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동지기도

동지법회 : 2025년 12월 22일(월) 오전 10시 생방송
기도접수 : 2025년 11월 19일(수) ~ 12월 24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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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이 없는것이 행복

법륜스님 금강경강의

2025.11.27(목) ~ 2026.1.29(목)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 저녁 7시 30분 (총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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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고, 적게먹고, 사랑하는법

예불문, 소심경,법성게

2025. 11. 25(화) ~ 2026. 1. 20(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 저녁 7시 30분 (총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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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 속 절캉스

일정 : 25년 11월 11일(화) ~ 12월 18일(목)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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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해외강연

법륜스님 즉문즉설

일정 : 2025년 12월 13일(토) 까지
강연국가 : 북미, 오세아니아, 유럽,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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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5 행복한 대화

전국 11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오프라인 강연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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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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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비야 와라, 바람아 불어라, 파도야 쳐라!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이 정해지면 이름, 연락처, 추천 사유가 전달됩니다. 오늘 주인공은 추천 사유가 없었습니다. 수성지회 이.임.숙. 이름만 대면 아 저절로 이해되나 봅니다. 이임숙 님은 ‘지금까지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이 나눠준 이야기 값을 이번에 내야지’하는 마음에 인터뷰에 응했다 합니다. 이임숙 님의 이야기 값이 얼마인지 궁금합니다. 바로 만나볼게요 남향으로 지을 거 뭐 있노. 그냥 서향으로 짓자 아버지는 합리적이고, 일머리가 있고, 흥이 많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성향이 잘 맞았고 늘 아버지 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 생각에 꽂히면 이유 없이 고집했습니다. 제가 스무 한두 살 때, 아버지가 한옥을 양옥으로 새로 지었습니다. 옛집은 서향이라 여름이면 햇볕이 엄청 뜨거웠고, 겨울엔 몹시 추웠습니다. 온 가족이 새집을 남향으로 짓기 원했는데 어머니는 반대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그냥, 처음 본채가 앉은 대로 지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집은 어머니 뜻대로 서향으로 지었습니다. 농사일이나 다른 일에서 어머니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바꾸기는 힘들고, 아버지가 맞추는 게 더 쉽다는 걸 알았던지 대체로 아버지는 어머니 뜻에 맞추었습니다. 뭔가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으면 “그래, 그럴 만하다” 할 텐데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고집하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친정에 들를 때면 “엄마는 아빠 말 좀 잘 들어라. 그러면 집안 시끄러울 일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주인공 이임숙 님 엄마를 닮은 둘째 딸 저는 아들, 딸, 딸, 아들을 차례대로 낳았습니다. 첫째 키울 때 육아 서적을 많이 봤습니다. 첫째는 말도 빠르고 책에 나온 대로 밤중 수유, 이유식도 착착 수월하게 했습니다. 첫째를 기준으로 보니 둘째 딸은 늦되었습니다. 관심 있는 곳에만 흥미를 보였고 충동적인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떼쓰는 아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부모를 이해 못 했는데, 둘째를 키우며 저 또한 아이 양육을 잘 못 하는 부모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얘는 왜 이러지?, 이해가 안 되네?”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계획적인 저와 달리 둘째 딸은 즉흥적이었고 딸에게서 제 어머니와 닮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아도모례원에서 두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서 저는 둘째를 바꾸려고 애썼고 자주 혼냈습니다. 늘 노력해야만 하는 둘째와의 관계에 힘이 들었고, 노력하지 않아도 잘 맞는 첫째와 차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두 아이를 대하는 제 마음이 다르다는 게 괴로웠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는 다섯 남매 중 유독 둘째 언니에게만 모질게 대했습니다. ‘엄마는 언니한테 왜 저렇게 못되게 하노?, 엄마가 저러면 안 되는 거 아이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게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발 좀 저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어머니를 싫어했는데 제가 똑같이 한다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쩌라고? 불교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불교 문화에 익숙했습니다. 어머니는 초파일에 등을 켰고 절에 갔습니다. 도서관에서 불교 관련 책을 빌려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좋은 말 같았습니다. ‘좋은 말인데,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지?’라며 의문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세 권짜리 법륜스님 즉문즉설 책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보던 불교책과 달리 가족 갈등, 직장 문제 등 일상 이야기만 하는데 ‘이 안에 뭔가 있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법륜스님 책을 찾아 읽으면서 ‘기도’ 책을 보았고 ‘이 스님을 찾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정토회를 찾았습니다. 반나절 템플스테이 준비 주파수가 다른 송신기와 수신기 2013년 불교대학에 입학했고, 법륜스님이 대구법당 불교대학 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질문했습니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는 점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절실해 ‘스님이 뭐를 하라캐도 한다’라는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스님은 “아이에게 와락 화를 쏟아내면 천 배를 하라, 천 배를 서른 번 하면 괜찮아질 거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엄청 반가웠습니다. ‘서른 번만 하면 되는구나. 못할 게 뭐 있노’ “제가 어리석어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참회합니다”를 명심문으로 기도를 시작한 삼 일째,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그래, 엄마도 나랑 같았겠구나. 엄마도 몰라서, 내가 안 되듯이 엄마도 정말 안 돼서 그랬겠구나, 엄마는 나처럼 정토 불교대학을 다니지도 않았고, 불법을 공부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더 안 되지’라고 참회했습니다. 친정에 들렀을 때, 미처 다 하지 못한 천 배를 시간에 쫓기며 정신없이 하는데 어머니가 “고춧가루는 있나?, 마늘 줄까?” 하며 계속 물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는 말에 대꾸를 안 하고 계속 절을 하는데 갑자기 “엄마는 늘 이렇게 사랑을 주는데 내가 몰랐구나,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내가 받지 못했구나.”라고 확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늘 사랑을 주고 있었는데, 저는 ‘이런 게 사랑이야’ 하며 제 방식을 따로 정해놓고 있어 어머니의 사랑을 몰랐음을 깨닫자 참회의 눈물이 정말 많이 났습니다. 늘 “이것 좀 하고, 저것 좀 하지 마” 이러던 제가 어머니의 방식에 “그래요, 그래”하고 조금 편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천 배를 백일 간 쭉 했습니다. ‘스님이 서른 번 하라 했는데 나는 백번이나 했다’ 싶던 어느 날, ‘이것도 내 마음대로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를 왈칵 내쏟으면, 참회를 하고 천 배를 하라고 했는데 저는 그냥 제 마음대로 날을 정해 천 배를 백일 동안 했습니다. 늘 제 식대로, 제 뜻대로 하면서 그런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 동북아 역사기행 올 게 왔구나. 기꺼이 받는다 둘째가 고등학교 입학 후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고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6년 이상 정진해왔고 평소 300배, 500배 정진을 늘 해서 아이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입장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상담 다니고, 매일 편지를 써주며 ‘너를 이해한다.’라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정진하지 않았다면 화를 참으며 많이 괴로웠겠지만 ‘이제 내가 과보를 받는구나, 기꺼이 받아야지’하는 마음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 기준으로 판단하고 맞다틀리다, 좋다싫다가 많았는데 모든 걸 제가 일으켰다는 걸 수행으로 체험하니 모든 걸 문제 삼을 바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정토회 다니나 안 다니나 비슷하다고 하지만 둘째 딸은 제가 정토회 다니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제가 많이 달라졌고 딸에게 맞추려 하는 걸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숙일 이유가 있어 숙였구나 정토회 활동에 온 힘을 쏟아부을 때 ‘나눔의 장’으로 며칠씩 집을 비우고, 들어오자마자 명상한다고 방에 들어가 버리고, 아침밥을 안 차리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화내는 상황에서 그 순간을 빨리 넘기고 마무리 짓기 위해 “미안하다”라고 했고, 내일 또 나가야 하니 오늘 숙였습니다. 세 번 연달아 남편 마음을 불편하게 한 날이었습니다. 세면대가 막힌 걸 남편이 발견했습니다. 꿀꺽꿀꺽 삼키고 참았던 남편의 화가 폭발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봐주고 참았던 남편 마음을 확 느꼈습니다. 예전엔 숙이고 미안한 마음이 100중 80이었다면 그날은 100중 100, 어떤 이유 없이 온전히 숙이는 마음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경험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지적할 때, 받아들이기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탁 날아오는 공의 속도만큼 제가 확 쳐냈습니다. 지금은 야구 글로브로 착 받아내는 느낌이 들 때 기쁩니다. 행복시민들과 환경 캠페인 소임만큼 마음을 낸다 남산법당 개원할 때 부총무를 했습니다. 처음 만드는 법당이라 활동가가 없었습니다. 대구법당에 입학한 불교대학 학생 중 남산법당과 가까운 곳에 사는 학생을 남산법당으로 옮겨 불교대학을 진행하고 회계 업무, 실천활동, 수행법회를 모두 했습니다. 할 사람이 없으니 다 했습니다.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7살 때였는데 소임이 크니 딴생각이 없었습니다. ‘내가 할까, 말까’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만큼 해야 하니 이만큼 마음이 나서 했습니다. 통일특별위원회 활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행복학교를 개척하며 구미, 포항, 경주, 울진에서 강연이든 홍보든 소임만큼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했습니다. 모둠장을 하면 딱 모둠장만큼 했습니다. 온 마음을 내어서 하는 일도 많지만, 소임 덕분에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해보면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알아가는 기쁨이 있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발걸음이 내일의 발걸음을 부르는구나를 체험하면서 ‘소임이 복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남산법당에서 입재식 준비 불교대학을 다닐 때 비야 와라, 바람아 불어라, 파도야 쳐라라는 법문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비가 안 오고, 바람이 안 불고, 파도가 없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방향과 길을 찾았으니 가기만 하면 된다는 든든한 마음입니다. 천 배를 서른 번도 아니고 백 번이나 했다는 주인공 이야기를 듣고 ‘헉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봉사 일을 할 때도 슬렁슬렁 ‘하기만 하면 되지’라는 게 요즘 제 마음입니다. 온 마음을 내어 하지는 못하지만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해볼까 합니다. 글과 편집곽도영

수성지회 2025.11.19. 1,395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그대가 있어 우리가 존재합니다_2025년 가을 애광원 나들이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더니 가을비가 연일 멈추지 않고 내렸습니다. 산과 들의 나무와 곡식이 노랗게 또는 붉으락푸르락 물들어 가다 저마다 놀란 듯 멈추었습니다. 그러한 날씨가 애광원 생활인이 법륜스님과 나들이하는 날은 다행스럽게도 맑게 개어 덥지도 쌀쌀하지도 않아 움직이기에는 적당해서 좋은 날이었습니다. 사전 답사부터 꼼꼼히 JTS 봉사자는 이번 애광원 나들이에 동행하기 위해 8월부터 준비해 왔습니다. 9월 초에 첫 온라인 회의를 시작으로 9월 12일에 사전 답사를 나갔습니다. 그 뒤 10월 14일에는 11명의 봉사자와 함께 거듭 장소를 확인하고 지형을 살펴보며 동선을 확인했습니다. 사전 답사를 네 번 했습니다. 화엄사 사전 답사 천은사 사전 답사 애광원과 JTS와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남해안 태풍으로 인해 애광원도 피해가 컸습니다. JTS에서 생활용품을 비롯해 여러 물품를 지원했습니다. 무엇을 더 도와주었으면 좋은지 법륜 스님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맞잡은 손이 생활인들의 바깥나들이가 되었습니다. 2019년 가을에는 코로나로 인해 잠시 쉬었다가 2023년부터 애광원 생활인들은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 나들이를 갑니다. 오늘은 경남지부 거제지회에서 생활인 짝지 봉사자로 30명, 진행 요원 15명이 모자이크 붓다의 마음을 내었습니다. 애광원에서는 경증 장애인 30명과 임직원 선생님 10명이 가을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섬진강 따라 전남 구례 화엄사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섬진강 따라 순풍에 돛단배처럼 가고 있습니다. 기나긴 섬진강이 어느 순간 바다같이 넓게 펼쳐지는 광경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봉사자들은 애광원 생활인들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수신기를 착용하고 생활인 짝지 이름을 확인합니다. 마음은 안전띠로 단단히 조여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봉사자들은 화엄사 입구에서 애광원 생활인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차분합니다. 화엄사에서 나온 차량 안내자가 한 곳을 응시하며 버스를 기다립니다. 화엄사 범정 스님과 직원 한 분도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마중나왔습니다. 기다림의 시선 한참 뒤 법륜 스님이 탄 작은 차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항상 스님과 동행하는 ‘법륜 스님의 하루’팀도 함께입니다. 모두 합장으로 반갑게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이어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오늘 하루 수고해 주기를 부탁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법륜 스님 도착 후, 말씀 한 마디 오늘의 모자이크 붓다 조금 지나 연이어 애광원 생활인을 태운 대형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이제 봉사자들은 만반의 마음으로 준비해 온 온기를 발휘할 때입니다. 이번 30명의 봉사자는 여섯 명이 한 조로 5개 조로 나누었습니다. 색색의 예쁜 삼각 깃발 다섯 개가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 줄 것입니다. 5개 조, 오색 깃발 생활인 한 명씩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오늘의 짝지를 맞이하는 봉사자들이 환한 미소로 손을 잡았으며, 버스의 발판을 잘 디디며 내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생활인의 얼굴에도 반가움의 미소가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가을 나들이가 애광원 생활인과 경남지부 거제지회 봉사자, 그리고 법륜 스님이 함께 만나 시작의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법륜스님은 화엄사에 대해 생활인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짧고 간결하게 설명했습니다. 화엄이란 꽃으로 장엄해 놓았다는 뜻인데, 부처님의 말씀을 꽃에 비유해서 그 꽃이 어우러진 화단처럼 담겨 있는 말씀이 경전이며 그것이 화엄경이 되었습니다. 그 사상을 실현하고자 지은 절이 화엄사입니다. 생활인과 봉사자는 스님의 말씀을 새기며 일주문에 들어섰습니다. 오르막의 길에는 크지만 수줍게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 눈을 가린 모습, 귀를 가린 모습으로 잘 다듬어 만든 동자승이 그들을 반깁니다. “난 안 볼란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화엄사는 1500년 전에 신라 진흥왕 때 지어졌으며 가야와 신라의 통합으로 신라의 땅이 되었습니다. 목조 건물이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이후 다시 복원하였고, 절을 대표하는 건물이 각황전입니다. 규모가 큰 각황전을 지은 유래에 대해 어떤 이가 시주하는 이야기를 법륜 스님이 재미있게 해주셨습니다. 산에서 내려가면서 만난 첫 번째 사람이 거지였고, 그 거지가 죽어서 청나라의 황제로 태어났는데, 꿈속에 나타난 스님의 간청으로 시주하여 이 절을 지었다는 설화입니다. 깨달을 각자에 황제 황자를 합쳐 황제의 전각이라 하여 각황전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그 각황전 앞에서 단체와 조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각황전 앞에서 단체 사진 꽃으로 장엄한 사찰, 가을엔 국화 흔들리지 않을 여인의 서원처럼, 작은 돌 하나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생활인들에게 올라가고 싶은지 스님이 물었습니다. 모두가 씩씩하게 가겠다고 외칩니다. 해가 쨍쨍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한 생활인이 작은 돌탑을 보고 언덕의 돌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어떤 소원을 빌며 탑 위에 돌을 올렸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정성으로 올린 마음의 돌 하나는 비바람이 쳐도 내려오지 않을 것입니다. 가파른 계단을 씩씩하게 올라갑니다. 작디작은 돌탑 위에 살포시 돌 하나 사사자 삼층석탑 머리로 받치고 있는 이형 탑 앞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본 풍경은 네 마리 사자가 삼 층을 떠받치고 있는 석탑이 허공에 치솟듯 서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 곳에는 가운데에 한 스님이 머리로 탑을 받치며 이고 있는 형상을 한 이형 탑이 있습니다. 스님은 애광원 생활인 덕분에 30년 만에 다시 탑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힘들게 올라왔으니,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려갈 때가 더 조심스러워 봉사자들이 팔과 손을 붙들고 천천히 한 계단씩 내려갔습니다. 5조 모였어요. 감로수 한 잔 절에서 나오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식당으로 이동해 맛있는 점심식사도 마쳤습니다. 담소를 나눈 뒤 버스를 타고 지리산 역사문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연못이 있어 분수가 포물선을 그리며 뿜어져 나왔습니다. 멀리 풍경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리산 역사문화관 연못 마음은 비우고 귀를 열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역사관을 향해 걸어가는데, 한 생활인 짝지가 오는 내내 어떤 사연을 반복해 말했지만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분명한 어투로 또박또박 말하기에는 어려운 친구였나 봅니다. 역사관에 도착하고서야 이해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짝지가 애광원에서는 밥을 먹고나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규칙적인 일과가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지금 나들이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원래 하던 것을 바꾸는 일은 생활인들에게 엄청나게 큰 사건과도 같습니다. 그 순수한 고백을 들으며, 오늘 포기한 커피마시는 일과가 가을 나들이로 충분히 만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습니다. 이해받은 생활인은 일정에 따르며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자신 삶의 한 부분을 봉사자에게 공유하고자 했던 그 마음이 내내 따뜻함으로 머물렀습니다. 지리산 역사문화관을 둘러보며 구례와 지리산 자락 밑에서 삶을 일구어온 사람들의 생활상을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각종 생활 도구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관람 후 밖에서 놀이 한마당이 열렸습니다. 딱지치기, 공기놀이, 퍼즐 맞추기, 윷놀이, 투호 던지기, 굴렁쇠 등을 체험하느라 생활인들은 분주했습니다. 어떤 이는 트위스트 춤을 한바탕 추었습니다. 딱지를 넘겨요. 딱 쳐서 딱지이지요. 굴렁쇠가 굴러가야 하는데. 하나, 둘, 셋, 제기를 찼습니다. 우리나라 지도쯤이야 윷이야 걸이 나와 버렸네. 내가 들어가나, 네가 들어가나, 던져 봅니다. 저만 보면 손을 잡고 싶어 합니다. 한 생활인은 눈에 차고 마음에 드는지 짝지 봉사자가 아닌 다른 봉사자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 맞잡은 손에서 순수한 인정이 스며듭니다. “나만 보면 손을 꼭 잡자고 해요” “나도 보면 매번 손을 잡자고 하는데요?” 생활인들은 봉사자끼리 자기가 각자 찜 당했다고 착각할 정도로 사랑을 많이 줍니다. 다들 자기들 손만 잡고 싶어 찾은 건 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찜 당했어요. 우리 짝지입니다. 손에 손잡고 그 어떤 벽도 없답니다. 놀이마당을 끝내고 다음 일정인 천은사로 향하기 위해 다시 봉사자와 생활인은 버스에 올랐습니다. 법륜 스님은 천은사의 유래를 이야기 형식을 빌려 하셨습니다. 천은이란 샘이 숨어있다는 뜻이며, 신라 시대에 세워진 절입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불에 타서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샘에서 살고 있던 이무기를 죽여서인지 그 뒤 물이 나오지 않아 샘이 숨어버린 꼴이 되어 그런 이름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님의 이야기에 생활인들은 귀를 쫑긋하며 재미있는 듯 잘 들으며 호응했습니다. 천은사에 들어서며 천은사 주지 스님이 법륜 스님과 봉사자, 그리고 생활인들을 미소로 반가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니 보제루가 있고 그 뒤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모든 법당을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생활인들은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 놓고 보제루에 들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천은사 주지 스님이 허락하여 보제루가 놀이 장소로 쓰였습니다. 봉사자들이 준비한 놀이와 거기에 화답하듯 생활인이 준비한 춤과 노래가 한껏 어우러졌습니다. 놀 땐 놀더라도 신발은 가지런히 어떤 이는 무대 중심이 된 곳으로 뛰어나와 막춤을 신나게 추었습니다. 활기 넘치는 에너지는 보는 이들까지도 흥겹게 했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더이상 조용한 절간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노래해요. 수화와 노래를 준비한 김인숙 님 뒤를 보세요. 여기도 춤추고 있어요. 함께 노래와 춤을 생활인들의 놀이가 한창일 때, 법륜 스님은 보제루를 잠시 벗어나 경내를 거닐었습니다. 노랫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오니,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생활인들을 대변해서 양해를 구하는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생활인들은 앞사람의 뒤 꽁무니를 붙들고는 기차놀이를 했습니다. 각자의 노래 실력이 한껏 뽐내어지고 사람 기차는 빙빙 돌고 돌아 나갔습니다. 한 쪽에는 휠체어를 탄 생활인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손을 잡아 주는 봉사자가 있었습니다. 함께 일어나 춤이라도 한바탕 추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에 가슴이 살짝 아려왔습니다. 음악이 있고 율동이 있고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서 즐거워하는 모습은 몸이 조금 불편한 생활인이나 보통의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불편하고 느릴 뿐, 우린 모두 같은 몸과 정신을 가졌음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법륜 스님도, 부처님도 놀라셨습니다. 어느덧 법륜 스님의 닫는 말씀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법륜 스님은 생활인들이 뛰고 웃고 노는 모습에 부처님도 놀라셨을 거라는 농담을 건네며 흐뭇해하셨습니다. 원래 사찰에서는 뛰거나 떠드는 것은 안 되지만, 그것을 허락해 준 천은사 주지 스님께 감사 인사드릴 것을 권했습니다. 모두 다 알아듣고 대답을 찰떡같이 크게 했습니다. 이어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습니다. 스님은 오늘 함께 길을 나선 애광원 선생님들에게 스님이 쓴 책 《혁명가 붓다》를 선물했습니다. 애광원에서는 생활인들이 직접 만들어 준비한 컵케이크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봉사자 모두가 케이크가 든 종이 가방을 하나씩 받아 들었습니다. 준비한 사람의 정성이 느껴지는 선물이었습니다. 애광원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 송우정 이사님의 감사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다녔던 소풍 중 애광원 친구들이 제일 즐거워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일심동체가 된 봉사자 여러분들에게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내년에도 우리 친구들이 또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선물 같은 하루를 안겨 주어서 감사합니다.” 고마움을 전하는 송우정 이사님 오늘의 가을 나들이가 저무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스님과 생활인들은 서로 헤어지는 인사를 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버스에 타기 전 서로 안아 주고 개인 사진을 찍으며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손짓과 눈빛의 언어를 주고받았습니다. 송우정 이사님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봉사자는 그렇게 그들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다른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오늘 하루 애광원 생활인과의 가을 나들이 동행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짝지가 되어 준 그를 만나 오히려 제가 힐링했습니다. 많은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틀이 무너져 겸손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따스한 손을 잡고 눈빛으로, 손짓으로 소통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웃을 수 있었고 에너지 넘치는 짝지 덕분에 뛰어다녀서 운동도 되고 때론 가을 산책이 되었습니다.” 봉사자들 이어서 거제지회 애광원 나들이 봉사자들의 소감을 들어 보았습니다. “애광원 생활인과 가을에 나들이를 떠나야 비로소 ‘가을이구나’ 하는 마음입니다. 삼 년째 참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입니다. 스텝, 애광원 선생님과 함께하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힘이 납니다. 생활인들에게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파이팅을 함께 하니 기쁨은 배가 되었습니다. 손잡아주고 같이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짝지와 함께, 미소가 아름다운 박은주 님 “사고가 나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린 자신만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한곳에 자리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삼 년째 봉사하면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변화했습니다. 이번에는 휠체어를 탄 짝지와 동행했는데, 갈 수 없는 길, 자갈길, 계단이 많아서 어려웠습니다. 오늘 함께하면서 생활인도 ‘자연을 보고 싶고, 다니고 싶겠구나’ 하고 공감되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정신은 맑아졌습니다. 감동했을 때만 나오는 다이돌핀이 원없이 생성되는 나들이였습니다. 벌써 내년이 또 기다려집니다.” 휠체어를 밀며, 정승화 님 “누군가와 그렇게 오랜 시간 손을 잡아본 적이 없던 터라 걱정되고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시간이 지나니 손을 잡는 것이 어색하고 싫다던 제 마음도 잊고 짝지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그 순간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 알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짝지의 눈빛,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맨 앞줄에서 왼쪽 첫 번째 짝지와 함께 신성희 님 “JTS 그 어떤 봉사보다 마음에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매년 이 행사의 공지가 뜨면 누구보다 먼저 설레는 마음으로 신청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보는데도 정겹습니다. 이제는 봉사라기보다는 친한 지인들과 가을 경치가 좋은 곳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 같습니다. 봉사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광원 나들이를 포함해서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참여하겠습니다.” 짝지와 함께 박명주 님 “애광원 생활인들의 안전한 나들이가 되도록 ‘짝지와 자신을 잘 살피겠습니다’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생활인과 두 손을 꼭 잡은 그 순간, 이미 같은 곳을 바라보며 느끼고 있는 짝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장소가 바뀌면 불안해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저의 관점에서 대화가 안 된다고 화내고 짜증 내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대화가 되지 않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보려고 하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나의 짝지는 햇살처럼 따듯하였고, 마치 부처님을 만난 듯했습니다. ” 맨 왼쪽에서부터 두 번째 신둘자 님 길가에 피어난 가장 작은 한 송이 들꽃입니다. 어떤 가수의 노래 한 소절에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고 했습니다. 길가에 핀 한 송이 소국의 얼굴이, 한 사람이 피워낸 웃음꽃과 가히 닮았습니다. 더욱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다양성을 꽃밭에 비유하듯 그렇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못난 이, 잘난 이, 부족한 이, 느린 이들이 모두 어우러져야, 경직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이뤄진다고 생각해 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대 오늘 정토 행자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일지 모르는 그들을 맞이하여 순수하게 함께 웃고 손잡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물들어 가는 과정이 아니었을지, 가을의 단풍잎처럼 가슴과 볼이 빨갛게 따뜻이 데워졌습니다. 그대가 있어 우리가 존재합니다. 그 존재 자체로 소중한 애광원 생활인의 가을 나들이에 우리 정토 행자들이 함께 행복했습니다. 천은사 계곡 위에서 글황재윤 사진황재윤, 서은주, 배종수 참고‘법륜 스님의 하루’ 에서 스님의 말씀 발췌

복지 2025.11.21. 206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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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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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