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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길
여름 명상 수련의 큰 복병은 졸음, 다리 통증 그리고 모기인 것 같습니다. 이정은 님의 글을 읽다 보니, 좁은 공간에서 명상할 때 모기는 평소보다 확실히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모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정은 님은 명상 수련을 잘 마치고, 자신의 욕구와 괴로움을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명상 수련에 참여하고 싶어지는 소소한 재미가 있는 이야기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쁜 마음입니다. 황금연휴에 선택한 명상 수련 ‘깨달음의 장’ 동기의 추천으로 온라인 주말 명상 수련을 신청하였습니다. 6월 초 황금연휴에 가족여행을 갈까도 생각했으나 명상 수련에 대한 궁금함이 앞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일요 명상에 참여한 경험이 전부여서 2박 3일 명상은 얼마나 힘들지 걱정되면서도 정토회 프로그램이라 기대감 또한 있었습니다. 마땅한 장소를 고민하다가 집에서 가장 방해가 적은 베란다에서 명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정은 님.right 모깃소리와 함께 시작한 명상 명상은 첫날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애쓰지 말고 하라는 스님 말씀을 듣고 명상을 시작했지만 이내 오른쪽 귓가로 뭔가 스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애앵” 하는 소리가 들렸고, ‘모기다’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오른쪽 귓가가 덴 것처럼 화끈거리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 모기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습니다. ‘모기가 나의 수행을 돕는구나’ 생각하면서 온 힘을 다해 마음을 다잡아도 집중하기까지 한참이 걸렸습니다. 코끝에 집중하자 화끈거리던 귓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겨우 날벌레 하나에도 요동치는 마음과 몸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낀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욕구와 괴로움을 바라보는 시간 첫날은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습니다. 수련 시작 전 욕구를 참지 못하고 커피를 마신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명상에 방해가 될까 걱정스러워 쉬는 시간에는 주로 누워 있었고, 잠이 오면 잠을 잤습니다. 적게 먹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현미밥과 데친 브로콜리를 소금에 찍어 꼭꼭 씹어먹었고, 적은 양이지만 맛있게 감사히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허기지거나 힘들지 않았고, 소식을 하니 속도 편안했습니다. 둘째 날 오전 수련까지는 크고 작은 걱정과 고민이 계속 올라오는 데다 다리 통증이 심해서 괴로웠습니다. 이 좋은 휴일에 왜 사서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정맥류 수술한 다리는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 걱정되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도 해보았는데 발바닥이 퉁퉁 붓고 저리는 것은 여전하였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비빔밥 공양 준비 중에 자유를 향해 끝없이 던져보는 농구공 둘째 날 오후 다시 마음을 잡고 숨에 집중하자 웬일인지 호흡이 잘 느껴지고 앞서 떠오르던 생각들이 차분히 가라앉아 한결 수월했습니다. 스님의 자세한 설명과 격려가 저를 돌이키게 했고, 욕구들로 괴롭던 요즘 저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결정을 못 하고,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며 현재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욕구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 명상의 목적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3일째 마지막 날, 오전 4시 알람 소리에 깼으나 ‘20분 준비하는 시간이 있지’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가 새벽 명상 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발을 내려다보니 핏줄이 툭툭 불거져 있었습니다. 또다시 하지정맥류 걱정이 올라오며 명상 수련을 그만 해야 하는지 고민되었습니다. 어제 힘들던 상황이 떠오르기도 하고 하기 싫은 마음도 올라왔습니다. ‘다리가 문제라면 차라리 누워서 해보자’ 싶어 누워보았지만, 역시나 집중이 힘들고 잠이 와서 오히려 어려웠습니다. 한번 해보고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조금만 더 해보자’ 하는 마음을 내서 배운 대로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명상까지 잘 끝냈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수련 동안 변덕스럽고 잘 참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고, 부끄러웠습니다. 농구 골대에 농구공을 넣듯 들어가도 들어가지 않아도 다시 하기를 반복하라는 말씀처럼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겠습니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하겠습니다. 욕구를 알아차리고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꾸준히 수행하겠습니다. 명상을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어주신 스님과 세심하게 진행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2025년 8월 호에 수록된 명상수련 소감문입니다. 글이정은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청년지부 강화도 역사 기행
청년지부에서 기획한 이번 강화도 역사 기행은 정명 법사님의 간결한 해설로 시작되었습니다. 강화도의 전근대와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소를 방문했고, 자세하고 유익한 설명으로 역사 지식을 넓히는 계기였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청년들은 임무에 참여하고, 점심을 함께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인터넷에서 지도를 찾아봅니다. 지도를 볼 때는, 글을 읽듯이 가장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훑어봅니다. 그리고 가고 싶은 여행지, 맛집 등을 빼곡히 표시해 놓습니다. 가장 북서쪽에 있는 강화도를 자주 들여다보며, ‘아, 강화도에는 밴댕이나 민물장어가 유명하구나. 전등사, 백련사, 보문사라는 이름난 절이 있네, 다음에 꼭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화도의 바다 풍경 강화도는 삼별초 항쟁,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국사 시간에 배운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작년 여름 수도권 청년지부와 함께한 덕수궁 역사 기행이 좋았기에 공지가 나오자마자 냉큼 신청했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학사 돕는 이, 청년페스타 방 탈출 담당 등 여러 봉사를 맡았기에, 이번만큼은 ‘일반 참가자’로 편히 즐기고 싶어 역사 탐방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며칠 뒤 청년지부에서 운전이 가능한지 물었고, 저는 ‘수처작주, 보살행’의 마음을 떠올리며 “네”라고 답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 역사 기행에서는 스태프들을 태우는 운전사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날까지 역대 최악의 한파가 찾아와 걱정이 많았습니다. 당일은 부처님 가피 덕분인지 날이 좋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반들을 차에 태우고 강화도로 향했습니다. 한 차례 길을 잘못 들어 조급해지고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차 안에서 첫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저마다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달라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누다 보니 어느덧 강화에 도착했습니다. 한파 탓에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강화해협은 강처럼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바닷길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염하와 도로 사이는 철책이 길게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강화는 북한과 접경 지역으로 군사 시설이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차가운 철책의 대비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며, 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미정 연미정에서 의병 자세를 취하며 역사의식을 불어넣는 청년들 정명 법사님의 역사 해설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기행지인 ‘연미정’은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형제 관계 조약을 맺었던 곳입니다. 정묘호란이라는 굴욕적인 역사를 겪고도, 병자호란이 일어나기까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조선 조정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연미정에서는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을 바로 눈앞에서 조망할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선조들은 우리 땅이니 그저 아름답다고 바라봤을 텐데, 씁쓸했습니다. 강화산성 남문 두 번째 기행지는 ‘강화산성’이었습니다. 강화산성 동문을 거쳐 남문으로 이동했습니다. 당대 최강이었던 몽골군에게 끝까지 항전했던 삼별초 이야기가 가슴에 남습니다. 강화에서 진도와 제주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선조들의 얼과, 위기 앞에서 똘똘 뭉친 백성의 정신은 유구히 이어졌습니다. 또한 남문에서 김상헌의 형, 김상용이 병자호란 때 자폭했던 일화와 그 후손들이 권문세가로 세도 정치의 폐단을 이끌었다는 점은, ‘불구부정’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했습니다. 기다리던 점심 식사는 조원들과 밴댕이 정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혹 강화도에 가면 풍물 시장에서 밴댕이를 꼭 맛보길 바랍니다. 세 번째 기행지, ‘선원사지’는 고려시대 사찰 터로,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기기 전까지 보관했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어렸을 때 ‘팔만대장경’을 떠올리면 ‘전쟁 통에 불경 목판 제작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인력 낭비, 국고 낭비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팔만대장경 제작은 당시 흩어진 국론을 통합하고 기강을 세우는, 현대에 비유하면 제작 자체가 핵 미사일급의 위력이었다.”라는 정명 법사님의 설명을 듣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정족산성에서 본 강화도 전경 전등사 둘레길 돌탑 다음 기행지는 ‘전등사’였습니다. 전등사는 특이하게 일주문이 없습니다. 대신 정족산성 문을 통해 절로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이 정족산성이 단군의 세 아들이 지었다는 삼랑성의 후신이라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강화도는 단군과도 맞닿아 있구나 싶었습니다. 섬 자체가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전등사 대웅전에서 108배를 올리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은 곳은 마지막 기행지였던 ‘광성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찾은 ‘무명용사 무덤’은 청년들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름 없는 용사들, 특히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함경도 출신의 호랑이 포수였다는 사실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선조나 조상이라 하면 으레 남한 지역 사람들만을 떠올렸던 제 안의 관념도 그 순간 허물어졌습니다. 북한 땅에서 살던 이들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우리의 조상이라는 생각이 들자, 분별심이 옅어지며 형용하기 어려운 슬픔과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또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려진 장면처럼, 신미양요 당시 역부족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맞섰던 조상들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래, 이것이 우리 얼이고 우리 정신이다. 나는 오늘 어떤 변명을 하며 살아왔는가?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 참회했습니다. 여러모로 깊은 생각과 새로운 마음가짐을 심어준 기행이었습니다. 이 기행을 정성껏 준비한 정명 법사님과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다른 도반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역사 기행에 참여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맺습니다. 글청년지부 김동한 사진청년지부 김동한 편집광주전라지부 서광주지회 여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