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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가 장군을 만나면 생기는 일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 아시죠? 그런데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이 아닌, 처음부터 장군을 만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 누구보다 국제지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성애 님의 수행담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보겠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중학교 시험을 앞둔 저에게 어머니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게 절에 가서 부처님께 빌자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누군데 나를 학교에 보내 준다는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불교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불교 학생 클럽에 갔습니다. 대각사와 관련 있는 룸비니라는 곳이었는데, 불교라는 것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 내 인생을 꾸려 나가는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라’ 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1969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불교학생회 여름 수련 그전에는 제가 성격도 좋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져 말도 제대로 못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극복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5060명 앞에서, 그것도 거의 남학생이고 여학생이라고는 34명밖에 없는 곳에서 발표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 앞에서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발표하던 그 순간이 제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감을 얻은 저는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고등학교 생활도, 대학 생활도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가서 공부도 잘하고 학생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며 학생 회장도 맡아, 한 시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생활했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이 순간에만 충실하면 여러 가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에 힘들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야 평강공주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결혼 안 하면 못 간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 중이라는 남자와 중매가 오고 갔습니다. 저는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사진만으로 약혼하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만난 지 열흘 만에 결혼했습니다. 2025년 청년페스타 국제지부 부스 봉사 생판 모르는 남자와의 결혼이었지만, ‘나는 평강 공주다, 바보 온달을 만나도 나는 장군을 만들 거다’ 하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미 장군이었습니다. 남편이 저를 처음 보고 한 말은 ‘나를 바꾸려 하지 말고, 네가 바뀌어라’였습니다. 남편은 자기 말만 옳다고 생각하고 제 말은 하나도 듣지 않았습니다. ‘달을 보고 해라고 해도’ 그렇다고 해야만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평강공주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속 주인공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혼 일주일 만에 이혼을 생각했습니다. 둘이 결혼한다고 기뻐하던 양가 부모님 생각에, 또 이혼한다 하더라도 미국 아이오와에서 따로 갈 곳도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지냈습니다. 다행히 “여자는 결혼하면 애나 키우고 집안일이나 하라”는 남편을 설득해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취직이 되어 뉴저지로 왔습니다. 당시 남편은 새벽 6시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며,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10년 동안 휴가를 하루도 내지 못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아빠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던 딸은 자기는 아빠가 없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혼자 새로운 곳에서 직장을 다니며, 당시 세 살 된 딸을 키우고 집안일도 모두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비실비실 많이 아팠습니다. 혈압이 8040mmHg까지 떨어지기도 하고 까무러치기도 했습니다. 그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회사 보스가 ‘너는 일은 잘 하는데, 아파서 자주 빠진다’고 하며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났는데, 막 눈물이 났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줄 몰랐는데,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집안 일을 하나도 도와주지 못하는 남편에게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도 못 하고 사니,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몸이 아픈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남편과의 공동 치료를 권했지만, 얼굴 보기도 힘든 남편과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025년 부산 불교 박람회 다시 수행을 시작하다 살기 위해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붙일 곳을 찾아 이 절 저 절 다녔습니다. 어느 날 정토 회원인 고모가 정토지와 법륜 스님의 법문 테이프를 주었습니다. 집안 어딘가에 던져 두고 잊고 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테이프를 들어봤는데 제가 찾던 스님이 거기 있었습니다. LA 정토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2009년에 직접 찾아 갔습니다. 정토회를 찾아간 지 1개월 만에 에 갔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가던 불교 수련회 같은 곳인 줄 알고 놀러 갔습니다. 그저 놀러 간다는 마음으로 갔지만, 수련을 하면서 눈물이 그렇게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 무렵은 남편이 1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가 벌어서 생활하던 때였습니다.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애나 보라고 하더니, 이제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동안 나를 억누르며 살아온 데 대한 원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내 마음에 있었지만 나도 모르고 있던 것들을 다 쏟아 내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 후부터는 남편이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남편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 그래도 먹고살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009년 깨달음 장을 마치고 유수 스님과 함께 에 참여하기 전에는 길거리를 다니며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을 다녀온 뒤에는 저 사람들이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외치고 다닐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을 마치고 나서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에 가 보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이혼으로 괴로워할 때 바로 을 권했습니다. 동생도 그곳에 가서 깨달음을 얻고, 이후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정토법당을 만들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계속 알아가는 중입니다. 남편은 처음 10년 일한 이후에는 내내 자기가 하고 싶은 골프를 치며 살았습니다. 요즘은 폐렴으로 몸이 약해져 요양원에 있습니다. 저는 요양원에 있는 남편과 아침저녁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고, 필요하다는 것을 사다 주며 지내고 있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남편이 제가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정토회 오프라인 활동을, 휴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어른들이 본 남편의 사주팔자는 일부러 만든 사주라고 할 정도로 좋다고 했습니다. 남편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편은 저와 결혼해서 일을 하지 않고도 평생 돈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으니 사주대로 잘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생활 50년 동안 남편과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하고 대들지 않으니 아예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 결혼하자마자 “자기를 바꾸려 하지 말고, 네가 바뀌어라”라고 말하던 남편은, 몇십 년이 지나고 나서는 “네가 되게 똑똑하다. 내가 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 남편은 아니라고 하며 폼을 잡고 있지만, 예전부터 저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아니까 그냥 봐주면서 살 만합니다. 2026년 2월 영어불교대학 졸업식 저는 누가 ‘남편을 사랑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랑하기 위해 50년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남편과는 서로 모른 채 결혼해 그렇게 서로를 잘 모른 채 50년을 살아왔으며, 지금도 매일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평강공주를 하긴 했습니다. 다만 남편을 장군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남편이 제 말을 조금만 들었더라면 장군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나는 잘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은퇴 후 재취업이 되어 한국으로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법당과 집이 멀어서 하지 못했던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마치고 전법활동가가 되었습니다. 마침 코로나가 터져 온라인 법당으로 전환되는 시기였기에, 제가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이 있었지만 온라인으로 수월하게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법활동가가 된 후 일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불교대학 진행자, 정토담마스쿨 진행자, 모둠장 등의 소임을 맡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요즘은 9번째 정토담마스쿨 진행자를 하고 있는데, 정토담마스쿨을 졸업한 외국인들이 회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아침 5시와 6시, 하루에 두 번 아침 공동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만날 생각에 신이 나서 12시 반에 자도 4시 반만 되면 눈이 딱 떠집니다. 무릎을 아끼기 위해 쿠션을 서너 개 깔고 천천히 절을 해서 인지, 아직 천 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릎도 멀쩡합니다. 2026년 외국인들과 함께 한 반나절 템플스테이 저는 요즘 정토회 덕분에 산다고 할 정도로 행복하게 정토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진행한 반의 학생들이 정토회 외국 회원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면 참 보람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온 딸이 한국에 와서 제일 좋았던 일이 손주들과 함께한 반나절 템플스테이라고 합니다. 2차에서는 반나절 템플스테이를 집중적으로 진행해 외국인 회원을 더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제 인생 모토는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인생은 즐겁고 게임이다’입니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Just Do It”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오다 보니 지금은 돌아보며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불교를 중심에 두고 저를 닦으며 살아왔고, 을 통해 저를 돌아보게 된 덕분입니다. 처음에는 서성애 님이 왜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을까 궁금해하다가, 에너지 넘치고 반짝반짝한 서성애 님 같은 분을 정토회 도반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결국 그 인연 덕분임을 깨달으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장군을 만난 평강공주는 남편이라는 시련을 통해 진짜 인생의 주인공인 정토행자로 거듭나, 외국인들을 수행자로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글고명주 희망리포터 편집이주현
3년의 자리, 변함없는 기다림_천안지회 JTS 거리 홍보 캠페인 회향 현장
꽃샘추위로 잔뜩 움츠러든 거리는 며칠 전 내렸던 진눈깨비로 제법 쌀쌀했습니다.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파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온양온천역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천안지회는 3년간 이어온 JTS 거리 홍보 캠페인을 회향하며, 천안 지역 5개 모둠이 함께 모였습니다. 9시 30분부터 하나둘 모여든 봉사자들은 차량에서 물품을 내렸습니다. 복지 꼭지님이 테이블과 모금함을 가져오지 않아 잠시 당황스러운 상황이 있었습니다. 실천 활동 담당자는 재빠르게 근처 빵집에서 빵 상자를 얻어 테이블을 만들었고, 봉사자들은 능숙한 솜씨로 조끼를 입고 패널과 플래카드를 걸었습니다. 준비가 하나씩 갖춰지고 10시가 되자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JTS 홍보 패널과 플래카드 설치하는 봉사자들과 아이들 모두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복지 꼭지님이 명심문으로 여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 사회자의 여는 말로 시작한 캠페인 분위기는 참가자들의 구호와 함께 점점 고조되었습니다. 로고송이 나오고 어색한 율동이 시작되자 사람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시민들은 율동이 신나는지 서투르게 따라 하거나, 신기하게 쳐다봤습니다. 밝은 분위기가 살아나고 캠페인이 궁금한 어르신들이 모여들고, 기부하는 시민도 있습니다. JTS홍보 캠페인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 40분 동안 캠페인을 진행한 후 닫는 나누기가 이어졌습니다. 봉사자들 얼굴에 땀과 함께 뿌듯함이 묻어났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캠페인에 관심도 많고 기부도 해서 뿌듯했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그만큼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홍보 효과도 커지는 것 같아 좋은 마음입니다. 광장에서 이런 율동을 하는 것은 JTS여서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동하면서 땀이 났습니다. 신나고 재밌습니다. 혼자 했으면 머리에 꽃을 꽂은 사람이라고 이상하게 봤을 것 같아요. 여태 보기만 하다가 직접 참여하니, 눈길 한번 주는 것이 힘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행사를 보면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홍성지역 JTS 거리 홍보 캠페인 서산지역 JTS 거리 홍보 캠페인 2025년 11월 JTS 거리 홍보 캠페인 천안 삼거리 공원 3년간의 JTS 거리 홍보 캠페인은 회향을 맞이하기까지 절대 가볍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천안지회는 천안·홍성·서산 3개 지역에서 연중 8개월 동안 쉬지 않고 거리에 섰습니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내리는 날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실천 활동 담당 이화영 님은 그 3년을 회고하며 말했습니다. 천안지회의 자랑입니다. 처음 복지 꼭지와 일을 시작하면서 원을 같이 세웠습니다. 도반과 같이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원을 이뤘습니다. 천안삼거리 공원에서 팻말 들고 홍보한 적이 있는데, 캠페인 하는 우리도 즐거웠고, 시민들의 반응도 좋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천안지회 지회장 대행 이복순 님은 꾸준함이 가져오는 힘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참여도가 높은 이유는 아무래도 그동안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 아닌가 해요. 매달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꾸준히 홍보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도반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어 일정 잡기도 좋고, 시민들에게도 흥겨운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도반들과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처음 참여한 두정모둠 새내기 회원도 소감을 전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로 예전에 이런 행사를 많이 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이런 경험을 하게 되어 새롭고 재밌습니다. 도반들의 봉사 정신도 알게 됐고 같이 할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JTS 거리 홍보는 모둠 소통방 홍보와 도반들과 함께하는 현장 홍보 두 가지입니다. 현장 홍보가 잘 되려면 모둠 홍보가 더 중요합니다. 모둠장들이 먼저 포문을 열어야 더 많은 도반이 거리로 나올 수 있습니다. 2026년 3월 JTS 거리 홍보 캠페인 봉사자 단체 사진 온양온천역 광장은 온천을 즐기기 위해 서울에서도 찾아오는 곳입니다. 3년간 매달 지속한 캠페인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었습니다. 세상 속으로 걸어가 사람들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세상과 함께 가겠다는 원이었고, 세상에 회향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세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음 참여한 새내기 도반이 눈길이라도 한번 보내야겠다.라는 마음을 낸 것처럼, 작은 발걸음 하나가 캠페인을 더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 눈길들이 모여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고, 아픈 사람이 치료받고, 아이들이 제때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도,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는 날도. 매달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서면 세상이 보입니다. 바쁘게 지나치던 사람들의 눈길 속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어르신의 미소 속에, 어색하게 따라 하는 율동 속에 우리가 전하는 나눔이 조용히 스며듭니다. 당신의 파란 조끼가 함께 나부끼는 날을 기다립니다. 글김종호 사진김종호 편집여수연