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아버지와 세상이 문제가 아니었음을

청년수행톡톡을 소개할 때마다 정토회에 이토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나 새삼 놀랍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그 수많은 기회를 못 잡는 나와 달리 청년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알차게 다니는 모습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들이 앞으로 정토회를 이끌어갈 주역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이현중 님도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멋진 청년 중 한 분입니다.

아집에 갇혀 있음을 알게 해준 ‘깨달음의 장’

정토회를 알기 전, 저는 ‘내가 옳다’는 생각과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기준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학창 시절에는 성적을 기준으로 친구를 가려 사귀는 등 제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별심을 일으키는 때가 많았습니다. 내 허물에는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의 단점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사람들을 배척하기도 했습니다.

또 세상이 온갖 부정과 부조리로만 가득 차 있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에 동감하며 세상이 크게 잘못됐다고 삐딱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취업을 못 하는 것도 저를 뽑지 않은 회사와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은 세상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토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의 고민을 유쾌하면서도 지혜롭게 풀어주는 스님의 말씀이 좋아 즐겨 들었고, 자연스레 ‘깨달음의 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기 전이라 시간이 많았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습니다.

이현중 님
▲ 이현중 님

문경수련원에서 4박 5일간 진행된 ‘깨달음의 장’은 희열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움켜쥐고 있던 생각을 내려놓자 저절로 가벼워지고 편안했습니다. 제가 느낀 그 기쁨을, 열을 올려 얘기하니 친구들이 저를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신선했던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린 듯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알게 된 도반들이 불교대학 입학을 권유했지만 그럴수록 괜스레 마음은 더 멀어졌습니다. 그렇게 정토회와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했고, 깨달음의 장은 그저 인생의 좋은 경험 중 하나로 남는 듯했습니다.

불교 공부로 찾은 마음의 평화

다시 정토회와 인연이 닿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다음 해 바로 취업을 하여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맡은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관성적으로 7년을 버티고 있을 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살아생전 많은 애증을 남긴 아버지를 보내드린 후 회사를 그만두고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입학 권유 전화를 받은 것은 그즈음이었습니다. 법륜 스님이 생방송으로 강의를 진행한다는 말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에 깨달음의 장을 신청할 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을 하고 나니 뭔가 깨달은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일단 경전대학도 등록은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악마의 유혹이 올라왔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했는데 경전대학까지 꼭 신청해야 할까?’ 그러나 깨달음은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며칠 후 자신을 살펴보니 이전으로 완전히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경전대학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한 순간이었습니다.

5‧18 광주역사기행
▲ 5‧18 광주역사기행

경전대학까지 마치자,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남 탓, 세상 탓하기 바쁘던 모습 대신 이제는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하고 제 안에서 먼저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에게 분별심이 올라오더라도 이제는 ‘또 한 생각에 사로잡혀 판단하고 있구나.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럴 수 있겠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화가 나는 일이 저절로 줄어든 것은 불교 공부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입니다.

제게 법을 전해준 진행자와 돕는이는 친절하면서도 멋져 보였고, 저도 그런 진행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전법 활동 교육도 받았습니다. 교육 중 법사님과의 1:1 간담회에서 향음 법사님이 해주신 말씀은 아버지에 대한 제 마음속 가장 깊은 응어리를 푸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향음 법사님은 술 마시는 남편을 보고 그 원인을 연구했는데, 엄한 아버지와 자기 주장 강한 아내 때문에 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괴로운 남편에게 술은 보약이었습니다.

24년 인도 선재수련 때 유치원 벽화 그리기
▲ 24년 인도 선재수련 때 유치원 벽화 그리기

아버지와 술에 대한 관점의 변화

생전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난폭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정도 훌쩍 넘은 심야에 만취한 채 집에 들어와 온 가족들을 깨우고 평소라면 결코 하지 못할 폭언과 욕설을 내뱉곤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물리적인 폭력은 휘두르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난폭한 말만으로도 상처가 되기엔 충분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누나는 ‘내가 뛰어내리면 아빠가 더 이상 술을 안 마실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변할까?’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를 고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반항도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같이 술을 마셔보는 등 숱한 노력을 했습니다. 술 취한 모습을 녹화하여 다음 날 보여드리기도 했지만, 미안하다고 말만 하실 뿐 별다른 효과는 없었습니다. 간절히 기대했던 변화된 아버지의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고 어느 날 갑작스레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불법을 배운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술은 아버지의 억눌린 마음을 달래주는 보약이었음을. 아들에게 아주 엄격했던 할아버지, 남편에게 순종적이지만은 않았던 강한 성격의 어머니, 그렇게 늘 억압받고 살면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술은 더 없는 해방의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보약인 술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해 아버지로부터 분리하려고만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리석은 접근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고 그만큼 제 마음도 가볍습니다. 불법을 배우니 관점도 변화했습니다.

인도 선재수련(봉사자들 중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현중 님)
▲ 인도 선재수련(봉사자들 중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현중 님)

힘들어도 떠나지 않는 도반들

학사 졸업 후에는 청년지부 회원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군부대를 방문하여 군인들과 스님 법문을 함께 듣고 대화를 나누는 군 전법 활동이 첫 정토회 활동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크고 작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부족한 부분을 꾸준히 보완해 나갔더니 군인들의 반응도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 안정적이라고 생각될 즈음 군 내부 사정으로 중단되어 못내 아쉬웠습니다. 지금은 군인들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초대하여 전법 활동을 진행하는 ‘서행’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힘든 활동도 있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법회 때 지하 공양간에서 5층까지 공양을 옮기는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운행이 일시 중지되어 계단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40~50명 분량의 공양을 지원팀 7명이 운반했는데, 법복이 땀으로 다 젖을 만큼 무척이나 덥고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일반 회원도 아니고 경전대학 학생이던 팀원들에게 큰 고생을 시킨 것 같아 너무 미안했습니다. 이렇게 힘들면 누구라도 다 정토회를 나갈 거라는 분별심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었던 저뿐만 아니라 함께 고생한 다른 도반들도 정토회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가르침에서 정진과 나눔의 길로

부처님오신날 봉사(왼쪽 첫 번째가 이현중 님)
▲ 부처님오신날 봉사(왼쪽 첫 번째가 이현중 님)

전법 활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지만, 일찌감치 다녀온 깨달음의 장을 제외하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나눔의 장이나 바라지 장과 같은 4박 5일 프로그램도 다녀오고 싶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인도성지순례와 동북아 역사기행은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올가을에는 인도 선재수련에 실무 총괄을 맡아 다녀오게 되어 아쉬움을 조금 풀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교내 동아리에 가입하여 거의 매주 봉사활동을 다닐 정도로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이 경험을 살려 정토회에서도 도반들과 함께 고아원과 보육원 같은 시설에 찾아가 어렵고 외로운 이웃들을 위해 꾸준히 봉사하고 싶습니다.

저의 어리석음을 알게 해주고 바른 관점을 깨우쳐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정진하여 봉사와 나눔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11월 호에 수록된 청년수행톡톡입니다.

글_이현중(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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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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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찬

우연히 읽게된 현중님의 이야기가 참 반갑게 느껴지네요. 어르신께 연탄지원을 해드리기 위해 자기 일처럼 도와주시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참 고마운 도반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_()_

2025-05-12 23:13:14

이선후

무심한듯 웃으며 할껀 다하는? 현중님. 함께 즐겁게 활동할 수 있어 감사해요~

2025-05-12 18:26:27

연향

끊어질 듯 이어지는 불법의 끈이 꽃을 피우고 향을 나누고 열매를 맺네요...흐뭇하게 따스하게 잘 읽었습니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05-12 15: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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