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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지장에서 봄꽃처럼 활짝 핀 내 마음
연인과의 이별, 진로에 대한 막막함으로 고민하던 김채원 님은 만 배를 하면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법사님께 만 배 대신 권유받은 2박 3일의 수련이 바라지장 봉사로 이어졌습니다. 공양간에서의 봉사는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감사와 편안함으로 채워지는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김채원 님의 마음에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봉사의 마법같은 힘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힘들어 찾은 문경 2025년 4월 마지막 주에 저는 깨달음의 장을 수료했습니다. 오랜 연인과의 이별로 마음이 힘들어 선택한 자리였습니다. 깨장수련을 마치고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으나 다시 흐트러질까 걱정되어 매일 새벽에 108배를 했습니다. 새벽 5시 기상이 어려워도 108배만큼은 거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일주일 108배를 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몸도 마음도 적응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온 터라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삶을 선택할 지 막막한 마음도 컸습니다. 새로운 일을 구해야 한다는 걱정과 불안으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만 배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만 배를 해내면 인생의 고비를 이겨낼 힘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바라지장 중에.right 어디서 만 배를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곳이 문경수련원입니다. 깨장 마지막 날, 법사님이 문경은 마음의 고향이니 언제든 오세요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고민 끝에 법등 법사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혹시 만 배 가능할까요? 법사님은 아직 절을 많이 해보지 않았고, 게다가 만 배는 혼자 하다 힘든 고비가 오면 버티기 어렵다, 나중에 해보면 어떠냐고 하시며, 대신 2박 3일간 수련원 생활을 체험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깨장을 수료한 지 2주 만에 다시 문경수련원을 찾았습니다. 처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했지만, 마침 수련 바라지로 오신 분들과 소임을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바라지분들은 모두 한결같이 다음에는 꼭 바라지장으로 오세요라고 했고, 그때 그래, 다음에는 바라지장으로 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깨장에 참가했을 때도 공양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과 마음이 느껴져 다음엔 바라지장에 꼭 참석해 봐야지 했습니다. 요리를 잘 못해서 오히려 방해되면 어쩌나 걱정되었지만 짧은 공동체 생활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마침내 바라지장을 신청했습니다. 공양간에서 피어난 평온 바라지장에서 맡은 첫 소임은 과일 공양이었습니다.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지만 내가 받은 만큼 정성을 다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끼니마다 딸기, 참외, 사과, 오렌지 등을 씻고 다듬어 접시에 담는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오렌지 80개, 사과·참외는 40개씩을 혼자 씻고 손질하려면 감당이 어려웠겠지만, 도반들이 자기 소임을 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니 일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졌고, 공양을 내고 나면 늘 차분한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바라지장 중에 그럼에도 몸은 솔직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던 둘째 날 저녁, 다시는 안 올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일 차 저녁, 바라지 참관 프로그램이 있어 수련장으로 갔는데 깨장 수련생들이 바라지들을 환호와 박수로 맞아주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베푼 것보다 더 많이 받는다는 말이 실감 났습니다. 수련생들의 환한 미소와 에너지, 따뜻한 응원과 박수 속에서 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문득 아 이게 진짜 봉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라는 것 없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므로 그저 맛있게 드시기를 바라며 준비한 공양입니다. 공양을 준비하며 수행도 하고, 도움을 주고, 수련생들에게 따뜻한 환호도 받았습니다. 바라지장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정상 먼저 떠나는 도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다음에 또 올게요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힘들어서 다시는 안 오겠다고 다짐한 마음이 언제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이틀이 지나자 또 문경이 그리워졌습니다. 때마침 바라지장 팀장이 법우님, 언제 또 올 거예요? 다음 주에 올래요?라고 물어왔고, 그 덕분에 한 주 쉬고 다시 바라지장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 바라지장은 설렘으로 시작했습니다. 지난번에 만난 도반을 다시 만난다는 설렘을 안고 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첫 공양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일이 순조롭고 안정적으로 흘렀습니다. 긴장보다는 감사와 편안함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라지장에서 따뜻함이 있어 더 그리운 곳, 문경 특히 마음 나누기 시간은 바라지장의 꽃입니다. 어디에서도 듣기 힘든 깊은 이야기, 살아온 삶의 고백을 들으며 저 또한 제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됐습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면서 자꾸만 불안해지던 제 마음, 당장 일을 구하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왜 이렇게 조급해하지? 하던 그 마음 밑바닥에는 혹시 부모님께 부끄러운 딸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공식적인 마음 나누기 외에 우연히 소규모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결국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를 따뜻하게 위로해준 한 법우의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불안해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너무 공감됩니다. 잘하고 계시니 자신을 믿어주세요. 그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크나큰 위로가 됐습니다. 바라지장에 가면 하루하루가 아주 빠르게 흘러가는 기분이 듭니다.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그래서인지 바라지장 4박 5일이 한 달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꾸 문경이, 바라지장이, 그 시간이 그리워집니다. 소감문을 쓸 기회를 주신 팀장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지나온 순간을 찬찬히 되짚어보며 그 시간 속에 머물러 봅니다. 문경 바라지장에서 또 뵙기를 바랍니다. 바라지장에서 이 글은 2025년 8월 호에 수록된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김채원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청년지부 강화도 역사 기행
청년지부에서 기획한 이번 강화도 역사 기행은 정명 법사님의 간결한 해설로 시작되었습니다. 강화도의 전근대와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소를 방문했고, 자세하고 유익한 설명으로 역사 지식을 넓히는 계기였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청년들은 임무에 참여하고, 점심을 함께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인터넷에서 지도를 찾아봅니다. 지도를 볼 때는, 글을 읽듯이 가장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훑어봅니다. 그리고 가고 싶은 여행지, 맛집 등을 빼곡히 표시해 놓습니다. 가장 북서쪽에 있는 강화도를 자주 들여다보며, ‘아, 강화도에는 밴댕이나 민물장어가 유명하구나. 전등사, 백련사, 보문사라는 이름난 절이 있네, 다음에 꼭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화도의 바다 풍경 강화도는 삼별초 항쟁,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국사 시간에 배운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작년 여름 수도권 청년지부와 함께한 덕수궁 역사 기행이 좋았기에 공지가 나오자마자 냉큼 신청했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학사 돕는 이, 청년페스타 방 탈출 담당 등 여러 봉사를 맡았기에, 이번만큼은 ‘일반 참가자’로 편히 즐기고 싶어 역사 탐방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며칠 뒤 청년지부에서 운전이 가능한지 물었고, 저는 ‘수처작주, 보살행’의 마음을 떠올리며 “네”라고 답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 역사 기행에서는 스태프들을 태우는 운전사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날까지 역대 최악의 한파가 찾아와 걱정이 많았습니다. 당일은 부처님 가피 덕분인지 날이 좋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반들을 차에 태우고 강화도로 향했습니다. 한 차례 길을 잘못 들어 조급해지고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차 안에서 첫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저마다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달라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누다 보니 어느덧 강화에 도착했습니다. 한파 탓에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강화해협은 강처럼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바닷길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염하와 도로 사이는 철책이 길게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강화는 북한과 접경 지역으로 군사 시설이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차가운 철책의 대비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며, 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미정 연미정에서 의병 자세를 취하며 역사의식을 불어넣는 청년들 정명 법사님의 역사 해설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기행지인 ‘연미정’은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형제 관계 조약을 맺었던 곳입니다. 정묘호란이라는 굴욕적인 역사를 겪고도, 병자호란이 일어나기까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조선 조정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연미정에서는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을 바로 눈앞에서 조망할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선조들은 우리 땅이니 그저 아름답다고 바라봤을 텐데, 씁쓸했습니다. 강화산성 남문 두 번째 기행지는 ‘강화산성’이었습니다. 강화산성 동문을 거쳐 남문으로 이동했습니다. 당대 최강이었던 몽골군에게 끝까지 항전했던 삼별초 이야기가 가슴에 남습니다. 강화에서 진도와 제주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선조들의 얼과, 위기 앞에서 똘똘 뭉친 백성의 정신은 유구히 이어졌습니다. 또한 남문에서 김상헌의 형, 김상용이 병자호란 때 자폭했던 일화와 그 후손들이 권문세가로 세도 정치의 폐단을 이끌었다는 점은, ‘불구부정’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했습니다. 기다리던 점심 식사는 조원들과 밴댕이 정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혹 강화도에 가면 풍물 시장에서 밴댕이를 꼭 맛보길 바랍니다. 세 번째 기행지, ‘선원사지’는 고려시대 사찰 터로,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기기 전까지 보관했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어렸을 때 ‘팔만대장경’을 떠올리면 ‘전쟁 통에 불경 목판 제작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인력 낭비, 국고 낭비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팔만대장경 제작은 당시 흩어진 국론을 통합하고 기강을 세우는, 현대에 비유하면 제작 자체가 핵 미사일급의 위력이었다.”라는 정명 법사님의 설명을 듣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정족산성에서 본 강화도 전경 전등사 둘레길 돌탑 다음 기행지는 ‘전등사’였습니다. 전등사는 특이하게 일주문이 없습니다. 대신 정족산성 문을 통해 절로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이 정족산성이 단군의 세 아들이 지었다는 삼랑성의 후신이라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강화도는 단군과도 맞닿아 있구나 싶었습니다. 섬 자체가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전등사 대웅전에서 108배를 올리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은 곳은 마지막 기행지였던 ‘광성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찾은 ‘무명용사 무덤’은 청년들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름 없는 용사들, 특히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함경도 출신의 호랑이 포수였다는 사실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선조나 조상이라 하면 으레 남한 지역 사람들만을 떠올렸던 제 안의 관념도 그 순간 허물어졌습니다. 북한 땅에서 살던 이들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우리의 조상이라는 생각이 들자, 분별심이 옅어지며 형용하기 어려운 슬픔과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또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려진 장면처럼, 신미양요 당시 역부족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맞섰던 조상들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래, 이것이 우리 얼이고 우리 정신이다. 나는 오늘 어떤 변명을 하며 살아왔는가?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 참회했습니다. 여러모로 깊은 생각과 새로운 마음가짐을 심어준 기행이었습니다. 이 기행을 정성껏 준비한 정명 법사님과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다른 도반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역사 기행에 참여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맺습니다. 글청년지부 김동한 사진청년지부 김동한 편집광주전라지부 서광주지회 여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