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동지기도

동지법회 : 2025년 12월 22일(월) 오전 10시 생방송
기도접수 : 2025년 11월 19일(수) ~ 12월 24일(수)
자세히 보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

2026 청소년 선재수련

기간 : 2026년 1월 10일(토) ~ 17일(토)
접수마감 : 2025년 12월 25일(목)
자세히 보기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51기 백일출가 모집

출가기간 : 2026년 3월 6일(금) ~ 6월 13일(토)
접수마감 : 2026년 2월 19일(목)
자세히 보기

2025년

전자기부금영수증
발급 안내

2025년 기부금부터
전자기부금영수증 발급합니다.
자세히 보기

2026년 상반기

정토담마스쿨 입학생 모집

영어, 한국어, 불어, 독일어, 일본어
마감: 2026년 2월 10일
자세히 보기

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자세히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가족을 찾아준 바라지장

천혜진 님은 아버지의 말에 가장 많은 상처를 받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마음을 금이 간 꽃병에 빗대어 표현했는데요. 어떤 마음일지 알 것 같아 참 애잔했습니다. 방송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하다 만 36세 젊은 나이에 유방암 환자가 되었지만, 이를 치료하며 깨달음의 장과 바라지장을 다녀오게 되었는데요.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이를 계기로 참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시죠? 확실한 건 해피엔딩이라는 겁니다. 살면서 가장 미워한 사람, 아버지 “부모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하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늘 최악,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동생과 나를 차별하는 사람,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폭군, 몽둥이질보다 더한 언어폭력으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대학도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고, 성인이 된 후로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집에 갔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이틀만 지나면 숨통이 조여오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의 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혹은 다른 의견을 말하기라도 하면 무차별적인 폭언을 쏟아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악의 인간’이 된 듯한 좌절에 빠지곤 했습니다. 떨어져 살면서도 이따금 아버지와 부딪혔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 했지만, 금이 간 꽃병 같은 제 마음엔 늘 물기가 새어 나왔습니다. 천혜진 님 그런데 결혼 후 ‘이제 내 편이 생겼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까요? 어느 날 문득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지?’ 싶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부모님 집에 발길을 뚝 끊었고, 연락이 와도 무응답으로 일관했습니다. 마치 부모란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일방적으로 연을 끊은 채 1년, 2년, 3년… 아버지가 늘 달고 살던 말처럼 부모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고 나니 차라리 편했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어버이날이나 명절이면 가슴에 무언가 얹혀있는 것 같았지만,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것에 비하면 그건 ‘잠깐의 불편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만 36세, 젊은 유방암 환자가 되다 이런 아버지와의 관계로 제 마음에는 원망과 분노가 쌓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밥을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사람처럼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참 열심히도 일했습니다. 방송작가로 일하며 방송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습니다. 때때로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혹사하면서 일하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저 자신을 갈아 넣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에 한 번꼴로 밤새는 일상을 당연히 여기며 산 지 12년째인 지난해 7월, 병원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 몸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 진단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게 딱 이런 걸까요? 불과 몇 달 전에 제가 만든 방송에서 젊은 유방암 환자가 요새 얼마나 급증하는지, 어떤 생활 습관이 유방암을 일으키는지 잘난 척 떠들어댔는데…. 만 36세, 그 젊은 유방암 환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첫 바라지장에서 원망과 미움을 내려놓자 찾아온 마음의 해방 두 달 후 유방암 수술을 받고 반강제적인 휴식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동안 욕심부리며 하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컨디션이 돌아온 후 11월, ‘깨달음의 장’을 신청했습니다. 불교대학, 경전대학을 졸업하고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가지 못했는데, 쉬는 김에 다녀오자 가볍게 생각하고 ‘깨장’에 참가했습니다. 깨장에서 역시 저의 화두는 ‘아버지’였습니다. 4박 5일간 집요하게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비로소 나를 괴롭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내려놓았을 때, 일순간 해방되는 듯하던 자유로움과 후련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동안 나를 괴롭히고 얽매이게 한 건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그 강렬한 경험은 제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분명 모든 것이 변함없고 그대로인데,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뜬 것만 같았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편안했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딱 두 달 후, 바라지로 다시 한번 문경수련원을 찾았습니다. 첫 바라지장에서 일과 수행의 일치 부처님 법을 온몸으로 느낀 바라지장 2025년 1월 넷째 주 바라지장에는 총 17명의 바라지들이 모였습니다. 저처럼 처음 온 사람도 있었고, 이미 여러 번 바라지를 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낯설었지만, 또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공양간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만 같고 ‘수련생들에게 나갈 음식을 망치면 어떡하지?’ 하며 물러서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과일 손질을 하겠다고 지원했습니다. ‘과일 손질이 별 게 있겠나’ 하며 사과를 자르는데, 마침 잠시 들른 팀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다 베어버리면 어떡해요 버려지는 부분이 너무 많잖아요. 아직 시간 많으니까 서두를 필요 없어요. 천천히 하나씩, 정성 들여야 해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니 ‘깨장’에서 먹었던 음식이 그토록 맛있었던 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정성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쏟고 정성을 쏟으니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라는 명심문을 할 때마다 코끝이 찡했습니다. 식재료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물 한 방울 그냥 흘려버리지 않는 것을 보며 평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낭비하는지,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고 살았는지도 저절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지 않아도 누군가 설거지를 하면 바로 옆에서 물기를 닦아내고, 누군가 식재료를 손질하면 조용히 도마와 칼을 들고 와서 거들고, 분명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도 매 순간 감동이었습니다. 소리 없는 배려가 몸으로 느껴지니 한발 물러서던 마음이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고, 함께 일하는 도반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잘 쓰는 것 즉,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살갗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월 바라지장에서 “일단 가보면 안다” 부모님과 함께 무작정 문경행 1월에 첫 바라지장을 다녀온 후 2월에 한 번, 3월에 한 번 또 바라지장을 갔습니다. 바라지장을 한 번 다녀올 때마다 제 삶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1월 바라지장을 다녀와서는 3년 만에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동안 주변에서 아무리 설득해도 요지부동, 문자 한 통 보낼 마음조차 들지 않았는데 바라지장에서 도반들의 나누기를 들으며 ‘아버지 마음도 그랬겠구나’ 이해하게 된 덕분이었습니다. 2월에 다시 바라지장을 갔을 때는 묘당 법사님께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식은 그렇게 부모에게 모질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부모는 그렇지 않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그냥 가면 된다.” 3년 만에 부모님 집에 갔을 때.right 그렇게 법사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바로 다음 주에 부모님 집에 내려갔습니다. 3년 만에 처음 간 부모님 집인데 놀랍도록 모든 것이 똑같았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하면 어색할 줄 알았는데, 어제도 그제도 봤던 것처럼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던 중, 바라지장 팀장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혜진 법우, 3월 첫째 주에 바라지가 부족해요. 혹시 시간 되면 도와줄 수 있어요?” 전화를 끊고, 순간 부모님도 같이 문경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거기에 가면 뭘 하냐? 뭐 하는 곳이냐?” 묻는 부모님에게 ‘깨장’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어서 “내가 다시 집에 오게 된 것도 여기를 갔다 왔기 때문이야 가보면 알아”라고만 말하고, 그 자리에서 부모님 이름으로 ‘깨장’ 신청을 해버렸습니다. 며칠 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수련생으로, 저는 바라지로 문경수련원을 찾았습니다. 영양꾸러미 봉사 부모님의 바라지로 살아본 4박 5일, 작지만 큰 기적 아버지는 수련 전날까지도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그런 아버지와 문경수련원에 함께 왔다는 자체가 기적 같았습니다. 결국 딸에게 못 이겨 따라온 아버지가 우습기도 하고, 조금 귀엽게도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을 등 떠밀어 수련생으로 보내고, 공양 준비를 하는데 사과를 자르다가 문득 ‘내 손으로 부모님께 과일 한 번 깎아드린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지껏 아무 사랑도 받지 못했고, 그래서 나 혼자 이렇게 큰 줄 알았는데, 부모님이 해주는 모든 것을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생 바라지를 받으면서도 바라지를 받는 줄도 모르고 살았구나’라고 번뜩 정신이 들자, 그저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 사랑받지 않고 보살핌받지 않은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습니다. 그곳이 어딘지, 뭐 하는 곳인지 몰라도 자식이 가자니 무작정 따라나선 것만 봐도 사랑이 없었으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적이 부모님은 살면서 단 하루라도 있었을까? 아마 ‘깨장’에서 보내는 이 시간이 평생 처음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 부모의 무수한 지난 세월은 누구를 위해 쓰였을까? 바라지를 하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서 애썼지만 무슨 수를 써도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아서 늘 허덕였는데, 눈을 뜨고 보니 내가 간절히 바라던 모든 것은 이미 넘치도록 내 손안에 있었습니다. 3월 바라지장에서 모든 수련이 끝나고 부모님을 만났을 때 어쩌면 살면서 처음으로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부모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것도 처음이고, 저 또한 부모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서로 상처 내지 못해 안달이 난 듯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던 아버지와 저에게 이런 순간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냥 ‘고마워’ 한마디면 되는 거였습니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어서 가족이 지독하다 여겼는데, 가족이라는 말 한마디에 그 오랜 응어리가 다 풀어졌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와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대화’를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 공들여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삶에 ‘가족’을 되찾아준 깨달음의 장과 바라지장에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2025년 5월 호에 수록된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천혜진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월간정토 2025.12.22. 368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그 길을 걷다, 그 뜻을 잇다"_2025년 아시아지역 평화 실천 릴레이 2탄

2025년 가을, 아시아 곳곳에서 평화를 향한 작은 발걸음들이 이어졌습니다. 베트남, 필리핀, 중국, 홍콩 등 각지의 회원들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고, 선조들의 희생과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평화 실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민의 역사, 독립운동의 흔적, 그리고 식민과 전쟁의 상처가 깃든 장소를 따라 이어진 기록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평화는 어떻게 지켜져 왔으며, 오늘 우리는 무엇을 이어가야 하는가? 역사의 무게와 선조들의 용기를 가슴으로 체험한 아시아지회 회원들은 평화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감사함으로 실천해야 할 작은 용기임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9월 1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이어졌던 아시아지역의 평화 실천 릴레이, 그들의 진정성 있는 두 번째 여정을 지금 전합니다. 베트남 호찌민, ‘기록이 이어준 감사, 이민의 시간에서 평화를 배우다’ 호찌민, 10월 22일 배미령 베트남 호찌민 활동 인원이 많지 않은 호찌민 모둠은 오프라인 실천보다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2025년 10월 22일 수요일 오후 8시 30분, 현장 참석자 3명과 온라인 참석자 2명이 함께 모여 KBS 광복 80주년 특별기획 영상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를 시청하고, 그 의미와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하와이 이민자 선조들의 삶을 돌아보며 평화를 성찰한 오후 1903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다시 바라보며, 그 고단했던 삶 속에서도 조국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고 독립 자금 모금에 참여했던 선조들의 뜻을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문 연구자가 부족했던 시대에 한 개인이 꾸준히 자료를 발굴하고 기록을 보존해 준 덕분에, 지금 우리가 그 역사와 감동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깊은 감사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제작된 포스터 한 장에서도 전해지는 울림을 통해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민 세대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찾아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힘든 삶 속에서도 한국인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분들의 강인함과 따뜻함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가치, 일상의 기쁨이 선조들의 희생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일깨웠습니다. 오늘 함께한 시간은 우리 민족의 강한 생명력, 그 시대 여성들의 놀라운 용기와 저력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귀한 여정이었습니다. 선조들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앞으로도 평화를 위한 실천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온라인과 현장을 병행하여 특별기획 영상 「나는 한국사람입니다」를 시청하고 소감을 나누다 필리핀 마닐라 리잘 파크, ‘국경을 넘어선 우정과 희생, 평화를 새기다 ’ 마닐라, 11월 8일 윤보연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 모둠은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모둠원 가족들과 함께 필리핀의 상징적인 역사 공간인 리잘 파크를 방문하여 평화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이날 참여 인원은 회원 5명, 일반인과 어린이 6명으로 총 11명이었으며, 모두가 가벼운 마음으로 공원을 걸으며 뜻깊은 역사의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한반도와 세계평화의 구호를 외치다 리잘 파크는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의 업적을 기리고자 조성된 국립공원으로, 그의 동상과 기념비가 자리한 중요한 역사 교육 공간입니다. 많은 현지 학생과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이름과 장소가 지닌 본래의 의미는 언제나 깊고 엄숙합니다. 호세 리잘은 무력보다 교육과 문학을 통한 계몽을 선택해 스페인 식민 정부의 억압과 부패를 고발했으며 35세의 젊은 나이에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필리핀 국민의 의식과 자부심을 일깨우는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공원 한편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된 한국인을 추모하는 평화기원탑이 있었습니다. 또한 6·25 전쟁에 세 번째로 참전해 7,500여 명이 파병되었던 필리핀 전투부대의 희생을 기리는 우정의 탑과 조형물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한국과 필리핀의 깊은 인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을 둘러보며 우리는,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과 지금 누리는 삶의 바탕이 된 수많은 희생에 대한 감사로 마음이 숙연했습니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이러한 기억과 성찰이 모여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에 더 가까이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6.25전쟁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추도와 평화 기원의 탑 상하이 모둠, ‘ 따로 또 같이 평화 실천 활동’ 중국, 11월 9일11월30일 상하이 모둠은 중국 각지에 소수로 넓게 분포되어 활동하고 있는 특성상, 각자 거주 지역에서 ‘따로 또 같이’ 평화 실천 릴레이 활동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난징, ‘항일 항공 열사기념관 역사 탐방 보고’ 이보미 상하이 첫 활동으로, 난징에 거주하는 이보미 회원은 역사적 장소를 직접 찾아 그 의미를 되새기고, 모둠 소통방에 탐방지 사진과 소감을 공유했습니다. 난징은 1937년 일본군 점령 시 민간인과 포로를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난징 대학살 사건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곳입니다. 전쟁범죄의 상징적 사례를 확인하고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며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기 위해, 11월 9일 아침 난징 대학살 희생자 기념관 방문을 계획하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당일 방문 예약이 모두 찼고, 다음 날부터 한 달간 보수공사 예정이라는 안내를 받아 아쉽게도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미리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 점을 참회하며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난징 항일 항공 열사 기념관을 견학할 수 있었습니다. 난징 항일 항공 열사 기념관은 중일전쟁 당시 중국을 도와 싸우다 희생된 한국인 파일럿을 비롯한 전 세계 항공 영웅들을 기리는 뜻깊은 공간입니다. 난징 항일 항공열사기념관에서 홀로 평화를 염원하다 다양한 국가의 희생자를 기리는 전시와 추모는 단순히 한 나라의 역사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 연대와 항일 항쟁을 함께 기억하려는 의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한국인 전사들을 기리는 전시관을 통해 우리의 평화정신과 연결되는 의미를 느꼈으며, 중국, 러시아, 미국 등 각국 추모비 사이에 위치한 한국군 추모비 앞에서 묵념했습니다. 일제에 항거한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과 희생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번 탐방을 통해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며, 현시대의 내부 화합과 한반도 평화 유지의 중요성을 곱씹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항공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평화와 국제우호를 기리는 기념탑 상하이, ‘만국공묘 역사 탐방 보고’ 류유신 상하이 2025년 11월 21일 상하이 모둠은 상하이 거주 회원 4명과 행복학교 신청자 1명, 총 5명이 함께 상하이 만국공묘를 방문하여 평화 실천 릴레이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탐방 장소인 만국공묘는 송칭링 기념관 안에 위치하며, 일제 강점기 항일투쟁을 펼치다가 타국에서 돌아가신 한인 독립 열사들의 묘가 옮겨진 역사적 장소입니다. 이 묘역은 단순한 묘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국외에서 희생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투쟁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원래는 징안스루에 위치했으나, 중국 문화 대혁명과 도시 재개발 등으로 인해 일부가 이전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동 과정은 역사적 기억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다양한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도 선조들의 발자취를 보존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어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국공묘는 과거 상하이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묘지 중 일부이며 표지석만 남아 있기도 하였다 현재 확인 또는 추정되는 한국인 묘는 총 14기이며, 노백린, 박은식, 신규식, 안태국, 김인전 등은 1993년, 윤현진, 오영선 등은 1995년에 국내로 봉환되었습니다. 묘지를 둘러보며 우리는 머나먼 타국에서 독립운동의 험난한 길을 걸으신 열사들의 외로움과 고통, 시련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해방된 조국을 직접 보지 못하고 이역만리에서 눈을 감으셔야 했던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미게 했습니다. 비록 표석은 침묵하고 있지만, 그 아래 묻힌 분들의 못다 이룬 꿈과 염원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습니다. 이러한 표석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조국 독립을 향한 염원이 뼈아프게 새겨진 우리 민족의 아픔 그 자체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지금 누리는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깁니다 자싱, ‘김구 선생 피난지 역사 탐방 보고’ 류유신 상하이 2025년 11월 28일 늦가을의 차분한 햇살 아래, 상하이로 여행을 온 조카와 함께 우리 부부는 중국 가흥의 김구 선생 피난지를 방문했습니다. 김구 선생 피난지는 저장성 자싱 남호 메이완가에 위치합니다. 한인애국단의 이봉창·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감시로 더 이상 상하이에 머물 수 없게 된 김구 선생이 중국인 정치가이자 사회활동가인 저보성의 도움으로 지냈던 곳입니다. 메이완가 골목을 따라 들어서면 보이는 2층 기와집에서 김구 선생은 몸을 숨기며 생활했습니다. 겉모습은 평범한 고택이지만, 하루하루 일본 순사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긴장과 불안 속에서 지내야 했던 선생의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애잔했습니다. 외롭고 답답한 피난 생활 속에서도, 조국 독립을 향한 간절한 바람과 사명감이 선생을 지탱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저장성 자싱 메이완구에 위치한 김구피난처 1층 전시관에 전시된 기록물을 통해, 저보성의 아들 저봉장과 양자 진 동생 부부 등 온 가족이 위험을 무릅쓰고 김구 선생을 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 순사가 오면 즉시 탈출할 수 있도록 마련된 비상구와 24시간 대기 중이던 조각배를 보며, 당시 선생이 느꼈을 긴박함과 숨죽이는 순간이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2층 방에서 창문을 통해 외부의 세상을 마주했을 김구 선생의 뜻을 기리며 2007년부터 시작된 보존 사업 덕분에 지금은 저장성 성급 문물 지역으로 잘 보존되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피어난 한·중 우의와 조국 독립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온전히 느꼈던 뜻깊은 방문이었습니다. 회원들과 함께 다시 찾아 오기를 기원하며 홀로 김구 선생을 기립니다 항저우, ‘ 대한민국 임시정부사적지 역사 탐방 보고’ 류유신 상하이 자싱에서 다시 1시간을 달려 항저우라는 아름다운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항저우는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수저우와 항저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이 특히 사랑하는 도시입니다. 자연경관, 역사, 문화, 경제까지 모두 갖춘 도시라 여행자들에게도 매우 인기가 높습니다. 경관이 빼어난 서호라는 호숫가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사적지가 있습니다. 임시정부는 상하이자싱항저우창사광저우류저우충칭 등으로 이동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는데 그중 항저우 시기는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활발히 활동이 이루어진 시기였습니다. 항저우에는 세 군데 임정 사적지가 있는데 제가 방문한 호변촌 청사는 다행히 관광지 근처여서 방문객이 있고 항저우시 정부의 역사 문화 보존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1층에는 당시 사용했던 태극기가 걸려 있고, 부엌과 응접실 등 생활공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김구 선생과 동지들이 생활하며 독립운동 전략을 논의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지금의 내가 그 상황에서 과연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과 고뇌가 떠올랐습니다. 20대 조카 또한 같은 생각을 하며, 그 삶의 무게를 함께 느꼈습니다. 당시 사용 하던 태극기와 응접실 역사적 배경과 여러 자료가 전시된 2층을 천천히 살펴보며 몰랐던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공간 하나하나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과 그들의 결연한 의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저는 역사적 공간 속에서 과거 인물들의 삶과 마음을 깊이 이해했으며, 독립을 향한 간절한 바람과 그 속에서 피어난 한·중 우의는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이 할 일을 해낸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떠올리며, 저 또한 현재의 위치에서 작은 책임과 용기를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항주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들의 사진이 벽면에 걸려있다 홍콩 역사박물관, ‘과거와 현재를 마주하며 ’홍콩, 11월 26일 송정민 싱가포르 싱가포르 모둠 홍콩 지역 거주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 법회를 통해 도반애를 다지며 정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1월 26일 오전에 법회를 마치고 평화 실천 릴레이 활동을 위해 홍콩 역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박물관 안에는 중·고등학생들이 진지하게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움직이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영국식민지 홍콩을 점령한 일본군은 1945년 8월 15일 패망하여 홍콩은 영국의 통치가 재개되었다 첫 전시 섹션은 국가보안법과 공산당 관련 내용이 중심이었습니다. 과거 홍콩 시위를 배경으로 제정된 이 법은 반체제 활동을 강력하게 통제하여 홍콩 시민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해당 영상은 짧게 시위를 다루고, 중국이 가져다준 평화와 번영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학생이 구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과거의 홍콩과 미래의 홍콩이 교차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회원들과 평화 실천 활동 영상을 찍고 사진을 남기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역사박물관을 돌아보면서, 평범한 일상과 함께할 수 있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느꼈습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홍콩역사박물관에서 베트남 하노이, ‘호아로 수용소에서 느낀 역사와 평화의 순간’ 하노이, 11월 30일 박주석 하노이 11월의 마지막 날, 하노이 모둠은 하노이 중심부 호아로 수용소를 찾았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모여 있었고, 우리도 그 속에서 역사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이곳은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수용소로, 독립운동가와 혁명가들이 겪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감자들은 족쇄를 채운 채 좁은 평상에서 생활해야 했고, 당시 사람들은 이곳을 ‘지옥 속의 지옥’이라 불렀습니다. 20세기에는 전쟁 시 미군 포로들도 수감되었으며, 그들은 이곳을 풍자적으로 ‘Hanoi Hilton’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옥 속의 지옥, 과거의 상처 속에서 피어난 평화를 배우다 회원이 준비한 해설을 들으며 수용소 내부를 돌아보는 동안, 우리는 역사 속 수감자들의 삶과 독립을 향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건물 밖 평화 상징 사진 전시 앞에서는 벤치에 마주 앉아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준비한 평화 문구 피켓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Peace for all Together for peace Stop the war, start the peace”를 외쳤습니다. 회원의 어린 아기와 함께 박수치며 평화의 순간을 몸소 느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준비한 역사 퀴즈와 게임, 10분 평화 명상은 역사의 공간 속에서 평화를 마음으로 느끼고 연결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역사 속 걸음, 호아로에서 새긴 평화의 마음을 함께 한 시간 이번 활동으로 우리는 한 장소에서 피해자이기도, 가해자이기도 했던 역사를 마주했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렸습니다. 베트남이 먼저 민족 통일을 이루고 화합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한민족도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바람을 다시 마음에 새겼습니다. 평화를 향한 마음을 환한 미소로 함께 모았습니다. 사진 찍는 회원도 함께 있네요 2025년 하반기 아시아지회 평화 실천 릴레이 활동을 통해 우리는 평화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천하며 만들어 나가야 할 삶의 방식임을 느꼈습니다. 베트남 하노이 호아로 수용소에서 역사의 아픔을 마주하고, 중국 자싱과 항저우 독립운동가들의 용기와 헌신을 떠올리면서, 평화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대를 통해 지켜지고 쌓여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여정 속에서 회원들과 나눈 대화와 명상 시간으로, 평화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함을 알았습니다. 이번에 느낀 교훈을 일상에서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이제 작은 순간에도 상대를 배려하고, 갈등보다는 이해와 소통을 선택하며, 평화를 위한 작은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겠습니다. 릴레이 활동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아시아지회와 함께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글해외지부 아시아 지회 배미령, 윤보연, 이보미, 류유신, 송정민, 박주석 사진해외지부 아시아지회 편집여수연

통일 2025.12.19. 464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자세히 보기

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자세히 보기

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