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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법당에서 불교대학 수업을 못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습니다. 온라인 불교대학 스텝과 행복학교1 진행자 소임을 맡았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기계치인지라 컴퓨터 사용이 어려워 남편과 딸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듣고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메모를 해놓고 따라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분명 가르쳐 준 대로 똑같이 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남편은 "왜 할 줄 모르는 네가 맡았냐? 할 줄 아는 다른 사람 시키고 모르는 너는 빠져"라고 했습니다. 또 컴퓨터 기초를 먼저 배워야 한다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이러한 남편의 잔소리는 견딜 수 있었지만 배운 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 또한 수행이라 생각하며 소임을 해나갔습니다. 코로나로 학교를 안 가는 딸에게 용돈을 주며 컴퓨터를 배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차근차근 배우며 진행을 했지만 작은 실수는 발생했습니다. 진행할 때 화상 채팅 창 주소를 2개로 만들어 학생들이 방 2개로 나뉘어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불교대학은 처음이라 긴장되고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의 열정과 따라하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 조작의 작은 실수도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남편에게 컴퓨터가 느려 불편하다고 했더니 새 컴퓨터를 사줬습니다. 가끔은 남편이 보기에 제가 시간에 쫓기는 듯 하면 스케줄을 물어봐 주기도 해서 고맙습니다.
온라인 불교대학 스텝과 행복학교 진행자 소임을 하던 중 시아버지가 쓰러졌습니다. 가볍게 간호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불교대학 수업 행복학교가 있는 날은 휴가를 내서 남편이 돌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든 가볍게 받아들이고 수행하는 일이 자연스럽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수행한 덕분입니다. 일상생활 작은 것에 감사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지금 여기 깨어 좋으면 미래도 좋다’라는 말을 새기며 행복하게 삽니다. 그러나 이 행복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저는 부산의 평범한 가정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특별할 것 없이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자상했고, 술, 담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한때 어려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가족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힘든 노동 일을 했고 어머니도 장사를 해서 곧 집은 안정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이 유학 중 방학을 맞아 잠시 부산으로 왔을 때 만났습니다. 남편은 서울 사람이라 다정했고 에너지 넘치며 스마트한 얼굴에, 학벌도 좋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남편의 장점이 쥐약인 줄. 결혼을 해서 보니 큰아들로서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행동들이 독선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시어머니는 남편을 자신의 남편이자 아들로 생각했고 남편도 시어머니에게 지나칠 만큼 잘하니 신경이 쓰였습니다.
결혼 후 시어른들과 3년을 살았습니다. 남편 회사가 본사를 사천으로 옮기는 바램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분가 할 수 있었고 늦둥이도 낳았습니다. 남편은 한창 바쁘게 회사 생활을 하는 시기여서 저 혼자 독박 육아를 하며 몸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이웃을 만나 의지하며 그럭저럭 힘든 육아를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야근과 회식으로 바쁘던 남편이 몸이 이상하다며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위암3기였습니다. 남편은 수술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힘들어 했습니다. 시동생이 있지만 집안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모님에 대한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픈 건 고치면 된다.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함께 이겨내자"라고 남편을 다독였습니다. 수술은 잘됐고 힘든 항암 치료도 잘 이겨냈습니다.
남편의 건강을 위해 아침 등산을 자주 다녔습니다. 6개월 병가 동안 가족들과 일본여행도 하고 국내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또 아이들과 캠핑도 다니며 재밌게 보냈습니다. 이 기간에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많이 쌓았고 가족 간에 정이 더 돈독해졌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예전과 다르게 체중이 10~15kg이 빠져 체력도 약해졌고, 또한 재발 위험이 있어서 식사와 영양에 늘 신경 써야 했습니다. 튀긴 음식은 못 먹고 고기도 삼가며 나물 위주로 먹어야 했습니다. 다양한 조리법을 연구하고 신경을 많이 써서 조리했습니다. 그렇게 잘 해나가면서도 가끔 불안함에 사로잡혀 무기력해졌고 답답할 때가 있었습니다.
힘든 5년이 지났고 남편 식사 준비와 아이 교육으로 지쳐갈 때 지인의 소개로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지인은 남편 직장 동료의 부인으로 처지가 저와 같았습니다. 지인도 남편이 암이어서 동병상련을 느꼈고 식사 준비나 다른 여러 가지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차 믿고 의지하는 맘이 생겼고 정토회에도 관심이 가서 유튜브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찾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직접 들었습니다. 얼마 후 사천에 법당이 생겼고 바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절에 다니며 친구들과 불교 모임을 하고 수다도 떨었지만 결혼 후에는 가정에만 충실하다 보니 이런 모임을 할 수 없어 답답하고 우울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며 이런 답답한 마음을 조금씩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불교대학 법문을 듣는 오전 시간은 집안 일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오롯이 저만의 시간이었습니다. 또 낯을 가리고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만 사귀는 성격도 변했습니다. 법륜 스님과 함께 한 불교대학 남산 순례는 결혼 후 남편과 아이를 두고 떠난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깨달음의 장2과 인도성지순례도 다녀왔습니다.
인도성지순례 때는 ‘스님은 걸음마저도 깨어 있으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말을 줄이고 침묵하며 여법하게 행동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많이 피곤해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한 번 더 갈 기회가 있다면 그때보다 더 여법하게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다.
저는 남편이 법당 다니는 것을 반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힘드니까 법당 봉사를 그만하라고 했고 문경수련원이나 죽림정사에 갈 때마다 눈치를 보며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보니 4박 5일 〈깨달음의 장〉에 갈 때 남편이 태워주었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남편이 데리러 와주었습니다. 그리고 15박 16일 인도성지순례도 다녀오라고 해주었습니다. 아이 교육과 자신의 식사에 신경 쓰면서 법당 소임까지 하는 저를 보며 그만하라고 말한 것은 쉬라는 남편의 배려였던 것입니다. 그 고마운 마음을 모르고 남편을 오해했습니다.
정토회를 다니기 전에는 제 생각과 감정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를 다니며 수행하다 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인정하고 되었고 사람을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서울에 사는 시어른들이 진주로 내려 오셨습니다. 시동생이 알코올 중독으로 갑자기 죽어 시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시어머니의 당시 상태로는 수술을 할 수가 없어서 항암치료만 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항암 치료를 중단했고 알레르기와 허리 통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주중엔 병원 다니고 주말엔 음식 해서 어른들과 함께 식사했습니다. 남편은 회사 일 핑계로 도와주지 않으면서 법당 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시댁, 병원, 남편 식사, 아이, 법당. 바쁘게 동동거리며 체력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시어른들께는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명심문으로 가볍게 했습니다. 남편에게는 ‘숙이겠습니다’라는 명심문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남편은 골프, 바이크 등으로 자기 취미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도 ‘숙이겠습니다’라는 명심문을 계속했습니다.
법당에 가면 참 편안했습니다. 법문을 듣고 공양도 하고 봉사 활동도 같이 하는 도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문을 들으며 괴로움이 무엇으로부터 왔는지 생각할 수 있었고 저를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사천법당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리며 각자의 어려움도 들어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네 하고 합니다’를 실천하는 독수리 오형제 덕분에 저도 ‘네 하고 합니다’를 덩달아 실천했습니다.
처음에 불교대학을 다닐 때 남편에게 일주일 중 하루만 법당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행법회도 듣고 봉사도 하고 천일결사3 모임이나 회의로 법당에 나와야 할 때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남편이 아프고 힘들 때는 항상 옆에 있어줬는데 건강해진 후 법당에 자주 다니니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힘들어 ‘다니지 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곳을 가도 사천법당 독수리 오형제만한 도반들을 못 만날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도반들과 사천법당의 실천장소인 죽림정사에 봉사하러 갑니다. 3·1절에 음식 봉사를 했던 좋은 경험이 떠올라 죽림정사 봉사를 선뜻 자원했습니다. 사천법당에서 매주 사시예불에 목탁도 치고 축언도 하고 공양을 하던 경험이 쌓여 죽림정사에서도 첫째 주 목요일 사시예불을 합니다. 또 죽림정사 법당청소도 합니다. 사천에서 죽림정사까지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남편은 먼 거리를 작은 차를 타고 가는 것이 불안했는지 더 좋은 차로 바꿔주었습니다. 이 차로 안전하게 차량 봉사를 할 수 있어 기쁩니다.
정토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어떤 삶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법문을 듣고 명상을 하며 나를 돌아보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또 사회가 바라는 물질적인 성취만 바랐을 것입니다. 남편의 직장에서의 성공, 자식의 공부와 성공, 좋은 집, 돈 등.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무상함을 깨쳤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수행할 수 있는 행복한 수행자가 되어 좋습니다.
무슨 일이든 가볍게 받아들이는 오경희 님이 대단해 보입니다. 남편, 시댁 어른, 딸에게 최선을 다하고 법당의 소임까지 맡아 기꺼이 행하는 오경희 님이 도반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오경희 님의 수행담, 나누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글_오경희(사천법당)
정리_구지숙(사천법당)
편집_한숙(서초법당)
행복학교 행복해지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적 의식이나 프로그램을 배제하고, 법륜스님의 행복 메시지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연습을 함께 하는 곳.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12강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음.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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