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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사 보리수 8기로 활동하고 계시는 정종석 님을 만나러 천룡사로 향했습니다. 등산로 초입에 걸린 “사랑하고 사랑받는 출발점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라는 문구와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이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인연 따라 이 글을 펼친 분 모두, 끝까지 읽는다면 글의 마지막에서 자신만의 희망을 찾아내실 겁니다.

1960년 4·19 혁명, 1961년 5·16 쿠데타로 나라가 흉흉했습니다. 1950~60년대는 혼란과 왜곡이 만연했던 혹세무민의 시대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에게 액운이 끼어 있으니 100만 원으로 지성을 들이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한다.”라거나 특정 종교 지도자가 “세숫대야 물에 손을 담그고 기도한 뒤 그 물을 나누어 마시면 모든 병이 낫는다”라는 식의 기복신앙이 많았습니다.
옛날 어른들이 다 그랬듯이, 저의 아버지 역시 종교라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태극도에 심취했습니다. 제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태극도 본부가 있는 부산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저는 종교단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자랐습니다. 그로 인해 부모님과 종교적인 갈등이 컸습니다.

저는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동생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직업을 가졌습니다. 이후 뒤늦게 학업을 병행하여 20세에 야간중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35세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방송통신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사는 게 참 재미없다는 생각에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한 번은 동물원에서 여러 동물을 보았습니다. 그중 곰, 사자, 코끼리, 호랑이 등은 태어날 때부터 강한 유전자를 타고났지만, 멧돼지는 그런 것에 기대지 않고도 강인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움직이는 생명력을 지닌 멧돼지를 내 인생의 마스코트로 삼고 열심히 살아보자’라고 다짐했습니다.

바른 믿음의 대상을 찾던 중 불교를 알았습니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법륜스님의 저서 《실천적 불교사상》을 읽었습니다. 차를 마시고 붓글씨를 쓰며 멋으로 하는 불교, 산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시나 읊조리는 도피주의, 글자 풀이로 먹고사는 학문주의, 오래 살기 위해 참선하는 건강주의, 가끔 조용한 산사를 찾아 심신을 달래는 이기주의, 세속의 이익에 눈이 어두운 출세주의, 병 고침을 내세우는 신비주의 등, 나름대로 삿된 길을 추구하며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것은 수행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실천하며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라는 구절를 읽었습니다. 제가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부처를 믿어라’가 아니라 ‘부처가 되어라’는 말이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2004년 2월 15일 해운대 법당 개원 때 법륜스님의 100일 법문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2004년 1-4-9차에 입재(당시 57세)하여 지금은 천룡사지 보리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60세쯤 편두통, 견비통,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했습니다. 병원을 방문하여 의사에게 하루에 108배 절을 한다고 하니, 너무 무리하면 큰일 난다 하여 처방약만 복용했습니다. 석 달간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아파도 매일 200배 정진을 했습니다. 아픈 증상이 자연스레 나았습니다. 새벽 정진으로 몸이 건강해지자 살아갈 의욕도 생겼습니다. 매일 부처님의 가피와 공덕 속에서 특별한 관리 없이도 웬만한 병은 자연 치유되었고,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행은 애써 하는 숙제가 아닌 일상입니다. 잠을 자듯이, 밥을 먹듯이 수행합니다. 주중에는 담당 구청 시니어클럽에 참여하여 매월 60시간씩 폐품 재활용을 위한 페트병 수거 봉사를 합니다. 주말에는 천룡사에서 보리수 회원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에는 통일의병 238번으로 통일만보를 걸으며 주택가와 민주공원에서 쓰레기를 줍습니다.
보시는 법 보시(책 보시), 법공양이 최고의 공덕입니다. 스님이 지은 책 《행복한 출근길》은 내용이 좋아서 영업사원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기대고 싶어 사랑한다는 《스님의 주례사》도, 《기도》도 내용이 좋았습니다. 정토 신서 《불교를 알면 21세기가 보인다》에서 "서원은 넓고 깊게, 선행은 낮고 지속적으로 실천하여야 한다"라는 말씀이 특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정토 총서는 열심히 줄을 그어 가며 읽었습니다. 《인생 수업》은 사위와 손자의 생일을 맞아 주변의 소중한 분들에게 나눴습니다.
책 공양을 할 때는 표지 뒷장에 법공양 발원 내용과 발원자를 기재합니다. 항상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법륜스님 아세요?"
"잘 알지요"
"책 선물 드릴까요?"
"아 좋죠" 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정토회의 수행 프로그램이 안내된 명함도 함께 건네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말합니다. 매월 《월간정토》 20부와 스님의 저서들을 인연 닳는 모두에게 선물합니다. 이제 남은 인생은 '법을 전하는 수행자로 살겠다' 서원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기도하라는 말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들렸습니다. 기복신앙에서는 “열심히 빌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라며 '기도'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비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저는 빌어서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에 '기도'라는 말 자체를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는 기도를 제가 알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나중에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화에 대한 인식도 보통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유교적인 집안에서 배우기를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참아라“라고 가르쳤지만, 정토회에서는 참지 말라고 합니다. ‘평생 참으며 살았는데 세상에 안 참고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지 말라'가 아니라 ‘참을 것이 없으니 화낼 일이 없다’였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까지 십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서구 문명의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이라는 생각에 인류 문명의 한계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 활동이 제 인생관을 바꾸었습니다. 저의 고민도 해소되었습니다. 유토피아는 실현이 불가능한 이상향이지만, 붓다피아는 구현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붓다피아에 저를 몰방해도 후회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이 형성된 후에는 법을 실천할 뿐 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저를 무서운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제 눈과 마주치기만 해도 야단맞았다고 합니다. 야단치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고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에게 "정토회에 와서 보니 해볼 만하더라. 불교대학 공부를 해봐라”라고 권했습니다. 아들이 단호하게 “아버지 하는 거 보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내가 먼저 보여줘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토총서는 35년 전에 쓰였습니다. 수정 없이 수행, 복지, 평화, 환경의 과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조금씩 고치기 마련인데, 처음 계획한 그대로 실현되고 변형이나 보완 없이 꾸준히 이어지는 모습이 저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고집이라는 단어는 '굳을 고(固)', '잡을 집(執)' 자로, 굳게 잡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굳게 붙들 만한 어떤 가치 기준도 없이 고집만 있어 상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연결된 관계가 중심인 사회에서 그런 관계가 없었던 저는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토회를 만나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함께 호연지기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정토회 덕분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법과 많은 스승이 있지만, 바른 법과 바른 스승을 만난 인연은 로또 당첨보다 더 큰 인생 역전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천룡사를 내려오는 배웅 길에 연세도 많고 혼자 지내시는데 생활이나 식사는 어떻게 챙기시는지 물었습니다. “밥은 밥솥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지”라고 답했습니다. 지금 잘 살아 있으면서도, 죽음이 궁금한 저에게 그건 “아무 문제 없네~”라고 들렸습니다. 앞서 걸어가는 정종석 님 주변은 가볍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했습니다. 정종석 님은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며, 인터뷰 내내 빼고 버릴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휴대전화에 정종석 님을 '로또 거사님'으로 저장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도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글_구선우 희망리포터 (대경지부 달서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한국호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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