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북한지원이 원활하던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으로 우리 정부의 지원이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당시 정토회에서는 ‘백만인 서명운동’을 하며 서명과 모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산지역은 북한을 돕는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커서, 저는 남편과 고등학교 동기이고, 평소 다른 단체에도 후원하고 있는 한의사를 찾아갔습니다. 한의원을 방문하는 분들께 서명을 받게 해 달라고 부탁하니, 서명판을 집어던지며 “나 못한다!” 이러는 겁니다.
믿었던 분에게 거절당하니 막막해지며, 어찌할까 생각해보니 제가 잘하는 게 철야정진이었습니다. 마산법당 근처 3·15 의거가 일어낫던 거리에서 21일간 철야정진을 하면서 서명을 받았습니다. 저녁시간에는 도반들과 함께 서명과 모금 캠페인을 하고, 막차로 도반들이 돌아간 이후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혼자 계속 절을 했습니다. 근처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손님들도 오다가다 제가 계속 절하는 것을 보더니 모금을 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룻저녁에 10만 원 이상, 21일 동안 200만 원 이상 모금이 되었고 서명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21일째 되는 마지막 날 저녁에 그 한의사가 나타났습니다. 혼자서 밤새 기도하는데, 그분이 “뭐하노!”하는데, 저는 미워했던 건 다 없어지고 “어머, 원장님!” 했습니다. 그 분은 남편 밥 안 해주고 뭐하냐고 하면서 만 원을 넣어주고 갔습니다.
한번은 비가 와서 자리를 옮겨서 기도하고 있는데 어떤 술 취한 사람이 ’아줌마, 뭐 때문에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해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하였습니다. 그때 그렇게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내는구나. ‘이게 기적이구나!’를 기도하면서 느꼈습니다. 그 체험을 통해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배웠습니다.
그래도 결국 2010년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고, 연평도 포격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고 하였고,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닥쳤습니다. 천일기도 회향 후 쉬는 기간에 터진 것이었습니다. 3년 만에 쉬는데 또 기도하자고 할 수 없으니 혼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철야정진을 해봤으니 기도가 제일 쉽잖아요?
혼자라도 광화문 가서 기도를 하겠다고 했더니, 스님께서 "추운데 길거리에 내보내야 하니 마음이 아프다" 하시며 조계사를 알아봐주셨습니다. 조계사에서 허락은 받았는데 당시 시민들의 반응이 너무 거세니까 일주일만 기다려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이미 계획을 잡았으니 광화문에 가서 12월 25일부터 7일간 기도를 했습니다. 스님께서 "혼자서 하루 10시간 기도를 할 수 있겠나?" 물으셨는데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첫날은 날씨가 무척 추웠습니다. 스님께서는 1인 시위니까 아무도 옆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날 날이 추워서 스님도 울고 동행한 도반들도 다 울었습니다. 그 주변을 돌면서, 사람들이 도시락도 싸주고, 차도 태워주고, 경찰관이 손난로를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화장실을 갔다 오면 또 누군가 그 자리를 메워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다 ‘기도는 하기로 한 것보다 더 하는 게 기도’라는 스님 말씀이 생각나서 연말을 지나 연시까지 기도했습니다. 다음 해 1월 3일 10시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부 시무식과 같이 기도가 끝났습니다.
추운 날씨라서 옷도 많이 입고, 장갑도 두 개 세 개 끼고 절을 해서 생각보다 많이 춥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손은 많이 시렸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날 수 있고 북한에 굶어 죽는 동포를 생각하면 못할 게 없었습니다. 하기로 한 날짜보다 기도를 더 할 수 있었던 건 도반들의 격려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어떻게 했겠어요.
기도하면 진짜 모두가 돕는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3월 1일 기념식 하고 그 이후 이틀 간 준비하여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화장실 가는 시간 포함해서 하루 11시간 씩 3일동안 청와대 앞에서 했는데, 신원 확인 하는 담당자가 바뀔 때 마다 계속 여기서 뭐하냐고 물었습니다. 또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아져서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부처님께서 국경 변에서 전쟁을 막으셨던 것이 떠올랐고, 그렇게 ‘임진각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같이 봉사도 하고, 옷도 사주고, 도시락도 싸준 일산에 사는 도반 두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 바보 셋이 기도를 하자.’하며 시작했습니다. 바보 셋이 머리를 맞대면 문수의 지혜가 나온다고 어느 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거든요. 임진각에서 ‘7천만 민족을 대신해서 참회합니다.’ 하며 2시간 동안 300배 정진하고 40분 평화 명상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외국인들이 와서 함께 기도하기도 하고, 고향을 등진 사람들의 아픔도 알게 되는 등 감동적인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때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지 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일로 생각하면 무거운데, 그걸 왜 해야 하는지를 알면 그냥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도와주는 사람도 정말 많고. 참회하며 온몸을 낮춰 절을 하니 비난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알게 됩니다. 도리어 그분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니까 비난하다가도 다시 도와주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기도하면서 하면 나부터 평화로워집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통일기도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사천왕사지 기도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산이 제 고향이니 봉림사지에서도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강화도와 철원도 시작하더군요. 임진각의 기도가 뻗어나가는 것을 보며 ’스님의 가르침이 씨앗이 되어 품고 있구나. 누구에게라도 알리면 변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백일기도 실천 과제가 ‘밥 한 공기 나누기’였던 적이 있습니다. 천 원씩 모아 북한 돕기를 하는 것인데, 그때 6학년이었던 아들이 같이 따라다녔습니다. 엄마가 모금하러 다니는데, 안 주는 사람이 많으니 보면서 안쓰러웠나 봅니다. “엄마, 다음 생에는 미국에서 제일 부잣집 딸로 태어나서 어려운 사람 마음껏 도와주세요.”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또 아들이 고등학교 때 제가 마산 창동에서 밤마다 모금을 했는데, 친구들이랑 지나가다 모금하는 모습을 본 겁니다.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엄마, 엄마는 정토회에서 높은 사람 되지 마세요. 길거리에 있을 때 가장 빛나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자식 낳아서 아들한테 내가 받을 거 다 받았다. 이제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했습니다.
말 그대로 '길거리에 있을 때 가장 빛나는 월광법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정토행자의 통일기도의 역사를 되짚어봤습니다. 철야정진이 제일 쉽다며 밝게 웃으시는 법사님의 미소에서 행복이 묻어납니다. 내일 이 시간은 월광법사님의 가족과 다문화센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내일 이 시간에 월광법사님 세 번째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낭독_고정석
글,사진_경남지부 희망리포터
편집_온라인.홍보팀
전체댓글 22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특집]오디오북’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