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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이나 연구원들이 많아 늘 오고 감이 잦은 워싱턴 정토회. 그곳에서 묵묵히 활동을 이어온 몇 안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분인 이화영 님과의 첫 연락,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바로 ‘부드러운 강함’이었습니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필요한 것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에서, 오랜 세월 '지원 소임'을 맡아온 깊은 내공이 지긋이 전해졌습니다.
디자인 일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2008년에 미국에 왔습니다. 오빠, 언니, 저까지 모두 미술을 전공해 주변에 그림 그리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많았습니다. 공대 출신 남편을 만나 미국에 와보니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과 많이 달랐고 환경도 낯설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2010년에 임신을 했는데, 임신당뇨로 아기 심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철저하게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했지만, 결국 아기는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다가 나와야 했습니다. 산후조리는 엄두도 못 냈고, 육아를 도와줄 사람도 없어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처음 하는 육아에 남편과 자주 다투기도 했습니다.
2013년, 아이가 세 살 때 우연히 포스터를 봤는데 법륜 스님을 법정 스님으로 잘못 봤습니다. '법정 스님이 운영하는 산사가 여기 있나 보다' 하고 찾아갔는데, 일반 절과는 다르게 그냥 회관 같았고 스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안 다니려고 했는데 넓은 마당과 북적이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편과 아이는 “가자”, 저는 “안 간다”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소임 경력이 화려하신데, 저는 쭉 지원 담당이었습니다. 마치 민원센터처럼 밤낮없이 텔레그램을 켜놓고 답을 했고, 회의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원 소임은 보고서나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이 많아서 원래 눈이 약한 채로 컴퓨터를 계속 들여다보다 결막하 출혈이 두 번 왔습니다. 허리 디스크도 있었고, 작년에는 이석증이 생겼고 1년 가까이 팔을 아예 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에는 갑상선 수술을 받아 지금도 매일 호르몬제를 복용합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따로 없습니다.
병가는 수술한 그 해에 한 달 낸 것 외에는 쉬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완벽주의 성격 탓에 정토회 일이든 집안일이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려는 마음이 큽니다. 지금은 아이를 하루에도 여러 번 학교와 운동부로 실어 나르고,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의 삼시 세끼까지 챙기다 보니 정토 일과 가족 일 사이에서 늘 뛰어다닙니다. 예전만큼 건강하지는 않지만, 작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모둠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 부족해도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출되자마자 일이 몰아쳤습니다. 우선 명상센터 개원식이 있었는데, 팬데믹 동안 공사가 계속 이어져 밖은 거의 공사장처럼 초토화된 상태였습니다. 5월 17일 개원식을 치를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습니다.
오래된 자재를 치우고 지하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대대적인 청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회관에 계시는 분들은 밤낮없이 일했고, 뉴욕 지역 회원들도 주말마다 도우러 왔습니다. 급할 때는 밤에 일을 마치고도 내려와 주었습니다. 행사 때 필요한 100명분 공양도 행사 전 주부터 내려와 준비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밤낮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당백으로 마음을 모아준 덕분에 개원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정말 ‘모자이크 붓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원식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오프라인 봉축 법회가 이어졌습니다. 워싱턴 도반들 모두가 “지난 3개월이 꼭 3년처럼 느껴진다”고 입을 모을 만큼 치열한 나날이었습니다. 6월에는 해외 지부가 주관하는 나눔의 장이 있어, 회원들을 챙기느라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피하고 싶다가도 후딱 해치우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계속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오래 가려면 나를 돌보면서 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정말 내가 못 할 상황이 되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못 하게 될 테니, 그전까지는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을 때까지 하자.’ 요즘의 마음가짐입니다.
수행을 하면서 편해졌습니다. 원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고집이 세고 자아도 강한 편이었는데, 수행과 소임을 거치며 점점 둥글둥글해진 것 같습니다. 갱년기 탓에 집에서 불쑥불쑥 성질을 내기도 하지만 뒤끝은 없습니다. 욱했다가도 금방 사과하고 돌아옵니다. 요즘은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가 만나 집안이 시끌시끌합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도를 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동굴 안에서 수행하다가 눈을 떠보니 어느새 세월이 이만큼 지나 있는 느낌입니다. 30대 초반에 미국에 와서 어느덧 40대 후반이 되었고, 2013년에 시작한 정토회 활동도 벌써 2026년이 되었습니다. 크게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 새삼 현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 제 삶은 정토, 가족, 그리고 그림입니다. 원래 섬유미술을 전공해 염색과 섬유 조형 작업을 했지만, 화학 염료를 많이 써야 해서 환경을 생각해 지금은 손을 놓았습니다. 대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그림을 그립니다. 자연을 워낙 좋아해 꽃을 모티브로 많이 그리다 보니 제 방은 그냥 꽃밭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실컷 그려보고 싶고, 그림과 디자인 재주는 필요할 때 조금씩 정토회에도 보태고 있습니다. 방구석 무명가수가 아니라 '방구석 작가'일까요.

나에게든 남에게든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꼭 뭘 해내야겠다기보다, 꾸준히 자연스럽게 가고 싶습니다. 정토회에서 수행하고 활동하며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고, 이런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연이 닿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 서원은 제 자신이 가장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고요.
그리고 우리 워싱턴 정토회 도반들은 저보다 건강이 안 좋은데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 배우며 지금까지 수행하고 소임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도반들이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화영 님은 소리 없이 강한 사람,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도반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이화영 님의 이야기가 문득문득 생각나, 지치던 리포터의 마음에 잔잔한 힘이 되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이화영님 곁을 지켜온 도반들 역시 이런 묵묵함에 크게 의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화영님, 고맙습니다.
글_김경진 희망리포터(국제지부 북미유럽지회)
편집_곽도영(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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