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2026 깨달음의 장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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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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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꾸준한 정진 그리고 새로운 시작

30년 넘게 문자 한 통 보내지 않던 남편이 김은미 님에게 처음으로 보낸 장문의 문자는 이혼하자였습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뒤늦게 남편의 속마음을 듣게 되었고, 남편에게 깨달음의 장을 권하며 자신은 바라지장을 찾았습니다. 바라지장을 백일출가 하듯 해보라는 법사님 말씀에 따라, 1년 반 동안 바라지장 팀장 소임을 맡아 매달 4박 5일 떡집 문을 닫고 문경에서 바라지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재밌어서 시작했지만, 어느새 수행이 아닌 일로 대하며 공양간을 제 것처럼 여기는 자신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고집과 일에 대한 업식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은미 님은 이제 남편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임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김은미 님 부부, 서로의 다름을 보다 남편은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은 군소리 없이 잘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저는 활발해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보며 ‘좋은 게 좋지’라는 성격입니다. 이런 남편과 제가 함께 일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함께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남편과 매일 부딪쳤습니다. 제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남편은 하는 일마다 이것은 이래서, 저것은 저래서 못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사는 일종의 서비스업인데 서비스라는 개념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 내성적이고 자기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최근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니 상대를 모르면서 제 뜻대로만 맞추려고 했으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말이 없는 사람이라 제가 참고 또 참으며 남편에게 맞춰야만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 했길래 이렇게 참아야 하나 싶었습니다. 아침 기도를 할 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라는 기도문을 외지만 그 기도문이 저에게 돌아오기보다는 오히려 참았던 것들을 터지게 했습니다. 저도 할 만큼 했기에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에게서 카톡 문자가 왔습니다. 그것도 도착한 지 24시간이 지나서야 봤습니다. 휴식 중에 ‘이혼’이라는 문자가 맺어준 부부의 문경수련 3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제가 보낸 문자에 답도 없고, 문자도 보내지 않던 사람이 장문의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난 도저히 너랑 함께 살 수 없으니 이혼하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 읽은 순간 화가 났지만,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그래, 나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이 없어서 못 한 말을 꺼내 줘서 고맙구나’ 싶었습니다. ‘좋아, 당신 마음이 그렇다면 이혼하자’라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참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주고받은 문자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이혼하자는 말을 남편이 먼저 꺼냈는데, 제가 붙잡지 않자 시누이가 오빠와 다시 이야기해 보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뒤늦게 남편의 속마음을 듣게 되었고, ‘내가 잘못한 게 많구나’ 깨달았습니다. 남편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깨달음의 장’ 수련을 제안했고, 남편도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2024년 8월에 남편은 깨달음의 장에, 저는 바라지장을 찾았습니다. 공양간 봉사자들과 함께 바라지장 수련을 하며 바라지장 수련 입재식 때, 저는 공양간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래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예, 합니다’라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고 신나게, 재미있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대광 법사님을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법사님께서 떡집을 어떻게 하고 왔느냐고 물어서 “문 닫고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태껏 쉬었으니, 지금부터 정진하면서 바라지장을 백일출가 하듯이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하며, 바라지장 팀장 소임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매달 4박 5일 떡집 문을 닫고 해 보자는 마음이었고, 이는 제 업식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냥 ‘재밌다’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떡집을 하며 생긴 습관과 제 고집이 얼마나 큰지까지는 몰랐습니다. 수행보다는 일로서, 공양간을 마치 제 것인 것마냥 대했던 것 같습니다. ‘잘 듣고 합니다’, ‘잘 묻고 합니다’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에 대한 업식이 매우 큰 사람이었습니다. 떡집에서 새벽부터 하루 12시간 이상 서서 작업하는 저에게 공양간 일은 ‘누워서 떡 먹기’였습니다. 다른 보살님들이 힘들다고 하면 ‘이게 무슨 일이라고 힘들다고 하지?’ 하고 분별심을 냈고, 공양간 일에 서툰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재료를 사용할 때 총괄팀장님께 여쭤야 했는데, 묻지 않고 사용했던 행동이 부끄럽습니다. 수련의 장임을 잊고 일꾼의 마음으로 임하고 있었습니다. 차츰 서툰 분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것이 바라지장 수련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부끄러운 마음도 알게 되었고, 억울한 마음도 많았음을 수련을 통해 알아갔습니다. 도반들과 저녁 나누기만 하면 눈물이 나면서 가슴 한쪽이 먹먹하게 아팠습니다. 어렸을 때는 착한 딸, 커서는 착한 아내, 착한 엄마로 살면서 억울함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착한 마음을 상대에게까지 바라며 분별심을 내고,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미운 마음도 많이 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챙기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챙기면서 불편함이 많았고 힘들었던 것입니다. 공양간에서 눈물로써 마주하는‘나’ 어떤 보살님이 “애어른으로 살았으니, 힘들었겠다”라는 말에 가슴을 후비듯 눈물이 났습니다. ‘나를 내가 아껴주지 않았구나’ 그날부터 매일 거울을 보며 ‘나야, 애썼다’라고 토닥여 주었고, 그러면 눈물이 났습니다. 매달 4박 5일 일정을 위해 떡집을 비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습니다. 매달 문경수련원에 다녀오겠다고 남편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일방적인 통보만 합니다. 그렇게라도 다녀와야 하기에 그랬습니다. 제 고집이 이렇게 센 줄 몰랐습니다. 나쁜 것도 아닌데, 상대에게 의견을 말하는 것이 잘 안됩니다. 남편이 제 말을 잘 듣지 않으려 한다는 생각과 ‘내가 얼마나 고집대로 했으면 남편이 그럴까’하는 마음이 함께 듭니다. 바라지장 수련 1년이 지나며, 모든 일에서 저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고집을 보면서 ‘그래, 같이 살고 있는 남편 역시 많이 힘들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일 새벽 정진을 놓치지 않고 하면서 ‘아무 문제 없는 남편을 내가 너무 미워했구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많이 무시했구나’ 싶었습니다. 저와 너무 안 맞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구나’를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다름을 알았더라면 살아가면서 힘들지 않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알아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4박 5일 수련하고 돌아올 때면 참회의 기도와 마음으로 집에 도착하고, 저를 향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마음이 맑고 가벼워졌습니다. 수련원에서 바라지장에서 얻은 삶의 에너지 매달 4박 5일 떡집 일을 멈추고 바라지 수행을 하는 동안에는 제 마음이 더 잘 보입니다. 상대의 말을 듣고 상대에게 물으면서 제 업식인 고집이 드러납니다. 생각도 많고 욕심도 많고 요구도 많은 저를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번 바라지에서는 법사님이 ‘남편을 미워하는 그 마음이 참회거리’라고 하실 때 가슴이 쿵, 하였습니다. 남편을 미워하는 제 마음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난 이렇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그동안 살면서 남편과 아이들을 힘들게 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 딸이 저에게 큰 수행 거리를 줍니다. 제 행동을 지적해 주면서 저 자신을 볼 수 있게 합니다. 문경수련원 바라지장은 저에게 에너지를 주고 쉼터가 됩니다. 떡집에서 생긴 많은 수행거리를 가지고 매달 수련원 소나무 숲속을 지날 때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앞으로도 쉽지는 않겠으나, 꾸준히 바라지장 수련으로 정진하고픈 마음입니다. 그동안 1년 반 동안은 수행 연습을 한 것이고, 앞으로 3년은 새벽 정진과 함께 바라지장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꾸준한 정진을 통해 신념이 강하고 고집 있는 저를 살피며 새롭게 시작하렵니다. 이 글은 2026년 4월 호에 수록된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김은미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월간정토 2026.10.19. 63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엇으로든 새겨지고 남으리라_사천왕사지 광복절 특별 정진

정토회 부산, 울산지부에서는 202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81주년 특별 정진 행사를 했습니다. 아침 여섯 시 무렵 경주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안쪽으로 진입하니 공터엔 이미 차들로 가득합니다. 행사를 위해 캄캄한 새벽부터 온 회원들이 보였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살피며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출발할 때는 어두웠는데 서서히 날이 밝아 옵니다. 밝아 오는 아침, 언덕길을 오르며 사천왕사지와 선덕여왕릉 두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당간지주 한 쌍이 나란히 보입니다. 사천왕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입니다. 무심코 보면 휑하기까지 합니다. 산속의 재잘거리는 물소리도 없지만, 이곳엔 우리 선조들의 신묘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정표와 당간지주 사적비 사적비는 이곳이 호국 도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 통일 후, 당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지었습니다. 명랑 법사의 제안대로 이곳에 절을 짓고 ‘문두루 비법’을 쓰자 당나라 대군을 실은 배가 서해에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정토 회원들이 왜, 이곳에서 11년 동안 통일 기도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절터 안으로 들어서니 시야가 확 트입니다. 예초기로 풀을 베고 말끔히 정리해 놓았지만, 운동화에 이슬이 흥건히 배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기도를 이어온 도반이 많다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금당 터에는 회원들이 차분하게 앉아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천왕사지 기도를 한결같이 해 온 그들이 실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흰색 티셔츠에 수수하게 차려입어 초록색 풀잎과 잘 어울렸습니다. 메고 온 가방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고 뒤쪽에 따로 줄지어 세워둡니다. 신발도 아무렇게나 벗어두지 않으려고 신발주머니까지 챙겨왔습니다. 기도 정진에 임하는 자세에서 섬세한 정성이 묻어납니다. 기도할 자리에는 파란색과 연두색 대형 방수포를 깔고 방석을 놓고 다시 기도포로 반듯하게 방석을 덮어 감쌌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방석 위에 기도포 사찰에서는 새벽예불 전에 스님이 목탁을 치며 경내를 돌고 염불을 외웁니다. 도량을 청정하게 정화하고 잠자는 만물과 대중을 일깨우는 불교의 첫 의식입니다. 목탁을 들고 도량석을 도는 서명주 님은 10년째 일요일마다 통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기도 정진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도량석을 시작할 때는 실수할까 봐 약간 긴장도 했는데, 많은 사람의 염원이 모여서인지 기도할수록 힘이 더 났습니다. 매주 이렇게 잘 쓰여서 좋습니다. 10년 전 처음 참여했을 때 이렇게 바깥에서 자연 풍광을 보면서 기도한다는 게 참 가슴 벅찼습니다.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사천왕사지 기도가 좋아서 매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여합니다. 법사님도 도와주고, 해운대 법당 도반들 도움으로 목탁 집전도 배워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중울산 지회 서명주 님 현장에는 여러 곳을 두루 비출 수 있게 카메라 세 대를 설치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 하나하나에 현장에 모인 정토 회원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행사를 여는 지등명 법사님의 정감 어린 말씀은 평화통일 특별 정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시원한 마중물이 됩니다. 이어 지회별로 참석한 도반들의 소개가 있습니다. 부산 정토회, 울산지부 산하 총 7개 지회에서 현장 152명, 온라인 89명이 참석했습니다. 동래지회 지회장님은 아침에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귀국하자마자 달려왔습니다. 해마다 봉림사지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는 유수 스님도 올해는 사천왕사지에 왔습니다. “가야와 합병한 신라가 일치단결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 나아가 통일을 염원했던 곳이 바로 사천왕사지입니다. ‘관‧세‧음‧보‧살’ 한 자 한 자 집중해서 절하다 보면 내 업식을 알아차리는 때가 옵니다. ‘영험’은 바로 그런 것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 입정의 시간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또렷이 구별되면서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습니다. 다음으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발원문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낭독합니다. “8천만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시대적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길, 그래서 화해와 협력의 길이 열리길 발원합니다.……” 절을 시작하기 전, 입정 반드시 평화통일을 이루어오리다. 광복절 평화 기도, 300배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마음을 오롯이 집중하며 간절히 절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아내와 함께, 신용필 님 많은 사람 가운데 쉬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고 있는 신용필 님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지금 마음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늘 생각하며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조그만 원이 모여 나라의 희망이 되면 좋겠어요. 이 모든 행사를 준비한 분들이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오고 싶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쉼 없이 몸을 숙였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300배도 막바지에 다다릅니다. 어느덧 해가 떠올라 대지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예전 우리 할머니,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운 정성처럼 지금 사천왕사지에 염원이 깃들고 있습니다. 절을 마치니 몸은 땀에 젖고 손은 따스합니다. 모두 자신의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만세삼창’까지 외쳤습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넘칩니다. 북녘으로 뻗어 올린 오른팔처럼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평화통일’이 그곳까지 가 닿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행사가 끝났습니다. 회원들은 진행팀에서 보시한 찹쌀떡과 수박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랬습니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여럿이 모둠별로 둥글게 둘러앉아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나눕니다. “몇 년 만에 사천왕사지에 왔지만, 기도하니 마음이 좋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이어서 정진해 온 분들이 고맙습니다. 보통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기도하는 힘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참석하겠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할 때 정신이 맑게 깨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명상할 때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유독 잘 들렸습니다. 절을 할 때는 오늘,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습니다.” “작년 광복절에 오고 일 년 만에 다시 왔습니다. 온라인보다 이렇게 직접 사천왕사지에 있으니, 제가 오히려 기를 받는 것 같아 더 좋습니다. 여기를 꾸준히 지켜주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 기도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덕분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켰던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한 배 한 배 정성 들여 기도했습니다.” 김금수 님, 임분옥 님, 한영숙 님, 김은하 님 매번 겪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같았습니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몇 시간은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준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반들과 만나 인사하고 몇 시간 잘 쓰이다 보면 일상의 작은 괴로움은 온데간데없고 충만한 기운이 가득 차오릅니다. 광복절, 사천왕사지에서 함께 특별 정진으로 기도하니 행복이 몇 배가 됩니다. 평화 기도는 언제나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면 어느 날은 삼 백배, 오 백배, 천 배, 만 배가 됩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 엎드리며 행하는 실천은 절대로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토회 회원이든, 누구에게든, 혹은 사천왕사지에 스며들어 통일을 앞당기는 기운이 되든, 이 모든 염원과 실천은 그 무엇으로든 반드시 새겨지고 남을 것입니다. 글과 사진최상훈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통일 2026.10.09. 1,033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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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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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