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출가·열반재일

8일 용맹정진

출가재일법회 : 2026년 3월 26일(목)
열반재일법회 : 2026년 4월 2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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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깨어있기

2026년 1차 백일명상

일정 : 2026년 4월 6일(월) ~ 6월 21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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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를 통해 나를 만나는 시간

2026년 1차 백일
1080배정진

일정 : 2026년 4월 6일(월) ~ 6월 21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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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 오프라인

월 명상수련

온라인 : 4월 3일(금) ~ 5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4월 15일(수) ~ 19일(일) /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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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깨달음의 장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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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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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그 아이는 혼자서 걸어 나갔다

지난 12월 17일 수행법회 후 열린 송년회에서 김성희 님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팠던 딸이 최근 ‘독립’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아이를 어떻게 키워냈을까. 그 지난한 시간 속에서 어떤 수행이 있었을까. 며칠 뒤, 김성희 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2026년 1월 정토사회문화회관 봉사 중인 김성희 님 제 나이 스물여덟에 얻은 둘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살기 힘들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의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런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댁의 참혹하고 냉담한 반응이 더욱 힘들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말 그대로 지옥 같았습니다. 친정 엄마는 평소 불심이 신실하고 자식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딸이 생사마저 불확실한 성치 않은 아이를 안고 시름에 젖어 지내자, 같이 절에 가보자고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아이를 들쳐업고 한 선원을 찾아간 것이 불교에 입문한 계기입니다. 당시 저의 사정을 듣고 선원장이던 스님이 아이의 명을 아는 듯이 명심문을 주었는데, 나중에는 이해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현실감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한 달에 두 번씩 열리는 법회에는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그때마다 웬 눈물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눈물샘이 터진 듯 엉엉 울기 일쑤였습니다. 실컷 울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잠시나마 기운을 차리고 아이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천길 낭떠러지 앞에 선 듯 힘든 생활이 되풀이되곤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죽는 방법은 없을까?’를 수없이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2025년 11월 청년페스타 기간 중 모둠 활동 그렇게 6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아이는 결국 짧은 생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울며 다니던 선원의 스님 법문과 저에게는 정신과 의사와 다름없는 친정 엄마 덕분에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살았습니다. 어린아이를 가슴에 묻고 다시는 아이를 갖지 말고 첫째만 잘 키워야겠다 마음먹었지만, 남편이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임신을 했는데 트라우마 때문인지 열 달 내내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불안감이 태아에게 전해졌는지 아이는 태어나서 잘 울지도 않고, 밥도 잘 먹지 않으며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주변에서 유명한 한의원이 있다고 해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이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상담을 받아보니 아이가 말할 힘이 없을 정도로 뼈에 가죽만 붙은 상태라며 몸을 보하는 음식을 끊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물도 삼키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하루 종일 끼고 앉아, 먹이고 재우며 돌보았습니다. 왜 저에게 이리도 어려운 자식을 주는지 신이 원망스럽고, 정말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길 바라는 건 언감생심 사치였고, 초중고 12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잘 다녀와라. 넌 잘할 수 있다” 하고 안아주며 학교를 보냈지만 아이는 언제나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우리 공부 그만할까?”라고 물으면 아이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공부도 하지 않을뿐더러 해도 잘되지 않아서인지 성적은 항상 하위권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는 학창 시절 내내 스스로 일어나 한 번도 깨워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 가슴앓이를 하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래도 먼저 간 아이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괴롭고 지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2025년 인도성지순례 OT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거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나 한 끼를 먹고, 저녁에 한 끼, 이렇게 하루 두 번 밥을 먹고,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 걷고 돌아오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하루 종일 햇빛을 보지 않고 세상과 단절된 채 생활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은 그저 앞이 캄캄할 만큼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나쁜 말이나 생각이 없어서인지 얼굴이 더없이 해맑았습니다. 아이를 언제까지 뒷바라지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골몰해 있을 때, 법륜 스님의 해외 강연 중 오사카에서 열린 법문에서 저의 아이와 비슷한 아이를 둔 엄마가 이런 아이를 언제까지 보살펴야 하는지 답답하다며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부모가 형편이 되면 아이가 성인이 되었더라도 아픈데 어쩌겠느냐, 그냥 밥을 좀 먹여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친구도 사귀지 않고 사회와 단절된 채 지내며 밤낮이 바뀐 생활까지 이어지자, 우울증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걱정 속에서 아이가 원할 때는 심리상담 치료도 병행했습니다. 그렇게 지난한 세월을 보내는 사이, 아이는 자라 지방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렇다고 여느 아이들처럼 취업을 요구하거나 “아침에 일어나라”는 잔소리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2025년 수요법회 아이는 어릴 때부터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고, 경제 활동도 거의 하지 않으며 옷이나 가방, 신발 등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마치 수도승 같았습니다. 아이에게는 세속적인 욕심이 없었습니다. 자식이 만 20세가 되면 독립시키라는 스님 말씀도 제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그저 내가 사는 날까지 함께 살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가볍게 살아가려 했습니다.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를 통해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것도 알았으니, 마무리도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법륜 스님의 인도 성지순례 영상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영상에서 “내가 만든 울타리인데 뭘 그렇게 달라고 하느냐. 먼저 줘보라”는 말씀을 들으며 저는 대성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과 함께 인도 성지순례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우연히 친구를 따라간 명상센터에서 10일간 명상을 마친 뒤, 이를 더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씩 명상을 이어 왔습니다. 그렇게 700여 일이 흐를 무렵,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고 1차 만일결사 105차 천일결사에 입재했습니다.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이어가면서 감정의 색깔이 점점 옅어지는 자신을 느꼈습니다. 2025년 모둠원들과 JTS활동 줄곧 절에 다니기는 했지만 108배는커녕 10배 이상 절을 해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무릎에 물이 차고 붓기도 해서 그만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한 도반이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도반이 법륜 스님께 발목 십자 인대가 끊어져 절을 하기가 힘들다고 질문하자, 스님이 걸어보라고 하더랍니다. 그 도반이 걸음을 걷자 “그럼 절을 할 수 있겠다”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는 ‘그래 무릎이 망가지더라도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덤벼들었습니다. 처음에는 108배가 너무 힘들어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절반씩 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는 한꺼번에 해보았습니다. 70배가 넘어갈 때쯤이면 정말 하기 싫다는 마음이 올라오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흠뻑 젖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매일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다리에 근력이 붙어 튼튼해졌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절을 합니다.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듯, 몸 스스로 변화를 통해 가르쳐주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부터가 수행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명상 한 시간을 하고 이어 108배 정진을 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계속하다 보니 경계가 닥쳐도 그저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예전보다 마음을 빨리 돌릴 수 있고, 그만큼 화도 줄어들었습니다. 아이 역시 한결 비워진 마음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2026년 인도성지순례 김성희 님 지난 12월 중순 2차 만일결사 1차 천일결사 회향식을 앞둔 어느 날, 도무지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이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자기 계획을 말하면서 필요한 서류도 이미 다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가족뿐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습니다. 딸은 21차 천일결사 회향식을 마친 다음 날, 미국을 경유해 캐나다 캘거리에 안착했습니다. 저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며 숱한 일을 겪는 사이 어느덧 육십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간의 수행 덕분인지 이제는 걱정이나 염려 같은 감정이 예전처럼 크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는 마음에 오래 머물지 않고, “아 그렇구나” 하며 지켜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순탄치 않았던 삶이 오히려 디딤돌이 되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나 우연은 없다고 이제는 분명히 느낍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부처님의 연기법을 믿습니다. 정토회와 스님과의 인연 속에서 108배 정진과 법문은 저를 바꾸는 큰 힘이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저는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자’는 다짐을 명심문으로 정하고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도 꾸준히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김성희 편집이현숙

양천지회 2026.04.01. 209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작은 진료실, 큰 수행_JTS 안산다문화센터 의료인정토회 무료 진료

화려한 진료 장비도, 번듯한 간판도 없습니다. 높은 건물들 사이, 코팅된 안내문 한 장이 전부인 작은 공간. 그러나 매주 일요일이면 여러 사정으로 치료가 막막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고 이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몸의 통증을 넘어 마음까지 데우는 진료가 시작됩니다.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서로의 삶을 어루만지며 수행의 길로 삼은 이들. 냉골 같은 진료실을 따뜻한 수행 도량으로 바꾸는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의 무료 진료 현장을 소개합니다. 냉골 진료실에서 시작된 하루 매주 일요일이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JTS 안산다문화센터로 모여듭니다. 진료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진행되지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접수 창구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진료전부터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 제가 무료 진료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센터를 찾은 1월 18일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습니다. 의료인정토회 봉사자들은 12시가 되기 전부터 도착해 진료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막 켜 둔 보일러 탓에 진료실 바닥은 말 그대로 냉골이었습니다. 맨발로 오가며 준비하기에는 너무 추워 저는 두꺼운 외투를 벗을 수도 없었습니다. 발바닥이 시려 신발장에 놓인 실내화를 신고서야 잠시 안도했습니다. 그때 맨발로 움직이고 있는 한 봉사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신발장에 실내화 있어요. 가져다 드릴까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실내화가 부족해서 제가 신으면 환자분들이 못 신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실내화를 먼저 신었다고 안도했던 제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 진료 준비가 끝나자 봉사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함께할 봉사자들과 마주 서서 명심문을 외우고 삼배를 올립니다. “환자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잘 쓰이겠습니다. 내 마음 잘 알아차리겠습니다” 명심문 한 구절 한 구절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진료시작전 명심문 외우고 삼배하기 이날은 총 11명의 의료인정토회 회원이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이 왕복 네 시간가량 걸리는 먼 지역에서 찾아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진료지만, 정작 봉사자들 가운에 안산 주민은 없습니다. 양·한방 협진,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다 환자들이 내원하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료가 진행됩니다. 먼저 양방 의사의 문진과 진료를 받고, 이어 옆자리로 옮겨 한방 진료를 받습니다. 환자들의 증상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고혈압과 당뇨, 무릎과 어깨 통증 등입니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몸의 아픔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양방에서는 정성스럽게 약물 주사를 놓고, 한방에서는 침 치료를 이어갑니다. 작은 바늘이 피부에 닿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지만, 환자들은 “전혀 아프지 않다”고 말합니다. 침을 뽑고 나면 올라가지 않던 팔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기도 하고, 통증이 사라진 듯 편안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양·한방 협진이 이루어지니 이보다 더 든든한 진료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몸의 증상뿐 아니라 마음을 함께 살피는 진료가 이어지는 곳. 그래서 어느새 ‘의료 맛집’이라 불릴 만큼 신뢰가 쌓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봉사가 준 자유, 윤정환 팀장의 이야기 여기는 어때요? 지난번보다 좀 나아졌어요? 또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연신 미소를 지으며 환자를 살피는 한의사는 3년째 안산다문화센터 진료 팀장 소임을 맡아 봉사자들을 이끌고 있는 윤정환 님입니다. 윤정환 님은 2025년 6월 과감히 한의원 문을 닫고 인도네시아로 의료봉사를 떠났고, 이어 8월에는 필리핀으로도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자녀에 대한 바람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 ‘모두 내 마음이 만들어낸 문제였구나’ 알아차리게 되었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유로움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호기롭게 한의원을 휴업했던 만큼,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있었습니다. 연말에 이를 감당하느라 좀 힘들기도 했지만, 봉사를 떠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봉사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고 자유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에 2026년 여름 필리핀 의료봉사도 신청해 두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온 환자들 윤정환 님뿐 아니라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은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내원한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하고, 보듬고, 살핍니다. 환자들은 번역기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전합니다.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옆에 있던 다른 환자가 통역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팔과 다리가 되고 눈이 되어주는 따뜻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는 세계의 공통어라 할 수있는‘바디랭귀지’로 마음을 전하려 애씁니다. 정성을 다해 진료하다 보니 이곳을 거쳐 간 많은 환자들이 완쾌되거나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인 파벨 님은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오게 되었고, 의료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무리하게 일한 탓인지 예상치못한 구안와사가 발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감기지 않고 눈물이 계속 흐르며, 입이 비뚤어지고 얼굴 한쪽은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있을 때, 이전부터 센터를 이용하던 친구의 소개로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후 매주 주말마다 한 시간 거리를 오가며 꾸준히 내원하고 있고, 치료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비뚤어졌던 얼굴이 제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파벨님은 구안와사이니 당연히 얼굴에만 침을 놓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다리와 배, 팔 등에도 침 치료를 받으며 한국 한방치료의 원리와 신비함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치료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컸지만, 이제는 거의 완쾌에 가까워졌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파벨 님의 미소가 누구보다 밝아 보였습니다. 봉사 현장의 또 다른 수행 다양한 환자들이 모이다 보니,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센터를 찾는 것은 아닙니다. 단골 환자 가운데에는 매주 치료를 받는 일이 익숙해져 의료진을 지나치게 편안하게 대하는 바람에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정성껏 조제해 드린 약 봉투를 뜯어 종류별로 다시 담아 달라고 요구하는 분도 있고, 자신만의 편의를 위해 센터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봉사자들은 만약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분들의 행동을 얼마나 시비했을까,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분별심을 일으켰을까 돌아본다고 합니다. 정토회원으로 배우고 수행해 온 시간이 있기에, 원망하기보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이분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고 설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게 현장의 모든 상황이 또 하나의 수행이 됩니다. 결국 나를 위한 봉사 의료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많고, 주·야간이 바뀌는 근무 형태로 생활리듬이 일정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하루쯤은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할 텐데, 어떤 의미가 있기에 자원봉사에 참여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제 질문에 봉사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소득은, 환자들을 도우러 왔다가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제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습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도반들과 친밀하면서도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고, 호전되는 환자들을 보며 세상에 잘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자녀들에게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떳떳합니다. 그러니 결국 모두가 ‘나를 위한 봉사’였음을 알게 됩니다.” 모두 귀한 직업이지만,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잘 쓰일 수 있는 이 봉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귀한 직업을 가졌구나’ 새삼 놀라게 되었다는 나누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도우러 온 봉사자들이 오히려 치유 받고,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곳. 그 선순환의 한가운데에서 ‘잘 쓰이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의 취재였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데우는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육혜련 편집허인영

복지 2026.03.20. 1,389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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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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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