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2026 깨달음의 장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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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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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나는 누구인가?

꼼꼼하게 준비한 자료로 진행하면 인터뷰가 순조로울 듯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점검 중 작은 표 하나를 지우려다 진행자료 전체를 날려 버렸습니다. 되돌릴 방법도 없었습니다. 멘붕 놀란 마음을 알아차리고 인터뷰 대상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자료 복구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저녁은 먹었냐며 인사를 건넵니다.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을 상황이지만, 휴대폰 너머로 전해지는 상냥한 목소리에 마음이 조금씩 진정됩니다. 이미 일어난 일, 일어났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사전 질문지만 들고 7시 30분에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가 나아가는 길 위에 함께 서 있는 길동무, 성남지회 이현미 님의 이야기 들려드립니다. 한순간에 사라지다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 살피고 아이들 키우는 데 전념했습니다. 알뜰하게 살아 30대에 집을 장만했고, 아이 셋도 잘 자라 큰 어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2001년, 남편이 보증을 선 일이 잘못 되어 한 달에 이자만 100만 원씩 내며 1년을 버텼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남편과 의논해 집을 정리하고 연고도 없는 성남으로 이사했습니다. 2002년 여름,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뜨거웠습니다. 우리나라는 4강에 올랐고,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함께 응원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이들과 산에 갔다가 먼저 내려온 둘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두 아이가 학교에 가면 죽은 아이 생각에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와도 울음을 그치지 못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아이들은 집 밖에서 기다리다 들어오곤 했습니다. 더 이상 집에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행복학교 활동 둘째는 도서관에서 책 보는 것을 엄청 좋아했습니다. 성남시에서 엄마들이 운영하는 도서관 사업이 있어 다른 엄마들과 함께 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서에 사자도 몰랐지만, 다른 학교 사서 선생님에게 배워 책 라벨 만드는 것부터 책정리까지 모두 했습니다. 도서관 운영과 관련해 교육감 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나중에 사서 선생님이 배치되기까지 끝까지 엄마 도서관으로 남았던 학교가 바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였습니다. 사서 도우미, 독서 토론 등 이것저것 봉사하며 많이 배우러 다녔습니다. 4년가량 밖에서 방황하고 나니 그제야 남은 두 아이가 보였습니다. 늘 내 품 안에 있던 아이들이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아이들을 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파일 행사 때 친환경 삼베 수세미 손뜨기 체험부스에서 .right 둘째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큰아이도 충격이 커 원형 탈모가 생겼습니다. 남은 아이들과 잘 살아 보려고 둘째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둘째가 좋아했던 음식과 함께 했던 추억을 나누니 점점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은 아이를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이 생일과 기일에 재를 지냈고, 배 멀미를 하면서도 바다에서 지내는 천도재에 참석했습니다. 필사한 글을 바치기도 하고, 사찰에서 하는 성지순례도 많이 다녔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잃은 아이를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했다는 생각에 머물고, 남은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계속 무언가를 바라고 탓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정토회 덕분에 그 모든 일이 다만 제가 좋아서 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이거 뭐지? 2014년, 일반 사찰에 다니던 중 아는 언니 소개로 정토회 법회에 갔습니다. 일반 사찰에서는 법회를 할 때 신도들이 목탁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데, 정토회에서는 회원이 법복을 입고 목탁을 쳤습니다. 영상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서는 둥그렇게 앉아 명심문을 읽고 나누기를 했습니다. 이거 뭐지? 싶고 당황했습니다. 소극적인 성격이라 낯선 상황이 불편했던 저는 언니에게 나하고는 안 맞는 것 같다. 말하고 더 이상 법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에 대한 공부는 하고 싶어 혼자 공부해 보았지만, 하다 말다 하며 이어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집 근처 법당에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수행법회에도 참석했습니다. 2023년 인도성지순례 법당에서 소임을 맡아 일할 때 꼼꼼하게 하는 편이었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함께 하기보다 혼자 했습니다. 법당 총무는 제가 하는 일이 못마땅한 듯했고, 샘을 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랑 친하게 지내면 불편해 하는 것 같았고, 어느 순간에는 저를 왕따 시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 감정 싸움이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그래, 저건 저 사람 마음이지.라며 제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1년에 두 번 정일사 수련을 하면서 불편한 마음을 살폈습니다.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있었습니다. 정토회를 소개한 언니는 제가 구설수에 오르자 일반 사찰로 다시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가 지향하는 바가 좋고 저에게도 맞는 것 같아 남았습니다. 나 혼자 끌탕 그러면서도 문득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집에 와서 설거지하다가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습니다. 평소에는 욕을 하지 않는데 억울한 마음이 가득 차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습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끌탕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러지? 미쳤나 보다. 그 사람들은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 혼자 끌탕하며 욕하고 머리 아파하고 별짓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2025년 동북아 역사기행 정일사 수련을 하면서 특별히 내어놓을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법사님이 마지막에 그래요? 그런데 혹시 외면하고 있는지 한번 잘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말씀이 계속 머리에 남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저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공감한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너는 너대로 살아, 나는 나대로 살 테니까.라며 외면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백조의 호수에서 2023년 1,250명이 가는 인도성지순례에 다녀오고, 이듬해에도 다시 갔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뒤 허리 협착이 너무 심해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지만 누워서라도 수련하고 명상하고 절을 했습니다. 침으로 집중 치료 받을 때는 절을 하지 못해 답답했습니다. 이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절을 시작해 횟수를 조금씩 늘렸더니 몸이 훨씬 빨리 회복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백조의 호수였습니다. 행복학교 수업을 진행하는데 제 목소리가 높고 낭랑한 데다 항상 웃으며 진행하니 사람들이 아픈 사람 맞냐?고 했습니다. 땀이 나고 허리 아래로 통증이 심해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지만, 한 시간 수업 동안은 꼼짝없이 백조처럼 지냈습니다. 스님께서는 더 아프셔도 하셨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2026년 8.15 광복절 행사 행복학교 마음편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본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모두 7명이 입학했는데, 그중 6명이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수업 때는 모두 표정이 우울했는데, 마지막 4강에서는 활짝 웃었습니다. 학생들이 심각한 나누기를 해도 진행자는 토를 달지 않고 매뉴얼에 따라 좋아요라고 반응합니다. 10분도 채 안 되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돌아가며 나누기를 할 뿐인데, 학생들의 마음이 열리고 심화편까지 공부를 이어가는 것을 보며 너무 감사했습니다. 한 분은 작가였는데, 자살을 거듭 시도하다 행복학교를 만나 다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불교대학도 졸업했다고 했습니다. 행복학교 프로그램이 참 좋다는 느꼈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임이 금은보화보다 큰 가치로 다가왔습니다. 모둠원 중 한 도반은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거 한번 해 볼래요? 그렇게 힘든 거 아닌데...라고 권했더니 네, 알겠습니다.하고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직접 해 보니 그리 힘들지 않았고, 수행과 봉사를 병행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소임도 조금씩 늘려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소임을 맡아 봉사를 해야 정토회에서 진정한 수행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 결혼하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집을 장만하고 아이들을 별탈없이 잘 키우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중하게 붙잡았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내가 잡는다고 해서 붙잡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후 이 절 저 절 찾아다니며 좋다는 것을 해 봤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에 이리저리 쏠리고 남들 따라다니느라 힘들기만 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공부를 해 보았지만 혼자서는 꾸준히 이어 가기 어려웠습니다. 2025년 동북아 역사기행 내가 잡고 있던 게 아무것도 아니면,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았고, 무엇 때문에 살지?라는 화두가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이 화두를 품고 정토불교대학을 시작해 지금까지 정토회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기로 한 일은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법륜 스님이 부처님 같습니다. 지금 여기서 하는 활동이 의미 있고 재미있습니다. 모두가 괴롭지 않고 서로 도움 주는 세상이 되기를 서원하며,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임을 비로소 압니다. 인터뷰 시작하기 전 당황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인터뷰 내내 많이 웃었습니다. 이현미 님이 밝아서 고맙고, 분명해서 고맙고, 씩씩해서 고마웠습니다. 무거운 이야기도, 마음 아픈 이야기도, 알아차린 이야기도 가볍게 내어주었습니다. 소임은 금은보화보다 가치가 있다.고 했던 말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백조의 호수처럼 잔잔하고 우아하면서도 물밑에서는 치열하고 힘차게 발차기하는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김정림 희망리포터 편집박선희

성남지회 2026.10.21. 258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엇으로든 새겨지고 남으리라_사천왕사지 광복절 특별 정진

정토회 부산, 울산지부에서는 202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81주년 특별 정진 행사를 했습니다. 아침 여섯 시 무렵 경주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안쪽으로 진입하니 공터엔 이미 차들로 가득합니다. 행사를 위해 캄캄한 새벽부터 온 회원들이 보였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살피며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출발할 때는 어두웠는데 서서히 날이 밝아 옵니다. 밝아 오는 아침, 언덕길을 오르며 사천왕사지와 선덕여왕릉 두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당간지주 한 쌍이 나란히 보입니다. 사천왕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입니다. 무심코 보면 휑하기까지 합니다. 산속의 재잘거리는 물소리도 없지만, 이곳엔 우리 선조들의 신묘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정표와 당간지주 사적비 사적비는 이곳이 호국 도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 통일 후, 당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지었습니다. 명랑 법사의 제안대로 이곳에 절을 짓고 ‘문두루 비법’을 쓰자 당나라 대군을 실은 배가 서해에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정토 회원들이 왜, 이곳에서 11년 동안 통일 기도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절터 안으로 들어서니 시야가 확 트입니다. 예초기로 풀을 베고 말끔히 정리해 놓았지만, 운동화에 이슬이 흥건히 배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기도를 이어온 도반이 많다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금당 터에는 회원들이 차분하게 앉아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천왕사지 기도를 한결같이 해 온 그들이 실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흰색 티셔츠에 수수하게 차려입어 초록색 풀잎과 잘 어울렸습니다. 메고 온 가방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고 뒤쪽에 따로 줄지어 세워둡니다. 신발도 아무렇게나 벗어두지 않으려고 신발주머니까지 챙겨왔습니다. 기도 정진에 임하는 자세에서 섬세한 정성이 묻어납니다. 기도할 자리에는 파란색과 연두색 대형 방수포를 깔고 방석을 놓고 다시 기도포로 반듯하게 방석을 덮어 감쌌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방석 위에 기도포 사찰에서는 새벽예불 전에 스님이 목탁을 치며 경내를 돌고 염불을 외웁니다. 도량을 청정하게 정화하고 잠자는 만물과 대중을 일깨우는 불교의 첫 의식입니다. 목탁을 들고 도량석을 도는 서명주 님은 10년째 일요일마다 통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기도 정진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도량석을 시작할 때는 실수할까 봐 약간 긴장도 했는데, 많은 사람의 염원이 모여서인지 기도할수록 힘이 더 났습니다. 매주 이렇게 잘 쓰여서 좋습니다. 10년 전 처음 참여했을 때 이렇게 바깥에서 자연 풍광을 보면서 기도한다는 게 참 가슴 벅찼습니다.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사천왕사지 기도가 좋아서 매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여합니다. 법사님도 도와주고, 해운대 법당 도반들 도움으로 목탁 집전도 배워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중울산 지회 서명주 님 현장에는 여러 곳을 두루 비출 수 있게 카메라 세 대를 설치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 하나하나에 현장에 모인 정토 회원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행사를 여는 지등명 법사님의 정감 어린 말씀은 평화통일 특별 정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시원한 마중물이 됩니다. 이어 지회별로 참석한 도반들의 소개가 있습니다. 부산 정토회, 울산지부 산하 총 7개 지회에서 현장 152명, 온라인 89명이 참석했습니다. 동래지회 지회장님은 아침에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귀국하자마자 달려왔습니다. 해마다 봉림사지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는 유수 스님도 올해는 사천왕사지에 왔습니다. “가야와 합병한 신라가 일치단결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 나아가 통일을 염원했던 곳이 바로 사천왕사지입니다. ‘관‧세‧음‧보‧살’ 한 자 한 자 집중해서 절하다 보면 내 업식을 알아차리는 때가 옵니다. ‘영험’은 바로 그런 것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 입정의 시간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또렷이 구별되면서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습니다. 다음으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발원문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낭독합니다. “8천만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시대적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길, 그래서 화해와 협력의 길이 열리길 발원합니다.……” 절을 시작하기 전, 입정 반드시 평화통일을 이루어오리다. 광복절 평화 기도, 300배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마음을 오롯이 집중하며 간절히 절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아내와 함께, 신용필 님 많은 사람 가운데 쉬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고 있는 신용필 님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지금 마음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늘 생각하며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조그만 원이 모여 나라의 희망이 되면 좋겠어요. 이 모든 행사를 준비한 분들이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오고 싶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쉼 없이 몸을 숙였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300배도 막바지에 다다릅니다. 어느덧 해가 떠올라 대지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예전 우리 할머니,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운 정성처럼 지금 사천왕사지에 염원이 깃들고 있습니다. 절을 마치니 몸은 땀에 젖고 손은 따스합니다. 모두 자신의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만세삼창’까지 외쳤습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넘칩니다. 북녘으로 뻗어 올린 오른팔처럼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평화통일’이 그곳까지 가 닿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행사가 끝났습니다. 회원들은 진행팀에서 보시한 찹쌀떡과 수박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랬습니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여럿이 모둠별로 둥글게 둘러앉아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나눕니다. “몇 년 만에 사천왕사지에 왔지만, 기도하니 마음이 좋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이어서 정진해 온 분들이 고맙습니다. 보통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기도하는 힘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참석하겠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할 때 정신이 맑게 깨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명상할 때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유독 잘 들렸습니다. 절을 할 때는 오늘,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습니다.” “작년 광복절에 오고 일 년 만에 다시 왔습니다. 온라인보다 이렇게 직접 사천왕사지에 있으니, 제가 오히려 기를 받는 것 같아 더 좋습니다. 여기를 꾸준히 지켜주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 기도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덕분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켰던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한 배 한 배 정성 들여 기도했습니다.” 김금수 님, 임분옥 님, 한영숙 님, 김은하 님 매번 겪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같았습니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몇 시간은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준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반들과 만나 인사하고 몇 시간 잘 쓰이다 보면 일상의 작은 괴로움은 온데간데없고 충만한 기운이 가득 차오릅니다. 광복절, 사천왕사지에서 함께 특별 정진으로 기도하니 행복이 몇 배가 됩니다. 평화 기도는 언제나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면 어느 날은 삼 백배, 오 백배, 천 배, 만 배가 됩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 엎드리며 행하는 실천은 절대로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토회 회원이든, 누구에게든, 혹은 사천왕사지에 스며들어 통일을 앞당기는 기운이 되든, 이 모든 염원과 실천은 그 무엇으로든 반드시 새겨지고 남을 것입니다. 글과 사진최상훈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통일 2026.10.09. 1,118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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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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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