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새길

정토불교대학

학사일정 : 2026년 9월 20일(일) ~ 2027년 1월 30일(토)
접수마감 : 2026년 9월 3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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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백중기도

입재 : 7월8일(수) 오전10시 / 회향 : 8월 27일(목) 오전 10시
기도접수 : 7월 1일(수) ~ 8월 29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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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반나절 템플스테이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 천천히
내 마음의 속도에 귀 기울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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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위한 가장 완벽한 체크인

정토 썸머 스테이

3개의 특별한 방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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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52기 백일출가 모집

출가기간 : 2026년 9월 3일(목) ~ 12월 11일(금)
접수마감 : 8월 14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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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청년 직장인 출가

청년붓다 8기

기간 : 8월 1일(토) ~ 8월 19일(수)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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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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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걸림 없는 바람처럼 혼자 가보겠습니다

어떠한 직장이든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입·퇴사를 반복했다던 최효준 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는 또 다른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힘든 와중에도 수행은 꾸준히 이어간 덕분인지 아버지 회사는 몇 년째 잘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최효준 님은 보리수 활동을 하면서 소극적인 성향을 벗어나게 되었고, 해보지 않아 두려웠던 일들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마음으로 도전하였습니다. 믿고 맡겨주는 도반들 덕분에 지금은 작업자 명단에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회관에서 잘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부족한 면이 아직 많다고 하지만, 제3자가 볼 때 점차 자신을 키워가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한 회사생활 저는 어릴 때부터 소심한 편이어서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정성껏 챙겨주셨지만, 대화를 나눌 때도 ‘예, 아니요’로 거의 단답형에 그쳤습니다. 기분이 어떻다는 마음 표현뿐만 아니라 좋고 싫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지냈습니다. 2013년 대학생 시절, 부모님 권유로 정토회에서 진행한 1박 2일 청년캠프에 다녀왔습니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고, 저와 부모님은 회원도 아니었기에 정토회 생각은 자연스레 없어졌습니다. 그 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제 생각과는 달리 회사생활은 답답하고 힘겨웠습니다. 어떤 곳은 팀장이 마음에 안 들고, 또 어떤 곳은 동료랑 부딪혀서, 또 어떤 곳은 제가 괜히 삐쳐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3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제가 안쓰러웠는지 아버지 회사로 들어오라고 하셨지만, 그곳에서도 마음을 잡지 못한 채 갈등하며 방황했습니다. 절에서 하는 법회에 참여해보라는 부모님 제안을 듣고 정토회 캠프에서 뵈었던 법륜 스님이 생각났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알게 되어 공부를 시작하고 이어서 경전대학 졸업 후 전법활동가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최효준 님 소임을 욕심으로 채우려는 나 2021년 지역법당이 없어지고 온라인 활동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부총무님 추천으로 일요일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안내실에서 주차장 입·출차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보리수 1기 모집 홍보 배너를 보았지만, 또 절을 해야 하는 줄 알고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법사님이 주신 과제로 300배를 하고 있었기에 절을 더하기에는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서원행자 자원신청 기회가 생겼습니다. 법사님과 면접 중 서원행자 못지않은 보리수가 있다는 말씀을 듣고 2022년 8월, 보리수 5기로 입재했습니다. 전법활동가를 하면서도 나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리수 활동과 청년지부 활동을 함께 하면서 수행정진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청년지부에서는 돕는이와 물품 꼭지 소임을 하고, 매주 회관에서 보리수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긴장한다는 이유로 전법활동가에서 일반회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보리수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었지만, 저는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왜?’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보리수 활동을 포함하여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정토회를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청년지부 담당, 보리수 담당 법사님 두 분과 면담을 하고 보니 전법 활동과 보리수 활동 모두 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반회원 활동을 권유하신 향화 법사님 말씀이 그제야 이해되었습니다. 전국 보리수 방문 행사 중 도반과 함께 강박에서 벗어나 잘 쓰이는 나 제가 워낙 소극적이다 보니 집에서나 밖에서나 저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호기심이나 관심도 전혀 없었고, 망치질은커녕 사다리를 사용한다는 생각이나 그럴 일이 아예 없었습니다. 무언가 고장이 나면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냥 두거나 새로 사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리수에서 활동하다 보니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군가가 해야만 했습니다. 회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연등 설치 작업을 할 때 ‘나도 무언가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다리를 펼치자마자 비장한 마음으로 무작정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사다리는 꽤 높았지만,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웠던 터라 고소공포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이었습니다. 보리수 도반 중에 나이가 제일 어려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토회를 만나기 전에 들었던 “넌 못해”, “걸리적거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런 말들이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 강박에서 벗어나 ‘할 수 있다’는 모습을 가족들 대신 이곳에서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듯합니다. 함께하는 수행자로 믿고 맡겨주는 도반들 덕분에 더욱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작업자 명단에 안 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회관에서 잘 쓰이고 있습니다. 수행과 명심문으로 선명해진 내 모습 보리수에 입재하여 ‘잘 배우겠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라는 명심문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사장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편했습니다. 일을 잘하거나 많이 알아서 편한 게 아니라 일터에서의 긴장감이 없었습니다. 몇 년 동안은 공사 구분을 못 하고 사장이 아닌 아버지로만 생각하다 보니, 회사일로 꾸중을 들으면 직원으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버지가 혼낸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알려주어도 원망하는 마음으로 큰소리를 내며 따지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에 밤새 술 마시고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일이 여러 해 반복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수행은 꾸준히 이어갔고, 명심문을 놓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의 아버지와 회사에서 사장님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자 명확한 구분이 생겼습니다. 일에 대해서도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회사에서도 3개월을 넘기지 못하던 제가 아버지 회사는 몇 년째 잘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억울한 마음이 들 때 상대의 말을 바로 받아치기보다 잠시 멈추기, 긴장할 때 급해지는 마음을 한숨 돌이키고 말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천천히 반복적으로 연습하니 더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미처 몰랐는데 동기들이 제가 말할 때 조금 긴장한다고 말해줘서 고칠 수 있었습니다. 원리 원칙만 고수하다가 동기들과 부딪히기도 했는데, 수행하면서 내 모습을 점검하고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회사에서 또 다른 숙제가 생겼습니다. 이번에 입사한 친동생과 부딪힐 때 짜증 내지 않기입니다. 동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차분히 생각하면서 지금처럼 가뿐한 마음으로 대하려고 합니다. 정화조실 시브스크린 설치 중에 부족하지만 행복한 수행자 정토회와 인연이 되어 보리수 활동을 하면서 이 정도면 잘 지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소감을 나누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행복한 수행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보리수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잘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안 한 것도 아니라 막상 내어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제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만드는 거라는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현재는 보리수에서 소장 교육도 마치고 기계 배관 담당에서 정화조, 우수조, 저수조 꼭지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보리수의 상징인 민트색 유니폼을 입고 방재실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전법활동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청년활동에 열중하고, 보리수 안전요원으로 집중하면서 즐겁고 유익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족과 도반들 그리고 스님과 법사님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떠한 삶을 살고 있었을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꾸준히 성실하게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은 2026년 1월 호에 수록된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최효준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월간정토 2026.08.10. 84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비판적 순응에 희생된 수많은 이웃, _ ‘순이 삼촌’을 기억하며 _2026년 6월 제주 4·3 평화역사 기행

2024년, 제주 4·3의 역사 속으로 평화 기행을 다녀온 후, 이 역사를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 후 현충일을 기해 3일간의 여정으로 다시 ‘제주’로 향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부터 준비팀에 합류하여 사회자의 진행 글을 작성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역사 기행 날이 다가와도 막상 사전 학습 도서, 현기영 작가의『순이 삼촌』을 읽는 것은 자꾸만 미뤘습니다. 잔인한 역사를 마주하며 그 슬픔을 느끼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회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 마음은 한결 밝아졌습니다. 첫 번째 장소 관덕정으로 이동하며 비로소 역사 기행이 시작되었음이 실감 났습니다. 안내를 맡은 법음 법사님은 역사 이해를 위해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알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고 당부하듯 말했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그 주변 일대입니다. 북촌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 하루에 400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당한 단일 마을 가운데 가장 큰 희생이 발생한 곳입니다. 기념관에는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진 여러 그림과 강요배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진 자료가 거의 남지 않아 이러한 기록들은 더욱 귀중했습니다. 천명, 하늘의 울음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 제주 4·3 사건의 유족인 이상언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희생의 규모와 그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면서 그들은 단순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처절했던 한 시대의 삶을 살아 내었던 사람들이었음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기념관을 나온 뒤 마을 길을 걸으며 소설『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장소와 북촌 초등학교 등 희생자들의 터까지 둘러보았습니다. 삼촌은 여인이다. 소설 중에서 순이 삼촌 기념비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된 제주 도민이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해당합니다. 해설사가 일일이 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3시간이 넘도록 호명과 해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제주 동쪽의 ’광치기 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름다운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이곳 역시 무고한 주민 400여 명이 군경 토벌대와 서북 청년단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장소입니다. 광치기 해변과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은 여러 차례 여행 왔던 곳이지만, 재작년 역사 기행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러한 아픔이 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기행의 사회자 역할에 집중하니 현장의 느낌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 발원문을 두 사람이 낭독하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떨리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생명과 오랜 세월 슬픔을 안고 살아온 유가족들의 아픔을 깊이 새깁니다. 두려움과 혐오, 침묵과 폭력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제주라는 이 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늘 제주의 아픔 앞에서 개개인의 삶을 돌아봅니다.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대화와 이해로 갈등을 풀어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국가 폭력과 전쟁, 증오와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그 순간, 제주 동쪽의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는 3만 명이지만, 그들의 유족은 몇 명이며, 또 그 유족들의 가족은 얼마나 많을까요…… 다시 왜?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살육의 피해를, 입어야 했던 이유는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이 있습니다. 4·3 평화 공원에 안치된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명상할 때입니다. 행방불명인 묘역 흐린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데, 묘지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 그 까마귀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명상을 제안했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자리를 찾아 묘지를 등지고 산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눈을 감고 몸으로 들어오는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새소리가 들리고 숲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몸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듯했습니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명상하는 모습 어느새 이곳이 특별한 장소라는 생각마저 사라지고 고요한 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명상이 언제 끝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눈을 뜨자 구름이 걷히고 햇살은 따뜻이 묘역에 내렸습니다. 그 밝음에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누군가는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아픈 역사와 고통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경험했던 순간의 기억이 신비로웠습니다. 함께 걸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묘지를 바라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마음은 먹먹했습니다. 이번 역사 기행을 통해 도반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함께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슬픔에 압도되지 않았고, 그 마음을 함께 잔잔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3조, 우리는 도반 일정이 끝난 뒤, 조원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며 하루의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특히 제주를 주제로 시를 쓰고 낭독했던 시간은 그날의 경험을 정리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같은 숙소를 사용했던 프로그램 팀과 산책하고 체조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습니다.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행 내내 따라다녔던 왜?라는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팀원들과 산책길에서 문득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마음 나누기 시간에 다른 회원이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서 아이히만은 약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실행한 실무 책임자였지만, 특별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평범한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 관성적이고 습관적인 사고방식이 어떤 맥락에서는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느꼈습니다. 이것을 ‘사유의 무능과 무비판적인 순응’의 결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살을 지시한 사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묻게 됩니다. 극단적인 공격성은 때때로 내면의 두려움과 상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마지막엔 ‘무감각과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남았고, 여기에 대한 해독제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 질문에 ‘수행’이라는 단어가 해답처럼 바로 떠올랐습니다. 먼저 바른 법 만난 자신이 행복할 수 있어 기쁘고, 수행자의 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잘 전하는 것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는 길임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전쟁과 분쟁, 사람들의 갈등과 증오를 마주할 때면 여전히 무력해지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평화를 위해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자 합니다. 먼저 꾸준히 수행하면서 내 안의 두려움과 화를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에서 평화를 만들며 제주 4·3 사건을 잊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제주에는 ‘속솜허라’라는 말이 있는데, ‘숨을 죽이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당시 동굴로 피신했던 부모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사건 후에는 피해자였지만,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았던 제주도민들이 들었던 말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고, 지독한 그 시절이 지났어도 살면서 애써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위한 발걸음, 제주에서 단체 사진 작은 실천으로, 역사 기행 참가자들이 쓴 시를 시집으로 엮어 제주를 안내하는 해설사들에게 전하는 싶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알아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넘어 세계 평화까지 큰 꿈을 품어봅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 p.536』 제주 4·3 평화 재단 홈페이지 게시글 글김수영 사진김민성 편집황재윤

통일 2026.07.24. 1,547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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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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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