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년 프로그램

바라지 전국 모집

기간 : 2026년 6월 / 1박 2일 또는 부분참여 가능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자세히 보기

문경에서 붓다처럼

비우고 쉬는 49일

기간 : 2026년 6월 11일(목) ~ 7월 30일(목)
장소 : 문경 정토수련원
자세히 보기

2026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생방송 여름 명상

4박5일 / 7월 24일(금) ~ 7월 28일(화) *한국시간 기준
6박7일 / 7월 24일(금) ~ 7월 30일(목) *한국시간 기준
자세히 보기

오롯이 깨어 있는 삼매의 경지로

생방송 여름 명상 바라지

14박15일 / 7월 18일(토) ~ 8월 1일(토) *한국시간 기준
장소 : 선유동 정토연수원 (오프라인)
자세히 보기

마음 시리즈 첫 번째 책

<행복> 양장본 출간

온라인 서점 이벤트 진행중
2026년 5월 18일(월)부터 소진 때까지
자세히 보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 속 절캉스

일정 : 4월 28일(화) ~ 6월 18일(목)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자세히 보기

2026

깨달음의 장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자세히 보기

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자세히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포교상]현대판 용성조사의 후예

오늘은 지난 21차 회향식에서 정토포교상을 받은 유주영 님의 수행담입니다. 수상 소감을 묻자, 십수 년 간을 함께 번역 봉사를 해온 도반들과 지난 3년간 국제지부 콘텐츠국에서 봉사해 주신 모든 분을 대표해 받은 상이라며 그 공을 도반들에게 돌렸습니다. 워싱턴정토회 총무, 번역팀장, 미국 JTS 팀장, 콘텐츠 국장, 바라지 팀장, 북미유럽지회 지회장 등 수많은 소임을 맡고도 발걸음이 가볍기만 한 유주영 님의 비결이 무엇인지 들어보겠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자유, 다시 정토회로 배가 고파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절을 했습니다. 하다가 지치면 쓰러져 잠들었고, 일어나면 다시 했습니다. 쉴 새 없이 절을 하다 보니 발목과 등, 목까지 온몸이 아팠습니다. 손톱도 깎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지면서 온갖 증상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힘들어 내일은 포기해야겠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절을 했습니다. 마음의 공포가 그만큼 컸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3,000배를 100일 동안 했습니다. 2015년 4월 미국 메릴랜드 워싱턴정토회 법당에서 도반과 함께 미국 정착 생활을 하던 중, 2008년 남편 사업을 위해 살던 집을 팔고, 낯선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남편 사업이 무산되었습니다.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현실은 천 길 낭떠러지로 내몰린 기분이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극도의 불안으로 밤마다 불면에 시달렸습니다. 그때 엄마의 권유로 오로지 부처님에게 의존하는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로워서 시작한 삼천배 기도였는데, 어느 시점이 지나니 ‘삼천배 기도만 안 해도 삶이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100일을 채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습니다. 기도를 끝냈을 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고 더 이상 불면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몸을 괴롭히던 통증들마저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부처님께 무언가를 바라며 시작한 기도였지만, 의존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스스로 서려는 힘이 생겼습니다. 백일기도를 마치자마자 워싱턴정토회에서 대중공양으로 백일기도를 회향했습니다. 정토회는 대학 시절에도 인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2월에야 비로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어 6월에 천일결사 입재하고 11월에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부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게, 소임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반들과 화합하며 일을 잘해보려 애썼지만 다른 이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업식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다 보니 오해가 생겼고, 결국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갈등이 풀리지 않아 정토회를 떠날 결심도 했었습니다. 다행히 도반들과 깊은 나누기를 하며 오해를 풀고 지금까지 수행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25년 12월 14일 포교상 엄마로부터의 자유 저는 어릴 때부터 쉽게 상처받고 눈물이 많았습니다. 네 남매의 맏이로 책임감이 강했고, 엄마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마음 한편이 늘 무거웠습니다. 남편을 외교관으로 둔 엄마는 외국에 나가 살면서 가까운 친구가 없었습니다. 엄마에게는 제가 친구였고,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을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힘들고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후에도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마음이 좀 편해졌을 때 엄마에게 어릴 적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지금은 괜찮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니,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네가 힘들었니?” 하며 엄청나게 화를 냈습니다. 순간 저는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저 한마디를 바랐습니다. “네가 그랬구나, 그때 힘들었구나” 하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엄마가 나를 받아줘야지, 왜 내가 엄마를 받아주고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2009년 9월 법륜스님의 메릴랜드 해외 순회강연 중에 남편과 함께.left 그런데 수행과 〈나눔의 장〉 등을 통해 제가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로 인해 괴롭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최선을 다해 우리 네 남매를 키운 것은 당연하고, 내 마음을 안 받아주고, 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집착하여 괴로웠던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엄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2년 전, 여든이 되던 해에 미국에 와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평생 자기 뜻이 분명하고 고집이 셌던 분인데, 이제는 순한 아이처럼 제가 하자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한편으론 안쓰럽고 다른 한편으론 안도합니다. 엄마 덕분에 불법 만나 이렇게 수행자로 살아가며 세계전법에 이바지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번역은 수행 따라 워싱턴 법당 초기에는 스님의 책이나 법문 영상이 영어로 번역된 자료가 거의 없었습니다. 번역 봉사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육아와 가사, 직장 일, 그리고 정토회 총무 소임까지 맡고 있어 번역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경전과 법문 번역은 단순히 영어를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전과 법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저는 이해가 부족해 사전적 의미에 기대어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년 전 제가 번역한 것을 다시 들여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번역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법문을 이해하는 깊이가 아직 부족했던 것입니다. 2021년 3월 영어 천일결사 나누기 모임.right 예를 들어 돌이키고 참회하다에서 ‘돌이키다’는 처음에는 reflect on이나 look back on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단순히 ‘되돌아보다’라는 의미에 머문다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번역을 시작한 지 10년쯤 지난 후에야, ‘돌이키다’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내 인식 상의 오류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acknowledge the error in my perception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처럼 단어 하나부터 시작해서, 사전적인 의미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문장을 붙들고 며칠씩 씨름했습니다. 실제 영어권 사람들이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끊임없이 확인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똑같은 법문을 열 번 들어도 그때마다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저 자신이 수행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번역하는 모든 과정이 수행이자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었습니다. 외국어 불교대학은 세월 따라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16년, 한국에서 스님을 모시고 해외 활동가 수련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세계전법을 위해 영어 불교대학을 개설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려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먼저, 2019년부터 영어 불교대학 기획팀에서 스님의 수많은 법문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필요한 내용을 교리별·주제별로 나누어 정토담마스쿨 1 교과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아직 법문 영상 번역이 다 완료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2022년 3월에 불교대학을 개설하였고 87명의 영어권 학생이 입학해서 71명이 5개월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매주 필요한 진행자 멘트와 법문을 허겁지겁 번역하며 정말 아슬아슬하게 불교대학 1기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 이후 바로 국제지부 영어 번역팀은 정토담마스쿨 2 교재와 법문 번역을 진행하여 2023년 9월에 개설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느덧 근본불교 9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에는 일어, 불어, 독어 정토담마스쿨도 개설했습니다. 2023년 9월 미국 메릴랜드 통역강연 홍보중.left 그러나 여전히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소수의 한국어권 봉사자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어,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학생들이 정토담마스쿨을 졸업하면 이들을 정토행자로 양성해, 이들이 정토담마스쿨을 이끌게 하면 된다. 그렇게 각 나라에서 배출한 정토행자들이 전법을 이어가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는 그때까지 이 사람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또 한 번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을 지나왔지만, 돌아보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외국인도 괴로워 수행이 해외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고뇌를 안고 살아갑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과 갈등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다가 부처님 법을 만나 수행과 봉사를 통해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해집니다. 정토담마스쿨이 시작되기 수년 전, 천일결사에 입재한 아일랜드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에는 정토회가 없어 그분은 천일결사 입재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건너가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입재식은 한국어로 진행되었지만, 그분은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손에는 저희가 번역한 《Prayer》가 들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영어 사이트에 천일결사 기도 음원이 올라가 있어 외국인도 쉽게 따라 수행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영어 자료가 거의 없던 때였습니다. 그분은 그 책 한 권에 의지해 기도하고 절을 하며 수행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수행담을 발표하던 그분의 모습을 보며 받았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16년 4월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스터디투어 정토담마스쿨을 이어가며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점점 더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모습을 봅니다. 그 중에는 몇 해 전 어린 아들을 잃은 분도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나누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큰 상처였을 아픔이었지만, 차분하게 나눌 수 있을 만큼 슬픔을 지나온 듯했습니다. 그때 제가 번역한 스님의 법문이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포교 활동을 하며 감동적인 순간이 많았습니다. 특히 2022년, 13년간의 노력 끝에 정토담마스쿨이 시작되던 순간의 벅찬 감동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것은 2차 만일결사의 목표인 세계전법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한국에서는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고 준비된 자료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지부에서는 모든 내용을 현지 정서와 언어에 맞게 새로 번역하고 다듬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자료를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에, 세계전법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황무지를 개간해 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처럼 큰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지금 국제특별지부에는 54명의 현지어권 정토회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많지 않은 인원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수많은 봉사자의 정성으로 수행자 길을 걷고 있는 소중한 도반들입니다. 앞으로 세계 전법의 주체로 성장해 갈 이들과 함께 오늘도 묵묵히 세계전법의 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나와 함께 가는 도반들이 모두 세상의 희망입니다.” 2026년 5월 미주 정토회관 명상홀 개원식에서 국제지부회원들과 함께 유주영 님과의 대화 속에서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곱씹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 용성기념관 도슨트 소임을 맡아 용성 조사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조사님께서는 어려운 한문 불교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백성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해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유주영 님이 하고 계신 일이 용성 조사님께서 하신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주영 님이 번역한 법문을 통해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나는, 세계 속 수많은 외국인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글배병갑 희망리포터 편집윤정환

[특집] 정토행자상 수상자 2026.05.27. 2,071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벚꽃잎 흩날리듯 연등빛 산사에 내리다._2026년 4월 정토 미륵사 연등달기

연둣빛 새싹은 어느새 초록을 더하며 피어오르고, 한철 분홍 벚꽃은 바람에 흩날립니다. 아침 숲길은 아름답고 찬란하게 계절이 깊어갑니다. 두 갈래의 길에 이르렀을 때 ‘정토 미륵사 가는 길’이라는 수수한 안내판이 손님을 고요히 맞아주는 이곳은 광주,전라지부 으뜸절 정토 미륵사입니다. 미륵사 가는 벚꽃길 미륵사 전경 미륵사는 1995년에 중창된 대웅전, 요사채, 삼성각이 있고 편백 나무, 삼나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였습니다. 동쪽에는 자그마한 경작지도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는 연등 설치 봉사를 위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어머니를 모셔 오기도 하고, 아내가 남편을 이끌어 정토회 활동을 이어가던 중, 태어난 아이가 어느덧 훌쩍 자라서 이제는 일손을 돕겠다며 나서기도 합니다. 물맞이 공원과 치유의 숲이 조성되어 가족들과 나들이 오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진 만큼, 자연스럽게 가족 단위의 참여가 이어집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딸과 함께 봉사하러 온 정토부부. 환한 미소로 맞이하기. 단정한 차림으로 이른 아침 도착하여 참배하고, 금세 옷을 갈아입고는 도량 이곳저곳을 정비합니다. 중후한 멋을 풍기는 정충근 님 정충근 님의 변신한 모습 약속된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속속 도착하여 누가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곳곳에 스며들어 입구 길 안내를 맡고, 주차를 돕고, 작년에 정리해 둔 연등 설치 도구 상자를 꺼내는 등 가볍게 필요한 일들을 잘 찾아서 하기 시작합니다. 교통안내를 위해 붉은 봉을 잡고 민들레 홀씨처럼 그런 모습은 흡사 둥글게 활짝 피어 이곳저곳으로 날아오른 민들레 홀씨의 모습입니다. 철 기둥이 꽤 무거워 입을 꾹 다물고. 무거운 철 기둥을 나르고 있는 조상희 님은 이미 지난주부터 외곽 기둥 라인 작업과 굵직한 사전 작업을 해 놓았습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쉴 틈 없이 분주해 보이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맡은 일을 즐깁니다. 벌써 몇 해 동안 미륵사 연등 설치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 달 내내 주말을 기꺼이 내어주며, 구조물을 하나하나 세워 갑니다. 힘들지 않냐는 뻔한 질문에 그저 머쓱한 미소로 답합니다. 말 대신 번지는 행복한 표정은 이미 노동과 일이 하나 된 경지에 이른 듯 보입니다. 마음 나누기 곳곳에서 가볍게 일하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니 모두 모여 명심문과 시작하는 마음 나누기를 잊지 않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왁자지껄 소란했던 풍경은 어느새 사라집니다. 둥글게 모여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명심문을 세 번 낭독합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작업을 총괄하는 조상희 님이 오늘은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인 만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며 거듭 안전을 강조합니다. 이후 맡아서 해야 할 일들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연등을 정리하며 연등 상자를 차례로 꺼내 정리하고 색깔을 확인합니다. 작업을 하다가도 카메라가 들어오면 손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순간을 의식하며 연출하는 일은 어느새 자연스럽습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빛이 납니다. 철 기둥을 세우고 둥글고 미끄러운 철 기둥에 장비를 단단히 고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워 보였습니다. 손에 힘을 줘도 자꾸 미끄러지고, 각도를 맞추느라 몇 번씩 다시 풀고 조이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전문가라면 혼자서도 금세 끝낼 일을, 안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하고 확인하는 과정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몇 번의 시행착오의 과정을 지나면서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점점 익숙해지고, 구조물 설치 작업에도 서서히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요령을 터득하며 “아하 이제 요령을 알았어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어깨로 밀면서 하는 거였구먼” 몇 번이나 미끄러지던 손이 자리를 잡고 몸의 중심을 옮겨 어깨로 밀어내는 순간 단단히 고정됩니다. 각자 맡은 일이 손에 익어가며 얼굴에 번지는 표정은 아이처럼 환해지고, 그 모습을 보는 주변에서도 자연스레 웃음이 번집니다. 용접하고 있는 모습 용접으로 쇠말뚝을 만들고 잠깐 숨을 고르는 틈이 생기자, 바닥에 흩어진 공구와 자재를 하나씩 정리하고 동선에 걸릴 만한 것들을 치웁니다. 다음 작업에 필요한 부품을 미리 맞춰보고, 치수를 다시 확인한 뒤 용접을 준비합니다. 불꽃이 튀는 용접이 시작되자 순간 긴장되지만, 보호장비를 단단히 갖추고 주변에 위험한 작업이라는 신호를 보내며 차분하게 이어갑니다. 번쩍이는 불꽃 사이로 금속이 붙어가는 모습은 긴장 속에서도 묘한 안정감이 느껴지고, 손놀림에는 이미 익숙함이 배어 있어 믿음직스럽습니다. 아삭한 오이의 힘, 으랏차차 오전인데도 햇빛이 제법 따갑습니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더위에 지칠 때쯤 시원한 오이 한 바구니가 간식으로 건네집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미륵사에 오신다는 김순옥 님입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때를 잘 맞춰 간식을 내어주나 싶어 모두 칭찬과 고마움을 전하며 무척이나 반가워합니다. “아휴, 큰일 하시는데, 간식 챙김은 아무 일도 아닙니다.” 수줍게 손사래를 치시지만, 뿌듯한 표정입니다. 아삭한 오이 한입에 더위가 한결 가시는 듯합니다. 짧은 말 한마디에도 마음은 넉넉하게 전해지고, 덕분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잠시 더위를 식히며 다시 미소를 되찾습니다. 풀을 매는 사람들 도량정비도 함께 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연등 설치를 위한 소소한 일까지 빈틈없이 총괄하는 이미덕 님입니다. 연등을 달고 잠시 쉬려니, 이번에는 그 와중에도 별안간 호미를 들고 나타나 앞마당에 잡초를 매자고 이끕니다. 이미덕 님 “허리 아픈 분은 하지 마세요, 다리 아픈 분은 쉬세요.” 누가 무리하게 일한다 싶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 상태를 모두 알고 있어 세심하게 먼저 챙깁니다. “허리 아프면서 왜 하세요?” 부드럽지만 강하게 만류합니다. 그 말을 듣고도 한 분이 미안한 듯 대답하며 머뭇거립니다, “그래도 어떻게 일을 안 해요?” 옆에서 또 다른 한 분이 슬쩍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청합니다. “그럼요, 놀면 안 되죠. 흥겹게 노래라도 한 곡 불러주세요.” “아닙니다. 그냥 일할래요.” 그러는 통에 한바탕 또 웃습니다. 분주한 손놀림 사이에도 빈틈없이 웃음이 채워집니다. 연등 다시 설치하기 더 꼼꼼하게 전구 하나하나를 정성껏 이어 대웅전 연등 설치를 마친 봉사팀은 잠시도 쉬지 않고 호미를 들고 앞마당 풀을 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연등 작업팀에서 연등을 달아놓은 전선의 길이가 맞지 않아 다시 해체하고 다른 줄로 연결해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막 마친 수고를 다시 되돌려야 하는 순간, 누구라도 눈앞이 아득해질 법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풀을 매던 손길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호미를 내려놓고 짧게 “네”하고 답한 뒤 곧장 다시 자리를 옮깁니다. 이내 매달린 연등을 풀어 내려놓고 전선을 바꾸며 하나하나 새로 연결합니다. 작업은 불평 없이 이뤄졌으며 오히려 모두가 함께하니 금방 했다고 신기하다며 뿌듯해합니다. 연등 분리 작업,지구 환경을 생각하며 왁자지껄한 가운데 어느 한쪽 편에선 고요히 낡은 연등을 분리해서 버리는 손길이 지구를 지키는 세심한 배려가 됩니다. 완성된 연등을 보며, 파이팅 드디어 맡은 일을 완수했다고 마당에서 일을 마친 봉사자들이 힘차게 외칩니다. “파이팅” 모두 기뻐하며 손뼉을 칩니다. 그러자 대웅전 작업을 하던 조상희 님이 들릴 듯이 마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합니다. “아직 할 일이 엄청 많이 남아 있어요” 아직은 완전히 다 끝나지 않았다고 고삐를 다시 잡듯 한마디 건넵니다. 순수하게 기뻐하던 모습은 이내 멈추어지고 다음 일을 향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움직입니다. 길가에 연등을 달고 미륵사로 올라오는 봉사팀 사이로, 한 소쿠리 나물을 뜯어 온 양지원 님이 점심 공양 때 함께 나누자며 환히 웃습니다. 일의 흐름 속에서도 틈을 놓치지 않고, 봄의 계절이 주는 선물 같은 즐거움도 한껏 누립니다. 길에서 다 함께 길가 연등 다는 모습 우리는 연꽃, 연등팀 둘째날입니다. 오늘따라 길가에 걸린 연등 하나하나가 더욱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바람에 흔들리며 은은히 빛나는 그 작은 등불이 다시는 길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방향을 잡아주는 것만 같아 오래도록 시선이 머뭅니다. 줄줄이 가로등이 된 연등 이후로도 많은 봉사자는 매일 다녀갔습니다. 늘 완성된 모습으로만 바라보던 그 등을 직접 매달고 이어 붙이며 하나의 빛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을 체험하니, 그 등불의 의미가 더욱 깊이 이해됩니다. 무거운 구조물을 나르며 손끝으로 전해지던 무게와 등을 달 때 바람에 흔들리던 미세한 떨림까지, 이제 모두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미륵사 마당을 꽉 채운 색색의 연등 광전지부 봉사자 모두 다 함께 미처 대화로 만나지 못한 숨은 봉사자의 손길을 기억합니다. 곳곳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피어올라 찬란하게 빛이 났습니다. 정토 미륵사의 계절이 아름답게 깊어갈 때, 모두 다시 만났으면 합니다. 그날 이후, 연등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마음을 밝히는 등불의 약속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연등 설치 봉사를 해마다 빠짐없이 함께 할 이유가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해마다 연등불을 켜듯 어리석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나아가 사회를 밝히고, 마침내 온 지구가 밝아지길 서원합니다. 글문현선 사진문현선 편집황재윤

으뜸절 2026.05.29. 162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자세히 보기

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자세히 보기

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