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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드가야 대탑 앞에서
올해 3월이면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지 만 3년이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3년은 다녀보라던 법륜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매일 아침 수행 정진을 해나가다가 문득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 있게 이 3년을 마무리 지어보고자 참여하게 된 인도성지 순례길. 새로운 길을 간다는 설렘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조장 소임을 맡게 되어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며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사서 했던 걱정과 달리, 출국 전 조원들과 카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친숙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순조롭게 어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인천공항에서 조원들과 함께(뒷줄 왼쪽 끝 김창희 님)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바라나시 숙소에서는 미리 도착한 지도법사님께서 일일이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일행들을 환영해주었습니다. 첫날은 인도식 만찬도 즐기고 인도에 대한 상식을 배우면서 긴장과 피로를 풀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정진으로 하루를 열고,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을 하고 상가가 갖춰졌다는 녹야원에서 입재를 치른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가사를 수한 수행자로서의 순례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강가 강 위쪽에서는 화장하고 아래쪽에서는 목욕을, 또 그 아래쪽에서는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자타를 향하는 길에 차가 막히면 중앙선을 넘어서 반대 차선을 달리는 차량들, 전정각산을 오르면서 만난 구걸을 하는 노인과 어린아이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풍경들을 직접 보고나니 문화적 차이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 강가 강에서 설거지를 하는 인도 현지인들
손전등을 들고 부처님께서 성도를 이루신 보드가야 대탑을 향한 넷째 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 마을에서는 일찍 일어난 주민들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차가운 몸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조용하게 숲길을 지나 네이란자라 강을 건너 수자타 탑, 우루벨라가섭 교화터 등을 거쳐 걷고 또 걸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거리였지만 대결정심으로 그 길을 걸으셨을 부처님을 떠올리니 조금은 가볍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삼엄한 몸수색이 끝난 후 덧신을 갈아 신고서야 들어갈 수 있는 보드가야 대탑 안에서는 100루피를 주고 카메라 사용권을 사야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외국인이 찾아와서 자리를 잡고 오체투지, 명상 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도 부처님 코끝을 스치던 숨결이 묻어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순례 중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게 했던 원후봉밀터를 떠올리면 다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미물인 원숭이도 부처님께 꿀 공양을 올리고 땅을 파서 목욕을 할 수 있는 연못을 만들었다는데, 더구나 동남아 불자들은 돈을 모아서 성지 순례를 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는데,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여섯째 날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관례나 부조리가 성행하고 있는 네팔 국경을 통과하면서 얻는 4시간가량의 대기시간에는 조원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짜이, 국수, 과일 등을 사 먹으며 여유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도 마음먹기에 따라 덤 같은 즐거운 선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 원후봉밀터 앞에서 예불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
출가 전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 성은 아름드리나무들과 유적 발굴로 여기저기 파헤쳐진 모습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겨자꽃이 핀 농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다시 또 버스를 타고 찾아간 랑그람은 마치 커다랗고 덩그런 동산 같았습니다. 꼴리족이 세운 것으로 8개의 진신사리탑 가운데 유일하게 허물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탑의 이미지가 깨지면서 우리나라의 왕릉을 연상케도 했습니다.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쉬라바스티의 기원정사, 아름다운 꽃 공양으로 장식된 물간다쿠티, 코가 잘린 우스꽝스러운 코끼리 모습의 아소카 석주 등 인상적이었던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 카필라바스투에서 지도법사님과 함께
빠듯한 일정을 따라 바삐 움직이던 십이일 째 되던 날, 회향하고는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 델리박물관과 간디 박물관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뭐가 뭔지 잘 모른 채 막연한 그리움으로 따라나선 15일간의 순례 길에 정신적 풍요를 마음껏 누린 기분입니다. 제27차 인도성지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법사님들을 비롯한 정토회 봉사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인사 올립니다. 함께 한 도반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경건함을 갖춘 순례자의 마음으로 돌아본 성지를 회상하는 이 시간마저도 행복하기만 합니다.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더욱 잘 쓰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글_김창희, 정리_정수미 희망리포터(순천정토회 여수법당)
▲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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