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출가·열반재일

8일 용맹정진

출가재일법회 : 2026년 3월 26일(목)
열반재일법회 : 2026년 4월 2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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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깨어있기

2026년 1차 백일명상

일정 : 2026년 4월 6일(월) ~ 6월 21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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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를 통해 나를 만나는 시간

2026년 1차 백일
1080배정진

일정 : 2026년 4월 6일(월) ~ 6월 21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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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 오프라인

월 명상수련

온라인 : 4월 3일(금) ~ 5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4월 15일(수) ~ 19일(일) /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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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깨달음의 장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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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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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좋고 싫음’을 떠날 자유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것이 뭐가 문제이지? 우유부단한 것보다 나은 것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한슬기 님의 백일출가 수행담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읽어볼수록 놓쳤던 부분이 보입니다. 싫어하는 것은 내 문제,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내가 맞다는 고집이었다는 문장이 마음속에 콕 박혔습니다. 한슬기 님은 자신이 호불호가 심한 것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내 성질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나에게서 시작되며,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자유, 하기 싫은 것도 해낼 자유를 누리는 것이 실전이라는 내용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서 해외 공동체 생활을 하며 대학취직결혼자녀노후로 이어지는 삶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돈이 중요하다’라는 인식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그 길을 당연히 여겨왔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다른 방식으로도 안정감 있게 살아갈 수 있음을 느꼈다. 처음으로 취직, 가정, 내 집 마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일본 공동체에서 1년 비자를 마치고 귀국하던 무렵, 이런 삶을 한국에서도 이어가고 싶었고, 자연스레 정토회와 법륜 스님이 떠올랐다. 2018년 인도 선재 수련을 계기로 정토회 청년 활동을 시작했지만,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전환되며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 다시 정토회가 생각났고, 홈페이지를 보던 중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백일출가에 지원했다. 한슬기 님.right 백일출가 입방 12주 전, 108배와 300배를 몇 차례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만 배를 시작했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절에서 3,000배를 해본 경험 때문인지 절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고, 따로 연습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백일출가는 꼭 하고 싶었기에 ‘어떻게든 만 배는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들어왔다. 절을 하며 가장 먼저 마주한 업식은 ‘의지심’이었다. 아빠가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 먼저 만 배를 마친 사람들과 나눠서 하진 않을까 하는 기대가 올라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아빠를 얼마나 의지해왔는지 실감했고, 이제는 부모님의 품을 떠나 스스로 서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예전엔 힘들면 쉽게 포기하거나 누군가에게 기대곤 했지만, 만 배는 오롯이 내 힘으로 완수해야 했다. 조급함이 올라왔지만, 끝까지 완주했고, 그 경험이 백일출가의 단단한 출발점이 되었다. 감사한 마음이 자라는 시간 백일출가는 나에게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마음이 다시 구성된 시간이었다. 원래 사이가 좋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감사함으로 깊이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 기도는 처음엔 형식적이었다. ‘지금까지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기도를 이어가고 수련이 깊어지자, 부모님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들이 떠올랐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 맞벌이하시던 부모님, 집에 붙었던 압류 딱지, 새벽에 동생을 달래던 기억, 재개발로 좁은 집으로 이사한 일. 그럼에도 열등감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건 그 시절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자주 놀러 다니며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기도를 거듭할수록 동생과 내가 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바탕엔 부모님의 큰 희생이 있었음을 깨달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신 것에 깊은 감사가 올라왔다. 고라니밭에서 솔직함이라는 착각 백일출가 초반에는 내가 고집이 세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는 걸 잘 몰랐다. 나는 옳고, 남에게 잘해주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이 불편하면 드러내는 편이었고, 마음 나누기에서도 그런 솔직함이 수행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수련이 깊어 갈수록 그 솔직함 뒤엔 내 기준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싫다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여기던 순간조차 결국 내 감정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붙였을 뿐이었다. 학생 때도 늘 누군가를 싫어했고, 백일출가에서도 그 모습은 여전했다. 돌아보니 이유는 모두 내 기준에서 비롯되었고, 정작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호불호가 만든 도반들과의 거리감 백일출가에서 일상이 시작되고도 나는 여전히 좋고 싫음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초반 소임 안내 시간, 스태프의 설명에 집중하려는 찰나 한 도반이 먼저 나서는 걸 보고 ‘저건 옳지 않다’ 싶었다. 이후에도 그 도반의 말이나 나서는 모습이 계속 거슬렸고, 나는 속으로 ‘싫다’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그 도반이 말을 걸면 무뚝뚝하게 대했고,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고 마주치는 것도 피했다. 어느 날 고구마 줄기를 다듬는 소임을 하는데 나와 그 도반을 포함해 셋이서 두 시간가량을 작업했다. 나는 평소처럼 싫어하는 도반에게는 무뚝뚝하게, 다른 도반에게는 살갑게 대했다. 소임을 마친 뒤 나누기에서 한 도반이 “오늘 처음으로 한슬기 행자님이 웃거나 먼저 말을 거는 모습을 봤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마음 깊이 미안함이 올라왔다. 생각해 보면 학생 때도 늘 한 명쯤은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땐 ‘한 명만 빼고는 다 잘 지내니까 괜찮아’하며 넘겼지만, 그 습관은 백일출가에서도 반복되었다. 이제는 한 명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세 싫어하는 내색을 했다. 그제야 나는 ‘싫어하는 건 내 문제’임을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행자대학원 입학식에서 ‘앗, 뜨거워’ 내려놓기 방식을 고집하는 마음은 공양간에서도 시시때때로 드러났다. 공양주님 말씀이 잔소리처럼 들렸고, 내가 뭘 하려는 찰나마다 나타나 말하는 게 괜스레 짜증이 났다. 마음 나누기 시간에는 공양주님이 늘 큰소리만 치고 정작 자신은 돌아보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공양주님이 방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수프 재료를 제안해도 줄이라 하고, 가루도 적당히 넣으라고 했다. 불만이 많았지만, 대꾸 없이 대충 넘겼다. 그러다 법사님께 이 이야기를 했더니 “뜨거운 돌덩이를 들고 ‘앗, 뜨거워’ 하면 그냥 탁 내려놔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공양주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부터는 무슨 말을 하든 ‘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반에 대한 불평도 줄어들었다. 돌아보니 공양주님이 없을 땐 내가 잔소리꾼이 되어 있었다. 할 일이 보이면 지적했고, 내 기준에 안 맞으면 불만을 품었다. 상황을 바꾸려는 척하면서 남 탓만 하는 나를 보았다. 공양주님은 언제나 대중공양을 책임지고 세심히 챙기셨다. 나는 내 방식에 부딪히는 모든 말을 잔소리로 여겼고, 쓴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도 내 식대로 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공양간에서 법사님의 조언은 내 생각이 곧 진실이고 틀림없다는 착각을 무너뜨렸다. 남이 이해되지 않으면 잔소리하고, 뭐든 혼자 하려던 나는 내가 만든 ‘사실’이란 틀 안에서 자만하고 있었다. 나를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불만으로 나타났다. 관계를 가로막은 것은 도반의 부족함이 아니라 ‘내가 맞다’는 고집이었다. 그 고집이 나를 뻣뻣하게 만들었고, ‘나 잘났다’ 식의 착각이었다. 물론 깨달았다고 해서 고집이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럴 때 따뜻하게 품어준 도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도반들이 있었기에 그런 나를 드러내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를 괴롭게 만든 문제는 상대가 잘못해서 생긴 분별이 아니라 내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상대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재단하는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 좋고 싫음을 넘어, 다시 출발선에 지금도 나는 좋고 싫음이 꽤 분명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련하며 부모님, 친구들, 공동체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나와 함께 지낸 사람들이 나에게 많이 맞춰줬구나, 나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내 성질대로 살아왔구나’ 자각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포부를 안고 백일출가를 했지만, 예상치 못한 내 모습을 많이 보았다. 특히 좋고 싫음에 대한 분별은 가장 큰 과제였다. 지난 100일간 수련하며 분명히 자각할 수 있었다. 이제는 실전이다.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자유, 하기 싫은 것도 해낼 자유 세상을 바꾸는 일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좋고 싫음에 구속되지 않을 때 세상도 바꿀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재입재를 마치고, 행자대학원 3년 과정을 밟고 있다. 여전히 싫으면 말을 아끼고, 좋으면 친근하게 대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때마다 ‘아, 내가 또 이러는구나’하고 스스로 알아차린다. 백일출가 때도 내 모습을 비춰준 건 도반이었고, 그런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것도 도반이었다. 이제는 내 모습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모두가 화합으로 나아가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 수련원에서 이 글은 2025년 8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수행담입니다. 글한슬기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월간정토 2026.03.30. 106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작은 진료실, 큰 수행_JTS 안산다문화센터 의료인정토회 무료 진료

화려한 진료 장비도, 번듯한 간판도 없습니다. 높은 건물들 사이, 코팅된 안내문 한 장이 전부인 작은 공간. 그러나 매주 일요일이면 여러 사정으로 치료가 막막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고 이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몸의 통증을 넘어 마음까지 데우는 진료가 시작됩니다.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서로의 삶을 어루만지며 수행의 길로 삼은 이들. 냉골 같은 진료실을 따뜻한 수행 도량으로 바꾸는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의 무료 진료 현장을 소개합니다. 냉골 진료실에서 시작된 하루 매주 일요일이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JTS 안산다문화센터로 모여듭니다. 진료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진행되지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접수 창구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진료전부터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 제가 무료 진료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센터를 찾은 1월 18일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습니다. 의료인정토회 봉사자들은 12시가 되기 전부터 도착해 진료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막 켜 둔 보일러 탓에 진료실 바닥은 말 그대로 냉골이었습니다. 맨발로 오가며 준비하기에는 너무 추워 저는 두꺼운 외투를 벗을 수도 없었습니다. 발바닥이 시려 신발장에 놓인 실내화를 신고서야 잠시 안도했습니다. 그때 맨발로 움직이고 있는 한 봉사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신발장에 실내화 있어요. 가져다 드릴까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실내화가 부족해서 제가 신으면 환자분들이 못 신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실내화를 먼저 신었다고 안도했던 제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 진료 준비가 끝나자 봉사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함께할 봉사자들과 마주 서서 명심문을 외우고 삼배를 올립니다. “환자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잘 쓰이겠습니다. 내 마음 잘 알아차리겠습니다” 명심문 한 구절 한 구절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진료시작전 명심문 외우고 삼배하기 이날은 총 11명의 의료인정토회 회원이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이 왕복 네 시간가량 걸리는 먼 지역에서 찾아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진료지만, 정작 봉사자들 가운에 안산 주민은 없습니다. 양·한방 협진,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다 환자들이 내원하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료가 진행됩니다. 먼저 양방 의사의 문진과 진료를 받고, 이어 옆자리로 옮겨 한방 진료를 받습니다. 환자들의 증상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고혈압과 당뇨, 무릎과 어깨 통증 등입니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몸의 아픔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양방에서는 정성스럽게 약물 주사를 놓고, 한방에서는 침 치료를 이어갑니다. 작은 바늘이 피부에 닿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지만, 환자들은 “전혀 아프지 않다”고 말합니다. 침을 뽑고 나면 올라가지 않던 팔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기도 하고, 통증이 사라진 듯 편안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양·한방 협진이 이루어지니 이보다 더 든든한 진료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몸의 증상뿐 아니라 마음을 함께 살피는 진료가 이어지는 곳. 그래서 어느새 ‘의료 맛집’이라 불릴 만큼 신뢰가 쌓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봉사가 준 자유, 윤정환 팀장의 이야기 여기는 어때요? 지난번보다 좀 나아졌어요? 또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연신 미소를 지으며 환자를 살피는 한의사는 3년째 안산다문화센터 진료 팀장 소임을 맡아 봉사자들을 이끌고 있는 윤정환 님입니다. 윤정환 님은 2025년 6월 과감히 한의원 문을 닫고 인도네시아로 의료봉사를 떠났고, 이어 8월에는 필리핀으로도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자녀에 대한 바람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 ‘모두 내 마음이 만들어낸 문제였구나’ 알아차리게 되었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유로움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호기롭게 한의원을 휴업했던 만큼,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있었습니다. 연말에 이를 감당하느라 좀 힘들기도 했지만, 봉사를 떠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봉사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고 자유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에 2026년 여름 필리핀 의료봉사도 신청해 두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온 환자들 윤정환 님뿐 아니라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은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내원한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하고, 보듬고, 살핍니다. 환자들은 번역기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전합니다.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옆에 있던 다른 환자가 통역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팔과 다리가 되고 눈이 되어주는 따뜻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는 세계의 공통어라 할 수있는‘바디랭귀지’로 마음을 전하려 애씁니다. 정성을 다해 진료하다 보니 이곳을 거쳐 간 많은 환자들이 완쾌되거나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인 파벨 님은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오게 되었고, 의료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무리하게 일한 탓인지 예상치못한 구안와사가 발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감기지 않고 눈물이 계속 흐르며, 입이 비뚤어지고 얼굴 한쪽은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있을 때, 이전부터 센터를 이용하던 친구의 소개로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후 매주 주말마다 한 시간 거리를 오가며 꾸준히 내원하고 있고, 치료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비뚤어졌던 얼굴이 제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파벨님은 구안와사이니 당연히 얼굴에만 침을 놓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다리와 배, 팔 등에도 침 치료를 받으며 한국 한방치료의 원리와 신비함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치료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컸지만, 이제는 거의 완쾌에 가까워졌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파벨 님의 미소가 누구보다 밝아 보였습니다. 봉사 현장의 또 다른 수행 다양한 환자들이 모이다 보니,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센터를 찾는 것은 아닙니다. 단골 환자 가운데에는 매주 치료를 받는 일이 익숙해져 의료진을 지나치게 편안하게 대하는 바람에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정성껏 조제해 드린 약 봉투를 뜯어 종류별로 다시 담아 달라고 요구하는 분도 있고, 자신만의 편의를 위해 센터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봉사자들은 만약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분들의 행동을 얼마나 시비했을까,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분별심을 일으켰을까 돌아본다고 합니다. 정토회원으로 배우고 수행해 온 시간이 있기에, 원망하기보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이분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고 설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게 현장의 모든 상황이 또 하나의 수행이 됩니다. 결국 나를 위한 봉사 의료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많고, 주·야간이 바뀌는 근무 형태로 생활리듬이 일정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하루쯤은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할 텐데, 어떤 의미가 있기에 자원봉사에 참여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제 질문에 봉사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소득은, 환자들을 도우러 왔다가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제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습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도반들과 친밀하면서도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고, 호전되는 환자들을 보며 세상에 잘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자녀들에게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떳떳합니다. 그러니 결국 모두가 ‘나를 위한 봉사’였음을 알게 됩니다.” 모두 귀한 직업이지만,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잘 쓰일 수 있는 이 봉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귀한 직업을 가졌구나’ 새삼 놀라게 되었다는 나누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도우러 온 봉사자들이 오히려 치유 받고,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곳. 그 선순환의 한가운데에서 ‘잘 쓰이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의 취재였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데우는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육혜련 편집허인영

복지 2026.03.20. 1,288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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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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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