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우리들의 움직임

청년페스타

일시 : 2025년 11월 7일(금) ~ 11월 9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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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년 프로그램

바라지 전국 모집

2025년 11월 13일(목) ~ 14일(금) / 부분참여 가능
2025년 11월 19일(수) ~ 21일(금) / 부분참여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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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해외강연

법륜스님 즉문즉설

일정 : 2025년 12월 13일(토) 까지
강연국가 : 북미, 오세아니아, 유럽,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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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5 행복한 대화

전국 11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오프라인 강연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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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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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눈물로 걷다, 감사로 머물다

삶은 때로 뜻하지 않은 어려움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작고 소중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변화의 순간들을 담고 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며 자신을 발견하고, 조금씩 살아갈 힘을 찾은 임경화 님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2024년 어린이날 JTS캠페인을 마치고 눈치 속에 갇힌 어린 시절 저는 늘 눈치 보며 자신감 없고, 주눅 들어 살았습니다. 오늘은 엄마 기분이 어떤지, 아버지는 술을 마셨는지 살피는 것이 습관이었습니다. 엄마가 심부름이나 일을 시킬 때 엄마 마음에 들지 않아 혼이 날까 늘 눈치를 살폈습니다. 제가 하는 것마다 엄마는 마음에 안 들어 했습니다. 늘 꾸지람을 듣거나, 매서운 손바닥에 등짝을 맞기 일쑤였습니다. 엄마를 따라 밤중에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간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화가 나 씩씩거리며 걷는 엄마의 걸음걸이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저를 보고 걸음이 늦다고 머리를 쥐어박고, 빨리 오라며 손을 무지막지하게 끌어당기며 걸었습니다. 저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밤새 걷다 다음 날 아침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일을 하고 칭찬이나 지지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꾸지람을 듣거나 얻어맞은 일이 많아, 도통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이 없고, 늘 꾸중을 듣지 않을까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하루 24시간 잔소리와 폭언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소리 지르고, 살림살이를 깨부수어도 엄마의 폭언이 그치지 않자, 아버지는 급기야 우리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제야 엄마의 잔소리는 수그러들고 전쟁이 끝났습니다. 난장판이 된 집안 살림을 정리하는 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죽이겠다고 경운기에 태우고 비틀비틀 달리다 낭떠러지에 처박히기도 했습니다. 휘발유를 온 집안에 뿌리고 불을 지르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부엌 바닥에 납작 엎드려 벌벌 떨면서 빌고 또 빌었습니다. 어떤 날은 슬리퍼가 벗겨진 채, 맨발로 온 동네를 도망치다 골목에서 아버지의 살기 어린 눈과 마주쳤습니다. 정말로 우리를 죽일 것만 같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누가 나를 죽이려고 달려오는 악몽에 많이 시달렸습니다. 술 마시면 부엌칼을 들고 우리를 쫓아오는 아버지를 피해 옆집에 숨었을 때, 그 가족의 웃음소리가 너무 싫었습니다. 내가 너무 작아지고 하찮게 여겨져 부끄러웠습니다. 담 너머로 들리는 이웃집 웃음소리에 질투가 났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하하 호호 웃을 때 나는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호탕하고 성격 좋은 친구들을 보면 ‘너는 화목한 가정에서 좋은 부모를 만나 성격이 좋은 거지.’라며 괜스레 심술이 났습니다. 2022년 인도성지순례 임경화 님.right 성인이 되어서도 질투심에 시달렸습니다. 늘 밝고 성격 좋은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자꾸 비교했습니다. 성격이 좋은 사람, 반듯하게 잘 사는 사람,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경계심을 느끼고 질투하며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봄이 되면 증세가 조금 더 심했습니다. 꽃이 피고, 온 세상이 울긋불긋 피어나는 화려한 날일수록 내 마음은 자꾸 땅속으로 꺼졌습니다. 밖으로 나가기 싫었습니다. 꽃도 보기 싫었습니다. 울고 또 울며 마주한 내 안의 바윗덩어리 전쟁 같은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빨리 결혼했습니다.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에 대한 바람이 컸습니다.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남편은 가정에 무관심했습니다. 가정 경제도, 육아도, 집안일도 혼자 감당했습니다. 남편은 일 년 내내 술 마시고 밤늦게 들어왔습니다. 퇴근 후 집안일과 육아로 녹초가 되어 잠자고 있을 때, 남편은 술에 취해 일행을 데리고 와 밤새 술 마셨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바람이 클수록 남편에게 불만이 커졌습니다. 화가 났지만, 대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남편을 향한 미움은 점점 커졌습니다. 친정은 여전히 폭풍전야였습니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아, 일이 또 터졌구나’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술 취해 살림을 부수고, 칼 들고 엄마를 죽이겠다고 해서 도망쳐 나왔다는 연락이 잦았습니다. 친정에서 일을 수습하고 돌아올 때면 영혼이 너덜너덜했습니다. 집에 오면 만신창이가 되어 앓아누웠습니다. 난동을 부리는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미웠습니다. 엄마 때문에 일어난 일 같아 엄마에 대한 절절한 미움과 원망을 안고 살았습니다. 마음공부 하는 곳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대학원에서 상담 심리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정토불교대학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의 첫 강의를 듣는데, 전율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곳저곳 쫓아다니며 공부하려 했던 것이 부처님 가르침 속에 다 들어 있었구나 부처님 가르침이 커다란 고목이라면 내가 배운 마음공부는 가지 끝에 피어난 나뭇잎 하나구나’ 그것을 아는 순간 더 이상 기웃거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좋은 가르침을 적은 입학금으로 배울 수 있다니 부처님과 법륜스님의 은혜에 눈물겹도록 고마웠습니다. 더불어 하게 된 환경, 복지, 평화 같은 사회활동은 평소에 관심 있던 활동이라 금상첨화였습니다. 2018년 고성법당 정회원 보고회 그런 인연에도 마산에서 불교대학 졸업 후 경전대학에 다니다 직장 일이 바빠져 더 이상 다닐 수 없었습니다. 경전대학을 그만둔 후, 정토회와 인연은 끝인가 했습니다. 마산법당은 거리가 멀고, 봉사 제안도 없어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몇 년 후 제가 살고 있는 고성에 법당이 생겼습니다. 거제에 살던 분이 혈혈단신 넘어와 고성에 법당을 열었습니다. 저는 고성에 정토회와 인연이 있던 도반과 함께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천일결사각주26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진하다 봉사한 것이 아니라 봉사 하면서 수행에 물들었습니다. 고성법당을 개척한 분은 저에겐 인도에서 그 먼 뱃길을 건너 가야에 온 아유타 공주 같은 존재입니다. 고성법당의 소임과 봉사는 어릴 적 상처로 괴롭고 힘들던 저를 조금씩 살렸습니다. 정일사각주3 정진 때마다 도반들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울어도 울어도 어찌 그리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지, 가슴속의 바윗덩어리는 어찌 그리 견고한지, 정진할수록 더 괴롭고 아팠습니다. 두텁고 두터운 저의 업식은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 꺼풀 벗긴 것 같았지만, 이내 다른 껍질이 드러났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럴수록 엄마가 한없이 미웠습니다. 법사님께 “가슴 속에 바윗덩어리가 앉아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극에 달했습니다. 법사님은 한 달에 한 번씩 에 가라고 했습니다. 직장 때문에 못 간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견고하던 내 마음속의 바윗덩어리는 정토회 봉사를 하면서 아주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움과 원망을 내려놓고 천일결사 회향식에서 사기당해 아주 큰 돈을 잃었다는 어느 도반의 수행 사례담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에 ‘저렇게 사기를 당하고도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일 년쯤 휴직하고 돈을 벌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일 년 무급 휴직을 내어 백일출가를 했습니다. 남편은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이 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고, 남편에게 두고두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2024년 애광원 나들이 답사 백일출가 때 문경에서 아침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마음이 무거운 상태에서 공양하는데, 맛있게 밥 먹고 있는 아무렇지 않은 나를 보았습니다. ‘어, 조금 전까지 무거웠던 마음이 어디로 갔지?’ 그때 알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이라는 실체가 없었습니다. 그 체험 후, 마음이 가볍고 편안했습니다. 엄마와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내어놓으니, 법사님이 말합니다. “어린아이구나” 그 말에 아차 했습니다. ‘내가 지금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리고 투정 부리는구나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고 엄마이고 어른이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과거에 매달려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500배 절을 했습니다. 어머니께 감사의 절을 하는데, 도저히 감사의 마음이 나지 않아 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점점 원망하는 마음이 치솟아 절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저보다 힘겹게 삶을 버티고 살아온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그 힘든 삶을 살면서 끝까지 저와 동생을 버리지 않고 껴안은 어머니였습니다.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고마운 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한 것에 참회의 절을 했습니다. 법사님이 ‘남편 덕분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기도문으로 기도하라고 권했습니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습니다. ‘내 덕분에 남편이 사는 거지, 남편 덕분에 사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술 마시고 가정에 무관심하지 않았다면, 나의 사랑과 행복에 대한 집착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늘 술 마시고 돈을 벌지 않는다는 약점 때문에 제가 화내고 불만을 토해도 당연하듯 받아들여 큰 싸움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친정집에 전쟁이 났을 때도 심각하게 보지 않고, 특유의 넉살과 유머로 저를 살렸습니다. 저의 집착으로 딸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긴장이 넘쳤을 때도 남편은 큰 문제로 보지 않고 둘 사이에 푹신한 샌드백이 되어 갈등을 없앴습니다. 남편 덕분에 제가 산 것이 맞았습니다. 백일출가 마지막 날 남편은 문경으로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돌아와 저는 남편에게 삼배의 절을 했습니다. 마음이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면 지옥이고, 고마움으로 가득 차면 극락이고 정토임을 정토회에서 배웠습니다. 봉사하며 정토회에 있지 않았다면 이 기적은 없었을 겁니다. 봉사가 저를 수행하게 했고, 행복을 일깨웠습니다. 고성에 법당을 낸 도반은 저의 부처님입니다. 고성법당의 소임과 봉사도 저를 살린 부처님입니다. 아침에 기도하면서 이 모든 기적 같은 일을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 짓습니다. 2023년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식 나의 평온이 가족을 살리다.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를 아버지는 극진히 간호했습니다. 불과 몇 달 만에 꼼짝 못 하고 누워있던 엄마를 일어나게 했습니다. 기쁨도 잠시, 엄마는 집에 오고 정신적으로 더 아팠습니다. 아버지를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싸움이 잦았습니다. 하루는 동네 사람과 싸우다 엄마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박카스 병에 제초제를 가득 넣어 그 사람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언성을 높여 싸우다 제초제를 마셨습니다. 병원에서 매우 힘들어하던 엄마는 결국 몇 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평온하게 어머니 곁을 지키며 아버지와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코로나 시기로 장례식장에 손님이 거의 없었습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사흘 동안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게, 마음을 다해 어머니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어머니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내 마음은 오로지 감사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머니를 그 어느 때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힘들었구나 그렇게 힘들게 살았구나 그 힘듦과 외로움을 누구도 알아주지 못했구나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를 버리지 않고 키우고자 안간힘을 쏟으며 살아냈구나 기도할수록 감사함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평안하게 마음의 중심을 잡으니, 동생도 엄마의 죽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는 몹시 힘들어했는데 제가 마음을 다해 보살피고 위로했습니다. 제가 괴로웠다면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며 더 힘들고 괴로웠을 겁니다. 아버지는 점점 안정을 찾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부처님의 가피고, 수행 정진의 복덕이라 여깁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이런 큰 복덕을 받으며 사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나 싶습니다. 어느 겨울날, 수도가 얼어 일주일 동안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옆집에서 물을 조금씩 길어다 먹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우리에게 물 한 방울은 너무 귀하고 소중했습니다. 천지의 은혜가 깃든 물 한 방울임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이런 귀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이런 물 한 방울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함을 아는 것, 이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지 깨닫습니다. 사는 것이 모두 선물입니다. 2025년 2110차 입재식 준비, 정토사회문화회관 답사 덜 가지는 삶, 더 풍요로운 마음 류머티즘성 관절염이 왔습니다. 온몸의 마디마디가 아파 하루하루가 버거웠습니다. 음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채식하고 자연 음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고기와 밀가루, 설탕과 기름 대신 햇빛과 비, 바람을 맞으며 흙 속에서 자란 건강한 먹거리로 몸을 채웠습니다. 점점 아픈 증세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먹는 것 하나하나가 약이 되었습니다. 건강한 채소와 밥을 먹으며,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햇빛과 바람과 흙과 비를 주는 지구에도 감사하고, 정성껏 농사짓는 농부들께도 감사한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 음식을 먹었습니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은 저에게 온 선물이었습니다. 백일출가 후, 2년 더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었습니다. 백일출가 때 제가 가진 것은 작은 사물함에 든 옷 몇 가지와 이불 한 채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살아가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장에서 에너지를 다 쓰고 또 정토회에서 봉사하고 그렇게 바쁘게 살아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몇 년 후 남편도 계약직으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부족한 것과 조금 불편한 것이 얼마나 우리를 풍요롭고 자유롭게 하는지, 이미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좀 더 소박해졌고, 좀 더 단순해졌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좀 더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저의 정토회 봉사를 더 이상 간섭하지 않고, 저도 남편의 삶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가끔 돈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돈을 벌기보다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찾습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히 살 수 있기에 세상의 재화를 더 이상 내 것으로 삼지 않으려 합니다. 대신 시간 여유가 있다면, 돈 버는 일보다 정토회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시간을 늘려 살고 싶습니다. 임경화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생 속에서도 작은 행복과 감사가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이 글이 여러분에게도 따뜻한 힘이 되길 바랍니다. 글황유 희망리포터 편집이주현 각주3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각주21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각주26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거제지회 2025.11.05. 2,049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다름을 넘어, 함께 걷는 우리_2025년 다문화가족 즉문즉설

다문화 가족을 위한 즉문즉설을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의 힘을 느낀 소중한 시간을 전합니다. 지난 2025년 10월 19일 일요일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진행된 다문화가족 즉문즉설을 취재하였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다문화가족을 위한 즉문즉설이 진행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고, 함께 공연을 준비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려인을 위한 러시아어 희망편지 이날 고려인 69명, 미얀마인 9명, 봉사자 66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원래 계획은 1부 고려인 즉문즉설, 2부 미얀마인 즉문즉설을 준비하였으나 미얀마인들 큰 법회가 있어 취소되고 1부만 진행되었습니다. 다문화가족 즉문즉설 홍보를 위해 월광법사님이 곽우석 님과 함께 부평에 위치한 사원에서 거행된 미얀마인 결혼식에 참석하고, 사찰 2곳에서도 홍보 활동을 하였습니다. 미얀마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태국 식당에 즉문즉설 팜플렛도 부착하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지만 참석으로 이어지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행사 3일전 JTS안산다문화센터, JTS일산다문화센터, 서울제주지부 다문화센터 개원 TF팀이 함께 모여 리허설을 진행하였습니다. 낮시간인데도 각 꼭지들과 무대지원 담당 봉사자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습니다. 첫마음 나누기를 하며 맡은 소임에 대한 설렘과 긴장감을 나누고 궁금한 점에 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공양간 꼭지를 맡은 안명숙님과 실무 총괄 박희준님은 정토사회문화회관 공양간 꼭지 이은숙 님과 당일 공양간 준비와 내부 사용 방법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처음 기획할 때는 막연한 생각에 걱정스러웠지만 대화를 통해 가벼워졌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준비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문즉설 당일은 전날보다 쌀쌀해진 기온에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꼭지 여는 모임이 오전 7시30분에 진행되었고 첫마음 나누기로 시작하였습니다. 가벼운 마음과 긴장되는 마음, 기대되는 마음들을 나누며 각 소임별 중요 사항을 한번 더 공유하였습니다. 8시부터 전체 리허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내부 봉사는 유재근님이 꼭지를 맡고, 일산다문화센터에서 봉사를 해주었습니다. 동선을 하나하나 맞춰보았고 현장에서 변경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정토 행자들은 한마음으로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며 준비를 이어갔습니다. 이시일 님이 오늘 즉문즉설 사회를 맡아 매끄러운 진행을 해주었습니다. 주승용 님은 통역을 맡았습니다. 주승용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전날 잠을 설칠 정도로 많이 긴장했고 ‘잘 못할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행사 한달 전부터 고려인 아내와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서 통역 연습을 했습니다. 자신없는 마음도 올라왔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신 고려인들도 있을 텐데 개념어 전달이 잘 되지 않아 스님과 정토회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이었습니다. 제이슨 님도 처음엔 잘하지 않았을 거란 응원을 받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에게는 한 단계 성장하는 큰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승용 님은 안내판 번역과 아리랑 가사 번역 등 다방면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접수 및 회관 내부 꼭지를 맡은 서태원님은 즉문즉설이 시작된 후 외부 상황을 알려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내부 안내를 맡은 정토 행자들은 러시아어와 미얀마어를 번역한 환영 안내문을 들고 다문화 가족을 밝은 미소로 맞이했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이 가까워오자 다문화 가족들이 속속 도착하였습니다. 소통방에는 도착을 알리는 안내가 올라왔고 각자 맡은 자리를 지키며 놓친 부분은 없는지 마지막까지 확인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고려인들은 정토사회문화회관에 처음 방문하였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온 고려인들이 많았습니다. 밝은 표정으로 입장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앞쪽부터 앉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강연 에티켓도 알려주었습니다. 태권도 공연팀과 거문고 연주자 안내도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실무 총괄 박희준 님은 강연장을 뛰어다니며 내부, 외부 상황을 파악하고 놓친 부분이 없는지 살폈습니다.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변경된 일정에도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자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고 JTS안산다문화센터 태권도 교실 학생들의 공연 후 태권도 시범단과 법륜스님이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에는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어려운 부분을 스님께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습니다. 주승용 님은 스님과 질문자의 말을 통역해주었고 모두 집중하여 들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러시아어로 번역된 PPT를 보며 함께 아리랑을 불렀는데 이때 월광법사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춤을 추며 흥을 돋우었습니다. ▶2025 다문화 가족 즉문즉설 현장 보러가기 스님과 단체 사진을 찍고 3팀으로 나누어 공양, 정토사회문화회관 둘러보기를 진행하였습니다. 즉문즉설이 진행되는 동안 공양간은 150인분의 공양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였습니다. 공양간 소임이 처음인 13명의 봉사자들이 모두 걱정을 했지만 주부 경력이 풍부하여 빠른 적응으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공간의 특성상 일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즉문즉설팀은 공양간팀과 함께 이날 정토사회문화회관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공양을 함께 준비하고 정리하였습니다. 마치고 나니 40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한 것을 알았습니다. 안명숙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기적을 만든다는 걸 안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소임을 해도 걱정 할 것이 아니라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많은 봉사자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때마침 JTS 32주년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회관둘러보기 팀은 JTS 활동에 대한 향자재법사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승용 님의 고려인 아내가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7층에 위치한 되살림센터도 둘러보았습니다. JTS안산다문화센터에서는 다문화 가족을 위해 미리 기부받은 물품들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보기에는 간단했지만 이날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획한 많은 분들의 노고가 보였습니다. 둘러보기 꼭지 오중열님과 통역 주승용 님이 수고해주었습니다. 아이들도 귀기울여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소 꼭지 서울제주지부 김지은 님은 구역별로 소임을 나누어 엑셀 파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청소하는 방법에 대한 영상 링크도 함께 제공되어, 누구나 영상을 보면 소임을 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체계적인 시스템은 정토회의 여러 곳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어, 소임을 맡아 수행하기에 매우 편리합니다. 오후 1시 40분.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배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려인을 위한 러시아어 희망편지 책자와 JTS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안내판을 들고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한분 한분 눈맞춤하였습니다. 이후 월광법사님은 “준비하신 분들이 귀하고 소중합니다. 홍보할 때 재미있었고 고려인들에게 말할 기회를 마련해줘서 좋았습니다.” 라고 나누어주었습니다. 실무총괄 맡으신 박희준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즉문즉설 준비하면서 재미있었고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급하게 진행되어 미비한 점이 있었지만 잘 마무리되었고 고려인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들의 고충과 힘듦을 들어보고 스님의 법문으로 공감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삶의 관점을 잡을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천경기서부지부 , 서울제주지부가 함께해서 좋았고 화합하는 체험의 장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청소 소임을 맡은 회원들은 안내 받은대로 꼼꼼하게 정리해주었습니다. 여러 층을 오가며 청소해주신 봉사자들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내부 안내 꼭지를 맡은 유재근님의 소감입니다. “작은 소임을 맡아서 하며 법문 듣고 다문화 사업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 같아 좋았습니다. 개선할 점은 실내 업무 분담이 좀 더 촘촘하게 나누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소통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후에 평가 회의에서 개선할 점들을 나누었습니다. 프로그램들 사이에 시간 안배 조절이 필요한 점, 소통과 사전 답사 리허설이 부족했던 점, 정토회 내부에도 다문화 즉문즉설에 대한 공지로 많이 알릴 필요가 있었던 점 등을 나누며 공감하였습니다. 이번 즉문즉설에서는 실천리포터와 실무총괄 전령의 소임을 동시에 맡아 진행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함께 준비하면서,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고가 깃들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여러 차례의 회의와 소통을 거쳐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은 처음에는 조금 어렵게 느껴졌지만, 점점 마음이 가벼워졌고 도반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수행자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권효정 사진장회경 편집김난희

복지 2025.11.07. 459 읽음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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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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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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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