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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안하니 주변도 편안합니다.
푸근한 입담으로 시작된 인터뷰,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면 1박을 하고도 모자랐겠다 싶었습니다. 편안하고 잔잔한 이야기 속에 한 여인의 굴곡진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차마 글로 다 풀어낼 수 없는 세세한 속사정도 있었지만, 그 시간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수행의 깊이와 꾸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만 살겠다고 아이를 두고 나왔어요 23살에 첫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생활이 아주 힘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 감각이 부족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남편의 잦은 행동을 보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마음에 이혼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돈을 벌어 살 집을 먼저 마련하기 위해 어린 아들은 시댁에 두고 딸은 친정에 맡겼습니다. 이후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도망치듯 울산으로 왔습니다. 새로운 가정을 꾸린 뒤 친정에 있던 두 돌 된 어린 딸을 데려와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시댁에 두고 온 9살 첫째 아들이 늘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이가 잘 지내는지 한 번씩 확인하던 중, 할머니와 자주 갈등을 빚어 아들이 보육원에 보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렵게 수소문해 충남 부여에 있는 보육원을 찾아가 보니 아이는 그곳에서도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구박받기도 하고 몰래 보육원 밖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아들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재혼한 상황이라 함께 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떻게든 아이를 도와 학교를 졸업시켜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에 옥탑방을 하나 얻어 살게 했습니다. 2026년 3월. 천룡사 실천지 봉사 언양모둠 학교에 가기 싫어 손을 떨던 아들 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아들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등교 거부가 잦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졸업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 매번 아들이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요. 손이 떨려서 그러는데 담배 하나 피고 들어갈게요.” 아들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빨리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왜 안 들어가지?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시 돈을 벌기 위해 어린 조카를 돌보고 있었고, 아들이 등교할 때마다 조카를 업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빨리 교실에 들어가야 집에 가서 조카에게 우유 먹이고 기저귀를 갈 수 있었기에 늘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그저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서서 버티는 아들의 모습이 갑갑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정토회에 들어와 법사님과 대화하던 중 “아들이 학교에 안 들어가는데 왜 본인이 괴로웠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질문이 황당했고, 왜 이런 걸 갑자기 물으시지 싶었습니다. 그 후로 제가 왜 괴로운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아들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손까지 떨며 안 가려고 했을까?’ 저는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아들의 마음이 온전히 이해되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들을 이해하고 내 마음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서서히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2026년 1월. 인도성지순례 새벽에 걸려 온 아들의 전화 성인이 된 아들은 독립했지만 앞가림이 쉽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까지도 새벽 34시쯤 술에 취해 전화해 욕을 하거나 돈을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화가 올까 봐 늘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때론 남편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점점 아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전화를 차단했다가 다시 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새벽마다 전화해 기도를 방해하는 아들이 불편했지만, 그날은 묵묵히 아들을 이해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랬구나. 네가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구나. 그럼에도 아들은 여전히 욕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을 텐데 그날은 그냥 들어주었습니다. 이런 제 태도에 놀랐는지 아들은 오히려 제 말에 잠시 침묵했습니다. 듣고 있어. 계속 말해. 아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그날은 아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마음이 덜 요동했고 한결 가벼웠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 제 마음을 바라보며 아들을 대했습니다. JTS에 보시하는 마음 때때로 새벽에 아들이 돈을 달라고 했지만, 그 돈을 탕진한다는 사실을 알고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그때마다 아들이 요구한 금액만큼 JTS에 보시했습니다. 아들에게 보내고 싶어도 참고, 그 돈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썼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아들의 삶을 제가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는 마음도 조금씩 내려놓았습니다. 지금은 몇 년 전부터 아들과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자식과 연이 끊어졌으니 당연히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침마다 108배를 하며 기도합니다. 자식은 아무 일 없습니다. 걱정과 근심은 내가 일으키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묵묵히 기도하며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들의 메신저 사진과 강아지를 키우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법회에 참석해 스님의 법문으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또한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 태어나 지금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받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하다 JTS에 보시하기로 했습니다. 친정엄마도 노인 일자리에서 일하며 번 돈을 천룡사 불사 보시금으로 보냈습니다. 보내면서 엄마가 “둘째 딸이 보살이구나” 라고 해서 뭉클했습니다. 2026년 4월. 언양모둠과 경주 사천왕사지 300배 정진 제가 편안하니 가족도 편안합니다 둘째 딸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들이 워낙 속을 썩이니 은근히 딸에게 기대가 컸습니다. 너라도 잘해야 한다. 나중에 오빠도 챙겨야 한다.며 딸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딸도 자퇴하고 힘겨운 일에 휘말리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아이들이 저를 힘들게 하고 어려운 일이 계속 생긴다고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수행하면서 알았습니다. 자식에게 문제가 있어서 제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자식이 제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괴로웠다는 것을. 지금은 가족도 많이 편안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자퇴하고 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딸이 다시 일어서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불법을 만나 나를 점검하며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 덕분입니다. 즐거운 봉사, 출렁이는 마음 예전에는 상황이 바뀌어야 제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먼저 편안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봉사도 즐거웠습니다. 결혼 전 동대문에서 재봉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두북수련원 유통팀 바느질 공방에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져온 물건을 고쳐주기도 하고, 천을 재단해 필요한 물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문경수련원 행자들의 법복 수선 사진.left 어느새 책임 봉사자 역할까지 맡았습니다. 특히 부탄에 보낼 연장 가방을 만들 때는 봉사자 두 명이 많은 양의 가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한두 달 동안 거의 매일 공방에 나가 하루 45시간씩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의뢰한 행자들의 법복 100여벌을 3개월간 수선해 보내기도 있습니다.힘들기도 했지만 제가 가진 기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봉사에도 권태기가 찾아왔습니다. 사람이 부족해 혼자 많은 일을 맡게 되자 ‘이제는 책임 봉사자를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결국 두 달 가까이 봉사를 하다 말다 했습니다. 그러다 지회장 도반과 마주 앉아 이야기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봉사를 왜 그만뒀느냐고 야단칠 줄 알았는데, 그저 제 마음을 묻는 말에 오히려 의아했습니다. 하기 싫은 마음이 있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이야기하면 되죠. 왜 그렇게 미안해해요?”라는 의외의 답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나는 봉사를 하면서 왜 이렇게 주눅 들어 있었을까?’ 봉사는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책임’이라는 생각에 매여 있었습니다. 하기 싫은 마음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기 시작했습니다 수행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제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말을 천천히 하는 편이라 스스로 차분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행동을 살펴보니 늘 급했습니다. 차가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안전띠를 풀고, 차를 세우자마자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현관에서는 신발을 벗어 던지듯 놓았습니다. 헐레벌떡 벗어 던진 신발은 늘 저보다 집 안으로 먼저 튀어 들어가곤 했습니다. 부탄에 보낼 연장 가방 만드는 중.right 이렇게 살아가는 제 모습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내가 참 급하구나.’ 하고 알아차렸습니다. 그때부터 신발을 가지런히 놓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변화가 제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봉사를 갈 때도 빨리 가고 싶어 과속 단속에 종종 걸리곤 했습니다. ‘봉사가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급하지?’ 싶었습니다. 마음을 돌아보고 행동을 살피면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제 마음을 하나씩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선택하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은 참 갑갑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걱정했고, 아들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했고, 딸 때문에 속상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도 사람과 일에 매여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사람과 상황이 저를 괴롭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수행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상황이 저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제 마음 때문에 괴롭다는 것을. 아들의 삶을 제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딸의 삶도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봉사도 늘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일어나는 제 마음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왜 괴로운지,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살피다 보니 조금씩 삶의 여유를 찾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걱정이 생기고,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고, 급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것은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상황이 좋아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행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내가 편안하면 내 주변도 편안해집니다. 오늘도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제 마음을 살피며 한 걸음씩 수행해 나갑니다. 2026년 5월 어느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그 시간을 살아낸 한 사람의 마음이 참 오래 남았습니다. 아들의 떨리는 손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기 시작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은 지나간 삶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다시 바라볼 힘을 키우는 일이구나. 또한 매 순간 솔직한 마음을 마주하면서 나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듣고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봉사하고 보시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정미애 님의 여정이 참으로 귀하고 멋지게 느껴집니다. 글허수정 희망리포터 편집윤정환
한글 한 땀, 바느질 한 땀의 되살림
지난 3년 동안 정토회 경주지회 황성 모둠은 매주 목요일마다 고려인 이웃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칠월 어느 날, 경주지회 4개 모둠원과 고려인들은 함께 모여 ‘되살림 바느질’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고 자원을 아껴서 지구환경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경주지회 정토 행자 22명은 여는 모임 후 이름표, 현수막, 바느질 도구, 자리 배치 등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려인 이웃들을 기다렸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이름표 모임 시간에 맞춰 고려인 14명이 되살림 바느질 ‘한 땀을 배우기 위해 경주시 한빛길 부근에 마련된 ‘고려인 사랑방’에 도착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마음을 가다듬고 명심문을 읽습니다. 다 같이 외우는 한마디는 방 안 공기를 새롭게 만듭니다. 세상 누구와도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그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 황성 모둠 강순자 님이 벽에 붙은 천과 작은 받침대에 써 놓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함께 읽으며 오늘의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한 땀의 바느질이 마음을 잇고 하나로 만듭니다. “산에 들에 꽃이 더 예쁘게 피고, 시냇물에 고기도 더 많이 살고, 하늘에 달님도 더 예쁘게 반짝였으면 좋겠습니다.” ‘되살림 바느질 한 땀으로’ 제목으로 시작된 글이 시 한 편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자연환경을 살리자는 취지이면서, 작은 천 조각도 이렇게 ‘꽃이 피고 고기가 살고 달님이 뜬 것처럼 수를 놓으면 예쁜 천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안내입니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을 담은 고운 그림 같은 실선이 천 안쪽에 숨어 있지 않고, 천 바깥에 자리하기 때문에 ‘보이는 수선’이라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으나 잘 실행하지 않는 ‘장주머니’ 쓰는 법도 함께 읽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장바구니’라고 부르며 쓰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드러운 천을 준비했습니다. “흙 묻으면 털어 쓰고, 물 묻으면 말려 쓰고, 가끔은 빨아 쓰고, 항상 갖고 다니고” 장주머니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이림 님 ‘되살림 바느질’ 진행자 이림 님은 장주머니 쓰는 법과 보이는 수선 직조 바느질 법을 알려 줍니다. 지구를 살리고 자원을 아끼는 실천 방법을 함께 숙지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도 눈도 나이를 먹는 연로한 분들에게 바느질 권하기를 망설였습니다. 2시간 남짓한 짧은 수업을 고려하여 직접 만든 장주머니를 준비했습니다. 바느질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여러 바느질 법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합니다. 쉽게 할 수 있도록 굵은 실을 준비했습니다. 옆에서 돕는 정토 행자들도 바늘귀가 작아서 실을 꿰기가 어렵습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실을 꿰고 바느질합니다. 파란 실과 분홍 실이 격자로 엮이고, 서투른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늘이 오가는 사이 마음은 손끝에 집중합니다. 구멍을 메우듯 감쪽같이 체크무늬로 된 사각 천 바탕이 탄생합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은 말보다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정토 행자들이 도와 한 땀 한 땀 장주머니를 꾸밉니다. 되살림 바느질을 함께 배우니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색이 다른 두 개의 실이 모여 색다른 체크무늬 천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각자 바느질 솜씨를 뽐내는 ‘오늘의 금손 선정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손 선정권을 가진 이림 님이 출품한 모든 작품이 훌륭하다.라며 장주머니마다 감자와 양파를 담았습니다.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두근두근 오늘의 금손이 선정되는 순간 완성된 장주머니에 동글동글 감자를 담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둘러앉아 짧게 한 줄 소감을 나눴습니다. 고려인 김마야 님의 얘기입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선한 마음으로 대해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은 평소 일하느라 사랑방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허조야 님입니다. “오늘은 일을 쉬고 나왔어요.” 한국어를 제일 잘해서 고려인 한글 수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최타마라 님입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세 명의 소감에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고려인 이웃들을 처음 만난 대구경북지부 담당 향존 법사님은 환한 웃음이 참 좋다. 앞으로 가끔 만나러 오겠다.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고려인들과 정토 회원들이 이면지에 손수 ‘좋은 벗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좋·은·벗·들’ 네 글자처럼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이웃이 되는 중입니다. 고려인들과 함께하는 좋은 이웃의 날, 단체 사진 수업이 끝난 후, 경주지회 평화 실천 꼭지 이승헌 님이 좋은 벗들에서 지원한 토마토를 고려인 이웃 한 분 한 분에게 한 박스씩 건네며 소감을 전합니다. “경주지회 활동에서 봤던 도반들이라 낯이 익어 이번 계기로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바느질을 통해 되살림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고, 고려인이 많은 다른 지역에도 이런 행사가 계획되어 해보면 좋겠습니다.” 토마토를 전해 주는 이승헌 님 이어 다른 봉사자들의 소감 나누기 시간에도 웃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 제일 예쁘다.” 누군가는 이 한마디 말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맞습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 참여했다는 어떤 봉사자는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과 만난 것처럼 순수하게 소통하는 그 자체가 새롭고 신선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양말을 꿰매 신는다는 도반은 오늘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라며 좋아했고, 아들의 구멍 난 양말 이야기로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지역 실천을 이어오던 도반들이 ‘손끝 재주를 세상에 꺼내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되살림 바느질 자리가 기획 되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더 남습니다. 바느질 공방을 성심성의껏 이끈 이림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검소하게 살아왔을 고려인 분들과 버려지는 옷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좋은 기회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눔 받은 천으로 장주머니를 만들고 직조 수선법을 가르쳤습니다. 고려인 분들이 바느질하며 작은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활동이 소비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공유와 회복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자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기획한 황성 모둠장 공영순 님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지회 재편으로 고려인 지원사업 지속이 불투명해지자,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되살림 바느질을 기획해 좋은 벗들과 연합하게 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수를 놓는 모습이 시골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완성된 장바구니에 감자를 담아드릴 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국경과 세대를 넘어 마음이 이어지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고려인 지원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부가 이 사람들 조상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국 땅에서 고생한 그 사람들이 이제는 선조들의 고향에서 따뜻한 여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한글이든 바느질이든,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었음을 다시 느낍니다. 3년을 이어온 목요일도, 오늘처럼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인 하루도 다르지 않습니다. 꾸준함이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매주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 위에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질 때 봉사는 훨씬 더 깊은 울림이 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날이 가까워지고 또 다정한 이웃이 되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미향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