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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에 있는 아도모례원은 대구경북지부의 으뜸절입니다. 김복경 님은 이곳에서 봉사를 시작한 이래 2년 가까이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보리수 활동을 하면서 나와 다른 도반을 이해하기가 힘들고 분별심이 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난 척하는 내 업식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픈 친정엄마를 돌보는 것이 그저 버겁기만 한 일이 아니라, 내가 엄마의 의지처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변하였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잔잔한 감동까지 밀려왔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도모례원에 가시면 소풍 가듯 봉사나온 김복경 님을 만나뵐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구미에서 농사지으며 살았습니다. 남편은 시골 동네 이장일 한다고 집안일과 농사일은 뒷전이었습니다. 농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고 변변한 수입도 없었습니다. 이러다 애들 공부 뒷바라지도 못하겠다 싶어 전자 회사에 취직하여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땅이 날아가고 집만 덩그러니 남더니, 얼마 후 그 집마저 경매로 날아갔습니다. 화가 났고, 남편이 원망스러웠으나 한편으로는 걱정되어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돈 한 푼 없이 빈손으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 30만 원짜리 집을 얻어서 나가자고 할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보증금 300만 원도 없어서 남편 친구가 빌려준 돈으로 도망치듯 이사를 했습니다. 당시 아들은 군에 있고, 딸은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딸이 집안 사정을 알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는 구미로 내려와 회사에 취직하여 집에 돈을 보탰습니다. 남편 때문에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빚보증을 서달라고 한 사람에게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매일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돈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야간에 근무하면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하여 야간 전담으로 일했습니다. 어느 날 근무 중 하혈하여 병원에 갔습니다. 자궁근종의 동맥이 터져서 지혈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긴급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수술을 했기 때문에 몸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2차 검진 안내가 있어 놀란 마음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갑상선과 유방에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자궁근종 수술한 지 1년도 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농사일을 접고 취직하여 이제 겨우 집안이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서럽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9월에 유방암, 10월에 갑상선암 수술을 한 달 간격으로 받았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에 대한 원망이 많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때가 우울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웰빙센터에 갔다가 법륜스님의 행복학교를 알았습니다. 마음이 편해지고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원에 있는 한 달, 구미로 내려와서 2년 동안 행복학교에서 공부하고 활동했습니다. 코로나로 잠시 쉬었다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진행자의 권유로 아도모례원에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월요일에는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보수 법사님을 뵙는 것도 어려워서 처음엔 숨죽이면서 봉사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도모례원에 봉사자가 거의 없어서 담당자가 꼭지를 맡아달라는 말에 소임 주면 안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성실하게 봉사하던 중 보리수 수련이 생겼습니다. 지회장님의 권유로 보리수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정토회 수련은 뭘 해도 좋겠다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보리수 활동을 하면서 나와 다른 도반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일보다는 항상 정토회 일이나 보리수 일이 먼저였던 나와 다르게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우선으로 하는 도반을 보니 분별심이 생겼습니다. 뜻이 맞지 않아 분별심이 생기니 봉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도반에게 뒷말도 하고 힘든 얘기를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가 아닌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잘난 척하는 내 업식을 깨달았습니다.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의 눈의 티끌만 지적하는 나 자신을 보고는 부끄러웠습니다. 관점을 바로 세워 다시 시작하면서 이제는 괴로움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내 안에서 살피고 있습니다.
친정엄마와 남동생이 짐같이 느껴지면서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남동생은 지적 장애인입니다. 몸은 멀쩡하고 50살이 넘었지만,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정도여서 먹는 것에 집착이 심한 편입니다. 급성 당뇨로 입원하게 되었고, 음식을 조절하면서 관리해야 하는데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몰래 음료수나 단 음식을 잔뜩 먹는 동생을 나무라는 내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동생도 저도 힘든 시기였습니다. 보리수 정진하면서 법사님의 수행점검을 통해 내가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생각하고 조금씩 내려놓으니 숨을 쉴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협착증이었습니다. 동생을 관리하면서 엄마도 돌봐야 하니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저기 병원에 다니다가 진료를 잘한다는 병원을 찾아 대구까지 갔습니다. MRI 촬영을 했는데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에 시술을 한번 했는데 효과가 없고 다시 시술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수술만이 답인데 연세도 있고 폐렴도 앓으셔서 그런지 병원에서는 수술하기를 꺼렸습니다. 동생들과 의논하여 수술하다가 위험해지는 것보다 안 하는 쪽으로 선택했습니다.
보리수 수행을 하면서 ‘엄마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습니다’라는 명심문을 가지고 정진했습니다. 나 혼자 엄마를 돌보는 게 싫은 마음이 들어서 힘들었습니다. 법사님이 남한테도 봉사하고 아도모례원에서도 봉사하는 것처럼 엄마한테도 남의 집에 봉사한다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법사님께 수행점검을 받고 관점이 확 바뀌면서 새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나를 의지처로 삼고 있구나, 기꺼이 엄마에게 의지처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지금은 편안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엄마를 돌보면서 둘이서 대화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바람도 쐬면서 행복한 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아도모례원에 빠짐없이 봉사하러 다닌 횟수만큼 많이 행복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남편 눈에 좋아 보였나 봅니다. 조심스럽게 정토불교대학을 권유했더니 흔쾌히 수락하고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남편이 도반이 되니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유수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남편에게 허락을 구하고 덕분에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깨장에서 남편도 가족을 위해 한 일이었음을 이해하면서 남편한테서 오는 줄 착각했던 내 안의 ‘화’가 잦아들었습니다. 마음을 돌이키니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깨장을 다녀온 후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별심이 줄어들면서, 도반들과 부딪히는 일이 없고 봉사활동에서 스트레스 받는 것도 없습니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던 깨장으로 보내준 남편 도반님께 감사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꾸준함이므로 일수행을 재미있게 할 생각입니다. 매주 스님 법문과 법사님의 수행점검, 그리고 곁에서 또 다른 일깨움을 주는 도반들과의 정진에서 바른 관점을 잡고 더 나아가려고 합니다. 봉사할 수 있는 아도모례원이 있어 고맙고, 내가 잘 쓰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월요일은 봉사의 날로 정해놓고 소풍 가듯 다니는 저를 남편도 응원해줍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 행복입니다. 보리수 한 잎 되기 위해 잘 쓰이겠습니다. 도반님들 사랑합니다.
글_김복경(보리수 7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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