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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누나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적으로 성공했지만 매우 엄격했습니다. 자식들에게 필요 이상의 용돈은 주지 않는 대신 교육만큼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누나와 함께 문방구에서 6천 원을 주고 카네이션을 샀다가 아버지에게 혼이 나고 다시 환불해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끼며 성실히 살았는데, IMF 때 사업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큰아버지한테 사기까지 당해 서울에서 안산으로 이사 왔습니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매일 분을 못 이겨 화가 나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더욱더 심하게 화를 내고, 그로 인해 가족들은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언제나 집을 나와 독립해서 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족들을 통제했습니다. 안 하던 집안일을 하며 우리 남매를 관리했습니다. 방문은 항상 열어둬서 언제든지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몸은 책상에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현실이 아닌 공상의 세계로 도망 다녔습니다.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해운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감정을 적절히 숨기며 일도 성실하게 하니, 회사 내 평판도 좋고 능력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서른 살때 쯤 무슨 일을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쉽게 지치고, 글자를 읽는 게 힘들었습니다.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음식을 씹어도 아무 맛이 나지 않는 것처럼 즐기려 할수록 즐거움이 사라졌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화와 짜증이 많아졌습니다.
통제가 안 되고 점점 이상해진다는 생각에 심리학책을 찾아보고, 상담 치료도 받고, 병원에 가서 우울증약 처방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약을 먹고 찾아오는 무력함 때문에 일을 하기 힘들어서 몇 번 먹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교회도 다녔습니다. 그러나 성경 내용을 들어도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도 감흥이 없었습니다.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 답답함만 더 커졌습니다.
2014년 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법륜스님의 유튜브를 보았습니다. 스님이 질문자에게 대놓고 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는 따끔한 말씀이 시원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정토회를 알게 되고, 법당에 찾아갔습니다.
2016년 봄 불교대학을 입학하고, 2018년 경전반 졸업도 했습니다. 뭔가 크게 좋아진다는 걸 느끼지 못하며 슬슬 다른 길로 가고 싶어졌습니다. 글쓰기 카페에 가입하거나, 집단 상담이나 미술치료 등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스님의 ‘못해도 3년은 해봐야 한다’는 말씀에 조금 더 남아 있어 보기로 했습니다.
2018년에 계속 핑계 대며 미루던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제가 저를 얼마나 가혹하게 대하는지 알아차렸습니다. 생각 속에 빠져서 마음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작은 실수에도 자책했습니다. 특히 남에게 약점 잡힐 만한 행동을 보였을 때는 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어 아주 괴로웠습니다. 지적하는 상대방보다 그런 행동을 한 자신을 혼내고 다그쳤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집에 와도 긴장감에 피곤이 몰려왔고, 알지 못하는 상대는 피하고 모르는 번호는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당당하게 보일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잘하는 모습만 남들 앞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일들은 잘할 때까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습니다. 잘 알지 못하고 자신 없는 일은 피했습니다. 봉사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끝까지 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무슨 일이든 고개를 돌리고 거절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자책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니 숨통이 트였습니다. 밥 먹으면서 세수하면서 거울을 보면서 자주 울었습니다. 저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무덤덤하고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풀리자 마음 나누기하면서 과거의 상처들이 점점 입 밖으로 나왔습니다. 상처를 드러내며 치유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상처받은 기억을 말했을 때 당시 법당 부총무 원호성 님이 저에게 “미안해”라고 말하며 제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 마치 부모님이 저에게 말하는 것 같아 원망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저에게 이어진 모든 악업을 제 손으로 끊어서 저와 온 가족이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발원했습니다. 도반들과 나누기를 할 때만큼은 어떤 것도 숨기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했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저를 알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힘들지만, 재미도 있습니다. 마음이 간절해지면서 명상수련을 6번 다녀왔고 매일 명상하는 시간도 10분에서 30분, 1시간으로 점점 늘어났습니다. 절도 108배에서 200배, 300배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명상수련을 통해 기억하기 싫은 과거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을 오직 호흡으로 마주하자 그것들이 소멸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남 탓하거나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며 위로받지 않아도, 내가 나를 충분히 위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2018년 가을 무렵 법당에서 회계 봉사를 했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더 찾다가 무작정 JTS 안산 다문화센터로 가서 월광법사님께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음먹고 새롭게 해보겠다 했지만, 법당봉사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일하는 시간과 양은 매번 달랐고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일하다가 시간 되었다고 핑계 대고 도망갈 때도 있었습니다. 법사님한테 전화 오면 회사에서 일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봉사하는 것보다 직장 일 하는 게 더 편할 때가 많았습니다. 기껏 마음 내서 왔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만두고 편해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봉사하는 태홍 님과 경호 님을 보면서 좀 더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파도 치료 못 받고 괴로워하는 외국인 노동자, 부모가 바쁘게 일하느라 방치되는 아이들, 언어를 몰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들... 제 삶이 괴로웠던 건 그저 작은 고통을 상상으로 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쳐서 아프고, 먹지 못해 배고프고, 억울해도 말하지 못해서 고통스런 삶을 눈앞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봉사하고 집에 돌아와 지친 몸으로 누웠습니다. 내 삶은 나쁜 게 아니라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기도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2019년 겨울, 센터에 온 많은 손님 중 기억에 남는 두 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 분은 먼 (태국인 가명) 님입니다. 법사님이 센터로 더럽고 술 냄새 때문에 가까이 가기 싫은 외국인 노동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알코올 중독에다 병들고 제대로 소통도 안 되는 사람을 월광법사님과 봉사자들이 씻기고 먹이고 간호하고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주었습니다. 몇 달간의 보살핌으로 건강이 회복되는 과정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그때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거리를 두고 다른 봉사자가 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습니다. 회복된 먼 님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센터에서 봉사하는 도반들이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두 번째 손님은 우미드 (고려인 가명) 님입니다. 왔을 때부터 정신질환과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정신과 몸이 성하지 못했습니다. 고성과 난동을 부리고 병원 가는 중에 도망쳤다가 갑자기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봉사자 회의 중 ‘우리는 감당 못 한다’와 ‘좀 더 해보자’라는 의견이 팽팽할 정도였습니다. 의사는 고국에서 죽을 수 있게 준비해 주자고 했습니다. 몇 달간의 치료와 보살핌으로 점점 건강해졌습니다. 귀국 전 저희와 함께 봉사하고 소풍 갔던 일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두 분을 보면서 ‘누구나 변할 수 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만한 노력과 상황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변화에 필요한 총량을 처음부터 잘못 알고 눈앞에 보이는 결과에 실망하고 포기하면서 살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처음과 끝만 보면 기적 같은 일이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쏟은 정성과 지원을 지켜본 저는 기적이라는 말을 감히 쓸 수 없었습니다. 이후 센터에서 일하는 봉사자 한 분 한 분이 귀하게 여겨졌고 모두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센터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새겨지니 서로 의견이 갈리거나 틀어져도, 도저히 미워할 수 없습니다.
막연하게 답답하고 불안했던 시절이 정말 있었나 할 정도로 편안해졌습니다. 생각 속에 빠져 화가 나거나 기뻐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제가 오기 전에 정토회를 먼저 일구고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다문화센터에서 봉사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제 앞에서 먼저 하고 있지 않았다면 의심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이끌어 준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저는 행복한 수행자이며,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주인공을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안산 희망 강연 때였습니다. 멋진 카메라로 사진 봉사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항상 봉사 현장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했습니다. 드디어 인기영 님과 인터뷰를 하게 되어 감동했습니다. 실천하는 정토행자로 당당하게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을 응원합니다.
글_인기영 (인천경기서부지부 광명지회)
정리_김용태 희망리포터 (인천경기서부지부 광명지회)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 수성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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