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2026 깨달음의 장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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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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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그냥 한번 해봅니다

최근 깨달음의 장이나 나눔의 장에 다녀오셨다면, 정갈한 원목으로 된 공양 배식 테이블을 보셨을지도 모릅니다. 그 테이블은 오늘의 주인공인 박황근 님이 판재를 고르고 골라 직접 만든 것입니다. 박황근 님은 처음에는 그저 쓰일 수 있다는 게 좋아서 봉사활동을 하였지만, 보리수 7기로 활동하면서 환경이 달라지자 왜 나한테 이런 일거리만 주는 거지? 하는 분별심과 씨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 수행을 하며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게 되고, 조금씩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과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여유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문경 정토수련원을 오가는 길에 느끼는 가벼워진 마음을,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고 표현하는 그의 말에서 변화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박황근 님 착각 속에 살았던 시간 저는 아내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생활이 험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제적인 문제에 쫓기듯 항상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뭔가 마음에 안 들면 꽁해지고 말수가 줄었습니다. 그래도 큰 사고나 부부싸움 없이 살았습니다. 회사 생활은 저녁 회식으로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였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 많던 회식이 없어지고 조금 한가해졌을 때, 아내와 처형의 권유로 2022년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마치고 ‘깨달음의 장’까지 다녀왔습니다. 깨장 수련 기간 중 매일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항상 나를 짓누르고 있던 걱정과 무게감이 사라지면서 뭔지 모를 환희심이 샘물처럼 올라왔습니다. 그 환희심이 사라질까 봐 말도 하고 싶지 않고 걸음도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20년 넘게 갑질하며 살아온 속 좁은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며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는데, 이제 보니 아내가 늘 저에게 맞춰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시작한 봉사, 보리수의 길 깨장 마지막 날, 자광 법사님께서 정토회가 걸어온 길을 설명해 주시며 봉사활동을 권유하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시설물 관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실천 활동 장소로 익숙했던 정토연수원에 가보니 일거리 천국이었습니다. 공양간 배식대는 상판도 없이 바닥 일부가 내려앉아 있고, 비품 창고에는 선반이 없어 물건이 바닥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뛰어난 실력이 있거나 대단한 발심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어 배식대 상판을 만들고, 비품 창고에 선반을 달았습니다.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연수원과 수련원의 그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별것 아닌 재주가 이렇게 좋은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몇 개월 이어가던 중 전국 보리수 7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습니다. 관심은 있었지만,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교육받고, 한곳에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조용히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가 시설물 관련 봉사활동을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회에서는 당연히 신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서울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교육과정도 좋고 유수 스님께서 직접 법문도 해주신대”라며 저를 설득했습니다. 보리수와의 인연은 그렇게 대전지회 으뜸절 죽림정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보리수 시설팀원들과 주인의 마음이 다독여 준 분별심 문경에서 봉사활동은 일거리가 생기면, 내가 편할 때 가서 확인하고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을 말씀드린 후 만들거나 수리하면 끝이었습니다. 일도 단순한 것뿐이고 재활용 창고에서 웬만한 자재는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설이 적당히 낡고 비전문가가 작업한 것이 많아서 초보자인 제가 작업해도 결과물이 있어 보여 만족감을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림정사는 달랐습니다. 최근에 제대로 지은 신식 목조건물이라 초보자가 손댈 수 있는 부분도 적었고,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자재도 거의 없었습니다. 일감도 그때그때 필요한 일이 즉흥적으로 배분되다 보니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요사채 뒤편에 있는 철제 에어컨 스탠드를 농사용 자재 수납장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자재도 없는데, 한옥에 어울리는 수납장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것도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에어컨 스탠드에 살을 붙여서 해야 한다니, 취지는 좋았으나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예, 하고 합니다’라는 전통이 있다고 해서 말도 못 하고 시간만 점점 흘렀습니다. 짜증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다 만들어 놓고 나면 이상한 물건이 되어 오히려 없애야 할 상황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수련장 현판 수리 중에 어느 날 급하게 할 일이 많다고 해서 부랴부랴 갔습니다. 요사채 실내 화장실에 사용자가 갇히는 사고로 문을 수리해야 했습니다. 전통문 고리형 손잡이가 문 옆 책장에 끼면서 생긴 문제였습니다. 누가 봐도 책장과 문 사이의 간격이 문제였고, 책장을 옆으로 밀든가 책장과 손잡이 사이의 공간을 좁혀주면서 간단히 해결되었습니다. 또 다른 일은 접이식 빨래 건조대와 부러진 갈퀴 손잡이를 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빨래 건조대는 버리는 게 맞고, 갈퀴 손잡이는 철물점에서 손잡이를 사서 끼우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일로 기름을 소모하며 급히 오가는 게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아껴 쓰고 고쳐 쓰는 게 정토회 정신이라지만 ‘오며 가며 소모하는 기름과 내뿜은 매연이 더 문제가 아닌가?’ 하는 회의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 죽림정사 교육관을 한번 둘러보니 손봐야 할 곳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법상 난간과 조형물 일부가 부러지고 떨어져 나가 보기 흉했습니다. 교육관 마룻바닥 판재가 수축하여 내려앉았고 출입문 대부분이 변형되어 여닫기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교육받은 목수가 아니어서 단번에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고민하다 보니 방법은 있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피고 수리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여러 사람에게 잘 쓰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수련원 데크 수리 중에 따뜻한 마음을 찾아준 보리수 2024년 초 문경수련원에서 목공 관련 일감은 많은데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지원을 나갔습니다. 행자원 보일러실 문이 낡아서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아마추어 목수가 대충 만든 것이었습니다. 합판은 비를 맞아 부풀었고, 기둥은 벌레 먹어 반쯤 썩어 있었습니다.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아 틀이 휘어지고, 문은 삐딱한 사각형이었습니다. 새로 문을 만들어 달더라도 제대로 닫히지 않을 게 훤히 보였습니다. 그 문을 보면서, ‘왜 정토회는 나한테 이런 일거리만 주는 거지? 건물이 제대로 지어진 게 별로 없어’ 하고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만들라는 문은 안 만들고 다른 일을 하면서 한 달 반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건물 쪽 수직부 문틀은 전체를 철거하고 수직을 맞춘 후 벽체와의 틈새는 판재 조각으로 메웠습니다. 외부 쪽 수직부 문틀은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비슷한 크기의 나무로 이어 붙였습니다. 문 바깥쪽은 비를 맞아도 문제가 없도록 원목 판재를 붙였습니다. 안쪽은 가벼운 합판을 붙인 후 기둥과 문 전체에 오일스테인을 칠했습니다. 사용한 자재는 모두 자재 창고에서 가져온 재활용이었습니다. 재활용 자재 창고에서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 있는 문이었지만, 그걸 고치고 나니 그때까지 한 일 중에서 가장 보람을 느꼈고 뿌듯했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내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요청이 있을 때 일을 하다 보니 봉사 실천 장소가 문경수련원이 되었습니다. 2024년 하반기 수련 담당자로부터 공양 배식 테이블을 새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깨장에 참여했을 때가 떠올라 깊이 공감했습니다. 정갈해 보이고 실용적인 원목 판재를 고르고 또 골랐습니다. 테이블을 만들 판재와 상다리를 차에 가득 싣고 문경으로 향하는 길은 구름 위를 날 듯 정말 좋았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내가 만든 공양 테이블에 정성을 담은 공양을 차리고, 그 공양을 받은 분들이 깨달음을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깨장을 다녀가실 많은 부처님과 나와의 인연이 이 소소한 배식 테이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2023년 깨장에 참여했을 때의 감회가 되살아나면서 옛 인연을 통해 새 인연을 맺게 해준 보리수가 참 고마웠습니다. 행자원 데크 수리 중에 일 수행으로 배운 이해하는 마음과 여유 명상하고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항상 깨어있고 알아차리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올라오는데 알아차린다고 없어진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수행한다는 마음으로 잠시라도 깨어있고 알아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작업을 하다 보면 수행이 일이 되어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고 시비분별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렇게 마냥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전보다 좋아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직원들과 웃으면서 일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문득문득 보였습니다. 또 어느 순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제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가족 없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아 혼자 생활하면서도 별문제 삼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의 관계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부모님 나름대로 입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이제는 이해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겠지, 다들 힘들게 세상 살다 보니 상처받아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니 예전처럼 버럭 화를 내거나 폭발하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문경수련원에 봉사하러 갑니다. 문경수련원을 오고 가는 네 시간 동안 운전하면서 주변을 둘러봅니다. 봄이면 도롯가에 핀 꽃을 눈과 코로 느끼고, 여름이면 나무의 푸르름과 풀 냄새를 맡으며, 가을이면 곱게 물든 단풍을 고스란히 담아 돌아옵니다. 있는 그대로를 모두 아름답게 느끼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저절로 숙여집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고맙습니다. 이 글은 2026년 4월 호에 수록된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박황근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월간정토 2026.10.12. 185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엇으로든 새겨지고 남으리라_사천왕사지 광복절 특별 정진

정토회 부산, 울산지부에서는 202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81주년 특별 정진 행사를 했습니다. 아침 여섯 시 무렵 경주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안쪽으로 진입하니 공터엔 이미 차들로 가득합니다. 행사를 위해 캄캄한 새벽부터 온 회원들이 보였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살피며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출발할 때는 어두웠는데 서서히 날이 밝아 옵니다. 밝아 오는 아침, 언덕길을 오르며 사천왕사지와 선덕여왕릉 두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당간지주 한 쌍이 나란히 보입니다. 사천왕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입니다. 무심코 보면 휑하기까지 합니다. 산속의 재잘거리는 물소리도 없지만, 이곳엔 우리 선조들의 신묘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정표와 당간지주 사적비 사적비는 이곳이 호국 도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 통일 후, 당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지었습니다. 명랑 법사의 제안대로 이곳에 절을 짓고 ‘문두루 비법’을 쓰자 당나라 대군을 실은 배가 서해에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정토 회원들이 왜, 이곳에서 11년 동안 통일 기도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절터 안으로 들어서니 시야가 확 트입니다. 예초기로 풀을 베고 말끔히 정리해 놓았지만, 운동화에 이슬이 흥건히 배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기도를 이어온 도반이 많다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금당 터에는 회원들이 차분하게 앉아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천왕사지 기도를 한결같이 해 온 그들이 실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흰색 티셔츠에 수수하게 차려입어 초록색 풀잎과 잘 어울렸습니다. 메고 온 가방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고 뒤쪽에 따로 줄지어 세워둡니다. 신발도 아무렇게나 벗어두지 않으려고 신발주머니까지 챙겨왔습니다. 기도 정진에 임하는 자세에서 섬세한 정성이 묻어납니다. 기도할 자리에는 파란색과 연두색 대형 방수포를 깔고 방석을 놓고 다시 기도포로 반듯하게 방석을 덮어 감쌌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방석 위에 기도포 사찰에서는 새벽예불 전에 스님이 목탁을 치며 경내를 돌고 염불을 외웁니다. 도량을 청정하게 정화하고 잠자는 만물과 대중을 일깨우는 불교의 첫 의식입니다. 목탁을 들고 도량석을 도는 서명주 님은 10년째 일요일마다 통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기도 정진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도량석을 시작할 때는 실수할까 봐 약간 긴장도 했는데, 많은 사람의 염원이 모여서인지 기도할수록 힘이 더 났습니다. 매주 이렇게 잘 쓰여서 좋습니다. 10년 전 처음 참여했을 때 이렇게 바깥에서 자연 풍광을 보면서 기도한다는 게 참 가슴 벅찼습니다.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사천왕사지 기도가 좋아서 매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여합니다. 법사님도 도와주고, 해운대 법당 도반들 도움으로 목탁 집전도 배워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중울산 지회 서명주 님 현장에는 여러 곳을 두루 비출 수 있게 카메라 세 대를 설치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 하나하나에 현장에 모인 정토 회원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행사를 여는 지등명 법사님의 정감 어린 말씀은 평화통일 특별 정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시원한 마중물이 됩니다. 이어 지회별로 참석한 도반들의 소개가 있습니다. 부산 정토회, 울산지부 산하 총 7개 지회에서 현장 152명, 온라인 89명이 참석했습니다. 동래지회 지회장님은 아침에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귀국하자마자 달려왔습니다. 해마다 봉림사지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는 유수 스님도 올해는 사천왕사지에 왔습니다. “가야와 합병한 신라가 일치단결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 나아가 통일을 염원했던 곳이 바로 사천왕사지입니다. ‘관‧세‧음‧보‧살’ 한 자 한 자 집중해서 절하다 보면 내 업식을 알아차리는 때가 옵니다. ‘영험’은 바로 그런 것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 입정의 시간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또렷이 구별되면서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습니다. 다음으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발원문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낭독합니다. “8천만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시대적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길, 그래서 화해와 협력의 길이 열리길 발원합니다.……” 절을 시작하기 전, 입정 반드시 평화통일을 이루어오리다. 광복절 평화 기도, 300배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마음을 오롯이 집중하며 간절히 절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아내와 함께, 신용필 님 많은 사람 가운데 쉬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고 있는 신용철 님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지금 마음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늘 생각하며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조그만 원이 모여 나라의 희망이 되면 좋겠어요. 이 모든 행사를 준비한 분들이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오고 싶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쉼 없이 몸을 숙였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300배도 막바지에 다다릅니다. 어느덧 해가 떠올라 대지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예전 우리 할머니,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운 정성처럼 지금 사천왕사지에 염원이 깃들고 있습니다. 절을 마치니 몸은 땀에 젖고 손은 따스합니다. 모두 자신의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만세삼창’까지 외쳤습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넘칩니다. 북녘으로 뻗어 올린 오른팔처럼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평화통일’이 그곳까지 가 닿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행사가 끝났습니다. 회원들은 진행팀에서 보시한 찹쌀떡과 수박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랬습니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여럿이 모둠별로 둥글게 둘러앉아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나눕니다. “몇 년 만에 사천왕사지에 왔지만, 기도하니 마음이 좋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이어서 정진해 온 분들이 고맙습니다. 보통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기도하는 힘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참석하겠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할 때 정신이 맑게 깨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명상할 때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유독 잘 들렸습니다. 절을 할 때는 오늘,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습니다.” “작년 광복절에 오고 일 년 만에 다시 왔습니다. 온라인보다 이렇게 직접 사천왕사지에 있으니, 제가 오히려 기를 받는 것 같아 더 좋습니다. 여기를 꾸준히 지켜주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 기도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덕분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켰던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한 배 한 배 정성 들여 기도했습니다.” 김금수 님, 임분옥 님, 한영숙 님, 김은하 님 매번 겪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같았습니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몇 시간은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준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반들과 만나 인사하고 몇 시간 잘 쓰이다 보면 일상의 작은 괴로움은 온데간데없고 충만한 기운이 가득 차오릅니다. 광복절, 사천왕사지에서 함께 특별 정진으로 기도하니 행복이 몇 배가 됩니다. 평화 기도는 언제나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면 어느 날은 삼 백배, 오 백배, 천 배, 만 배가 됩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 엎드리며 행하는 실천은 절대로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토회 회원이든, 누구에게든, 혹은 사천왕사지에 스며들어 통일을 앞당기는 기운이 되든, 이 모든 염원과 실천은 그 무엇으로든 반드시 새겨지고 남을 것입니다. 글과 사진최상훈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통일 2026.10.09. 653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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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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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