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갈대지만 존재는 대들보
하일숙 보살 인터뷰
[미중부지부]
몸은 갈대지만 존재는 대들보
하일숙 보살 인터뷰
미중부지부의 주춧돌 같은 존재인 하일숙 보살을 소개합니다. 하일숙 보살은 30년이 넘는 미국살이에도 녹슬지 않은 오리지날 부산 사투리와 자연미가 돋보이는 특이한 백발 헤어스타일로 처음 보면 잘 잊혀지지 않는 인상입니다. 하지만 그 뚜렷한 인상 뒤에는 수행으로 연마된 온화한 성품이 숨어 있답니다. 제가 처음 보살님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은 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스님께서 어떤 보살의 모범적인 예를 드셨는데 나중에 물어물어 그가 하일숙 보살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 중부라는 넓은 땅 덩어리에 흩어져서 살다보니 중부에 사는 도반들이 직접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번 기회에 본인의 얘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선, 보살님이 20년 전, 먼 타국 땅에서 스님 법문 테이프를 듣게 된 계기부터 들려주세요.
유학생활을 마치면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믿고 있었는데,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미국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사회문제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그저 평범하고, 검소하게, 불우이웃도 돕고, 민폐 끼치지 않고, 책임감 있고 착하게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시집살이도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수동적으로 살았는데, 내가 능동적으로 뭔가를 해야만 했던 계기는 큰아이였습니다. 큰아이에게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도움이 되고자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의 이해를 위해 영어하는 스님을 찾다가 쉽지가 않아 우선 내가 배워서 도움이 되려는 심정으로 불교공부를 시작하였고, 한국학교 봉사를 통해 만난 유학생 부인이던 윤태임 보살이 법륜스님 법문테이프를 가져와 함께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윤태임 보살의 수행담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이 이 먼 곳에 와서도 법의 씨앗을 뿌리고 가셨군요. 스님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고요. 유학생 인구를 제외한 한인 인구가 많지 않은 콜럼버스라는 곳에서 법당을 열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유학생 부인이었던 윤태임 보살이 귀국한 후 혼자서 법륜스님 테이프를 계속 들었어요. 법문이 너무 좋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스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1988년부터 콜럼버스에서 살게 되었는데, 이곳 이웃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모임을 다시 만들게 되었고, 다른 스님들의 법문도 들으면서 가정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의 방문으로 순회법회도 열리면서 오늘날 콜럼버스정토법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한인 인구가 많지 않은 콜럼버스에 정토회의 씨앗이 된 가정법회가 열린지는 20년이 넘었고, 첫 정토불교통신대학이 시작된 것은 2003년으로 이것이 콜롬버스정토회의 출발입니다.
시댁식구들과 거사님이 천주교인들인 걸로 알고 있는데 반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남편은 원래 불교신자에서 천주교로 개종을 했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으나, 부인의 정토회 활동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불편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걸 수행의 계기를 삼고 있습니다.
또한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종교에 맹신하면 안 된다는 가족의 이의제기도 심심찮게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천일결사자도 생기고 함께 수행하는 도반들이 되어서 가족 간의 나누기가 재미있습니다.
수행을 한지 20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돌이켜 봤을 때 수행을 해서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요?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참고 상대의 뜻에 따르는 것은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나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상대에게 잘 맞출 수 있고, 문제 삼을 일이 없어지니,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진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또한 법문 들은 공덕으로 아이들의 사춘기 변화를 지켜볼 수가 있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비롯한 모두의 이야기를 분별심 내지 않고 잘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좋은 점입니다.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사회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 것과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정토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무교이던 나는 불교신자가 되고, 불교신자였던 남편은 시어머니를 따라 개종을 해서 천주교신자가 되었습니다. 일요일은 각자의 종교로 갑니다. 한 집안에 종교가 두 개라서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내 자신이 달라짐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어요. 전화를 자주 하지 않던 아이가 힘들 때마다 전화하는 아이가 된 걸 보면, 이야기를 드러내도록 지켜볼 수 있는 나의 힘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백일출가를 다녀온 큰아이는 수행자가 되어 불교적인 마인드와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 더욱 감사합니다. 부모님도 수행자가 되셔서 수행나누기를 할 수 있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세대를 아울러 수행의 좋은 점을 공유하고, 나눕니다. 또 봉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얼마나 넓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 주는지도 경험하였기에 놓을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내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은 수행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길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잘 쓰이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마다 보람을 느껴지는 것도 내가 활동하는 이유입니다.
보살님도 마장이 간혹 오곤 할 텐데 어떤 마음으로 마장을 이겨내나요?
마장이 올 때마다 나를 지켜보는 것으로 돌이키고, 지금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를 찾아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정토회를 만나 받은 것이 너무 많아 은혜를 갚기에도 부족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흔들림 없이 내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은 수행뿐이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실제로 하일숙 보살은 밴드 천일결사 나누기를 통해 내 인생의 주인 되는 길은 끊임없이 나에게로 돌이키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은 갈대처럼 가냘프지만 거대한 중부 땅에 정토라는 집의 대들보인 하일숙 보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Posted by 김세희 희망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