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법륜스님

북미 해외순회강연

9월 12일(토) ~ 20일(일)
현지인 대상 영어통역 강연 및 교민 대상 한국어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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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을 여행하는 청년을 위한

2026 청년페스타

2026년 10월 10일 (토) ~ 11일 (일)
장소 :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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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

9월 23일(수) ~ 27(일)
4박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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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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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기도로 정면돌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마장을 이겨낸 것일까요? 2014년 천일결사 입재 후 단 하루도 기도를 빼먹지 않은 정준채 님. 법륜 스님께서 “으이구, 참 융통성도 없다, 하하.” 하시며 반어법으로 칭찬하셨을 이분은 아니나다를까 21차 천일결사 회향식에서 ‘매일기도상’을 받았습니다. 인경지부 부천지회 구월모둠 모둠장 정준채 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열 살에 겪은 교통사고, ‘완전한 수용’을 배우다 누구나 삶을 관통하는 결정적인 장면을 품고 살아갑니다. 저에게는 열 살에 겪은 교통사고가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고향 부여에서 서울 흑석동으로 이사와 채소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한창 바쁜 김장철이어서 배추와 무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아버지가 앞에서 끌고 저는 뒤에서 밀며 가고 있었습니다.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택시가 미끄러지며 리어카를 들이받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제 몸이 택시 밑에 반쯤 들어가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얘야, 괜찮냐?” 하고 묻기에 엉겁결에 “괜찮아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른쪽 허벅지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2015년 가을학기 부천법당 경전대학 담당 소임, 졸업식장에서 허벅지 뼈가 부러진 골절이었는데, 나이가 어리니 수술 대신 다리를 추에 매달아 허벅지 근육과 뼈를 강제로 늘려 맞추는 치료를 먼저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침대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온몸을 비틀어대는 바람에 다리를 매달았던 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의사들은 “이제 수술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고, 주위에서는 ‘어쩌면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결과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또렷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전신마취에서 무사히 깨어났고, 철심을 박은 채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통깁스를 하고 두 달간의 긴 병원 생활을 버텨냈습니다. 이 사건은 제 무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상황은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는 삶의 태도를 스스로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퇴원 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작용을 우려한 선생님들 때문에 체육 시간에 참가하지 못하고 교실에 홀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몸을 쓰는 일은 하기 어려우니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공부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운명처럼 깨달음의 장을 만났지만 중학교 시절, 아프리카에서 극심한 기아 때문에 불에 탄 시체까지 먹었다는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기호식품 대신 식량을 생산하면 기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세계가 지닌 모순을 실감했습니다. 1979년 10·26 사태를 겪으며 우리나라 역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대학 진학 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이어졌고, 1986년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인천으로 가 생산직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2017년 평화활동 탑골공원 앞 집회에서 노동조합 지원단체에서 활동할 무렵, 한 선배의 소개로 4박 5일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어떤 교육인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무작정 짐을 싸서 갔는데, 〈깨달음의 장〉이었습니다. 1992년, 저는 그렇게 멋모르고 제13차 수련생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수행을 일찍 접할 수 있었던 귀한 기회였지만, 당시에는 그저 ‘이 프로그램을 노동운동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그해 가을 결혼하고 1993년 가을학기에 제적당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쳤습니다. 이후 대우자동차 기획실에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대기업 직장인으로 살았습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과 회식으로 두 아이의 육아와 가사는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던 2007년, 두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아내는 정토회에서 봉사와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 깨달음의 장〉에서 법륜 스님과 수련했고, 언젠가는 정토회에서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아이들이 자라자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저는 아내의 활동을 지켜보며 정토회 활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회사일로 바빠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정년퇴직을 하면 정토회에서 봉사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right 그러다 시간이 흘러 회사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 문화가 정착되면서 저녁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침 집 근처에 부천법당이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정년퇴직 후 봉사할 곳이라 생각해 미리 정토회 사상과 이념을 배워두겠다는 마음으로 2014년 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한 지 3주 만에 천일결사 81차 입재식에 참석하면서 인생을 바꾸는 매일 기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정토회를 만나기 전에도 이런저런 고민이나 다른 사람과의 갈등은 있었지만 그것이 저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이고,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하면 된다는 삶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토회 수행을 시작하고 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직장에서 “왜 그렇게 화를 내며 말하세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목소리 높여 직장 후배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후배가 제 모습을 지적한 겁니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찾아왔습니다. 2021년 도량청정 봉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늘 ‘토론’이자 ‘강조’라고 생각했던 저의 큰 목소리가, 감정적인 ‘화’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차린 것입니다. 돌아보니, 회사의 절차를 잘 지키지 않고 요구하는 동료들에게 제가 얼마나 자주 언성을 높였는지 비로소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내가 옳다는 강한 집착이 주변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새벽 기도할 때 전날 제가 쏟아낸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낱낱이 들여다보며 참회의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언성을 높이지 않고 대화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오랜 업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았지만, 꾸준히 연습한 덕에 화를 내는 일이 줄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니 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원칙주의가 미움으로 번질 때, 기도로 정면돌파 이렇게 화내며 말하던 업식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한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도 방석과 염주를 챙겨 어디에서든 무조건 기도했습니다. 2024년 JTS 연탄지원 봉사 중에 한번은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보니 새벽 2시가 넘었습니다. 그대로 잠들면 새벽에 못 일어날 것 같아 옆방에 들어가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빈소에서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원칙을 중시하고 절차·규칙·계율은 꼭 지키려는 성향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게 한 힘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제 마음속 분별심을 키운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제 안의 시비 분별심을 가장 치열하게 시험했던 무대는 27년을 일한 직장이었습니다. 회사에는 저와 성향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너무나 다른 동료가 있었습니다. 제 기준에서 그는 철저히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 해가 갈수록 그 동료에 대한 거부감과 싫은 마음이 깊어졌고, 나중에는 미움으로 번졌습니다. 업무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예 말도 섞지 않고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 철저히 멀리했습니다. 2024년 봉축법요식 배식 봉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하지만 업무가 바뀌면서 그 동료와 공동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자 마음이 무척 불편해졌습니다. 일을 충실히 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저는 이 고통을 피하는 대신, 새벽마다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그 동료를 수행의 과제로 삼아 정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업식과 행동방식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20년 묵은 미움을 비우니, 평온이 찾아오다 끈질긴 정진 끝에 마침내 마음에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사적인 감정을 완전히 내려놓고, 그 동료와 제가 서로에게 필요한 역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덤덤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 기준을 꺾고 상대를 포용하자 관계는 거짓말처럼 원만해졌습니다. 이제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제가 먼저 가서 아무런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의논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20년 가까이 묵은 미움이 수행을 통해 완전히 사라진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2025년 봄 현장 불교대학 진행 봉사 이렇게 단단해진 수행력은 2023년 5월 말, 갑작스럽게 찾아온 퇴직의 순간에도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정년을 불과 1년 10개월 앞두고 희망퇴직을 권유받았고, 수락하지 않으면 후배 밑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사팀의 대우에 잠시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마음을 바꿨습니다. 처음에는 후배 밑에서 일하는 것쯤이야 수행자인 내가 감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계속 근무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작 제 상사가 될 후배가 난처한 상황에 놓일 것 같았습니다. 정년퇴직 후 정토회에서 온전히 봉사하려던 계획을 1년 10개월 앞당긴 것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했습니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과 사정이 있습니다 수행자들의 모임이니 정토회 활동은 마냥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저의 업식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수행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원칙주의’ 때문이었습니다. 수행 초기 단계에 있는 일반회원이나 발심행자는 실수를 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지만, 계위가 높고 소임이 큰 도반이 원칙과 절차, 규칙,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시비분별심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2026년 1월 부천지회 임진각 평화통일기도 예를 들어, 모둠원들의 의견을 기한 내에 취합해야 하는데 계위가 높은 도반이 제때 답을 주지 않아 매번 개별 연락을 해야 하거나 습관적으로 마감을 어기면 답답함을 넘어 그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누구나 부족한 부분과 사정이 있습니다.”라는 기도문으로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저마다 자기 업식이 있고 그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연습이었습니다. 내 안의 잣대를 내려놓으니 도반들을 향해 불쑥 솟구치던 시비심이 눈 녹듯 사라졌고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졌습니다. 12년을 매일매일 기도한 덕분에 지난 21차 천일결사 회향식에서 매일기도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주변에서도 “인상이 좀 달라진 것 같다. 훨씬 편안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물러섬 없이 가볍게, 잘 쓰이겠습니다 요즘 저는 꿈꾸던 대로 정토회 봉사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21차 천일결사 첫해에는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진행자로 쓰였고, 둘째 해에는 모둠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작년에는 백일법문 기간 동안 정토사회문화회관 출입 봉사와 정토불교대학 진행자로, 가을에는 정토불교대학 반담당으로 잘 쓰였습니다. 22차 천일결사가 시작된 지금은 구월모둠장과 인경복지 다문화담당 소임을 함께 맡고, 평화재단 연구생 과정에도 참가하며 봉사의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제 뜻대로 결정되지 않으면 마지못해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소극적으로 봉사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흐름을 아름다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기에 결정된 일에는 누구보다 기쁘게 예 하고 실행합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물러서는 마음 없이 가볍게 쓰이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저에게 아무런 소임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제가 잘할 수 있고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서라도’ 끝까지 봉사할 생각입니다. 70세까지 전법회원으로 당당하게 쓰이며 전법의 길을 이어가겠습니다. 2026년 구월모둠 천일결사 모둠활동 줍깅활동 중에 마지막으로 제가 지치지 않고 계속 수행하고 봉사하도록 이끌어준 선배 도반이자 법사님인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부가 같은 마음으로 한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요즘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겨우 열 살에,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정준채 님은 바위처럼 단단했습니다. “인생이 크게 바뀌는 큰 감동은 없지만 꾸준한 기도로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사는 이야기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담담히 풀어간 두 시간의 인터뷰는 시간이 짧다 느껴질 만큼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정준채 님은 기도하는 동안 별다른 마장이 없었노라 말했으나, ‘기도하는 삶’을 온전히 받아들였기에 마장의 속삭임에 마음을 내줄 틈조차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꾀 부리지 말고, 하기로 한 것은 그냥 하라는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도반님의 수행담이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글김옥자 희망리포터 편집박선희

부천지회 2026.09.16. 266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한글 한 땀, 바느질 한 땀의 되살림

지난 3년 동안 정토회 경주지회 황성 모둠은 매주 목요일마다 고려인 이웃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칠월 어느 날, 경주지회 4개 모둠원과 고려인들은 함께 모여 ‘되살림 바느질’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고 자원을 아껴서 지구환경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경주지회 정토 행자 22명은 여는 모임 후 이름표, 현수막, 바느질 도구, 자리 배치 등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려인 이웃들을 기다렸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이름표 모임 시간에 맞춰 고려인 14명이 되살림 바느질 ‘한 땀을 배우기 위해 경주시 한빛길 부근에 마련된 ‘고려인 사랑방’에 도착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마음을 가다듬고 명심문을 읽습니다. 다 같이 외우는 한마디는 방 안 공기를 새롭게 만듭니다. 세상 누구와도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그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 황성 모둠 강순자 님이 벽에 붙은 천과 작은 받침대에 써 놓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함께 읽으며 오늘의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한 땀의 바느질이 마음을 잇고 하나로 만듭니다. “산에 들에 꽃이 더 예쁘게 피고, 시냇물에 고기도 더 많이 살고, 하늘에 달님도 더 예쁘게 반짝였으면 좋겠습니다.” ‘되살림 바느질 한 땀으로’ 제목으로 시작된 글이 시 한 편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자연환경을 살리자는 취지이면서, 작은 천 조각도 이렇게 ‘꽃이 피고 고기가 살고 달님이 뜬 것처럼 수를 놓으면 예쁜 천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안내입니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을 담은 고운 그림 같은 실선이 천 안쪽에 숨어 있지 않고, 천 바깥에 자리하기 때문에 ‘보이는 수선’이라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으나 잘 실행하지 않는 ‘장주머니’ 쓰는 법도 함께 읽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장바구니’라고 부르며 쓰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드러운 천을 준비했습니다. “흙 묻으면 털어 쓰고, 물 묻으면 말려 쓰고, 가끔은 빨아 쓰고, 항상 갖고 다니고” 장주머니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이림 님 ‘되살림 바느질’ 진행자 이림 님은 장주머니 쓰는 법과 보이는 수선 직조 바느질 법을 알려 줍니다. 지구를 살리고 자원을 아끼는 실천 방법을 함께 숙지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도 눈도 나이를 먹는 연로한 분들에게 바느질 권하기를 망설였습니다. 2시간 남짓한 짧은 수업을 고려하여 직접 만든 장주머니를 준비했습니다. 바느질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여러 바느질 법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합니다. 쉽게 할 수 있도록 굵은 실을 준비했습니다. 옆에서 돕는 정토 행자들도 바늘귀가 작아서 실을 꿰기가 어렵습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실을 꿰고 바느질합니다. 파란 실과 분홍 실이 격자로 엮이고, 서투른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늘이 오가는 사이 마음은 손끝에 집중합니다. 구멍을 메우듯 감쪽같이 체크무늬로 된 사각 천 바탕이 탄생합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은 말보다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정토 행자들이 도와 한 땀 한 땀 장주머니를 꾸밉니다. 되살림 바느질을 함께 배우니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색이 다른 두 개의 실이 모여 색다른 체크무늬 천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각자 바느질 솜씨를 뽐내는 ‘오늘의 금손 선정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손 선정권을 가진 이림 님이 출품한 모든 작품이 훌륭하다.라며 장주머니마다 감자와 양파를 담았습니다.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두근두근 오늘의 금손이 선정되는 순간 완성된 장주머니에 동글동글 감자를 담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둘러앉아 짧게 한 줄 소감을 나눴습니다. 고려인 김마야 님의 얘기입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선한 마음으로 대해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은 평소 일하느라 사랑방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허조야 님입니다. “오늘은 일을 쉬고 나왔어요.” 한국어를 제일 잘해서 고려인 한글 수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최타마라 님입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세 명의 소감에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고려인 이웃들을 처음 만난 대구경북지부 담당 향존 법사님은 환한 웃음이 참 좋다. 앞으로 가끔 만나러 오겠다.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고려인들과 정토 회원들이 이면지에 손수 ‘좋은 벗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좋·은·벗·들’ 네 글자처럼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이웃이 되는 중입니다. 고려인들과 함께하는 좋은 이웃의 날, 단체 사진 수업이 끝난 후, 경주지회 평화 실천 꼭지 이승헌 님이 좋은 벗들에서 지원한 토마토를 고려인 이웃 한 분 한 분에게 한 박스씩 건네며 소감을 전합니다. “경주지회 활동에서 봤던 도반들이라 낯이 익어 이번 계기로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바느질을 통해 되살림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고, 고려인이 많은 다른 지역에도 이런 행사가 계획되어 해보면 좋겠습니다.” 토마토를 전해 주는 이승헌 님 이어 다른 봉사자들의 소감 나누기 시간에도 웃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 제일 예쁘다.” 누군가는 이 한마디 말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맞습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 참여했다는 어떤 봉사자는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과 만난 것처럼 순수하게 소통하는 그 자체가 새롭고 신선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양말을 꿰매 신는다는 도반은 오늘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라며 좋아했고, 아들의 구멍 난 양말 이야기로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지역 실천을 이어오던 도반들이 ‘손끝 재주를 세상에 꺼내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되살림 바느질 자리가 기획 되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더 남습니다. 바느질 공방을 성심성의껏 이끈 이림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검소하게 살아왔을 고려인 분들과 버려지는 옷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좋은 기회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눔 받은 천으로 장주머니를 만들고 직조 수선법을 가르쳤습니다. 고려인 분들이 바느질하며 작은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활동이 소비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공유와 회복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자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기획한 황성 모둠장 공영순 님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지회 재편으로 고려인 지원사업 지속이 불투명해지자,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되살림 바느질을 기획해 좋은 벗들과 연합하게 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수를 놓는 모습이 시골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완성된 장바구니에 감자를 담아드릴 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국경과 세대를 넘어 마음이 이어지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고려인 지원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부가 이 사람들 조상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국 땅에서 고생한 그 사람들이 이제는 선조들의 고향에서 따뜻한 여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한글이든 바느질이든,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었음을 다시 느낍니다. 3년을 이어온 목요일도, 오늘처럼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인 하루도 다르지 않습니다. 꾸준함이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매주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 위에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질 때 봉사는 훨씬 더 깊은 울림이 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날이 가까워지고 또 다정한 이웃이 되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미향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통일 2026.08.21. 1,452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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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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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