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새길

정토불교대학

학사일정 : 2026년 9월 20일(일) ~ 2027년 1월 30일(토)
접수마감 : 2026년 9월 3일(목)
자세히 보기

광복 81주년 기념식 및 기념포럼

새로운 백년을 상상하라

일시 : 2026년 8월 15일(토) 13:00 ~ 18:00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
자세히 보기

불기 2570년

백중기도

입재 : 7월8일(수) 오전10시 / 회향 : 8월 27일(목) 오전 10시
기도접수 : 7월 1일(수) ~ 8월 29일(토)
자세히 보기

2026

반나절 템플스테이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 천천히
내 마음의 속도에 귀 기울여 보세요
자세히 보기

내 마음을 위한 가장 완벽한 체크인

정토 썸머 스테이

3개의 특별한 방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자세히 보기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52기 백일출가 모집

출가기간 : 2026년 9월 3일(목) ~ 12월 11일(금)
접수마감 : 8월 14일(금)
자세히 보기

2026 청년 직장인 출가

청년붓다 8기

기간 : 8월 1일(토) ~ 8월 19일(수)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자세히 보기

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자세히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저는 법사가 되고 싶습니다

「정토행자의 하루」에 소개될 희망자 조사에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는 원종선 님.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는 게 맞겠다.’ 싶어 자원했다 합니다. 인상적인 첫 마음 나누기를 시작으로 인터뷰 내내 미소와 여유로 담담하게 수행담을 들려주었습니다. 마무리 나누기에서는 정토회 수행 3년 중 가장 많은 나누기를 했다며 웃었습니다. 어떤 삶이, 어떤 수행이 지금의 원종선 님을 있게 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남편과 저는 소방공무원입니다. 소방공무원은 긴박한 현장 출동과 심각한 상황을 목격하는 일이 많아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현장에서 대면하는 상황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초를 다투는 일입니다. 충격과 스트레스, 긴장이 누적되면서 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으며 약을 복용했습니다. 남자 소방대원들의 경우 저처럼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보다 음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혼 초부터 잦은 비상근무와 과중한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습니다. 한번 마시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셨고, 술에 취해 귀가한 날에는 남편의 술 투정을 받아주지 않는다며 화를 냈습니다. 제가 피곤에 지쳐 잠이 들면 또 밖에 나가 술을 마셨습니다. 어느 날 새벽,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남편이 사람을 폭행했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도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남편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제 목을 졸랐습니다. 그 순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처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음주와 폭행으로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는 일이 계속됐습니다. 그때마다 금전으로 합의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 일이 커지지 않게 무마했습니다. 나아지겠지 싶어 참고 지냈지만, 남편은 술을 끊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참고 버텨왔던 인내심이 폭발하면서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까지 떠올라 제정신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힘들었습니다. 26.5월, 선유동 연수원 전국 모둠장 대회 남편에게 술은 보약입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법문 중간에 불교대학을 홍보했습니다. 예전부터 명상과 요가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궁금증이 생겨 불교대학에 바로 접수했습니다. 얼마 뒤 담당자로부터 안내 전화가 왔습니다. 담당자는 입학 절차와 수업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정토회가 어떤 곳인지, 법륜 스님이 누구인지도 몰랐던 때였습니다. 이곳에 다니면 나도 저 사람처럼 친절하고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정토회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즉문즉설에서는 지나친 음주와 폭행으로 가족들이 받는 고통을 호소하는 상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질문이 바로 제 문제였고, 질문자는 제 거울이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간단명료했습니다. “남편에게 술은 보약입니다.” 질문자들처럼 제 마음에도 이 법문을 새겼습니다. 관점을 바로잡고 기도하면서 남편 문제를 제 고집대로 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해도 화내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술은 보약’이라는 말을 수백 번 가슴으로 되뇌니 제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진 순간, 남편의 음주는 제 마음이 일으킨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남편이 술을 끊든 안 끊든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26년 JTS 거리홍보 남편 마음 읽기, 내 마음 바꾸기 불만이 있으면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가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마음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다가 수행법회에서 법륜 스님 법문을 듣고 남편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았습니다. 스님은 “남편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 주기, 나 좀 봐 달라는 상대의 마음 읽기, 원하는 것 다 들어주고 해주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 그리하겠습니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화를 내거나 하나하나 트집을 잡아 따지며 잔소리하고,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는 대신 늘 미안하고 고맙다고 표현했습니다. 남편을 이기려는 마음과 잔소리를 버리니 전혀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시선이 천천히 제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원거리 출퇴근에, 정토회 소임으로 제가 집에 있는 시간보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요즘, 남편이 살림을 합니다. 달라진 남편의 태도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내 마음을 바꾸는 일’이라는 법문이 또 통했습니다. 이 법문이 모든 문제의 해결사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남편과 함께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남편은 따로 알코올 클리닉도 다녔습니다. 어느 순간 남편이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건강 문제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술을 끊은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저는 아주 편안합니다. 25.3월 발심행자 수계식 가난, 수치, 억울함, 분노, 그 모든 상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 놓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서울 강남, 부자 동네에 살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했습니다. 문방구에서 산 리코더를 준비해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은 악기점에서 전문가용 악기를 가져왔습니다. 사복을 입었던 중학교 시절이 가장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유명 브랜드 가방과 옷, 학용품으로 빛났는데 저만 짝퉁 칠갑이었습니다. 가난한 게 너무 싫었고,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절망하는 저 자신도 싫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저만 공부 못하는 애가 되어 열등감과 박탈감으로 늘 화가 났습니다. 장사를 했던 부모님은 언제나 바빴습니다. 장녀인 제게 동생들을 돌보고, 부모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도 살펴야 하는 책임을 지웠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일은 저 스스로 알아서 하라며 다그쳤습니다.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맞춰야 했을 때도 적당한 가격의 안경을 알아보고 스스로 결정하라며 혼자 안경 가게에 보냈습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을 어린 제게 시킨다는 억울한 생각에 몰두하며 길을 가다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다리 인대가 늘어나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아버지는 무서웠습니다. 늘 술을 마셨고, 취하면 자식들을 앉혀 놓고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원망과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태도를 따지고 대꾸하며 아버지를 도발했습니다. 급기야 아버지는 저를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소방관이 되어서도 아버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대할 때 대처하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아무리 돌이켜봐도 즐거웠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25.9월 불교대학 돕는이 실습 예전엔 왜 미처 몰랐을까요? 법문을 듣고 수행하며 제일 먼저 화를 잘 내지 않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화가 나려고 할 때 탁 알아차립니다. 그 알아차림에 뿌듯합니다. 아버지 흉을 보거나 불만을 털어놓는 어머니를 대할 땐, 제 어린 시절 돌봄을 받지 못해 부모님에게 가졌던 불만과 원망을 마주합니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어린 시절의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제가 아버지를 원망하며 뛰어가다가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뿐인데, 아버지 탓만 했음을 알았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에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의 삶도 이해했습니다. 제게만 유난히 책임을 많이 지운 일도 아버지의 사랑과 교육법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하라는 아버지의 훈련 덕분에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지금까지 직장 생활하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을 지키는 일, 생명을 거는 일 “작은 키, 뚱뚱한 체격, 거기다 여자, 어떻게 소방관이 됐지요?” 사람들은 신기한 듯 저를 보며 궁금해합니다. 1996년도에 응급구조학과 2기로 입학해 응급구조사가 되었고, 이 분야 공부를 계속해 소방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구급차에서 응급처치를 하는 응급구조사입니다. 소방공무원은 화재 진압, 인명 구조, 응급 구조 등 여러 분야의 구조 활동을 합니다. 26년간 현장을 누비며 응급 구조 활동을 했습니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24시간 교대로 근무하지만, 언제든 비상이 걸리면 어떤 상황에서도 출동해야 합니다. 휴일이 따로 없습니다. 소방공무원은 멋있고 숭고한 직업이지만, 그 안에는 대원들의 목숨을 건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대원들은 위험한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처해야 합니다. 자칫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사람이 사망하거나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어 늘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입니다. 소방공무원 중 많은 대원이 정신 건강을 위해 심리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26년간 했다면 전문가 수준에 도달해야 하는데, 소방관에게 숙련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25년 반나절 템플스테이 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입니다 응급구조사 활동을 하면서 늘 자문하고 갈등합니다. ‘이 직업이 나와 맞나?’ 어느 날 수행법회에서 26세의 공무원이 법륜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었는데 이 일이 정말 자신이 원한 일이 맞는지, 자신이 이 일을 좋아하는지 회의가 든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도 물었습니다. 바로 제 고민이었습니다. 법륜 스님의 처방이 특별했습니다. 질문자에게 스님의 말을 따라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입니다.” 제게 딱 필요한 맞춤형 법문이었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방공무원이었구나.’ 제가 그걸 놓치고 그렇게 괴로워했음을 단박에 깨달았습니다. 제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벅차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정토회에서 새로운 소임을 맡을 때도 늘 질문합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지? 이 일을 안 할 이유는 없나? 하며 자문하지만, 막상 해보면 소임이 모두 연습이고 그 연습은 직장 생활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어떤 업무를 맡아도 크게 어렵지 않고,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이 편하고 즐겁습니다. 지금은 현장 출동이나 구급 활동은 하지 않고 신입 소방대원들을 가르치는 교수직을 맡고 있습니다. 즉문즉설과 법회에서 저보다 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이 나눠주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직장 생활의 고통과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매월 어김없이 받는 월급에, 도와주고 치료해줘서 고맙다며 직접 찾아와 인사까지 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소방공무원이라는 제 직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다시 ‘쿵’하고 넘어지면, 또다시 ‘벌떡’ 일어나고 모둠장 소임을 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너무 하기 싫었습니다. ‘이 마음이 어디서 왔나?’ 하고 살펴보니 인도 성지순례 후유증이었습니다. 모둠원들에게 제 민낯을 다 들켜 체면을 구겼다는 민망함에 걸려 망설였습니다. 모둠장은 포용과 친절이 기본인데, 모둠원들에게 부린 짜증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와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여러 사람과 생활하며 행동할 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지나치게 긴장하고 애를 쓴 결과가 짜증이었습니다. 직장 승진 시기와도 겹쳤습니다. 승진하려면 비상근무를 해야 하고 근무지 이동이 뒤따라 사실상 모둠장 소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소임에 대한 압박과 밀려오는 업무에 4박 5일 명상수련을 신청해 도망쳤습니다. 묵언 수행과 행동 제한으로 명상도 계속하기 힘들었습니다. ‘여기 왜 왔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아무도 말을 걸거나 건드리는 사람이 없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저는 화를 내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날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가볍게 그냥 해보면 되는데 왜 그리 핑계를 대며 소임을 맡지 않으려 애를 썼는지…’ 저를 옭아매고 있는 생각에서 놓여났습니다. 평소 저는 나서는 것을 아주 좋아해 누가 “이거 해 주실래요?”라고 하면 무조건 “네” 합니다. 저지르는 걸 좋아해 저돌적으로 마구 합니다. 그러다 쿵 하고 넘어지면 다시 벌떡 일어나 또 달려나갑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수행도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또 넘어지는 날이 오면 ‘넘어졌네’ 하고 또 벌떡 일어나 달려가고 있겠지요. 이런 제 수행법을 ‘도장 깨기’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정토회에서 하는 수행을 도장 깨기 하듯 다 해보고 싶습니다. 25년 불교대학 학생들과 함께 멀리, 오래 가는 길 자주 만나는 도반들한테 “저는 법사가 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사가 뭔지도, 얼마나 힘들게 수행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말을 뱉은 책임감에 소통방에 안내되는 수행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 , , …, 봉사활동도 일정을 조정해 참여했습니다. 불교대학, 경전대학 진행자와 돕는이, 그리고 모둠장을 하면서 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보탰습니다. 에 참여할 수 있는 전법 회원들이 부러웠습니다. 직접 해보니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 도반이 조절할 수 있는 힘도 수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토회에 다닌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활동으로 빨리 깨달음을 얻고 싶었나 봅니다. 이젠 조절하면서 꾸준히 가보려고 합니다. 멀리, 오래 가려면 조절이 필수겠지요. 두 시간을 꽉 채운 특별하고 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로켓처럼 빨리 깨달음을 얻고 싶어 맹렬히 수행한 지난 3년, 이제는 속도를 스스로 조절해 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도 수행임을 깨달은 원종선 님입니다. 법사가 되는 게 간절한 소망이라는 원종선 님은 백일 출가도, 행복본부 일도 하고 싶답니다.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원종선 님이 저지를 멋진 활약을 기대하며 열렬히 응원합니다. 수행담 내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글이혜정 희망리포터 편집곽도영

송파지회 2026.08.12. 272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비판적 순응에 희생된 수많은 이웃, _ ‘순이 삼촌’을 기억하며 _2026년 6월 제주 4·3 평화역사 기행

2024년, 제주 4·3의 역사 속으로 평화 기행을 다녀온 후, 이 역사를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 후 현충일을 기해 3일간의 여정으로 다시 ‘제주’로 향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부터 준비팀에 합류하여 사회자의 진행 글을 작성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역사 기행 날이 다가와도 막상 사전 학습 도서, 현기영 작가의『순이 삼촌』을 읽는 것은 자꾸만 미뤘습니다. 잔인한 역사를 마주하며 그 슬픔을 느끼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회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 마음은 한결 밝아졌습니다. 첫 번째 장소 관덕정으로 이동하며 비로소 역사 기행이 시작되었음이 실감 났습니다. 안내를 맡은 법음 법사님은 역사 이해를 위해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알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고 당부하듯 말했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그 주변 일대입니다. 북촌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 하루에 400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당한 단일 마을 가운데 가장 큰 희생이 발생한 곳입니다. 기념관에는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진 여러 그림과 강요배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진 자료가 거의 남지 않아 이러한 기록들은 더욱 귀중했습니다. 천명, 하늘의 울음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 제주 4·3 사건의 유족인 이상언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희생의 규모와 그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면서 그들은 단순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처절했던 한 시대의 삶을 살아 내었던 사람들이었음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기념관을 나온 뒤 마을 길을 걸으며 소설『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장소와 북촌 초등학교 등 희생자들의 터까지 둘러보았습니다. 삼촌은 여인이다. 소설 중에서 순이 삼촌 기념비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된 제주 도민이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해당합니다. 해설사가 일일이 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3시간이 넘도록 호명과 해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제주 동쪽의 ’광치기 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름다운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이곳 역시 무고한 주민 400여 명이 군경 토벌대와 서북 청년단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장소입니다. 광치기 해변과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은 여러 차례 여행 왔던 곳이지만, 재작년 역사 기행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러한 아픔이 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기행의 사회자 역할에 집중하니 현장의 느낌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 발원문을 두 사람이 낭독하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떨리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생명과 오랜 세월 슬픔을 안고 살아온 유가족들의 아픔을 깊이 새깁니다. 두려움과 혐오, 침묵과 폭력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제주라는 이 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늘 제주의 아픔 앞에서 개개인의 삶을 돌아봅니다.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대화와 이해로 갈등을 풀어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국가 폭력과 전쟁, 증오와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그 순간, 제주 동쪽의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는 3만 명이지만, 그들의 유족은 몇 명이며, 또 그 유족들의 가족은 얼마나 많을까요…… 다시 왜?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살육의 피해를, 입어야 했던 이유는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이 있습니다. 4·3 평화 공원에 안치된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명상할 때입니다. 행방불명인 묘역 흐린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데, 묘지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 그 까마귀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명상을 제안했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자리를 찾아 묘지를 등지고 산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눈을 감고 몸으로 들어오는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새소리가 들리고 숲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몸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듯했습니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명상하는 모습 어느새 이곳이 특별한 장소라는 생각마저 사라지고 고요한 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명상이 언제 끝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눈을 뜨자 구름이 걷히고 햇살은 따뜻이 묘역에 내렸습니다. 그 밝음에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누군가는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아픈 역사와 고통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경험했던 순간의 기억이 신비로웠습니다. 함께 걸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묘지를 바라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마음은 먹먹했습니다. 이번 역사 기행을 통해 도반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함께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슬픔에 압도되지 않았고, 그 마음을 함께 잔잔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3조, 우리는 도반 일정이 끝난 뒤, 조원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며 하루의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특히 제주를 주제로 시를 쓰고 낭독했던 시간은 그날의 경험을 정리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같은 숙소를 사용했던 프로그램 팀과 산책하고 체조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습니다.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행 내내 따라다녔던 왜?라는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팀원들과 산책길에서 문득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마음 나누기 시간에 다른 회원이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서 아이히만은 약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실행한 실무 책임자였지만, 특별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평범한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 관성적이고 습관적인 사고방식이 어떤 맥락에서는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느꼈습니다. 이것을 ‘사유의 무능과 무비판적인 순응’의 결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살을 지시한 사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묻게 됩니다. 극단적인 공격성은 때때로 내면의 두려움과 상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마지막엔 ‘무감각과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남았고, 여기에 대한 해독제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 질문에 ‘수행’이라는 단어가 해답처럼 바로 떠올랐습니다. 먼저 바른 법 만난 자신이 행복할 수 있어 기쁘고, 수행자의 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잘 전하는 것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는 길임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전쟁과 분쟁, 사람들의 갈등과 증오를 마주할 때면 여전히 무력해지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평화를 위해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자 합니다. 먼저 꾸준히 수행하면서 내 안의 두려움과 화를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에서 평화를 만들며 제주 4·3 사건을 잊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제주에는 ‘속솜허라’라는 말이 있는데, ‘숨을 죽이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당시 동굴로 피신했던 부모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사건 후에는 피해자였지만,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았던 제주도민들이 들었던 말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고, 지독한 그 시절이 지났어도 살면서 애써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위한 발걸음, 제주에서 단체 사진 작은 실천으로, 역사 기행 참가자들이 쓴 시를 시집으로 엮어 제주를 안내하는 해설사들에게 전하는 싶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알아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넘어 세계 평화까지 큰 꿈을 품어봅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 p.536』 제주 4·3 평화 재단 홈페이지 게시글 글김수영 사진김민성 편집황재윤

통일 2026.07.24. 1,624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자세히 보기

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자세히 보기

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