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우리들의 움직임

청년페스타

일시 : 2025년 11월 7일(금) ~ 11월 9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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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그리다, 세상을 물들이다

JTS 기념 세미나 & 사진전

일시 : 2025년 10월 18일(토) ~ 26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 지하 대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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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법륜스님 즉문즉설

2025 보건의료인 특별법회

일시 : 2025년 10월 18일(토) 오후 5시~7시
대상 : 보건의료인(정토회 회원 및 지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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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 속 절캉스

일정 : 9월 2일(화) ~ 10월 30일(목)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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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온/오프 명상수련

온라인 : 10월 31일(금) ~ 11월 2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11월 5일(수) ~ 11월 9일 (일) /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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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해외강연

법륜스님 즉문즉설

일정 : 2025년 12월 13일(토) 까지
강연국가 : 북미, 오세아니아, 유럽,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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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5 행복한 대화

전국 11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오프라인 강연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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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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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지금도 내가 제일 잘 나가

인터뷰 30분 전, 고장 난 보일러를 수리하러 온다는 기사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보일러 수리가 끝나고 약속보다 늦은 시간에 화상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따뜻하게 맞아주던 동광주지회 김현숙 님의 미소에 죄송하고 긴장하던 마음이 녹았습니다. 지난해, 주인공 추천을 거절했던 경험이 있는 김현숙 님은 우여곡절 많은 인생 이야기를 ‘하하 호호’하며 나눠주었습니다. 주인공이 짓는 눈웃음이 들려주는 이야기 함께 합니다. 내가 제일 잘 나가 제 고향은 전라남도 여수입니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지만 막내딸인 저를 참 예뻐했습니다. 학창시절 모범적인 학생으로 생활했고, 어른들과 선생님은 인물 좋고 현모양처 감이라며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노래, 그림, 방송반, 통솔력 다 칭찬했습니다. 저 또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대학 시절, 같은 학교에서 만난 남자 친구와 사귄 지 10년 만에 결혼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남편은 대학 시절부터 입시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돈 버는 재미에 빠져 강단에 서는 일에 욕심을 냈습니다. 강의하기를 좋아하고 똑똑했던 남편은 점점 인기 강사가 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 여수에 학원을 차려 대박이 났습니다. 늘 햇살 가득한 집일 줄 알았는데 저는 아이 둘을 낳아 가사 도우미에게 맡기고 차 마시고 문화생활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부자라는 소문이 나서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돈 빌려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앞날을 모른 채, 돈을 펑펑 빌려주며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모두 즐기며 사는 동안 돈은 많이 벌지만 공허했던 남편은 술에 의지했습니다. 부부 사이는 소원해졌고, 어느 날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습니다. 지인에게 선 보증과, 건축 사업을 하던 친오빠에게 돈을 빌려준 일이 커졌습니다. 알고 보니 오빠는 남편에게 따로 돈을 빌렸습니다. 돈 관리는 저에게 맡겨 두었는데 제가 여기저기 빌려주고 다닌 것에 남편은 크게 실망을 했고 이혼하자 했습니다. 나이 마흔에 혼자 남게 되었고, 그동안 사람들의 부러움과 관심은 수치로 되돌아와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JTS 영양꾸러미 봉사 어리석음이 상처와 자책으로 이혼한 남편은 1년 만에 재혼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 둘은 서울에 사는 남편에게 보냈습니다. 방학 때면 여수로 내려와 저와 함께 지내고 방학이 끝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가 지내던 아이들은 점점 얼굴에 그늘이 짙어졌습니다. 사춘기가 된 딸은 새엄마와 관계가 나빠져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방황했습니다. 서울에서 자라면 좀 더 많은 것을 배울 줄 알고 보낸 저의 어리석음이 화근이 되어 아이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지냈습니다. 결국, 첫째 딸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게 왔습니다. 뒤이어 아들도 여수로 내려왔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중퇴했습니다. 아이들과 갈등하며 아이의 성향, 기질을 잘 모르는 엄마였음이 뼈저리게 아팠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 채, 저의 즐거움만 쫓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까지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반찬을 만들어 자취방에 가보면 집이 엉망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잔소리하면 원망 섞인 대답으로 돌아와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엄마 없이 자란 아이들의 상처가 느껴질 때면 자책하는 마음으로 괴로웠습니다. 아이들과 제가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힘들어하다가 아는 동생에게 하소연했고 정토회를 알았습니다. 마정수기 받는 주인공 삶의 족쇄가 된 칭찬의 말 종교를 거부하는 마음이 있어 신앙생활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 법당에 갔을 때는 화장기 없이 앉아있는 사람들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지금껏 화려하게 치장하고 사치 부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법당에 오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불법 공부를 시작했으니 졸업은 하자는 생각으로 꾸준히 법문 듣고 나누기했습니다. 하다 보니 서서히 마음이 열리고 편안했습니다. 지난날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영어, 그림, 수영, 볼링, 클래식을 즐겼지만, 마음은 항상 허전했고 웃음기가 없었습니다. 정토회에서 마음공부를 하며 잘 웃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밥을 얻으러 다니면서 왕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했던 부처님의 일화에 감동했고, 수행자의 길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장미꽃이라고 착각하고 살던 제가 이혼 후 잡초가 되어 마냥 숨어 지내느라 당당하지 못했는데 마음이 바로 서니 장미, 잡초라는 생각이 다 헛된 생각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무랄 데 없다며 늘 칭찬받던 삶이 노예의 삶이 되어 저 자신을 해치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남을 보는 오지랖이 법당에서 활동할 시절, ‘정말 좋은 사람이고 괜찮은 사람이다’ 싶었던 도반에게 실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수행자로서 참 대단하다 싶었는데 점점 이중적으로 보였고, 도반의 나누기는 과장된 표현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도반 말만 또 저러고 있네. 그렇게 수행했으면 지금쯤은 사람이 변해야 하는데 조금도 안 변했네.’ 싶었습니다. 수행하며 제 모습을 조금씩 보게 되니 언젠가부터는 ‘저 도반 업식이 그렇구나, 도반이 실제로 그렇게 느껴서 표현한 것이구나’라고 이해가 됐습니다. 그 도반이 자비를 베푼다고 하는 일들은 오지랖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오지랖은 나를 보지 않고 상대만 쳐다보며 시시비비하는 저라는 걸 알았습니다. JTS 모금 활동 우리 여수 모둠장님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된 후 컴퓨터 사용에 익숙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마침 서울에서 일하던 아들이 실직하고 여수로 내려와 컴퓨터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저의 질문이 귀찮고 성가신 아들은 가르쳐준 것 또 가르쳐줘야 한다며 짜증을 많이 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좋은 일 하느라고 그러는데 이것도 못 해줘?”라며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정토회 활동으로 밥때를 놓치면 아들은 제게 광신도라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엄마가 술을 먹니?, 남자를 만나니?, 헤프게 돈을 쓰고 다니니?, 엄마가 나름대로 잘살고 있지 않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당당함 덕분인지 어떤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아이들은 서서히 저의 정토회 활동을 받아들였습니다. 화상회의를 하다 기침을 하면 아들은 화면에 나오지 않게 바닥에 엎드려 따뜻한 물이나 커피를 쓱 전해 줍니다. 아들은 지금 행복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사돈과 같이 밥 먹는 자리에서 딸은 사돈에게 “네 여기 우리 여수 모둠장님입니다.”라고 저를 소개해 다 같이 웃었습니다. 자기도 엄마처럼 공부해 보겠다며 불교대학을 다니며 손주에게 본보기가 되려는 딸의 모습이 고맙고 흐뭇합니다. 느그 인생은 느그가 지금도 가끔 아이들은 자라난 환경을 불평하고 저를 원망합니다. 매일 수행 정진하지만 한 번씩 자식들의 모진 말을 들으면 속상합니다. 그때의 제 입장을 내세우기보다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잘못을 인정하니 자식들의 화가 많이 사그라들었습니다. ‘더 잘 될 수 있고, 더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었던 애들을 저렇게 고생시키네.’ 싶은 순간엔 옛날처럼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괴롭지는 않고 좀 뻔뻔해졌습니다. 아니 당당해졌습니다. “느그 인생이니까 느그가 살아야지” 합니다. 어리석음의 과보가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문제 삼는 모든 일이 사실은 제 잘못된 생각일 뿐이었음을 알았으니 모든 일이 제 공부 거리가 되어 심심할 틈 없이 지냅니다. ‘잘나고 못나고’가 없음을, ‘높고 낮음’이 없음을 깨닫는 수행의 기쁨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홍보 장미에서 잡초가 된 줄 알고 숨어 살았다는 김현숙 님. 수행하며 장미도 잡초도 모두 착각임을 알고 수행의 향기로 나와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여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함께 수행의 향기를 느끼셨기를 바랍니다. 글정도현 희망리포터 편집곽도영

동광주지회 2025.10.15. 2,188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2000년 전 역사, 오늘의 거울 _대전충청지부 부여 역사 기행

주몽의 첫째 아들 유리의 등장으로 남하해 ‘백제’를 세운 온조의 결단력, 아버지의 안타까운 죽음과 전쟁의 패배 앞에서 깊은 슬픔과 회한을 느낀 위덕왕, 그리고 전쟁으로 갈 곳을 잃은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낙화암의 절절한 사연까지— 약 2000년 전의 이 모든 역사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평화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행동입니다. 맑게 갠 부여에서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나다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5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하는 역사 기행인데 괜찮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차량에서 푹 자고 났더니 어느새 도착한 부여. 신기할 만큼 활짝 갠 날씨에 다행스러운 마음입니다. 정토회가 그동안 공덕을 많이 쌓은 덕분일까요. 국립부여박물관 앞마당. 차례차례 도착한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부모님과 참석한 어린 학생들도 눈에 띕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햇살보다 맑은 아이들 오전 9시가 되자 좋은벗들 사무국장 이승용 님이 백제의 건국과 발전 그리고 고구려 신라와의 항쟁의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고구려 주몽의 아내 소서노와 아들 비류, 온조는 주몽의 첫째 아들 유리로 인해 주몽의 뒤를 잇지 못하게 되자, 고구려에서 남하하여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 때문에 백제의 문화는 고구려와 유사하나 고구려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했습니다.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 때 국력이 강성하여 고구려를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개로왕이 전사하자 도읍을 공주로 옮겼고, 성왕은 좁은 공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이곳 부여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금동대향로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네요. 특히 이곳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를 제작한 비화가 저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아버지 성왕의 안타까운 죽음과 신라와의 전쟁에서의 패배, 이로 인한 아들 위덕왕의 슬픔과 회한이 고스란히 짐작되니, 어느새 1400년 전 백제의 역사가 훨씬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박물관에서는 회원들이 국보 금동대향로의 아름다움 앞에서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였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향로를 보니 그냥 보는 것과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승용 님의 설명대로 진품 향로가 주는 신비감과 아우라가 대단했습니다.” 맑아지고 있는 하늘 아래 서동요의 시작인 궁남지를 아시나요 두 번째 답사지는 궁궐 근처에 조성되었던 인공 연못 궁남지와 계백 장군의 5,000 결사대 충혼탑입니다. 궁남지 속 그림이 된 정토 회원들 문무왕이 탐낸 궁남지 넓게 탁 트인 궁남지의 전경이 시원스럽게 아름답습니다. 궁남지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어서인지 소풍 온 아이들처럼 참가자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포룡정으로 향하는 발걸음 신라의 문무왕도 태자 시절 백제를 공격하러 이곳에 왔다가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여 신라에 가서도 비슷한 연못을 만드는데, 그 연못이 바로 월지라고 합니다. 선화공주와 서동 “망해가는 백제의 기틀을 다시 잡은 분이 무왕입니다. 이곳 궁남지에서 살고 있던 용이 여인을 품어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서동입니다. 자라나 무왕이 됩니다. 서동은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신라 진평왕의 딸을 만나기 위해 신라로 가서 서동요를 만들죠. 드라마를 보셔서 내용은 다 아시죠.” 서동요와 관련된 이승용 님의 재미난 해설이 이어지자 회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자주 터졌습니다. 궁남지에 자라난 엄청난 크기의 연잎들 사이를 걷다 보니 이상한 거인 나라에 들어온 앨리스가 된 기분도 들었습니다. 궁남지를 지나 조금 걷다 보니 5천 결사대의 충혼탑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가족마저 버린 계백 장군과 5천의 결사대 그리고 이들에 맞선 어린 화랑들. 그들의 마음이 스쳐 지나가니 여러 감정이 밀려옵니다. 나라를 지키고자 가족마저 버린 그들의 비장함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낙화암의 3천 명은 모두 궁녀가 아니었대요 세 번째 답사지는 부소산성입니다. “부소산성은 산 아래 남쪽에 있는 궁궐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성으로 지금으로 보면 수도방위사령부 같은 곳입니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과 맞서 싸웠던 마지막 결전지입니다. 백제 패망의 현장이기도 하고요. 낙화암의 3천 궁녀 얘기가 유명하죠. 근데 궁녀가 3000명이라는 얘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서 삼천이란 삼천대천세계라는 표현처럼 아주 많은 숫자를 뜻하죠. 황산벌과 금강 입구에서 패배하고 나당 연합군이 부여로 쳐들어오자 의자왕은 아들 부여융을 데리고 공주로 피신을 가버립니다. 백화정 왕을 포함하여 떠날 사람 다 떠나고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은 여성과 어린이 등 약자들 정도겠지요. 이들은 오갈 데도 없고 피신할 데도 없으니까 부소산성 위로 올라갔고 적들이 계속 공격해오고 강이 가로막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낙화암에서 몸을 던지게 된 것입니다.” 낙화암의 소녀. 그들의 아픔을 위로 하는 걸까. 쫓기고 쫓겨서 막다른 이곳에 이르러 저 아래 짙은 백마강을 내려다 봤을 백성들의 절망과 비탄을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은 결국 약하고 평범한 이들. 씁쓸한 마음입니다. 젊어져라 젊어져라 낙화암 답사 후 참석자들은 잠시 부근에서 쉬기도 하고, 낙화암 아래에 있는 고란사에 내려가서 3년은 젊어진다는 약수를 마시고 젊어져 오기도 했습니다. 의자왕의 가묘 앞에서 마지막 답사지는 부여왕릉원입니다. “이곳은 부여 왕릉원 또는 능산리 고분군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왕들의 무덤이 여기 있습니다. 제 뒤편으로 있는 두 개의 무덤은 가짜 무덤입니다. 하나는 의자왕의 무덤이고 하나는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의 무덤입니다. 의자왕은 부여융과 함께 공주로 피신했다가 결국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죠. 기록에 따르면 10만 명에 달하는 백제의 인재들이 노예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가 멸망하기 전 부여에서는 믿기 힘든 해괴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의자왕은 점쟁이들을 포함하여 올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 버리고, 아첨하는 사람들은 좋아했습니다. 삼국사기의 이런 기록들은 의자왕의 무능과 부패를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당시 왕실이 민심을 많이 잃었다는 사실로 볼 수도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여러 국민의 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는 어리석음은 나라를 패망시키고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부여왕릉원 답사를 끝으로 부여 역사 기행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대전충청지부 지부장 권유숙 님이 정리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대전충청지부장 권유숙 님 “우리 모두 지금 하늘처럼 표정이 환해진 것 같아요. 이렇게 환한 마음으로 집에 가셔서 환하게 쓰이고 도반들과 함께 환하게 정토 활동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행사를 빛낸 우리 모두에게 손뼉을 쳐보겠습니다.” 권유숙 님의 말처럼 회원들 모두가 하루 종일 이어진 답사 일정에도 뿌듯하고 환한 표정이었습니다. “활동가다 보니까 온라인 활동이 대부분이고, 제가 사는 곳의 위치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동안 지부 지회 실천 활동지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곳에 관광은 왔어도 역사는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이번 기행에 얼른 참여했어요. 오늘 저랑 인연이 있었던 학생 분도 만나고 그분이 활동하는 모습도 보고, 온라인에서만 만나던 분들도 뵈니 더욱 좋았습니다.” 이번 역사 기행의 실무총괄을 맡은 대전충청지부 지원담당 김영은 님과도 짧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역사 기행 실무총괄, 김영은 님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행사라 기획하기 조금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놀며 배우며 다녀서인지 오늘 하루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 마음은 뿌듯합니다.” 오늘 역사 기행의 해설을 담당하였던 이승용 님과 잠깐 인터뷰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리포터 해박한 역사 지식에 놀랐습니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이승용 님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자주 오다 보니까 자주 공부하게 되고, 설명해야 하고 그러면서 저도 계속 공부를 하게 되는 거죠. 경주도 많이 다니고, 부여도 예전에 북한 이탈 주민들하고 함께 기행 왔었습니다. 왼쪽부터 실천리포터 김성욱 님, 해설자 이승용 님, 리포터 부여 역사 기행만의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이승용 님 아무래도 신라와 고구려가 망했을 때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부한 유적지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또 그때의 여러 가지 사회 현상 그리고 세 나라의 지도부는 어떻게 판단했는지 그런 기록이 잘 남아 있다 보니까,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공부하는데 부여가 굉장히 좋은 소재가 되는 것 같아요. 대전지회 세종지회 천안지회 청주지회 충주지회 오늘 하루 우리 곁을 소중히 지키고 있던 백제의 문화유산들을 통해 신라, 고구려에 비해 조금은 관심이 덜했던 600년 백제의 역사와 그 시절 동아시아 국가들의 치열했던 전쟁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계속된 전쟁 속에서 두렵고 아파했을 선조들의 삶을 떠올려보니,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정토회와 그 속에서 모자이크 조각이 되어 밝게 빛나는 참가자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첫 기사인지라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달려와 준 리포터들 덕분에 든든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역사를 배우고, 행동하는 우리는 정토행자입니다. 글김성욱 사진이시안, 대전충청지부 지원장수린, 박미경, 김난희

통일 2025.10.17. 395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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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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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