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오늘의 주인공 정희도 님은 <월간정토>의 단골손님입니다. 지난번에는 백일출가 수행담을 소개해 드렸는데, 이번에는 명상수련 소감문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명상수련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명상수련을 해나가면서 들었던 마음들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해 주셔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젊은이의 발랄함과 넘어져도 가볍게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입니다. 자, 그럼 삶의 운전대를 똑바로 잡고 가고 있는 멋진 청년의 이야기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사다난한 2024년이었습니다. 좋고 뿌듯한 기억보다 후회와 자책으로 물든 한 해였습니다.
정일사 회향 이후 꾸준히 개인 정진을 해오다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절 횟수를 500배까지 늘려보고자 정진하던 중이었습니다. ‘겨울 온라인 명상수련’ 공지를 보았는데 참여할지 말지 고민됐습니다. ‘챙길 일도 많고 소임도 있는데 명상수련을 할 수 있을까?’, ‘연말에 사람도 좀 만나야 하는데 하지 말까?’, ‘개인 정진을 하는데 굳이 명상수련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온갖 번뇌 속에서 망설였습니다. 송년 법회에서 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냥 해보기로 하고, 그렇게 3년 만에 온라인 명상수련에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수련 일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여유 있게 준비해야지!’ 하던 초반의 마음은 사라지고 허둥지둥 일정을 정리하고, 4박 5일간 먹거리 장을 보고서야 가까스로 수련에 참여했습니다. 장을 본 재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욕심을 비워야 하는데 조금 더 조금 더 하다 보니, 족히 두 명은 먹어도 될 분량이었습니다.
그렇게 참여한 입재식! 시작할 때 집중해서 또렷이 듣다가 중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전날까지 다 못한 일을 새벽까지 마무리하느라 늦게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졸음을 걷잡을 수가 없어 결국 노트북 화면을 끄고 엎드렸다가, 입재식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드러누웠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첫 명상 시간을 지나 어느새 공양 시간이었습니다. ‘그만둘까?’ 자책하는 마음도 잠시, '내가 많이 피곤했구나'하며 이런 내 마음을 받아주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명상수련 중에 여러 증상이 반복해서 나타났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졸음, 다리가 부러질 듯한 통증에 ‘내 오른쪽 무릎이 좀 휜 것 같은데?’ 하는 걱정까지, 온갖 망상이 널뛰기 했습니다. ‘누워서도 명상한다는데 어디 나도 한번 와선을 해볼까?’ 하다가 푹 잠이 든 적도 있고, 아침에 눈을 떴더니 이미 천일결사 기도 시간이 훌쩍 지나 있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지만, 그때마다 “애쓰지도 말고 조급해하지도 말고 그냥 하라”던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누워서 뭐 할래? 멍때려서 뭐 할래? 먹고 싶은 대로 먹어서 뭐 할래?” 욕구가 일어날 때마다 스님의 자상하면서도 매서운 말씀이 떠올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명상할 때 미래에 대해 구상하는 일보다 과거의 기억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짧게는 한 달 전 일부터 차츰차츰 오래된 기억까지 소환됐습니다. 과거의 망상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운전대를 똑바로 잡아라!" 하던 스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안으로는 과거 힘들었던 기억이, 밖으로는 외부 환경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새벽부터 찬송가를 틀어놓는 옆집, 점심때만 되면 꾸준히 트럼펫인지 뭔지 이름 모를 악기를 연주하는 윗집, 주인이 없는지 구슬피 울어대는 대각선 이웃집의 강아지, 어느 집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등 무심하게 넘겼던 주변 소리까지 모두 신경 쓰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냥 다시 코끝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코끝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나중에는 코가 아프기도 하고, 아무리 힘을 빼도 어깨가 결리고 눈이 아팠습니다. ‘상태 보고’ 시간에 “이게 맞나요?”라고 물어보면, 마치 따뜻한 AI처럼 “네~ 다 과정입니다, 가볍고 편안하게 해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내가 짧은 시간에 바라는 것도 많다, 욕심이 참 많구나’ 하고 돌아봐졌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건이 있었던 ‘나의 명상수련’은 그래도 한번 가부좌를 틀면 풀지 않고, 먹고 싶어도 먹지 않고, 눕고 싶은 욕구를 다독이면서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수련 마지막 날 비로소 거친 호흡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호흡이 잦아들면서 미세한 느낌이 자취를 감춰 아쉬웠습니다. 호흡의 변화를 느끼던 순간의 반가움과 놓쳐서 아쉬운 마음이 교차했지만 앞으로 꾸준한 명상으로 집중력을 키워보고자 스스로 과제를 남깁니다.
이번 명상수련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산만하고 욕구에 집착하는지 알았습니다. 여전히 돌아서면 깜박하는 수준이지만 새로이 좋은 습관을 만들 씨앗을 품은 느낌입니다. 하루에 두 번,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관점을 다잡을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집에서 혼자였지만 랜선으로 연결된 500여 분의 도반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분들과 상태 보고 때마다 답변을 달아주시는 분들, 무엇보다 지도 법사님이 계셨기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들뜨고 욕망에 이끌려 연말을 보냈다면 허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박 5일 명상수련을 통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재발심으로 새해를 시작할 수 있어 든든합니다. 부가적으로 소임과 텔레그램 방에서 해방되어 좋았고, 6시간씩 푹 숙면해서 좋았습니다. 2025년 명상수련에서 조금 더 나은 ‘내 마음의 운전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다만 애쓰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으며 꾸준히 다시 하겠습니다.
글_정희도(대구경북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18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