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2026 깨달음의 장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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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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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가장 안전하게 성장하는 시간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어려웠던 정지원 님은 인생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고자 백일출가를 선택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늘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맞추려 애쓰느라 인생이 재미없게 느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 앞에서 물러서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문경에서 지내는 동안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부모의 그늘에서도 한 걸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라는 용기가 생겼다는 정지원 님에게 백일출가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어른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지원 님 슬럼프 끝에 백일출가를 결심하다 대학 졸업 후 반년 동안 취업에 매달렸으나 마음처럼 되질 않자 자존감이 바닥나면서 잠시 쉬고 싶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에게 보람을 안겨 주었던 것은 정토회에서 ‘경전대 돕는이’를 시작으로 하게 된 봉사활동이었습니다. 게다가 청년지부 소속 모둠장의 추천으로 다녀온 ‘동북아역사기행’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청년지부 도반들과 함께 여행하며 고구려·발해 역사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정토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두다 보니 동기부여가 될 만한 일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하던 일을 일단 멈춘 뒤 출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출가가 ‘나의 리셋’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죠. 처음에는 ‘청년붓다’를 생각했지만, “이왕 할 거면 문경에 가서 제대로 하고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힘을 얻어 백일출가를 결심하였습니다. 사회 경험 없이 백일출가를 시작하고,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일해 보니 제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백일출가 와서 생활해 보니 ‘알잘딱깔센’으로 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일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때도 있고, 저에게 맞는 일을 스스로 찾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백일출가 오기 전 과정도 비슷했습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했지만, 이 분야가 저에게 맞는지 확신이 없었고 막막한 마음에 섣불리 사회를 향해 발을 내딛기가 두려웠습니다. 일단 뭐라도 해봐야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 알 텐데, 아무거나 해볼 그런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내 인생의 주인으로 홀로서기 저는 늘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살았습니다. 어떤 도반은 저를 ‘정눈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부모의 눈치를 보며 선택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으면 ‘사귀기’가 두려웠습니다. 지금까지 제 인생의 주체는 부모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부모님의 말씀에 덜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참고는 하되, 제 마음과 생각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백일출가를 마친 후 부모님과 통화를 하는데 평소처럼 반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통화가 길어지고 걱정과 안부가 계속되면 전화를 끊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어리광을 부렸을 텐데, 달라진 제 모습이 스스로 대견스러웠습니다. 그동안 부모님은 저에게 허물이 없고 친밀한 존재였습니다. 그랬기에 뭐든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기만 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도반들이 성인인 저를 중학생처럼 보는 이유도 이런 것이겠다 싶습니다. 이제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눈빛과 말 한마디가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제 생각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간 인생이 재미없게 느껴진 이유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맞춰 살려고 애썼기 때문입니다. 문경에서 머물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고, 집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습니다.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시간입니다. 여래원에서 타인의 인정에서 나를 귀하게 여기는 시간으로 백일출가 재입재 후 청소년 선재수련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백일출가를 마치고 어떤 일을 할지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사전 준비를 하려니 막막했습니다. 누가 먼저 일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행자원 도반들 눈치가 보였습니다.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보완이 필요한 PPT 작업을 하거나 새로운 발표 자료를 만들며 준비 기간을 보냈습니다. 내내 ‘이게 맞나? 잘하고 있나?’ 검증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같이 준비하는 도반들도 선재수련은 처음이고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반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방황하는 저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사회 경험이 없다는 것 때문에 자신감이 없고 해야 할 일 앞에서 물러서는 ‘퇴굴심’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일에 집중하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당당하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저는 뭘 해도 자신이 없고 의심하고 검열하며 자신을 괴롭혀 왔습니다. 소소한 부분에서 감정 소모가 많았으니 정작 중요한 일을 해내야 할 때는 집중할 힘이 부족했습니다. 백일출가 전에는 힘든 게 아니라 힘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에너지가 채워진 느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추앙하며, 지쳤던 삶에 활력을 되찾아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누가 저를 추앙해 준 적은 없었지만 저는 추앙받는다고 느꼈습니다. 예불 끝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맑은 공기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말을 나누면서 제가 바뀌고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두북수련원 배추밭에서 좋고 싫음의 업식을 넘어 자유로운 삶으로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2026년 새로운 수행 목표가 생겼습니다. 저는 좋고 싫은 업식이 강한 편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해 좋고 싫은 마음이 커서 그 마음을 내려놓아 보려고 합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할 때 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면 저를 싫어할까 두렵고, 언제나 잘 보이고 싶고, 사랑받지 못하면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곤 합니다.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제 감정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곤 했습니다. 떠오르는 마음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다시 우정, 동경, 존경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집요하게 고민합니다. 이렇게 감정을 놓고 강박적으로 고민하며 불안해지면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니야’하면서 자신을 몰아붙였습니다. 이제는 어떤 감정이 들면 그냥 ‘그랬구나’ 하고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마음을 붙잡기보다는 하나둘씩 내려놓아 보기로 했습니다. ‘할까 말까?’ 그럴 때는 그냥 해보기로 했습니다. 나의 감정을 옭아매지 않고 서서히 풀어주었습니다. 사람을 향해 과하게 들뜨는 마음이 들 때는 밑바닥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동안 ‘마음보기’를 제대로 해보기 전까지는 내 마음 바닥에 켜켜이 쌓여 있는 층을 보지도 못했고, 누가 말해줘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백일출가를 하고 재입재를 하면서 행자들과 나누기를 꾸준히 한 것이 공덕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솔직하기만 한 저의 두서없는 나누기를 잘 들어준 13호차 1조 도반들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일체의 장에서 더 성숙해진 나를 마주하며 백일출가는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어른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걷는 법까지, 진짜 어른들의 성숙한 삶을 곁에서 함께하며 몸과 마음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었고 중구난방으로 튀어 오르던 망상들도 가라앉았습니다. 수련 중 소감문을 작성할 때 떠오른 문장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일확천금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작은 일을 꾸준히 해낼 힘은 나에게 생겼다’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행자원에서 다음 기수의 입방을 돕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청년지부에서 활동하며 어디에 있든, 수행 관점을 놓치지 않고 마음공부를 계속하며, 괴로움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만 배로 백일출가의 시작을 열었던 그 기운 덕분에 이제는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 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무엇이 나에게 맞을지, 무엇을 잘할지 아직은 다 알 수 없지만, 지금 여기 이 순간, 가볍게 한 발을 내디뎌 보겠습니다. 이 글은 2026년 4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소감문입니다. 글정지원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월간정토 2026.10.26. 83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엇으로든 새겨지고 남으리라_사천왕사지 광복절 특별 정진

정토회 부산, 울산지부에서는 202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81주년 특별 정진 행사를 했습니다. 아침 여섯 시 무렵 경주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안쪽으로 진입하니 공터엔 이미 차들로 가득합니다. 행사를 위해 캄캄한 새벽부터 온 회원들이 보였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살피며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출발할 때는 어두웠는데 서서히 날이 밝아 옵니다. 밝아 오는 아침, 언덕길을 오르며 사천왕사지와 선덕여왕릉 두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당간지주 한 쌍이 나란히 보입니다. 사천왕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입니다. 무심코 보면 휑하기까지 합니다. 산속의 재잘거리는 물소리도 없지만, 이곳엔 우리 선조들의 신묘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정표와 당간지주 사적비 사적비는 이곳이 호국 도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 통일 후, 당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지었습니다. 명랑 법사의 제안대로 이곳에 절을 짓고 ‘문두루 비법’을 쓰자 당나라 대군을 실은 배가 서해에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정토 회원들이 왜, 이곳에서 11년 동안 통일 기도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절터 안으로 들어서니 시야가 확 트입니다. 예초기로 풀을 베고 말끔히 정리해 놓았지만, 운동화에 이슬이 흥건히 배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기도를 이어온 도반이 많다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금당 터에는 회원들이 차분하게 앉아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천왕사지 기도를 한결같이 해 온 그들이 실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흰색 티셔츠에 수수하게 차려입어 초록색 풀잎과 잘 어울렸습니다. 메고 온 가방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고 뒤쪽에 따로 줄지어 세워둡니다. 신발도 아무렇게나 벗어두지 않으려고 신발주머니까지 챙겨왔습니다. 기도 정진에 임하는 자세에서 섬세한 정성이 묻어납니다. 기도할 자리에는 파란색과 연두색 대형 방수포를 깔고 방석을 놓고 다시 기도포로 반듯하게 방석을 덮어 감쌌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방석 위에 기도포 사찰에서는 새벽예불 전에 스님이 목탁을 치며 경내를 돌고 염불을 외웁니다. 도량을 청정하게 정화하고 잠자는 만물과 대중을 일깨우는 불교의 첫 의식입니다. 목탁을 들고 도량석을 도는 서명주 님은 10년째 일요일마다 통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기도 정진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도량석을 시작할 때는 실수할까 봐 약간 긴장도 했는데, 많은 사람의 염원이 모여서인지 기도할수록 힘이 더 났습니다. 매주 이렇게 잘 쓰여서 좋습니다. 10년 전 처음 참여했을 때 이렇게 바깥에서 자연 풍광을 보면서 기도한다는 게 참 가슴 벅찼습니다.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사천왕사지 기도가 좋아서 매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여합니다. 법사님도 도와주고, 해운대 법당 도반들 도움으로 목탁 집전도 배워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중울산 지회 서명주 님 현장에는 여러 곳을 두루 비출 수 있게 카메라 세 대를 설치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 하나하나에 현장에 모인 정토 회원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행사를 여는 지등명 법사님의 정감 어린 말씀은 평화통일 특별 정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시원한 마중물이 됩니다. 이어 지회별로 참석한 도반들의 소개가 있습니다. 부산 정토회, 울산지부 산하 총 7개 지회에서 현장 152명, 온라인 89명이 참석했습니다. 동래지회 지회장님은 아침에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귀국하자마자 달려왔습니다. 해마다 봉림사지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는 유수 스님도 올해는 사천왕사지에 왔습니다. “가야와 합병한 신라가 일치단결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 나아가 통일을 염원했던 곳이 바로 사천왕사지입니다. ‘관‧세‧음‧보‧살’ 한 자 한 자 집중해서 절하다 보면 내 업식을 알아차리는 때가 옵니다. ‘영험’은 바로 그런 것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 입정의 시간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또렷이 구별되면서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습니다. 다음으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발원문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낭독합니다. “8천만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시대적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길, 그래서 화해와 협력의 길이 열리길 발원합니다.……” 절을 시작하기 전, 입정 반드시 평화통일을 이루어오리다. 광복절 평화 기도, 300배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마음을 오롯이 집중하며 간절히 절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아내와 함께, 신용필 님 많은 사람 가운데 쉬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고 있는 신용필 님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지금 마음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늘 생각하며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조그만 원이 모여 나라의 희망이 되면 좋겠어요. 이 모든 행사를 준비한 분들이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오고 싶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쉼 없이 몸을 숙였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300배도 막바지에 다다릅니다. 어느덧 해가 떠올라 대지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예전 우리 할머니,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운 정성처럼 지금 사천왕사지에 염원이 깃들고 있습니다. 절을 마치니 몸은 땀에 젖고 손은 따스합니다. 모두 자신의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만세삼창’까지 외쳤습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넘칩니다. 북녘으로 뻗어 올린 오른팔처럼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평화통일’이 그곳까지 가 닿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행사가 끝났습니다. 회원들은 진행팀에서 보시한 찹쌀떡과 수박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랬습니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여럿이 모둠별로 둥글게 둘러앉아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나눕니다. “몇 년 만에 사천왕사지에 왔지만, 기도하니 마음이 좋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이어서 정진해 온 분들이 고맙습니다. 보통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기도하는 힘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참석하겠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할 때 정신이 맑게 깨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명상할 때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유독 잘 들렸습니다. 절을 할 때는 오늘,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습니다.” “작년 광복절에 오고 일 년 만에 다시 왔습니다. 온라인보다 이렇게 직접 사천왕사지에 있으니, 제가 오히려 기를 받는 것 같아 더 좋습니다. 여기를 꾸준히 지켜주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 기도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덕분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켰던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한 배 한 배 정성 들여 기도했습니다.” 김금수 님, 임분옥 님, 한영숙 님, 김은하 님 매번 겪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같았습니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몇 시간은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준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반들과 만나 인사하고 몇 시간 잘 쓰이다 보면 일상의 작은 괴로움은 온데간데없고 충만한 기운이 가득 차오릅니다. 광복절, 사천왕사지에서 함께 특별 정진으로 기도하니 행복이 몇 배가 됩니다. 평화 기도는 언제나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면 어느 날은 삼 백배, 오 백배, 천 배, 만 배가 됩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 엎드리며 행하는 실천은 절대로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토회 회원이든, 누구에게든, 혹은 사천왕사지에 스며들어 통일을 앞당기는 기운이 되든, 이 모든 염원과 실천은 그 무엇으로든 반드시 새겨지고 남을 것입니다. 글과 사진최상훈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통일 2026.10.09. 1,321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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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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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