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새길

정토불교대학

학사일정 : 2026년 9월 20일(일) ~ 2027년 1월 30일(토)
접수마감 : 2026년 9월 3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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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백중기도

입재 : 7월8일(수) 오전10시 / 회향 : 8월 27일(목) 오전 10시
기도접수 : 7월 1일(수) ~ 8월 29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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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을 위한 정토불교대학

정토담마스쿨

2026년 하반기 신입생 모집
마감 : 2026년 8월 4일 / 개강: 2026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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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 : 도심 속 절캉스 / 1080배 정진 / 명상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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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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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로또 거사, 붓다피아에 몰방

천룡사 보리수 8기로 활동하고 계시는 정종석 님을 만나러 천룡사로 향했습니다. 등산로 초입에 걸린 “사랑하고 사랑받는 출발점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라는 문구와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이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인연 따라 이 글을 펼친 분 모두, 끝까지 읽는다면 글의 마지막에서 자신만의 희망을 찾아내실 겁니다. 2025. 3. 천룡사 연등달기 동물원에서 가장 강한 동물 1960년 4·19 혁명, 1961년 5·16 쿠데타로 나라가 흉흉했습니다. 195060년대는 혼란과 왜곡이 만연했던 혹세무민의 시대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에게 액운이 끼어 있으니 100만 원으로 지성을 들이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한다.”라거나 특정 종교 지도자가 “세숫대야 물에 손을 담그고 기도한 뒤 그 물을 나누어 마시면 모든 병이 낫는다”라는 식의 기복신앙이 많았습니다. 옛날 어른들이 다 그랬듯이, 저의 아버지 역시 종교라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태극도에 심취했습니다. 제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태극도 본부가 있는 부산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저는 종교단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자랐습니다. 그로 인해 부모님과 종교적인 갈등이 컸습니다. 2025. 7. 천룡사 보리수 역사기행 반구대암각화 저는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동생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직업을 가졌습니다. 이후 뒤늦게 학업을 병행하여 20세에 야간중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35세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방송통신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사는 게 참 재미없다는 생각에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한 번은 동물원에서 여러 동물을 보았습니다. 그중 곰, 사자, 코끼리, 호랑이 등은 태어날 때부터 강한 유전자를 타고났지만, 멧돼지는 그런 것에 기대지 않고도 강인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움직이는 생명력을 지닌 멧돼지를 내 인생의 마스코트로 삼고 열심히 살아보자’라고 다짐했습니다. 2026. 3. 멧돼지 방어막 설치 바른 법, 바른 스승을 만날 운명 바른 믿음의 대상을 찾던 중 불교를 알았습니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법륜스님의 저서 《실천적 불교사상》을 읽었습니다. 차를 마시고 붓글씨를 쓰며 멋으로 하는 불교, 산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시나 읊조리는 도피주의, 글자 풀이로 먹고사는 학문주의, 오래 살기 위해 참선하는 건강주의, 가끔 조용한 산사를 찾아 심신을 달래는 이기주의, 세속의 이익에 눈이 어두운 출세주의, 병 고침을 내세우는 신비주의 등, 나름대로 삿된 길을 추구하며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것은 수행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실천하며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라는 구절를 읽었습니다. 제가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부처를 믿어라’가 아니라 ‘부처가 되어라’는 말이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2025. 5. 천룡사 초가집 보수작업 2004년 2월 15일 해운대 법당 개원 때 법륜스님의 100일 법문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2004년 149차에 입재하여 지금은 천룡사지 보리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60세쯤 편두통, 견비통,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했습니다. 병원을 방문하여 의사에게 하루에 108배 절을 한다고 하니, 너무 무리하면 큰일 난다 하여 처방약만 복용했습니다. 석 달간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아파도 매일 200배 정진을 했습니다. 아픈 증상이 자연스레 나았습니다. 새벽 정진으로 몸이 건강해지자 살아갈 의욕도 생겼습니다. 매일 부처님의 가피와 공덕 속에서 특별한 관리 없이도 웬만한 병은 자연 치유되었고,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5. 7. 천룡사 예초작업.right 수행은 애써 하는 숙제가 아닌 일상입니다. 잠을 자듯이, 밥을 먹듯이 수행합니다. 주중에는 담당 구청 시니어클럽에 참여하여 매월 60시간씩 폐품 재활용을 위한 페트병 수거 봉사를 합니다. 주말에는 천룡사에서 보리수 회원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에는 통일의병 238번으로 통일만보를 걸으며 주택가와 민주공원에서 쓰레기를 줍습니다. 법 보시의 그물 보시는 법 보시, 법공양이 최고의 공덕입니다. 스님이 지은 책 《행복한 출근길》은 내용이 좋아서 영업사원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기대고 싶어 사랑한다는 《스님의 주례사》도, 《기도》도 내용이 좋았습니다. 정토 신서 《불교를 알면 21세기가 보인다》에서 서원은 넓고 깊게, 선행은 낮고 지속적으로 실천하여야 한다라는 말씀이 특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정토 총서는 열심히 줄을 그어 가며 읽었습니다. 《인생 수업》은 사위와 손자의 생일을 맞아 주변의 소중한 분들에게 나눴습니다. 책 공양을 할 때는 표지 뒷장에 법공양 발원 내용과 발원자를 기재합니다. 항상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법륜스님 아세요? 잘 알지요 책 선물 드릴까요? 아 좋죠 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명함.right 수행프로그램.right 그리고 정토회의 수행 프로그램이 안내된 명함도 함께 건네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말합니다. 매월 《월간정토》 20부와 스님의 저서들을 인연 닳는 모두에게 선물합니다. 이제 남은 인생은 법을 전하는 수행자로 살겠다 서원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기도하라는 말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들렸습니다. 기복신앙에서는 “열심히 빌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라며 기도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비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저는 빌어서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에 기도라는 말 자체를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는 기도를 제가 알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나중에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2026. 4. 천룡사 예초작업 후 정토회에서는 화에 대한 인식도 보통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유교적인 집안에서 배우기를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참아라“라고 가르쳤지만, 정토회에서는 참지 말라고 합니다. ‘평생 참으며 살았는데 세상에 안 참고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지 말라가 아니라 ‘참을 것이 없으니 화낼 일이 없다’였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까지 십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서구 문명의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이라는 생각에 인류 문명의 한계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 활동이 제 인생관을 바꾸었습니다. 저의 고민도 해소되었습니다. 유토피아는 실현이 불가능한 이상향이지만, 붓다피아는 구현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붓다피아에 저를 몰방해도 후회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이 형성된 후에는 법을 실천할 뿐 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2025. 7. 사천왕사지 통일기도 후 가장 으뜸이 되는 가르침 둘째 아들은 저를 무서운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제 눈과 마주치기만 해도 야단맞았다고 합니다. 야단치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고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에게 정토회에 와서 보니 해볼 만하더라. 불교대학 공부를 해봐라”라고 권했습니다. 아들이 단호하게 “아버지 하는 거 보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내가 먼저 보여줘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토총서는 35년 전에 쓰였습니다. 수정 없이 수행, 복지, 평화, 환경의 과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조금씩 고치기 마련인데, 처음 계획한 그대로 실현되고 변형이나 보완 없이 꾸준히 이어지는 모습이 저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2025. 8. 천룡사 초가집 보수작업 고집이라는 단어는 굳을 고, 잡을 집 자로, 굳게 잡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굳게 붙들 만한 어떤 가치 기준도 없이 고집만 있어 상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연결된 관계가 중심인 사회에서 그런 관계가 없었던 저는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토회를 만나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함께 호연지기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정토회 덕분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법과 많은 스승이 있지만, 바른 법과 바른 스승을 만난 인연은 로또 당첨보다 더 큰 인생 역전입니다 2025. 4. 천룡사 점등식 후 공양 인터뷰를 마치고 천룡사를 내려오는 배웅 길에 연세도 많고 혼자 지내시는데 생활이나 식사는 어떻게 챙기시는지 물었습니다. “밥은 밥솥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지”라고 답했습니다. 지금 잘 살아 있으면서도, 죽음이 궁금한 저에게 그건 “아무 문제 없네”라고 들렸습니다. 앞서 걸어가는 정종석 님 주변은 가볍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했습니다. 정종석 님은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며, 인터뷰 내내 빼고 버릴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휴대전화에 정종석 님을 로또 거사님으로 저장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도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글구선우 희망리포터 편집최미영

사하지회 2026.07.22. 1,337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비판적 순응에 희생된 수많은 이웃, _ ‘순이 삼촌’을 기억하며 _2026년 6월 제주 4·3 평화역사 기행

2024년, 제주 4·3의 역사 속으로 평화 기행을 다녀온 후, 이 역사를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 후 현충일을 기해 3일간의 여정으로 다시 ‘제주’로 향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부터 준비팀에 합류하여 사회자의 진행 글을 작성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역사 기행 날이 다가와도 막상 사전 학습 도서, 현기영 작가의『순이 삼촌』을 읽는 것은 자꾸만 미뤘습니다. 잔인한 역사를 마주하며 그 슬픔을 느끼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회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 마음은 한결 밝아졌습니다. 첫 번째 장소 관덕정으로 이동하며 비로소 역사 기행이 시작되었음이 실감 났습니다. 안내를 맡은 법음 법사님은 역사 이해를 위해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알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고 당부하듯 말했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그 주변 일대입니다. 북촌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 하루에 400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당한 단일 마을 가운데 가장 큰 희생이 발생한 곳입니다. 기념관에는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진 여러 그림과 강요배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진 자료가 거의 남지 않아 이러한 기록들은 더욱 귀중했습니다. 천명, 하늘의 울음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 제주 4·3 사건의 유족인 이상언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희생의 규모와 그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면서 그들은 단순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처절했던 한 시대의 삶을 살아 내었던 사람들이었음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기념관을 나온 뒤 마을 길을 걸으며 소설『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장소와 북촌 초등학교 등 희생자들의 터까지 둘러보았습니다. 삼촌은 여인이다. 소설 중에서 순이 삼촌 기념비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된 제주 도민이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해당합니다. 해설사가 일일이 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3시간이 넘도록 호명과 해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제주 동쪽의 ’광치기 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름다운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이곳 역시 무고한 주민 400여 명이 군경 토벌대와 서북 청년단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장소입니다. 광치기 해변과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은 여러 차례 여행 왔던 곳이지만, 재작년 역사 기행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러한 아픔이 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기행의 사회자 역할에 집중하니 현장의 느낌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 발원문을 두 사람이 낭독하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떨리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생명과 오랜 세월 슬픔을 안고 살아온 유가족들의 아픔을 깊이 새깁니다. 두려움과 혐오, 침묵과 폭력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제주라는 이 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늘 제주의 아픔 앞에서 개개인의 삶을 돌아봅니다.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대화와 이해로 갈등을 풀어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국가 폭력과 전쟁, 증오와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그 순간, 제주 동쪽의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는 3만 명이지만, 그들의 유족은 몇 명이며, 또 그 유족들의 가족은 얼마나 많을까요…… 다시 왜?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살육의 피해를, 입어야 했던 이유는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이 있습니다. 4·3 평화 공원에 안치된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명상할 때입니다. 행방불명인 묘역 흐린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데, 묘지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 그 까마귀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명상을 제안했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자리를 찾아 묘지를 등지고 산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눈을 감고 몸으로 들어오는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새소리가 들리고 숲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몸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듯했습니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명상하는 모습 어느새 이곳이 특별한 장소라는 생각마저 사라지고 고요한 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명상이 언제 끝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눈을 뜨자 구름이 걷히고 햇살은 따뜻이 묘역에 내렸습니다. 그 밝음에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누군가는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아픈 역사와 고통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경험했던 순간의 기억이 신비로웠습니다. 함께 걸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묘지를 바라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마음은 먹먹했습니다. 이번 역사 기행을 통해 도반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함께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슬픔에 압도되지 않았고, 그 마음을 함께 잔잔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3조, 우리는 도반 일정이 끝난 뒤, 조원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며 하루의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특히 제주를 주제로 시를 쓰고 낭독했던 시간은 그날의 경험을 정리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같은 숙소를 사용했던 프로그램 팀과 산책하고 체조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습니다.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행 내내 따라다녔던 왜?라는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팀원들과 산책길에서 문득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마음 나누기 시간에 다른 회원이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서 아이히만은 약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실행한 실무 책임자였지만, 특별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평범한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 관성적이고 습관적인 사고방식이 어떤 맥락에서는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느꼈습니다. 이것을 ‘사유의 무능과 무비판적인 순응’의 결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살을 지시한 사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묻게 됩니다. 극단적인 공격성은 때때로 내면의 두려움과 상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마지막엔 ‘무감각과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남았고, 여기에 대한 해독제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 질문에 ‘수행’이라는 단어가 해답처럼 바로 떠올랐습니다. 먼저 바른 법 만난 자신이 행복할 수 있어 기쁘고, 수행자의 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잘 전하는 것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는 길임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전쟁과 분쟁, 사람들의 갈등과 증오를 마주할 때면 여전히 무력해지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평화를 위해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자 합니다. 먼저 꾸준히 수행하면서 내 안의 두려움과 화를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에서 평화를 만들며 제주 4·3 사건을 잊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제주에는 ‘속솜허라’라는 말이 있는데, ‘숨을 죽이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당시 동굴로 피신했던 부모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사건 후에는 피해자였지만,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았던 제주도민들이 들었던 말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고, 지독한 그 시절이 지났어도 살면서 애써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위한 발걸음, 제주에서 단체 사진 작은 실천으로, 역사 기행 참가자들이 쓴 시를 시집으로 엮어 제주를 안내하는 해설사들에게 전하는 싶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알아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넘어 세계 평화까지 큰 꿈을 품어봅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 p.536』 제주 4·3 평화 재단 홈페이지 게시글 글김수영 사진김민성 편집황재윤

통일 2026.07.24. 191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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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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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