다

정토 사회문화회관을 지키는 프로그램, ‘보리수 정진’을 들어보셨나요? 인터뷰 내내, 일과 수행의 통일을 이뤄가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 봄비처럼 촉촉이 가슴에 내려앉는 체험을 했습니다. 정토회와 보리수 정진을 만나 삶이 달라진 유경호 님의 잔잔한 이야기,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정토회 인연

특별히 힘들다거나, 삶이 벼랑 끝에 있어서 정토회를 만난 건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대리 생활 4년 차가 될 무렵, 영어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우연히 정토불교대학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외삼촌은 목사이고, 부모님도 제가 신앙생활을 하길 은근히 바라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렇다고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집안 분위기는 아니어서, 정토불교대학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당시에 허무함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회사생활도 의미를 찾지 못해 무료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잘 쓰이는 삶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JTS 다문화센터 주변환경정화 활동 중(맨 오른쪽)
▲ JTS 다문화센터 주변환경정화 활동 중(맨 오른쪽)

마침 영어학원 맞은편에 있던 대전법당에서 수행 법회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정토불교대학을 권유받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하던 도반이 <깨달음의 장>1 얘기를 꺼냈고, 다녀온 사람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며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4박 5일 시간을 내서 <깨달음의 장>에 참가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제가 완전히 잘못된 관점으로 세상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덕분에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JTS 다문화센터 인연

이사를 많이 다녀서 6개 법당을 돌아다니며 정토불교대학 공부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안산과 군포 부근에 자리를 잡았는데, 법당일 외에 제가 직접 활동하면서 쓰일 수 있는 곳이 JTS 다문화센터였습니다. 정토경전대학 공부를 시작한 2019년 무렵, 옥수수 모금을 하면서 다문화센터와의 인연이 깊어졌습니다. 처음부터 봉사에 흔쾌히 마음을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모금 운동하러 나가는 월광 법사님 덕분에, 회사 퇴근 후 몸이 피곤해도 참여했습니다.

술에 취해 소리치는 사람, 왜 자신의 구역에서 돈을 걷냐고 따지는 등, 시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북한 어린이를 돕자는 내용이어서 그런지 무관심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오히려 안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호응해주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어렵고 날씨가 추운 시기에, 타국의 아이들을 위해 천 원, 이천 원씩 기부하는 외국 청년들이 참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자신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같았습니다.

취약계층 지원사업 활동 중(맨 왼쪽)
▲ 취약계층 지원사업 활동 중(맨 왼쪽)

어두운 곳에 모여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때로는 사장 험담하는 일상 속에 있을 외국 청년들이 법사님의 도움으로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능력 좋은 자본가가 큰돈을 투척하여 쉽게 해결하는 대신, 더 많은 인연이 덕을 지을 수 있도록 법을 전했습니다.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전단을 보여주며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시키는 과정은 지역 정서를 정화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취지는 북한 어린이를 돕자는 것이었지만, 기부자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안산의 이미지가 따뜻하게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월광법사님 덕분에 정토회 봉사와 인연을 맺고 뿌리를 내려서 여기까지 잘 왔습니다. 법사님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빚 갚는 자세로 맡은 첫 소임

정토경전대학 졸업 후 월광법사님의 권유로 가을 정토경전대학 진행자를 맡았습니다. 제가 학생 때 진행하고 챙겨주던 도반들의 노고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바쁜 시간을 쪼개어 봉사하는 것임을 깨닫고, 빚진 마음을 갚는 자세로 소임에 임했습니다. 학생들이 성실히 출석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처음이다 보니, 주제넘게 굴거나 정토회 사상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나 조심스러웠습니다. 불편했다기보다는 해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습니다.

정토경전대학 진행자 교육에서, ‘졸업하는 학생이 1명이어도 상관없다. 진행을 끝까지 마치는 게 중요하다’라고 유수스님이 말했습니다. 덕분에 관점을 잘 잡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워낙 프로그램과 진행자 말 등이 체계적으로 잘 짜여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우리가 수업도 알아서 여닫고 봉사하며 졸업해도 되는데, 그래도 젊은 청년이 와서 더 의미가 커졌다’라고 반겨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덕분에 다 차려진 밥상에 밥을 맛있게 떠먹는 것처럼, 편안하게 소임을 했습니다.

선물 같은 보리수 정진

정토경전대학 진행에 이어 온라인 정토경전대학도 맡으면서, 주말을 제외한 한 주가 정토회 봉사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면서 무심하게 보였는지, 예상치 못했던 인사고과를 받았습니다. 원하는 때에 진급하지 못하니 조금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를 증명할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다문화센터에서 자주 만난 노기선 님이 보리수 정진 프로그램을 추천했습니다. 정토 사회문화회관을 관리하는 봉사자들의 정진이기에, 저의 자격증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보리수 2기에 참여했고, 현재 3기 진행과 사회를 보고 있습니다.

대부도 환경정화 활동 중 다문화가정 친구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 대부도 환경정화 활동 중 다문화가정 친구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보리수 정진은 ‘건물관리’ 봉사를 통해 알아차림을 실천하는 일종의 백일 정진 프로그램입니다. 일반회원들뿐만 아니라, 전법 활동을 잠시 쉬고 있는 도반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기수당 30~40명과 20명의 스태프로 구성되어서, 보리수 정진 1, 2, 3기 모두 합쳐 100여 명의 도반이 활동합니다.

사회를 보는 저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많은 도반이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관리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유수 스님과 법사님들도 보리수 정진 프로그램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고, 완성형이 아닌 적응형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기 때는 사무실을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2기부터는 기술적 측면과 아울러 수행 측면을 살피기 위해 고민했고, 3기는 더욱 안정된 프로그램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4~5시간 동안 봉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소방시설, 상하수도시설, 엘리베이터 시설, 공조기, 환풍기, 냉난방기, 전기시설, 통신설비 등 건물의 운영과 관련된 모든 것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 둘러봅니다. 매주 봉사자들과 법사님과의 점검이 있고, 한 달에 한 번 5시간씩 점검받는 일정이 있어 수행으로 꽉 찬 느낌입니다.

저는 보리수 정진이 일과 수행을 일구는 참으로 귀하고 알찬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봉사자들은 명심문을 받고 매주 점검을 받습니다. 초반에 묘덕법사님이 저에게 ‘팀장님, 감사합니다’라는 명심문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감사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관점이 생겼습니다. 도반들이 받은 명심문은 모두 다릅니다. 처음엔 잘못 받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도반도 있는데, 수행하다 보면 모두 다 자신에게 적합한 명심문임을 깨닫습니다.

보리수 정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매주 같은 시간에 만나는 도반들끼리 부딪침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술 관련 이야기를 할 때, 다 아는 내용이라 긴 설명을 듣기 싫어하는 도반도 있고, 반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도반도 있습니다. 각자 받아들이는 업식이 다르다 보니, 더 세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또한, 회사에서 겪었던 문제가 봉사하러 온 도반과 되풀이됨을 보며 저 자신을 점검하는 계기를 얻습니다.

다문화가정에 조인성 이불나눔 활동 중(맨 왼쪽)
▲ 다문화가정에 조인성 이불나눔 활동 중(맨 왼쪽)

무엇보다 정토회 프로그램 어디에나 녹아있는 마음 나누기는 단순한 제 삶에 큰 자양분을 줍니다. ‘어려운 삶의 과정에서 저런 마음을 낼 수도 있구나’라며 배우고, 눈앞에서 생생히 듣는 이야기 속에서 다름을 직접 체험합니다. 특히 같은 상황을 함께 겪으며 봉사한 도반이 마음을 나눌 때는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인식의 폭이 넓고 견고해지면서, 든든한 상가공동체를 이루는 도반의 소중함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10월에, 정토 사회문화회관 건물에서 상주하는 안전관리 대행업체와의 1년 계약이 만료됩니다. 보리수 정진은, 우리가 그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지 시도해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건물이 팔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원봉사로 운영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건물을 돈 들여 유지하는 것보다 결과적으로는 더 큰 이익이라고 확신합니다. ‘안되더라도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을 모아서 후회 없이 가고 있습니다.

더 의미가 커진 자격증

전기기사 자격증 취득은 이직을 목표로 작년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의 저는 더는 회사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정토회 전법 활동가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는데 저만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애매한 고시생 같았습니다. 부담감으로 자격증을 공부하는 저에게 법사님이 ‘확 떨어졌뿌라’라고 가볍게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회에서 자리 잡아보려고 애쓰던 중에 보리수 정진을 만나서, 예상치 못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토 사회문화회관 관리를 위해서 자격증을 준비했던 것도 아니고, 작년에도 올해도 저는 변함 없이 그대로인데, 보리수 정진 프로그램에서는 저를 환영해주고 ‘잘한다’라고 격려해줍니다. 정토회에서 그 역할을 맡아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저도 이렇게 잘 쓰일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가볍고 신나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월광법사님 활동 영역이 넓어서 곁을 따라다니다 보니 거리 모금부터 시작하여 에코붓다, 평화재단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디에서 가장 잘 쓰일까? 평화재단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에 일조를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습니다. 이제는 보리수 정진에 제가 잘 쓰이고 싶습니다.

건물 유지와 관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남북이 통일됐을 때 본인이 가장 먼저 토목과 관련된 소임을 위해 북한에 달려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한 도반이 있습니다. 저도 전기 엔지니어로서, 남북을 잇는 전선으로 불빛을 밝히는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정토 사회문화회관의 전기와 건물관리 소임은 제가 소신 있게 꾸준히 해보려 합니다. 다만 잘 쓰일 뿐입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행사안내 중(맨 오른쪽)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행사안내 중(맨 오른쪽)


보리수 정진하며 가스와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도 취득했다는 유경호 님. 성실함이 뒷받침된 수행 속에서 행복과 보람을 꽃피워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또한, ‘한 사람을 알리는 인터뷰가 아니라, 정토 사회문화회관의 보리수 정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유경호 님의 마무리 나누기에서 선함과 진심을 느꼈습니다. 언젠가 남북을 오가며 불을 밝히고 있을 유경호 님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유경호 님을 비롯한 많은 수행자 덕분에 정토 사회문화회관의 내일이 밝습니다. 함께하는 인연에 고맙습니다.

글_이정원_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_광명지회)
편집_성지연(강원경기동부지부_경기광주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4

0/200

명덕행

사회문화회관 관리 유지를 위해 자격증을 따는 도반님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보리수정진이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2022-05-05 06:14:15

박신영

젊은 도반님의 나누기 소소하게 가슴에 와닿아 잔잔한 감동이 일어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봉사정진 저도 본받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5-05 05:42:52

반야지 안현주

도반이 전부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05-01 17:21:37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광명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