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내 인생의 또 다른 길, 수행자의 길, 대전
일과 수행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구나!
[마산정토회 거제법당]
거제_내 인생의 또 다른 길, 수행자의 길
거제법당 봄불교대학에 재학 중인 옥영숙 보살님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암 진단, 나에게 또 다른 삶을 위한 기회
2012년 1월 5일 의사는 저에게 “이미 암세포가 유방뿐만 아니라 임파선, 뼈까지 전이되었고 폐도 전이가 의심됩니다. 당장 약을 들이부어야 하겠습니다”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날부터 투병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술할 수 없고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라 뚜렷한 기약도 없는 항암치료에 매달려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을 이겨내려고 애쓰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또 다른 삶을 위한 기회일 것이다, 그동안 한길로 살아왔으니 이제는 가지 않은 길도 가보게 하려는 걸 거야.’ 라며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앞으로 내게 새로운 어떤 인생이 주어질까를 끝없이 상상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 암 투병 후 건강한 모습으로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계신 옥영숙 보살님
암을 이겨낸 후 찾아 온 우울증
병원 치료가 끝나고 4번에 걸친 정기검진에서 몸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조금씩 안도감이 들기 시작할 무렵 또다시 괴로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울증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플 땐 살 수만 있었으면 싶던 절박한 마음이 사치스러워진 것이지요. 내 안에서 화나고 짜증 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감정들이 올라왔습니다. 가난한 집 7남매 중 장녀로 결혼하기 전까지 제 인생은 오로지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한 희생과 봉사였습니다. 20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하여 하루도 직장을 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좀 편히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아팠고, 병의 원인과 투병생활 중 섭섭했던 일들을 주변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바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희망편지, 불교대학, 수행맛보기!
그 무렵 지인이 법륜스님의 희망편지를 알려줘서 매일 읽어왔는데, 거기서 정토회 불교대학 입학안내를 보았습니다. ‘여기 가서 공부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까?’ 하는 마음으로 2015년 3월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매주 불교대학 수업은 감동이었습니다. 그동안 친정어머니의 영향으로 불교를 종교로 갖고 있었지만, 초파일에 절에 다녀오는 것이 거의 전부로 기복신앙이었는데, 삶의 지혜로서의 불법을 가르치는 불교대학 수업은 제 무지를 깨우치게 하였습니다. 내가 그렇게 힘들어 했던 것들이 모두 내 마음의 문제이고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길도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행맛보기를 시작하면서 아침에 하는 기도시간은 온전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해나감에 따라 참회의 마음이 일어나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열렸습니다. 수행법회 때마다 듣는 스님의 법문은 중생에서 보살로 나아가는 길잡이였습니다.

▲ 열정적으로 나누기하고 있는 옥영숙 보살님
깨달음의 장과 제한섭식
그런 가운데 고민이 생겼습니다. 불교대학 과정 중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는 것이 제겐 어려웠습니다. 투병생활 중 제한섭식을 하다 보니, 외부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제가 먹을 수 있는 음식재료와 양념이 정해져 버려, 단체 생활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아끼는 보살님이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면 참 좋을 텐데.” 하며 안타까워하기에 한번 마음을 먹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 마음공부를 하는 데 마음이 편하면 몸도 알아주겠지.’ 하면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놀랍게도 마음을 먹으니 마침 추가자 모집이 나와 일주일 만에 바로 갈 수 있었습니다. 수련 중 음식을 최소한도로 먹고 지냈지만 4박 5일 동안의 몸 상태는 다른 참가자들 못지않게 좋았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없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수련 생활하니 음식은 중요치 않았고, 제 사정을 안 바라지팀장이 제가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반찬 한 가지를 따로 마련해준 덕분이기도 하여 무사히 지냈습니다. 깨달음의 장은 ‘무아, 무소유, 무아집’을 깨닫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길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투병생활 중 ‘50살부터는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이 시련이 주어지는 것일 거야.’라며 기대했던 내 인생의 또 다른 길이 바로 수행자의 길이었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수행자가 제격인 것 같아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다음 날 새벽 정진에서 올리는 ‘삼귀의’는 그동안 품어온 마음자세와는 달리,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의 설렘 같았습니다.
요즈음 저는 열심히 수행자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첫걸음이라 서툴러 넘어지기도 하지만 열심히 수행정진하다 보면 똑바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니 하루하루 수행자로서의 자세에 깨어있자고 다짐합니다. 또 도반들에게도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합니다. “나는 수행자가 제격인 것 같다”고. 제한섭식 때문에 육류와 유제품, 어류, 어패류, 알코올은 제외하고 채식을 해야 하니 오계 중에서 불살생과 불음주는 저절로 지켜져서 다른 도반들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진 게 아니냐고.
덤으로 얻은 삶에다 부처님 법으로 행복과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고 하루하루 수행하고 보시하고 봉사하면서 살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 연등 만들기 봉사에 즐거움이 가득한 모습
희망을 놓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옥영숙 보살님! 응원합니다. Posted by 허영심 희망리포터
[대전정토회 대전법당]
일과 수행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구나!
대전법당 저녁팀장의 일과 수행 이야기
대전법당 저녁반은 봄, 가을 불교대학과 경전반 그리고 수요 수행법회가 진행되고 있으니 하루도 쉬는 날이 없습니다. 이 모든 모임이 여법하게 진행되도록 늘 전체를 살피는 이가 있으니 바로 저녁팀장을 맡은 성난주 보살님입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대전법당으로 찾아가 새벽 정진을 마친 성난주 보살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새벽 수행
혼자 하는 것보단 같이 하는 정진이 더 좋은 것을 알게 되어 5년 전부터 법당에서 새벽기도를 함께 해왔어요. 2013년 12월부터는 집전을 맡아 3년 가까이 소임을 하고 있어요. 집전을 하니까 그냥 하는 거랑 또 다르더군요. 책임감이 많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새벽에 법당에 나오니 가족에게 방해되지 않아 별다른 고비 없이 할 수 있었어요.

▲ 새벽 정진 집전하는 성난주 보살님
가족과 수행
정토회에 오기 전 남편의 실직으로 쌀도 못 살 정도로 힘들었어요. 많은 부분 정리가 되어서 정토회에 나오긴 했지만, 여유 있는 생활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정토회에 와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누기를 하다 보니 '나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법당에서 저녁팀장 소임을 맡게 되어 매일 10시에 들어갔습니다. 자연히 남편에게 바짝 엎드리게 되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바짝 엎드리다 보니 남편과의 관계가 오히려 더 좋아졌어요. 11시에 와서 밥 달라고 해도 “네” 하고 차려주고,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면 “네” 하고 끓여주니 남편이 좋아 하더군요. 남편이 늦게 오면 감사해요. 정토회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정토회를 매일 나가는 게 불만이지만 한편으론 잔소리를 적게 들어서 좋은 면도 있데요.
저녁팀장 소임
2014년(천일결사 8차년도)부터 2년 동안 저녁팀장 소임을 맡게 되었어요. 흔쾌히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권유 반, 선택 반이었어요. 소임 맡고 처음 1년은 힘들었어요. 체계가 안 잡혀 있어서 모든 일을 혼자 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처음 하는 일도 머릿속에 얼개가 쫙 그려지는 편이라 수월했지만, 다른 소임을 맡은 도반들은 달랐어요. 저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터라 난 자기 역할을 안 해주는 것 같이 느꼈어요. 힘들고 분별 나고 원망스러웠어요. 1년이 지나서 돌아보니 도반들에게 죄송했어요. 도반들은 나랑 성격이 다를 뿐인데 분별심을 내고 스트레스 받았던 것을 깨달았어요. 1년이 지나서야 서서히 체계가 잡혔어요. 다들 알아서 잘 해주니 제가 할 일이 없어요.
일이 곧 수행
일을 하며 도반들과 부딪침도 있었어요. 저는 남자 같은 성격이라 함께하는 도반들을 다독이지 못했고 또 직선적인 저의 성격에 분별심을 내는 도반들이 있었고요. 성격들이 다른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팀장 소임을 맡아 수행이 아니라 일만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일로 처리하려니 스트레스가 생겼던 거지요. 도반들에겐 같이 해주는 것만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내었어요. 일을 곧 수행 삼아 하게 되니 편안해졌어요.
천일결사 입재식 내부 총괄을 1년 반 정도 맡은 적도 있었어요. 마지막 소임 땐 4,300명이 모였어요. 저녁부 봉사자 30여명을 꾸려 함께 3~4천 명의 자리배치를 하고, 행사가 여법하게 끝날 수 있도록 해보고 나니, 지금 법당에서 200-300명 이끄는 일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봉사자 섭외를 하다보면 뒤로 물러나는 이들이 많은데, 봉사 후 본인의 역량이 얼마나 많이 커지고 공부가 되는지 꼭 느껴보면 좋겠어요.

▲ 저녁부 도반들과 함께(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성난주 보살님)
천일결사 입재식 내부총괄을 하며 봉사자들에게 제공되는 찰밥과 김밥 1줄이 너무 미안해서 밤새 반찬 30여 명분을 만들어 함께 공양했던 것. 쌀 사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가운데서도 남편에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정토회 일을 하기 위해 남편에게 바짝 엎드렸다는 것. 일을 일로 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함께하는 도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낸 것. 듣다 보니 ‘아! 이것이 바로 일과 수행의 통일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녁팀장 소임을 수행 삼아 하고 있는 성난주 보살님의 이야기가 제게는 깨달음의 법문으로 들린 소중한 아침이었습니다. Posted by 이옥선 희망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