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법륜스님

아시아·호주 강연

11. 1.(일) ~ 12. 12.(토)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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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만남

대화가 있는, 음악회

2026.11.17(화)
경주 예술의 전당 화랑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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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사회문화회관

도심 속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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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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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재앙이 복'임을 깨닫게 해 준 백일출가

백일출가 53기를 모집하고 있는 지금, 23기 소감문이라니 혹시 숫자가 잘못 적힌 것은 아닐까? 처음 이 글을 받아 들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서영 님이 백일출가를 한 것은 무려 12년 전입니다. 당시에는 이렇다 할 깨달음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때 쌓은 수행의 경험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예기치 못한 시련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막막한 순간 아, 나에게는 수행이 있었지 하고 떠올린 박서영 님은 이만하길 다행입니다라는 기도로 매일 새벽을 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배운 바른 법의 관점으로 돌이킬 수 있다면 위기도 넘어설 수 있음을 이 글은 보여 줍니다. 깨달음의 장 이후, 백일출가에 들기까지 저는 소위 ‘사랑고파 병’ 때문에 입방했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부러웠던 것은 친구 집에서 보던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집에는 말 한마디 없이 지내는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생 무렵부터 방 안에만 계셨는데, 할머니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집에 일하러 온 사람이 행패를 부려도 그저 가만히만 계셨습니다. 집안 살림부터 생계, 할머니를 모시는 일까지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도 이따금 이성을 잃고 큰 소리로 화를 내곤 하셨는데, 그 모습이 저는 너무 싫었습니다. 어느 날 사소한 말다툼 끝에 아버지가 저를 때리셨고, 저는 경찰에 신고한 뒤 그대로 집을 나왔습니다. 그때 대학생이었던 저는 외삼촌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친척 집에서 지냈습니다. 박서영 님.right 그 시절 저는 가정에서 채워지지 못한 사랑을 어떻게든 밖에서라도 채우려 애썼습니다. 청소년기에는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렸고, 성인이 되어서는 연애로 그 갈증을 달랬습니다. 그러다 날씬해야 연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다이어트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던 마음은 결국 섭식장애로 이어졌습니다. 음식을 삼키는 것이 두려워 씹고 뱉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폭식하면 수치심이 밀려와 밖에 나가는 일조차 어려웠습니다.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를 사는 일도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정신과에라도 가자’ 싶어 병원문 앞까지 갔다가도, 인정하기 두려운 마음에 울며 돌아선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건 안 되겠다 싶던 차에 어머니께서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셨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소회가 어땠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그곳에 꼭 가봐야겠다’라는 분명한 생각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렇게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명상 바라지를 거쳐, 절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제가 무작정 백일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행복 속에 날아든 청천벽력 백일출가는 12년 전의 일이라 자세한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그때의 저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있었고, 욕심으로 백일출가에 나섰던 탓에 이렇다 할 만한 변화나 깨달음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희미하게나마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를 향해 깊이 참회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던 일입니다. 백일출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삼배를 올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제 부모님은 더 이상 제 삶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의 공덕이 지금 제 삶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백일출가 일 수행 중에 저는 백일출가 이후에도 섭식장애를 완전히 고치지 못했고, 사랑에 대한 갈망도 여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변의 여건 덕에 그럭저럭 ‘잘’ 살아왔습니다. 결혼도 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으며 잘 다녔고, 이내 예쁜 딸까지 생겼습니다. 부족함이라곤 없어 보이는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육아휴직 동안 법륜 스님의 책 《엄마수업》에서 “세 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라는 내용을 보면서도, ‘에이, 이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하며 1년의 휴직이 끝나자마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어머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어린이집에 처음 간 날, 원장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아직 못 걷는 게 이상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영유아 검진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저희 부부는 단지 조금 늦을 뿐이라 여기며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장 선생님의 계속된 권유로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뇌성마비 같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말에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한 살이 채 안 된 어린아이라 채혈이 쉽지 않아 손발이 피투성이가 되어 울던 아이를 보며 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수면마취를 하고 축 늘어진 아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부랴부랴 모든 검사를 마치고 또 속절없이 석 달을 기다리니 더 믿기지 않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전이 아닌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희귀병으로, 10만분의 1도 안 되는 확률로 생겨나는 한국에도 몇 없는 병이었습니다. 게다가 세부 유전자 변이는 전 세계에 딱 한 명밖에 없는 희귀한 사례였습니다. 20년 경력의 재활 전문가들조차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데이터가 없어서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아이가 걷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령 재활치료가 잘 되어 성인기까지 불편하게나마 걸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후에는 휠체어를 타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련 중에 12년 전 백일출가의 경험으로 일어서다 갑자기 어린 딸이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힘들다고 여겨왔던 제 ‘사랑고파 병’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식에게 일어난 일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 달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울면서 병에 대해 공부하고, 물리치료를 알아보고, 재활센터를 수소문했습니다. 그다음 한 달은 마음이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기도도 해보고, 온갖 영성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마음을 달래보려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정토회가 떠올랐습니다. ‘아, 나에게는 수행이 있었지’ 백일출가 때 매일 깊은 정진을 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간절하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며 절하던 그때의 마음가짐, 괴롭지 않게 살겠다던 다짐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아 그날부터 새벽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만하길 다행입니다’라는 기도문으로 정진하니 놀랍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기도하는 중간중간 나중에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면 어쩌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도 꾸역꾸역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백일출가에서 배웠던 바른 법에 대한 관점으로 자꾸 돌이켰습니다. ‘장애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괴로운 것이다. 장애는 그저 하나의 상태일 뿐, 불편하면 도구를 이용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만큼만 하면 된다.’ 잘 안될 때도 그냥 다시 알아차려 보았습니다. 매일 정진을 하니 불편한 마음이 하루를 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새벽 다섯 시 기상과 108배를 매일 할 수 있을지 두려움과 의문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백일출가 때는 네 시에도 일어났고, 매일 500배씩도 했으며 만 배도 해냈다’라는 생각이 들자,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의 기억에 힘을 얻어 ‘그것쯤이야’ 하는 자신감이 일어났습니다. 백일출가 졸업생들에게는 엄청난 애프터서비스도 있습니다. 매달 모이는 ‘파견 복귀’입니다. 그곳에서 저도 정말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한번은 임진각으로 평화 통일 정진을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전쟁의 흔적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장애를 넘어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법사님과의 대화 속에서, 북한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을 돕는 일을 간절한 마음으로 이어가고 계신 이야기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휠체어만이라도 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내 문제는 별일 아니다’라는 관점이 딱 잡혔습니다. 백일출가 도반들과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다 아이의 병을 알게 된 이후, 오히려 제 마음은 이전보다 더 편안해졌습니다. 부끄럽지만 예전에는 교육열이 치열한 환경 속에서, 같은 어린이집 엄마들이 입고 오는 명품 옷과 비싼 차, 관리된 외모를 보며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기준에 내 아이를 맞추려 교육에 관심을 쏟기도 했고, 육아에 지친 마음으로 퇴근이 늦는 남편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내 중심은 없이 오로지 남 탓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밖이 아닌 안으로 돌이키는 기도를 하니, 아이 문제뿐만 아니라 자잘한 다른 문제들까지 함께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지혜가 부족하여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지만, 적어도 괴롭지는 않습니다. 설령 또 괴로움이 찾아올지라도 괜찮습니다. 다만 꾸준히 수행할 뿐입니다. 제가 누리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모래성 위에 쌓은 행복’이었음을 알게 된 것도 엄청난 수확입니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거나, 직장을 잃거나, 아이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한순간에 사라질 행복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의 남편과 일, 아이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고락苦樂이 다 고苦’라는 말이 처음으로 이해가 갔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오히려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덕에 불법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바쳐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직접 육아할 수 있었고,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서도 단단히 마음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직업적 측면에서도 더 좋아졌습니다. 출판사 에디터로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소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유명 작가, 잘 팔리는 책, 돈 되는 책에 더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매일 아이의 재활치료를 다녀야 해서 직장을 그만두었더니, 정토출판과 인연이 되어 법륜 스님 책을 편집하는 봉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 에디터가 되어 꿈꾸던 일이 ‘멀리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합니다. 백일출가를 하고 난 뒤에 이 일을 겪어서 오히려 복이 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나눔의 장에서 삶 속에서 온전히 내 것이 된 백일출가 체험 백일출가는 제 삶에서 넘어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었습니다. 한 번 진득하게 진리를 알고자 수행해 본 경험, 그리고 ‘할 수 있다’라는 체험이 시간을 돌아 다시 지금의 저를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그때의 저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도 힘겨웠기에, 기도하면서도 ‘나를 버리고 중생의 요구에 수순한다’라는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부감마저 들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할 때조차 저에게 해당하지 않는 내용은 읽지 않고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제 삶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겪으면서, ‘아, 내가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 바로 나의 일이구나’,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래 전의 일일지라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결국 삶 속으로 온전히 내 것이 되었습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장애인은 제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장애인이 눈에 보이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느껴집니다. 그들은 필요할 때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일 뿐, 결코 부족한 존재가 아닌 소중한 존재로서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저의 수행 과제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잘 돌보는 데서 나아가, 다른 장애가 있는 아이들까지 함께 보살피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살아갈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힘쓰는 일입니다. 아울러 전쟁으로 고통받거나 굶주림과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 치료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이의 재활치료로 바쁘고 몸이 지칠 때면 자꾸 핑곗거리가 생기면서 ‘나도 좀 쉬면 안 되나?’ 하는 번뇌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는 삶을 살고자 마음을 돌이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와 그 부모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와 세상을 동시에 가꾸어 가는 일이 지금 제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오로지 나만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던 지난날의 제게, 그래서 자신을 괴롭히며 살던 저에게 진리를 설하시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 함께 사는 법을 알려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꾸준히 수행자의 길을 걷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 글은 2026년 5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소감문입니다. 글박서영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월간정토 2026.11.02. 274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자치, 자립, 실천의 토대,_ 용성진종(龍城震鍾) 조사의 삶을 따라서

2026년 10월 9일은 용성스님이 깨달은 지 140년이 되는 날입니다. ‘다시 용성,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백용성 조사의 유훈을 새겨 개인의 수행과 사회 실천의 의지를 다지는 오도일 행사가 아도모례원에서 열렸습니다. 맑고 높은 하늘 아래 전국에서 600여 명의 정토회원이 모여 오전에는 다례제와 특별법회가 점심 공양 후에는 부스 체험 및 대구, 경북지부 회원의 날을 개최해 화합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은 대구, 경북지부 소속 6개 지회가 협동하여 치르는 연중 가장 큰 행사인 만큼 많은 이들의 노력과 봉사가 모여 아름다운 모자이크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 아도모례원 주차 안내 구미지회 봉사자 신라시대 한복을 입고 맞이 인사 중인 전법 교육생 봉사자 이른 아침 낙동강 변을 따라 짙은 안개 속을 달리다 보면 생경한 느낌을 받습니다. 신비로움이 걷힐 즈음 신라불교초전지 아도모례원이 나타납니다. 갈림길 곳곳에 미리 자리한 구미지회 봉사자들은 양손을 힘차게 흔들며 손님들을 인도했고 친절한 안내에 따라 주차한 차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행사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신라시대 전통 의복을 입은 12차 전법 교육생 봉사자들이 반갑게 맞이합니다. 색색의 화려한 한복과 봉사자의 밝은 미소 덕분에 행사가 활기찹니다. 법당에서 열린 다례제 오전 8시 30분, 법당에서는 소박하고 정갈한 상이 차려지고 다례제가 여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같은 시각 야외와 각 지부 부스에서는 행사 준비로 분주합니다. 달서지회는 외부 행사 지원을 맡았습니다. 모둠별로 각종 안내, 의자 준비, 현수막, 촬영 등의 역할을 나누어 법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오늘 행사는 유튜브 생중계도 이루어져 법당 옆 방송 부스에서는 소리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뒷마당에서 전을 굽는 봉사자들 종무소 뒤편 식당에서는 내빈 공양을 맡은 구미지회 봉사자들이 바삐 손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삼 뿌리가 한 가닥도 허투루 버려지지 않도록 야무지게 묶는 손길이 돋보입니다. 주방 안팎에서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가운데 음식 조리에 한창인 구미지회 서정연 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평소 토요일마다 아도모례원에 봉사 오는 거사님들의 식사를 맡고 있습니다. 요식업에서 20년 정도 일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어요. 늘 보람찬 마음으로 하고 오늘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불교 음식이기 때문에, 오신채를 쓰지 않고 자연식으로 정갈하게 준비하려고 합니다. 어제도 우리 집에 모여 일할 정도로 다들 적극적입니다. 특히 여기 있는 호박과 채소들은 직접 기른 농산물입니다.” 대구, 경북지부 예술팀 대구, 경북지부 예술팀 부스에서는 기념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패션 안경과 소품을 이용한 포토존이 있고, 현장에서는 신규 회원도 모집합니다. 경주지회 이수진 님을 중심으로 모인 15명의 회원은 매달 꾸준히 모여 연습하고 있습니다. 무대에 오를 준비가 한창인 이수진 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예술팀을 만들며 처음에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수행 삼아 용기 내어 시작했습니다. 공연 준비를 하다 보면 때로는 분별심이 올라옵니다. 그때마다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내니 팀원들과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즐겁습니다. 예술팀은 정토회의 행사가 빛날 수 있도록 예술로서 보여줍니다. 또한 그것이 수행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행사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용성스님과 정토회의 연결점을 나타내고자 정토회의 ‘o’과 용성스님의 ‘o’의 자음을 연결했습니다. 현수막 상단에 나비가 이끄는 듯 자연과 조화된 모습도 표현했으니 즐겁게 관람하세요.” 행장 낭독 중인 수성지회 김수임 님과 구미지회 류지향 님 햇살 따듯한 법당 앞마당에 대중이 속속 모여들고 10시가 되어 향존 법사님의 사회로 용성조사 오도일 특별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국민의례를 했습니다. 구미지회 류지향 님과 수성지회 김수임 님은 용성조사 행장을 낭독했습니다. 조사의 생애와 유훈을 또랑또랑 기개 있는 목소리로 읽는 모습에 대중들도 행사에 몰입합니다. 행장 낭독 후, 류지향 님의 참여 소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소임을 맡아 부담 없었는데, 막상 현장에 오니 무척 떨렸습니다. 무사히 끝내니 지금은 날아갈 듯 가볍네요. 그리고 낭독할 때, 오늘 준비한 행장의 내용에서 용성조사에 대해 좀 더 알았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대구, 경북지부 예술팀 기념 공연 ‘온 겨레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는 중 대구, 경북지부 예술팀의 기념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40년 전 이곳 아도모례원에서 깨달음을 얻은 용성스님이 현생 나들이를 온다면 정토 수행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눌지 상상하는 내용입니다. 일복 바지를 맞춰 있고 재치 있게 춤과 노래를 하는 배우들을 보고 대중도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이윽고 무대에 용성스님이 나타나 대중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펴보고 수행을 통해 행복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길 당부합니다. 140년 전 시대의 혼란 속에서 불교 중흥과 민족 독립의 원을 세우고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던 용성스님의 생애가 배우의 대사와 겹치며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토회와 용성스님의 ‘o’으로 연결된 현수막이 올라와 공연은 절정을 맞습니다. 대중은 큰 박수로 화답하고 모두 ‘온 겨레의 노래’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행사장에 입장하는 법륜스님 두 손 모아 법륜스님에게 삼배를 올리는 대중 즉문즉설 중인 법륜스님 대중은 여법한 마음으로 법륜스님에게 청법가와 삼배를 올리며 법을 청했습니다. 법륜스님은 아도모례원의 역사적 의의와 용성스님의 일대기를 말하고 인공지능 시대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설하였습니다. 아도화상, 그리고 용성스님의 뜻을 이어 개인의 수행을 바탕으로 각자 ‘작은 용성’이 되어 내가 세상의 희망이 되는 길로 나아가길 당부했습니다. 즉문즉설에서는 5명이 질문했습니다. 한 질문자는 연이은 가족의 질병과 딸의 투병으로 인한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물었습니다. 질문 시작 때부터 이미 슬픔에 잠긴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은 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모습이었습니다. 오도일 행사, 단체 사진 “현대사회는 수명이 길어져 과거에 없던 질병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도 질문자가 건강해 딸을 보살펴 줄 수 있어 다행이잖아요. 자식 된 여러분도 부모님 생각해서 건강관리 잘하세요.” 스님의 명쾌하고 따뜻한 설법을 끝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용성조사 오도일 행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농산물 구매를 위해 늘어선 사람들 회원들은 아도모례원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각자 싸 온 소박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도시락을 나눠 먹는 회원들의 모습이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들떠 보입니다. 점심 공양 시간에는 지회별 부스가 열렸습니다. 그중 단연코 인기가 가장 많은 곳은 보리수에서 운영하는 농산물 부스였습니다. 아도모례원 텃밭에서 보리수회원이 정성스레 키우고 수확한 농산물이 선보입니다.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도 판매 개시했습니다. 그렇게 농산물 부스에는 점심시간 시작과 동시에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 긴 줄이 생겼습니다. 보리수 10기로 농산물 부스 담당인 달서지회 조정란 님에게 한 줄 소감을 청했습니다. “저는 텃밭에서 잘 키운 농작물을 판매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참 즐겁고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보리수라서 행복합니다.” 시설 관리를 책임지는 보리수 보리수 거사님들도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 시설 정비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줄을 치고 못을 박고 여럿이 부스를 옮기는 등 구슬땀을 흘리는 동대구지회 홍곤흠 님에게 힘들진 않은지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제 일이니, 힘들어도 그냥 합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쑥스러운 듯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홍곤흠 님은 다시 작업에 집중합니다. 누군가의 묵묵한 수고 덕분에 항상 쾌적한 시설을 사용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되살림 바느질 작품을 들고 환하게 웃는 경주지회 정명옥 님 바로 옆에는 경주지회 환경 부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낡아 버려지는 물건에 경주지회 회원들이 자수를 놓고 천을 덧대면 구멍 난 양말도 운동화도 세상 하나뿐인 특별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기능 살리는 것을 넘어 모양도 아주 훌륭합니다. 경주지회 정명옥 님은 수선 전의 낡은 베개의 천 사진과 비교하며 보여줍니다. “이것 좀 보세요. 원래 이렇게 낡아서 버리려고 했던 물건인데 되살림 바느질로 다시 태어났어요. 이 베개를 베고 자는 저녁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빙긋이 웃어요. 저기 청바지는 여기 거사님 바지예요. 작업복으로 오래 입어 구멍이 난 것을 수선했더니 말끔해졌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바지입니다.” 수선하여 다시 사용하면 버려지는 물건의 양도 줄고, 새 물건을 적게 소비할 수 있기에 환경을 보호하며 살림도 살리는 정토회와 잘 맞는 환경 실천 활동입니다. 포항지회 친환경 수세미 체험 부스 삼베 수세미 만드는 모습 수수하게, 수줍은 미소가 예쁜 사람 종무소 옆 포항지회 부스에서는 나만의 단주 만들기와 삼베 수세미 만들기 체험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포항지회 실천 활동 담당 정연숙 님을 만나 사용 경험담을 나눴습니다. “삼베 수세미는 일반 수세미보다 세제도 적게 쓰고, 미세플라스틱이 전혀 없어 좋은 친환경 제품입니다. 포항지회에서는 평소 수세미를 짜 놓고 행사 때는 판매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삼베 수세미를 사용하니 너무 좋아 지인들에게 선물도 많이 했어요. 오늘 부스 운영을 맡아 행사가 잘 진행되어 살짝 들뜨고 마음은 가볍습니다. 정토회 활동하며 ‘내가 이 길을 택한 것’이 자랑스럽고 그래서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그렇게 포항지회 회원들은 바닥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삼베 수세미를 짜고 있습니다. “ 날씨도 좋고 바람도 솔솔 부는데, 삼베 수세미를 짜고 있으니 힐링 되네요” 동자가 출현한 듯 반달 눈웃음을 가진 아이 옆에서는 알록달록한 단주 알을 고사리손으로 꿰고 있는 귀여운 아이가 있습니다. 소감을 물으니 반달 눈웃음을 예쁘게 지으며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용성조사 부스 운영을 맡은 동대구지회 봉사자들 동대구지회 실천 장소 담당 김나형 님 모례정 우물 앞에는 동대구지회가 주관하는 용성조사 부스가 있습니다. 법륜스님과 용성조사 서적 전시 및 판매, 신라시대 의복 체험, 용성스님과 법륜스님 등신대 포토존, 백용성 스님의 유훈 10사목 족자 전시가 이뤄졌습니다. 11차 전법 회원 교육을 마치고 불교대학 진행을 맡은 동대구지회 황장오 님은 소임 소개와 함께 정토회를 만난 소회를 밝혔습니다. “오늘 용성조사 부스에서 조사의 삶을 알아보는 음향을 스피커로 송출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소임이 복’이라는 말처럼 아침 일찍 아도모례원에 와서 봉사도 하고 여러 도반의 얼굴도 익힐 수 있어 좋습니다. 정토회와 인연 맺은 지 3년 차인데, 수행을 시작하고 달라진 점은 가족들에게 욱하고 화내는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부스 총괄 운영을 맡은 동대구지회 김나형 님에게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수행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점을 물었습니다. “조급함도 불편함도 내 마음이 일으키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급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저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어 수행의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료인 정토회 회원들 행사장 입구에는 각종 상비약이 갖춰진 의료 부스도 있습니다. 의료인 정토회는 행사 때마다 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의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달서지회 최명숙 님은 어떤 마음으로 봉사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늘 준비는 되어 있지만, 무사히 행사를 마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봉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타리가 되어 지키는 도반이 있어 그동안 정토회 행사가 무탈히 진행될 수 있었다.라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나무 그늘에 옹기종기 모인 회원들 대구, 경북지부 김명옥 지부장 점심 공양과 부스 체험이 끝난 오후 1시부터 대구, 경북지부 회원의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후 들어 햇볕이 뜨거워지자 커다란 감나무의 그늘이 감로수처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마치고 대구, 경북지부 지부장 김명옥 님의 참가자 소개와 향존 법사님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이어 대구, 경북지부 6개 지회 350여 명의 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회원의 날 행사가 동대구지회 문효정 님과 경주지회 이수진 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은 법당 앞마당이 춤추고 노래하는 회원들의 놀이터가 됩니다. 즐거운 장기자랑 도반들의 뜨거운 격려와 응원 신규 일반 회원의 단체 공연 신규 일반 회원들은 단체복을 맞춰 입고 ‘꿈꾸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수행자로 첫발을 내디딘 순수한 열정이 감동을 주었습니다. 함께 수행하는 도반으로, 먼저 시작한 선배로, 청중들은 어느 때보다 따뜻한 눈빛으로 크게 손뼉 쳤습니다. 그중 막 일반회원이 된 장명애 님은 무대를 준비하며 학창 시절로 돌아가 소풍 온 듯 설레었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나눴습니다. 맞잡은 손을 높이 들고 힘차게 강강술래 마지막으로 모두가 손잡고 강강술래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선형의 원을 겹겹이 만들며 이수진 님의 흥겨운 선창에 따라 강강술래를 부릅니다. 맞잡은 손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행복이 전해지는 따뜻한 시간을 끝으로 행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맑은 하늘만큼 밝은 표정의 사람들을 용성스님이 어딘가에서 흐뭇하게 내려다볼 것만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토록 자유롭고 행복한 몸짓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용성스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숭고한 뜻과 정신은 정토회의 법륜스님을 통해 계승, 전수되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봉사를 위해 아도모례원에 모여 각자의 위치에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들로 인해 오늘 행사가 북적이며 즐겁고 유익했습니다. 용성스님은 3.1운동을 주도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3.1운동 만세 물결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비폭력 시민운동이었음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나라에는 그 평화의 힘이 내재 돼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대한민국은 폭력 없는 촛불혁명이 정착되고 있습니다. 그 바르고 곧은 길인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라는 홍익 정신을 새롭게 밝혀 우리 민족이 한 번 더 온 인류애로 도약하길 서원합니다. 글서유미 사진서유미, 김희진, 최상훈 지원황재윤 편집황재윤

으뜸절 2026.10.30. 785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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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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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